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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서린
작품등록일 : 20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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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우 (2)
작성일 : 17-07-11     조회 : 77     추천 : 1     분량 : 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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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우 (2)

 

 사내가 일어서서 주변을 훑는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어깨로 들쳐업는다. 연규가 입을 열다 말고 비명을 지른다.

 "혹시 성함…. 컥!"

 사내의 단단한 어깨에 가슴과 사타구니가 배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드는 말 못 할 고통에 다리의 상처는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사내가 연규를 내려놓았다.

 "끄어어억…."

 사타구니에서 밀려드는 통증에 혼절하기 직전이다. 마룻바닥에 뒹굴뒹굴 돌며 비명으로 남자만 아는 고통을 토로한다. 덕분에 눈앞이 새하얘져 이곳이 어딘지 분간이 안 됐다. 사내가 배낭을 베고 누워 멀뚱히 연규를 바라봤다. 왜 뒹굴거리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도 남자일 텐데 이 고통에 공감을 못 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엉덩이를 두드리며 통증을 완화하며 물었다.

 "크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그 좀비는 뭐예요?"

 사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심한 듯한 무표정으로 연규를 바라볼 뿐이다. 반응이 없자 무안해진 연규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때 사내가 뭔가 생각났는지 돌조각 하나를 집어 들어 마룻바닥에 긁적인다.

 -돌연변이체(mutant)

 "돌연변이? 아까 그 좀비 같은 놈이 돌연변이라는 거예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즈가 감긴 다리를 본다. 그리고 다시 끄적인다.

 -감염 안 돼. 너, 안 변해.

 멀뚱히 그가 긁적인 글씨를 바라보다 좀비(?)에게 다리가 씹히는 경험이 생각났다. 물렸다는 걸 확인한 순간 악착같이 살고자 했던 마음을 놓아버렸다. 무분별한 시청각 자료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대개 좀비에게 물리면 감염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사내의 글자를 이해한 연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물렸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돌연변이라뇨? 그런 게 길거리에 버젓이 돌아다니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거 관리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속사포처럼 생각을 입 밖으로 뱉던 연규가 말꼬리를 흘렸다. 어쩌면 운석이 떨어졌을 때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렇지만, 사내는 돌연변이를 알고 있다. 사내가 관계자인가 싶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다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앞을 봤다.

 사내가 바닥에 써놓은 글씨를 가리켰다.

 -수화.

 수화? 손으로 대화하는 걸 말하는 건가? 아… 설마?

 "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혹시, 농아인이세요?"

 사내가 무심한 얼굴로 끄덕인다. 그 모습에 약간의 버퍼링이 있어 농아인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저… 저는 수화를 할 줄 몰라요."

 연규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운석이 떨어진 이후 거의 한 달가량 혼자 지내왔다. 드디어 마주한 사람이 농아인이라니. 그의 무심한 표정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나마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사내는 연규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뒤돌아 누웠다. 더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연규도 더플백을 베개로 삼아 누웠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봤다.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운석이 떨어지기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던 광경이다. 하늘을 수놓은 별을 새어 본다. 다리의 상처 때문인지 잠들기가 힘들다.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잠에서 깼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자 아직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사내가 일어나라는 손짓을 한다. 슬며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사내의 어깨에 배낭끈이 보인다. 연규가 허둥지둥 더플백을 매고 일어섰다.

 "으윽…."

 아직 회복되지 않은 다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매번 심각하게 다친 뒤 기절하고 나면 마법처럼 회복되던 몸이다. 그런데 이번 상처를 좀처럼 회복이 더디다.

 사내가 자세를 낮춘 채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얹었다. 조심스러운 그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자세를 낮췄다. 마룻바닥에 꽂힌 클리버 나이프를 양손으로 쥔다. 이제 막 움직이려는 사내를 향해 낮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사내가 뒤돌아 양손을 펼쳐 시옷 모양을 만든다. 연규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자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땅바닥에 글자를 적어 넣는다.

