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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서린
작품등록일 : 20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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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존 (2)
작성일 : 17-07-08     조회 : 118     추천 : 1     분량 : 5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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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생존 (2)

 

 3시간가량 고요한 거리를 걷다 보니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아무도 없는 폐허를 걷는 건 고욕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 무너진 건물뿐이라서…. 단 한 명의 사람도 마주하질 못해서….

 멍하니 걷는 것도 한계다. 불쾌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한숨을 쉬곤 고개를 들어 불그스름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붉은 하늘 한켠에 혼자만 우두커니 서 있는 고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모라 호텔 제이미슨 시드니(Amora Hotel Jamison Sydney). 그 난리 통에 이런 고층 건물이 서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벌써 도심 한복판으로 들어왔나 라는 생각을 한다.

 연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멀쩡한 건물이라면….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 다가가 호텔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멀리서 봤을 때 그럴싸한 건물이었지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위태롭다. 상층부는 건재할지라도 하층부가 이렇게 그을리고 부서져 있다면 어느 누가 안심하고 들어가겠는가.

 호텔을 살피던 중 평소 보지 못한 흔적을 찾았다. 호텔 벽면에 거칠게 칠해진 붉은색. 글씨?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라 알아볼 수 없다. 애초에 저런 언어가 있을까? 연규가 조심스레 글씨로 다가간다. 몸이 뻣뻣하다는 걸 느낀다. 긴장감 때문일까? 애써 목을 좌우로 꺾어보고 팔을 돌리며 긴장을 풀어 본다.

 가까이서 봐도 어떤 글씨인지 알아볼 수 없다. 글씨라기보단 무언가 붓 같은 도구로 마구잡이로 칠해 놓은 것 같다. 그 알 수 없는 글씨(?)는 벽면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연규는 글씨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보통 공포영화 같은 걸 보면 호기심을 참지 못하면 죽던데….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하늘이 붉다 보니 붉은색이 익숙해서일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의 위험성보다 궁금증을 참기가 더 힘들었다.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어둡다. 연규가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붉을 밝혔다. 주변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래 봤자 시야는 좁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계속 옮길수록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저벅. 저벅. 저벅. 처벅.

 "응?"

 일정하게 들리던 발소리 리듬이 깨진다. 처벅? 물 밟는 소리다. 연규가 쪼그려 앉아 바닥을 만져본다. 끈적한 느낌. 물을 약간 섞은 물엿을 만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점성을 가지고 있다.

 흔들거리는 불빛을 손에 가져다 댔다. 검은색? 라이터 불빛이 확연히 밝지 않아 정확한 색을 구별하기 힘들다.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생선 비린내도 아닌 것이 역겹게 비린 향이다. 연규가 오만상을 짓고 손을 바짓단에 훔치고 일어섰다.

 바닥에 흥건한 액체에 의문을 품고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자 철제문이 보인다. 양쪽으로 여는 문인데 한쪽이 반쯤 열려있다. 체육관 지하창고보다 더 어두웠다. 그곳은 햇빛이 문까지 들어오기라도 했지 이곳은 계단 초입부터 빛이 끊겼다.

 지포 라이터 불빛에 의지하고 천천히 지하실로 들어간다. 문득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불빛이 꼭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실로 들어와 문 바로 옆을 더듬거렸다. 스위치가 있다. 연규가 스위치를 조작한다.

 -딸칵.

 아무런 반응이 없다.

 -딸칵. 딸칵.

 여기도 전기가 나간 건가? 하늘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던 날이 생각난다. 하숙집도 전기가 안 들어왔다. 이곳도 마찬가진가 보군. 연규의 발걸음에 맞춰 처벅거리는 소리가 오싹하다.

 작디작은 라이터 불빛은 넓은 지하실을 모두 밝히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벽면을 따라 움직였다. 찌그러지고 부서진 각종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 이상하다. 하늘의 돌덩이가 이렇게 만들었을 리가 없다.

