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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꽃은 은장도를 품는다
작가 : 진서아
작품등록일 : 20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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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17-07-07     조회 : 451     추천 : 0     분량 : 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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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좋은 인연도 있지만 나쁜 인연도 있다. 그러나 그 인연은 운명이 아닌 자신이 만드는 법. 운명을 거스르려한 한 여인이 있었다.

 

 스산하게 추적추적 비오는 날 밤, 비바람이 불어 날씨가 시린 날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은 집문을 꽉 닫고 집안에서 따뜻한 화로에 몸을 녹였다.

 

 그중 비바람 속에서도 태어난 생명들은 굳세게 바람을 맞으며 세상의 혹독함을 겪었다.

 

 응애~ 응애~

 

 빗중에 홀로 남겨져 있던 낡은 초가집안에서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자랑하듯이 갓난아기들의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한 젊은 여인은 초라한 초가집 안에서 쌍둥이남매를 낳았다. 그녀의 옆에는 한 중년 여인과 한 사내가 앉아서 산모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산달이 다 되어 낳은 아이들이었지만 워낙 산모의 몸이 약했던지라 산모는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산모의 옆에 있던 여인이 두 아이를 조심스럽게 강보에 싸고 한명씩 산모에게 보여주었다. 애써 웃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워 여인은 슬프게 웃었다.

 

  “마마, 쌍생아 이옵니다. 왕자아기씨와 공주아기씨이십니다..”

 

  “그런가 한상궁..아이들은 건강한가?”

 

 기진맥진한 산모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상궁이라 불린 여인은 그녀의 머리에 맻혀있는 식은땀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했다.

 

  “예.”

 

 옆에 있던 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아픈 기색을 살피며 앉아 있을 뿐..그러나 속으로는 끝없는 슬픔을 부르짖고 있었다.

 

  “내...가...살 수 있겠는가?”

 

 여인이 힘없이 묻는다. 한상궁은 애써 여인이 자신의 눈물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태연하게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부디 말을 삼가시옵소서.”

 

 그러나 한상궁의 말에 여인은 도리질을 쳤다.

 

  “나는 내 운명을 이미 알고 있네, 내가 명이 다해가는 것을 느껴..”

 

  “.....”

 

 한상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여인은 한상궁에게로 향했던 고개를 돌리더니 사내에게 말했다.

 

  “내금위장..아니 한호야.”

 

 사내는 아련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없이 그녀를 탐하고자 했으나 감히 그럴 수 없었던 여인. 형이 사랑했었던 그리고 지금은 주군의 여자. 마지막으로 그가 바랐던건 그녀의 행복이었으나 그마저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마..어찌 그런 말씀을.”

 

  “염치 없는 부탁을 항상 너에게 하게 되는구나. 미안하다.”

 

 여인은 그의 슬픈 눈동자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웃어주었다. 왜 모르겠느냐. 네가 나를 절절히 연모했던 것을. 그래서, 또 너에게 무거운 짐을 주어 미안하다고 여인은 그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한호는 애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옵니다.’

 

 믿는다. 너를 믿어. 여인은 그의 답을 듣고는 힘없이 웃었다.

 

 “한상궁...내 아이들 이름은 남자 아이는 해인이라 해주고, 여자아이 이름은 여화라 해주게..

 그리고.. 난 내 아들을 지키고 싶네. 여자 아이만 궁에 보내주게.“

 

 궁에 보낸다면 필시 정쟁에 휩쓸릴 것이기에, 그렇다면 사내보다는 계집이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그리 판단했다. 그래서 낸 결정이었다.

 

  “마마...”

 

  “남자아이는 한호 너에게 부탁한다...쿨럭,”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내 유언은 저기 서랍장 안에 넣어 두었네..내 아가들..”

 

 아이들은 강보에 싸인채 새카만 눈동자를 굴리며 생긋생긋 웃고 있었다. 그녀는 강보에 싸인 아이들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너희들은 부디 내 운명을 따라가지 않도록..이 어미가 하늘에 가서도 빌 것 이야...”

 

 한맺힌 말을 토해내며 그녀는 아이들을 쓰다듬던 마른 손을 내려놓더니 긴 한숨 후 숨이 끊어졌다. 한호와 한상궁은 그녀의 죽음을 보며 울음을 토해냈다. 한상궁은 입으로 한호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

 

 쌍둥이를 낳은 여인의 이름은 황백련, 그녀는 작년 폐비가 되어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폐위되어 쫓겨나기 전 그녀는 이미 뱃속에 왕의 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후에 알게 된 그녀를 폐위시킨 이들은 그녀와 복중아이를 죽이려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그녀가 아이를 낳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초가를 염탐하던 무리들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들의 주인에게 가서 알렸고 소식을 접한 그들은 재빨리 조치를 취했다.

 그들은 궐에 심어놓은 심복들을 시켜 만일 계집아이면 그대로 궐에 보내고 혹여 사내아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라 명하였다.

 

 "상궁, 어서 말해보게. 여아인가 남아인가?"

 

 잠시 뒤 금부도사가 금군을 이끌고 초가를 찾아와 백련의 아이에 대해 물었다. 폐비의 자식이나 왕의 피를 물려받은 이들을 감히 여아, 남아라 낮추어 말하는 금부도사의 언행에 한상궁은 분노했다.

 

 "무엄하오! 왕손에 대한 예의를 갖추시오."

 

 한상궁이 금부도사에게 호통을 친 그 순간 금부도사는 허리춤에 찬 칼을 순식간에 꺼내어 한상궁에게 겨누었다.

 

 "대답하라. 어명이다."

 

 한상궁은 눈앞에 있는 서슬퍼런 칼날에 겁을 먹었지만 그들을 노려보며 경멸하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어명이 아니라 그대들을 비호하는 대감들의 명이겠지. 그래, 말해주겠소. 마마께옵서는 공주아기씨를 낳으셨소."

 

 금부도사는 한상궁의 말투는 개의치않고 그녀의 목에 칼날을 더 바싹 붙이며 물었다.

 

 "폐비는?"

 "돌아....가셨소."

 

 한상궁은 울먹이며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금부도사는 매정하게 말했다.

 

 "아이를 내놓아라."

 

 한상궁은 버티려 했지만 계속되는 금부도사의 협박에 결국 방에 들어가 여화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데려왔다. 한 병사가 거칠게 아이를 빼앗아가려고 하자 한상궁은 몸을 돌리며 사납게 말했다.

 

 "내가 모시고 갈 것이다!"

 

 그리고 여리디 여려보이는 여화를 꼭 껴안았다. 병사는 금부도사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금군들은 여화를 안은 한상궁을 감시하듯 둘러싸고 궁으로 향했다.

 

 한편 초가안에는 나인 김설하가 이미 죽은 백련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삼일 후 그녀의 장례가 간소하게 치뤄졌다. 그녀의 상여가 초가를 나가는 것을 해인을 안은 한호가 지켜보고 있었다. 한호는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도성을 떠났다. 그 후로 몇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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