 -집.

 무작정 떠도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그런데 왜 이리 조심스럽게 움직인단 말인가.

 연규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귓가에 숨넘어가는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어제 봤던 돌연변이가 생각나 몸이 위축된다. 앞을 보니 사내는 어느새 멀찌감치 앞서갔다. 잠시 그를 놓쳤을 상황을 상상해보곤 소름이 돋아 오른다. 서둘러 사내를 뒤따라 갔다.

 두시간 정도 움직였다. 날은 완전히 밝아 붉은 햇살이 내리 쬔다.

 그런데도 사내는 좁은 주택가 골목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조금 전에 본 돌연변이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조심스레 움직였다고 해도 5~6km는 벌어졌을 것이다. 연규는 넓은 대로변을 놔두고 힘들게 움직이는 사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연규가 참지 못하고 사내를 부르려고 했다. 허나, 아직 사내의 이름을 모른다.

 "저… 저기요!"

 고민 끝에 선택한 단어다. 사내가 뒤돌아 연규를 붙잡았다. 그의 거친 손길에 무방비하게 이끌려 던져진다. 떠밀리는 속도를 다친 다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넘어졌다.

 영문 모를 사내의 행동에 따지고 들려 할 때 무언가 사내를 덮쳐온다. 순간 사내의 허리가 활처럼 꺾이며 쇠지레를 휘두른다.

 -퍼억.

 "키에엑!!!"

 작은 돌연변이다. 쇠지레에 가격당한 돌연변이가 멀찌감치 나가떨어졌다.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사람이라면 일어서기 힘든 타격이다. 묵직한 쇠지레로 달려드는 도중 맞았으니.

 하지만, 작은 체구의 돌연변이는 발을 땅에 딛자마자 다시 달려든다. 요란한 괴성과 함께. 녀석의 옆구리가 움푹 들어가 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녀석이 달려들면 사내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피하면서 쇠지레를 휘두른다.

 같은 상황이 서너 차례 반복되어도 녀석은 계속 달려들었다. 학습 능력이 없어 보인다. 만약 저 작은 돌연변이가 자신에게 달려들었다면 사내처럼 피하면서 때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못 한다였다.

 쇠지레를 풀 스윙으로 맞고도 움직이는 괴물의 체력에 기가 질린다. 그 괴물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때려 부수는 사내도 사람 같지 않았다.

 사내는 작은 체구의 돌연변이를 말 그대로 때려 부쉈다. 돌연변이가 더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됐을 땐 사람의 형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피규어를 망치 같은 거로 내리친다면 이렇게 될까.

 작은 돌연변이를 해치운 사내가 연규에게 다가왔다. 땅에 글씨를 적어 넣는다.

 -뭐 하는 거야.

 거칠게 휘갈긴 글씨가 사내의 감정을 나타낸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사람이 글씨체로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아니… 그게, 저…."

 -이런 식으로 위험하게 행동하면 같이 못 움직인다.

 사내는 기척조차 없던 작은 돌연변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이곳에도 돌연변이가 있다니. 돌연변이는 실험실 같은 곳에서 나온 게 아니란 건가?

 사내가 땅에 쓴 글씨를 발로 문대며 다시 움직였다. 연규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사내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죄송해요. 돌연변이가 있는지 몰랐어요. 그건 그렇고 돌연변이는 어디까지 퍼진 거예요?"

 연규의 물음에 사내가 멈춰 서서 땅에 글씨를 쓴다.

 -시간 없어. 집에 도착해서 말해준다.

 연규가 글씨에서 눈을 떼자 발로 글씨를 지우고 다시 출발했다.

 문득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결같은 무표정에 차갑지만, 배려가 넘친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걸어가는 그를 보니 상당히 큰 신장을 가지고 있다. 약 190 정도. 신장에 비해 매우 마른 체형인데 어떻게 우악스러운 힘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클리버 나이프 같은 도축 칼로도 제대로 썰리지 않던 돌연변이를 쇠지레로 잘만 팬다.