 부서진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닥을 가득 채운 끈적끈적한 액체 때문에 어떠한 물건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각종 의약품으로 보이는 물건과 방한 물품, 식량, 삽과 망치 등이 있다.

 구호 물품이다. 그렇다는 것은 돌덩이가 떨어진 이후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건데, 지금은 왜 아무도 없는 걸까? 그리고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는 뭐고. 연규는 라이터 불빛을 바닥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액체는 마냥 검은색이 아니었다. 약간의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검붉은색 액체. 끈적끈적한 점성. 비릿한 냄새.

 "피…?"

 소름 끼치는 생각이 든다. 순식간에 닭살이 올라왔다. 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다른 무언가로 생각되지 않는다.

 연규가 액체에서 시선을 떼고 지하실을 둘러본다. 눈이 암순응됐는지 작은 라이터 불빛으로 지하실이 훤히 보인다. 바닥을 가득 채운 검붉은색 액체. 부서진 집기와 벽, 사방에 칠해진 액체. 혼란스럽다. 연규가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지하실 어딜 가도 검붉은 액체가 가득하다.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에 발이 걸렸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라이터를 놓쳤다. 바닥을 짚은 손을 들어 올렸다. 검붉은 액체가 범벅되어있다. 명치 부근이 조여온다.

 "웩! 우웩!!!"

 학교에서 먹은 것들이 역류한다. 상체를 틀어 먹은 것을 게워낸다.

 위장을 모두 비워내서 위액만 나와도 구역질은 계속됐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 피가 다 뭐란 말인가. 이상하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헛구역질을 반복하면서도 머리를 굴리려 안간힘을 썼다.

 진이 쏙 빠진 채로 다시금 라이터를 켜서 지하실을 둘러봤다. 바닥을 가득 채운 혈흔에 도망갈 만도 한데 지하실이 주는 이상한 찝찝함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찝찝한 기분을 알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느낌.

 그렇게 고민하다가 생각났다. 혈흔이 넓은 지하실 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검붉은 피를 가진 무언가가 엄청나게 많이 이곳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검붉은 액체만 가득할 뿐 피의 주인이 없다. 설마 사람의 피는 아니겠지 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렇다면 피의 주인은 어디 있는 거지?

 빌어먹을 비린내는 적응 될 만도 한데 전혀 익숙하지 않다. 또다시 구역질이 올라오려 한다. 찝찝한 기분이 조금은 해소된 연규가 지하실을 빠져나가려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물을 밟는 소리. 연규는 몸을 일으켰을 뿐이다. 전혀 날 수가 없는 소리. 누군가 오고 있다.

 깨어나고 채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다. 연규는 반가운 맘에 그에게 달려갔다. 아주 잠깐 달려나가는 와중에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맴돈다. 어서 그를 붙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내고 싶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다고, 그 고생 끝에 이렇게 살아남았다고.

 그렇게 달리며 철제문을 붙잡고 돌아 계단을 바라봤다. 계단 위쪽을 비추는 붉은빛에 정확히 식별되지 않는다. 굳이 역광이 아니어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이미 눈가에 눈물이 가득 찼기 때문에.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뿌연 시야 때문에 표정을 알아볼 수 없다. 그도 사람을 만나 반가워 하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덩치도 좀 있어 보이는 게 남성이라 생각됐다. 손에 기다란 물건을 쥐고 있는데 무엇인지 구별이 안 된다. 연규가 그에게 다가갔다.

 "와! 드디어 사… 아악!!"

 연규가 다가가자 사내가 손에 든 기다란 무언가 휘둘렀다. 왼쪽 어깨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다. 쇳덩이에 맞은 느낌. 사내 손에 든 물건은 쇠파이프였던 걸까? 연규는 충격에 지하실로 굴러 넘어지며 들고 있던 지포 라이터를 놓쳤다.

 "으아!!! 죽어!! 죽어! 죽어!"

