자유연재 > 로맨스
자취방 : 은밀한 공간
작가 : Yang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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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17-07-11     조회 : 520     추천 : 0     분량 : 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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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은 기분이 좋았다.

 뜨거운 태양 빛이 짜증을 유발 할 법도 하건만,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어딘가, 특별한 휴양지에 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 그 무엇 하나 특별 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파라솔이 가져다주는 그늘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살랑살랑 흔들린 기분이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RRRR.

 

 살랑 거리는 기분을 만끽하던 서연은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슬쩍 눈을 떠 액정을 바라봤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받아야 하는 이름.

 엄마였다.

 

 “어, 엄마. 응. 지금 짐 다 풀고 잠시 쉬고 있어.”

 

 살랑 거리는 기분이 미풍에 의해 날아간 것만 같았다.

 통화가 지속 될수록.

 사랑과 걱정이 가득한 말이 들려올수록.

 열쇠 없는 튼튼한 자물쇠가 걸린 금고에 갇힌 것만 같은 답답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럼~! 엄마가 나 사랑하는 거 알지.”

 

 애교 가득한 목소리와 달리 입안에는 쓴 웃음이 맴돌았다.

 쓴 웃음을 뱉어 내려는 듯, 핑크빛이 감도는 붉은 입술을 몇 번이고 오물거려 보지만 쉽사리 내뱉을 수 없었다.

 

 “나도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결국, 애교와 더불어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느새 쓴 웃음은 사라지고,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응. 응? 에이~ 나 술 싫어하는 거 알면서.”

 

 영상통화도 아니건만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애교를 떠는 입술에 그려진 미소가, 틀에 박힌 것처럼 굳어져 갔다.

 

 “응. 끊을게~!”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서연은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사랑과 애교를 쏟아내던 입술이 맥주 캔의 입구를 감쌌다.

 

 꿀꺽.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 한 것 같은 상쾌한 미소가 지어졌다.

 통화를 할 때와는 다른, 진실 된 미소였다.

 

 “좋다······.”

 

 그토록 원하던 자취의 시작.

 기분이, 좋았다.

 

 * * *

 

 위윙-! 위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서연의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교문을 지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폭염 주의보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늦었잖아······.”

 

 서연은 쓰고 있던 모자를 부채로 사용하며 짜증을 내뱉었다.

 뜨거운 햇빛과 아스팔트.

 이미, 폭염의 한가운데였다.

 

 RRRR.

 

 폭염 주의보 메시지가 꺼지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영어과 17학번 김민우.

 같은 학번이자 친한 동생 중 한 명이었다.

 

 “여보세요?”

 -누나!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쾌활한 민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 민우야. 왜?”

 -뒤 돌아 보세요, 누나.

 

 서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의 두 남, 여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동기이자 동생인 민우와, 마찬가지로 동기이자 동생인 지민.

 폭염 속에서 뜨거운 아스팔트를 내달리는 둘의 모습이 좀, 힘들어 보였다.

 

 “노래 들으면서 걷느라 못 들었나봐. 미안해, 괜히 뛰게 해서.”

 “아니에요.”

 “오랜만이에요, 언니!”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방긋 웃는 두 사람에 서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응. 반가워! 오랜만에 보니까 너희······.”

 

 서연은 말끝을 흐리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소위 말하는 남친 룩, 여친 룩을 입은 두 사람이었다.

 각자의 외모도 뛰어나다 보니,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누나!”

 “언니!”

 

 서연의 말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얘랑 요?”

 “얘랑 요?”

 

 그리고는, 동시에 서로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선남선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건만.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 맞다. 누나, 자취 하신다면서요?”

 

 더 이상 지민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싫다는 듯.

 화제를 돌리며 자신에게 묻는 민우와, 그에 놀라며 되묻는 지민이었다.

 이 순간 까지도 잘 어울리는 둘의 모습에, 서윤은 키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조교님이 말씀 해 주셨어요. 누나가 이 근처로 주소지 변경 했다고요.”

 

 민우의 대답에, 연신 웃음을 머금던 서연의 입가에 짜증이 내려 앉았다.

 

 “하여간 입은 싸서······. 그런데 왜?”

 “헤헤, 저도 자취 하는데······.”

 “응. 알지?”

 “전에 MT 때 보니까 누나 요리 잘 하시더라고요.”

 “너도 잘 하지 않았어?”

 “저는 라면만 끓였을 뿐이죠, 뭐. 누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부족해요.”

 “······그래서 본론이 뭐야?”

 “재료를 드릴 테니 반찬 좀 부탁드립니다.”

 

 어이없는 미소가 서연의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어이가 없는 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말 이었다.

 

 “대체 뭘 먹고 살았기에 나한테 부탁을 해? 한 학기 동안 자취 했으면, 간단한 찌개나 반찬은 만들 수 있을 것 아니야?”

 “어······. 이것······ 저것······?”

 

 어색한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그에, 서연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집에서 해 먹은 거라고는 라면 밖에 없지?”

 “······말아 먹을 밥도 해 봤어요.”

 “자랑이다. 방학 때 집에서 반찬 좀 가져 오지.”

 “1학기 때 부터 집에 간 적 없는 데요······.”

 

 민우의 목소리가 쥐구멍에 들어가듯 작아졌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서연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알았어. 해 줄게.”