 

 노을이 진다. 붉은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숲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 숲에 들어서기 전 자동차 경주 트랙, 옆으로는 열차 선로가 있었다. 그늘진 나무 사이로 푸른 물결이 보이는 것이 전방에는 저수지가 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거침없이 움직인다. 그러자 숲 한가운데 공터가 들어섰다.

 공터라기보단 운석이 만들어 낸 크레이터였다. 이 크레이터는 1헥타르 정도의 규모로 패어있었다.

 이곳은 왜 온 걸까? 도심지라 숲이 많지 않을 텐데. 좋은 빈집을 놔두고 굳이 노숙할 이유가 있나?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으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바빴다. 사내는 부러진 나무 잔해를 모아들어 땔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싯돌을 이용해 능숙하게 불을 지핀다.

 사내가 할 일을 마쳤는지 멍하니 앉아있는 연규를 바라본다. 무표정인데도 뭔가 한심한 사람 바라보듯 측은한 느낌이 든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여기가 집이에요? 아침에 집으로 간다고 했잖아요."

 사내가 연규 옆에 앉아 뭉개진 지반에 글씨를 적는다.

 -내일 저녁에 도착.

 "그럼 널린 빈집을 냅두고 왜 여기서 노숙을 해요?"

 -주택가는 위험. 변이체 노출.

 "변이체? 돌연변이 말하는 거예요?"

 사내가 끄덕인다.

 "그럼 그 변이체는 얼마나 있는 건데요? 많아요?"

 사내의 움직임이 멎는다. 가끔 뭔가 물어보면 생각을 하는 건지 모든 행동이 멈춘다. 마치 버퍼링에 걸린 듯이. 잠시 후, 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생존자 보다 많이.

 해머로 머리를 세게 내리친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하게 불법 실험실에서 탈출한 돌연변이가 아니란 말인가.

 정신적인 충격에 어리둥절하자 사내가 연규의 무릎을 두드린다.

 -집에 도착하면 자세히 말해준다.

 "지금은 못 해주는 거예요?"

 -글쓰기 힘들어.

 단순하지만 완강한 거절. 연규는 글 쓰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거부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게 무슨…."

 -네가 써봐.

 사내가 쓴 글을 보고 주변에 널브러진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글자를 끄적였다. 뭉개진 지반은 살짝 긁히기만 할 뿐 문자가 새겨지지 않는다. 사내의 글씨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다른 힘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접 실천해 보고 나서야 사내의 의도를 알아채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이거 하나만 알려줘요. 이름이 뭐예요?"

 사내가 귀찮은지 대충 글씨를 끄적이고 돌아눕는다.

 -카터.

 

 도심지에는 변이체가 출몰하니 안전한 숲을 가로질러 움직였다. 약 4헥타르 정도 규모의 저수지를 지나고 계속 숲이 이어졌다. 변이체가 숲에 없는 까닭이 따로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오전에 산을 하나 넘고, 열차 선로를 따라 내리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연규가 산행을 결심한 건 숲 너머에서 울리는 변이체의 괴성 때문이었다. 변이체의 신체적 능력은 연규가 따라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두려움. 칼도 박히지 않는 놈들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숲 끝자락에 도착했다. 다리 때문인지 잔뜩 지친 연규에게 카터가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20분 정도 기다리자 온몸에 피를 떡칠한 카터가 나타났다.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려다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는 카터 덕분에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다행히도 혈흔은 카터의 피가 아니었다. 변이체 두 마리를 동시에 만나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규가 목격한 건 두 번뿐이었지만, 그 역시 깔끔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무표정으로 쇠지레를 연신 내리찍는 모습. 변이체의 육체가 으깨질 때까지 내리꽂는 모습을 어떻게 깔끔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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