 사내가 괴성을 내지르며 들고 있는 무언가를 휘두른다. 연규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웅크렸다. 충격에 대비해 잔뜩 긴장하고 있어도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내는 여전히 손에든 물건을 휘두르며 괴성을 질러댄다. 휘두르는 물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벽과 바닥을 부딪치는 소리가 섬뜩하다.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다. 들고 있던 지포 라이터를 떨어트린 덕분에 지하실은 암흑으로 가득했다. 사내는 연규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반대로 연규 역시 사내의 위치를 몰랐다. 오히려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무기에 위축된다.

 -까앙. 철썩.

 사내가 휘두른 물건이 벽을 내리치고 불꽃이 인다. 순간적으로 지하실이 보인다. 사내가 벽을 내리친 충격으로 손에서 무기를 놓치는 것까지.

 연규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일어나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마음이 급하다. 어둠 속에 자신이 정확한 방향으로 달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가운데 발을 헛디딘다.

 -철퍽.

 그대로 발을 접질리며 얼굴을 피 웅덩이에 처박는다.

 "크으…"

 입으로 비릿한 핏물이 들어온다. 코에서 시큼한 고통이 느껴진다. 몸을 돌려 아픈 코를 부여잡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이 사내가 소리를 듣고 연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대로 안면에 느껴지는 충격.

 -퍽.

 고개가 꺾인다. 반사적으로 사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친다.

 "으악! 왜 이러세요!!"

 "너… 너도 똑…같은 놈이지…. 주… 죽어!!"

 사내의 어눌한 말투. 제정신이 아니다. 손 뻗은 연규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주먹은 매섭게 얼굴을 노리고 날아든다.

 -퍽. 퍽. 퍽.

 "주… 죽어!!"

 "으 크아… 살려…."

 -퍽. 퍽.

 아찔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대로 계속 맞다가는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죽을 수 없다. 죽더라도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다.

 정신없이 맞으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러자 바닥에 무언가 집히는 게 있다. 연규는 그걸 쥐고 곧바로 사내에게 휘둘렀다.

 -푸욱.

 피부를 뚫고 깊숙하게 들어가는 감촉이 손끝에 전해진다. 사내의 주먹질이 멎었다.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듣는 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소리다. 희미하게 보이는 사내는 목을 움켜쥐고 있다. 그의 목에 널찍한 삽날이 박혀있다. 폐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숨 들이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손끝이 떨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진다. 연규가 떨어지는 사내의 상체에 기겁하며 뒷걸음친다. 놀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어가다시피 뒷걸음 치고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사내의 피인지, 바닥을 가득 채운 피인지, 검붉은 액체가 찐듯하게 흘러내린다.

 오늘. 연규는 살인을 했다.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을 거라고 애써 위안한다. 하지만, 아직 손끝에 남은 감촉을 떨쳐낼 수가 없다. 수전증마냥 손이 떨려온다.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죽으라는 말만 반복하던 사내.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내뱉진 않는다. 그런데도 살인의 죄책감은 몸을 굳힌다.

 그도 어쩌면 변한 세상에 살고 싶어 아등바등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도 어쩌면 자신과 같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연규의 눈빛이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그 와중에 고요한 지하실에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턱. 턱. 턱.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 가벼운 발걸음이다. 발소리는 곧 기분 나쁜 끈적한 소리로 바뀌었다. 그는 바닥을 적신 피가 전혀 개의치 않은 지 일정한 간격으로 내려온다.

 연규가 죽은 사내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지도 못할 속도였다. 철제문 뒤로 숨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바닥 가득한 피는 연규의 존재를 알려준다.

 누군지 모를 사람은 연규의 존재를 알고도 내려왔다. 어두운 지하실로 불빛 하나 없이 성큼성큼 걷는다.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 손에 쥔 쇠파이프를 으스러지도록 움켜쥔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숨죽여 그가 철제문을 넘기만 기다리던 연규는 기분 나쁜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만든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려온다는 게 이상하다. 그의 발소리는 거침없다. 바닥에 가득한 피를 만들어 낸 장본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퉁퉁 부은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몰려온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이 심장박동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봐 초조하다. 긴장감에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철제문 너머에 다리가 나타났다. 연규는 곧바로 기합을 내지르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이야아!! 죽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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