 “정말요?”

 “어. 보나마나 집에 재료도 없지?”

 “네······.”

 “오늘 껀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걸로 할게. 와서 밥이나 먹고 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어진 서연의 말에, 민우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누나 방에 가도 돼요? 나, 남자인데?”

 “······뭐? 네가 남자라고?”

 

 서연은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 보였다.

 그에 민우는 불만 가득 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여 보였다.

 

 “당연하죠!”

 “참나, 어휴. 무섭다, 무서워. 지민아. 너도 우리 집에서 밥먹고 갈래?”

 “그래도 되요?”

 “그럼. 친한 동생들인데, 안 될게 뭐 있어?”

 

 서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두 사람 또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서연을 바라봤다.

 

 “그럼, 우리 오늘 집들이해요.”

 “집들이?”

 “네! 언니가 그렇게 바라던 자취의 시작인데, 축하 파티 해야죠!”

 

 지민의 말에, 잠시간 고민하던 서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그럼 술은 제가 사 갈게요!”

 “술······?”

 

 지민의 말에 서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민우를 바라봤다.

 어째서인지, 술이 땡기지 않았다.

 

 * * *

 

 서연은 침대에 누워 TV 불빛을 통해 민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단정한 눈썹과 맑은 눈.

 오뚝한 코 아래 자리 잡은, 우윳빛 피부와 어울리는 붉은 입술.

 잘 생겼다기 보다는 귀여운 얼굴.

 서연은 그 얼굴을, 발로 막았다.

 

 “······안 돼?”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간지러움 때문인지, 상황 때문인지.

 서연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될 거라 생각 해?”

 “······아니.”

 

 찰랑이는 앞머리가 발가락 끝을 간질였다.

 그에 여전히 미소를 띈 서연은 부드럽게 밀었다.

 

 “그럼 저리 가.”

 

 부드럽게 밀려 난 상체가 다시금 앞으로 기울진다.

 발을 피해 다가온 입술이 머뭇거리며 속삭였다.

 

 “나······ 누나 좋아해.”

 “알아.”

 “알고 있었어?”

 “저번 학기 MT 때부터 티를 내는데 모를 리가. 그리고······.”

 

 서연의 시선이 옆에 누운 지민에게 향했다.

 등 돌려 누운 모습에서는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시체처럼 고요해 왠지 모를 불안함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옆에 있잖아?”

 “나는 상관없어.”

 “하아······. 나는 상관있어.”

 “그 말은······. 지민이가 없다면 괜찮다는 거야?”

 

 묘한 기대감이 엿보이는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왜······? 나,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

 “1학년 수석에, 선배들도 나한테 도움을 구하잖아. 이 정도면 능력 좋지 않아? 얼굴도 잘생겼고.”

 “응. 너는 엄청 괜찮고 능력 좋은······ 귀여운 동생이지.”

 “그냥······ 동생인거야?”

 “응.”

 “난 남자이고 싶은데.”

 

 기이한 열망이 담긴 입술이 점차 다가왔다.

 뒤늦게 그 기이한 열망을 알아 챈 서연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야······!”

 

 다급하게 그의 가슴을 밀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코 앞 까지 다가온 그의 숨결에 입술이 메말랐다.

 

 “민우야.”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부드럽게 휘감고는 끌어당겼다.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그의 입술을 피한 서연은 메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속삭였다.

 

 “민우야.”

 “······.”

 “······착하지?”

 

 그의 목을 감았던 팔을 내려, 등을 토닥였다.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서연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마치, 첫 키스를 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진짜 날 좋아해?”

 “응.”

 “그럼 앞으로 이러지 마.”

 “······응.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서연은 한참 동안 민우를 끌어안았다.

 선명하게 들려오는 심장 박동 소리와, 따듯한 체온에 마음이 진정 되어 갔다.

 

 “이제 일어나자.”

 “조금만 더······.”

 

 응석을 부리듯, 목덜미에 입을 맞춰 온다.

 미약한 전율에 한 차례 몸을 들썩인 서연은 그의 등을 때렸다.

 

 “너, 담배 냄새 나.”

 “······너무해.”

 

 서연의 귓가에 머물던 숨소리가 멀어져 갔다.

 떨어지기 싫어하던 민우가 즉시 떨어지자, 서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제 그만. 너는 자취 한다지만 지민이는 아니잖아. 깨워서 집에 보내야지.”

 “······응.”

 

 부드러운 눈빛과 아쉬운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우음······.”

 

 그리고 그때, 그 시선 너머로 등 돌린 채 고요하게 누워 있던 지민이 몸을 뒤척였다.

 

 “······!”

 “······!”

 

 좁은 방 안에 침묵만이 가득했다.

 그 침묵 속에서, 서연은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몸을 뒤척이며 뒤 돌아 누운 지민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올려져 있었다.

 

 “후우, 잠꼬대였구나.”

 

 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민우를 바라봤다.

 

 “······그 눈빛 뭐야?”

 

 서연은 피식 웃으며 민우를 향해 물었다.

 그의 눈빛은······ 좀, 그랬다.

 

 “부럽냐?”

 “아, 아니. 누나. 내가 뭘.”

 “으휴, 변태.”

 

 서연은 키득이며 아기처럼 잠을 자는 지민을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지민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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