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녀 (3)
에스더의 짓궂은 농담에도 태연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게 일반적인 변이체라고 하면 일반적이지 않은 변이체도 있다는 거로 들리는데?"
굳이 '일반적인'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규의 물음에 에스더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와! 영구도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는군요!"
"됐고,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당연히 있죠. 특수변이체라고 해요. 생존자 중에서 능력자가 있듯이 특수변이체도 능력을 써요. 그들의 능력은 상당히 난폭하고 파괴적이죠."
"변이체는 사고를 못 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능력을 쓴다는 거야?"
"정확한 사고를 못 한다고 했죠. 어느 정도 피아구분은 할 줄 알아요. 그리고 능력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능력을 쓰는데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능력에 익숙하지 않은 연규로서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확히 인지한 상태로 능력을 써 봤어야지 이해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에스더는 연규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며 말을 이었다.
"꿈에 잡아먹히게 된다면, 특수변이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것 말고도 능력자가 폭주하면 특수변이체가 되기도 하고요. 영구가 조금 더 확률이 높다는 거지, 따지고 보면 저 역시도 변이체 예정자인 건 다를 게 없어요."
연규가 몸을 부르르 떤다.
"능력자는 모두 변이체 예정자라는 거야? 그런 소름 끼치는 소리 좀 하지 마! 난 절대 변이체가 되지 않을 거니까. 적어도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꼭 밝혀내고야 말겠어."
"저도 영구가 꼭 좀 밝혀 줬으면 좋겠네요…."
에스더가 말끝을 흘린다. 이따금 분위기가 180도 변하는 데 도통 감을 잡기가 힘들다. 이렇게 분위기가 변하면 왠지 말을 걸기가 힘들다. 에스더의 바람이 아니어도 자신의 결심을 반드시 이루겠다 다짐한다.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키에엑!, 캬아악! 같은 변이체의 괴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다. 이벤트 호라이즌 이후, 에스더가 아닌 사람들과 조우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카터와 에스더의 행동이 조금 의아하다.
카터가 주먹을 쥐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에스더는 이미 카터의 옆에 납작 엎드려 언덕 너머를 바라본다. 연규도 카터 옆으로 움직였다.
명확하게 느껴지는 경계하는 모습. 생존자를 반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에스더를 마녀라고 부르기 때문일까? 초조해하는 에스더가 보인다.
언덕 아래로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각자 손에 돌멩이를 쥐어 던진다. 돌멩이는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날아갔다. 저택에 성한 창문은 없었다. 생존자들이 던진 돌멩이에 깨진 건지 죄다 구멍 나고 깨진 모습이다.
무리에 섞여 있는 한 명이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연규를 발견한다.
"앗! 저기다!!"
그의 외침이 무리에 울리자 생존자들이 일제히 돌아본다. 그들의 매서운 눈길이 연규에게 날아와 박힌다.
"마녀의 하수인이다!!"
"저기에 마녀의 하수인이 있다!!"
수많은 돌멩이가 날아든다. 연규가 기겁하며 자세를 낮춘다. 언덕 위에 있어서, 그리고 거리가 가깝지 않아서 발치에 떨어지는 돌멩이가 대부분이다.
"아악! 이게 뭐야? 왜 저래?"
연규가 날아드는 돌멩이에 지레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연규의 물음은 에스더가 아닌 생존자 쪽에서 들렸다.
"마녀를 죽여라!"
"리버풀에서 꺼져라!"
"도로를 돌려줘!!"
힘을 다한 돌멩이 몇 개가 닿는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다수의 사람이 만들어 낸 적의는 짙은 농도의 중압감을 만들어 낸다.
"좀 돌아서 가죠."
자주 있는 일인지 에스더가 별거 아니란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에스더가 생존자를 대하는 반응에 놀랐다.
"뭔데?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생존자들이 저러는 건데? 제대로 설명할 때까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면 거기서 죽던가요."
에스더와 카터가 몸을 일으켜 흙을 털어낸다. 멀어져가는 에스더를 바라보는데 발밑에 날붙이가 날아든다. 푸욱. 단단한 지면에 박히는 소리가 섬뜩하다. 놀란 연규가 에스더를 쫓아 부리나케 달렸다.
에스더가 뒤따라오는 발소리를 듣고 슬쩍 뒤돌아본다.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는 연규를 보며 실소를 내뱉는다.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잠시 쉬기도 하며 저녁이 될 때까지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저녁이 되도록 도시를 활보했지만, 변이체가 보이지 않았다. 에스더의 말에 따르면 변이체는 도심지에 많다고 했다. 연규 역시 리버풀까지 이동하며 여러 도심지를 지나쳤다. 그곳에서 울리는 변이체의 울음소리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곳도 도심지고 사람이 살았던 건물이 즐비해 있다. 그런데 하나도 마주치지 못한 건 의문이다.
연규는 에스더와 생존자들 사이의 일, 그리고 변이체가 없는 리버풀이 궁금했다. 하지만, 에스더가 내뿜는 마이너한 분위기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존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내내 저 모양이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카터가 낡은 상가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상가는 보통 상가와 달랐다.
매달린 간판을 보아하니 사무실 같은데 책걸상이 없다. 대신해 중앙에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구석에 장작도 쌓여있는 거로 봐서 이벤트 호라이즌 이후 누군가 이곳에 잠시 묵은 것 같다.
창문 가까이 물탱크도 보인다. 조잡해 보이는 장비가 여럿 달려있는데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 물탱크에 달린 밸브를 여니 졸졸 쏟아진다. 손으로 받아 입을 축여봤다. 철 비린 맛이 조금 나지만 못 마실 정도는 아니다. 약수가 연결돼있는 건가 생각해 본다.
카터가 익숙하게 장작을 한 대 모아 쌓는다. 그리고 부싯돌을 튀겨 금세 불을 만들어 냈다. 사늘한 실내에 훈훈한 온기가 감돈다. 식사를 준비하려는지 배낭에서 음식 재료를 꺼낸다.
연규는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더플백을 풀어 버섯을 꺼냈다. 인간의 삼대 욕구를 해소하는 것만큼 기분을 전환하는데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쾌적한 수면, 교감하는 섹스, 맛있는 음식.
첫 번째는 보금자리가 아니니 쾌적할 수 없어 제외한다. 두 번째는 교감할 수 없다면 폭력이 되니 제외한다. 거기다 철컹철컹의 위험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
지금 연규에겐 물에 넣고 끓이면 맛있어지는 버섯이 있다. 자주 먹다간 금세 동나버릴 버섯이지만 당장은 쓸 때라고 판단했다. 버섯을 들고 카터에게 다가가자 카터가 반긴다.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자신의 손에 든 버섯을 보고 낚아채는 속도가 알려준다. 그 역시 이 버섯이 들어간 요리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에스더는 아직도 음침한 분위기를 뿜고 있다. 곧 준비될 고소한 향기를 맡게 되면 기분이 풀리겠지.
생존에 대부분은 먹는 것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날 점심으로 먹을 재료를 구하지 못하면 굶는다. 한 끼를 굶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진 않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체력에 문제가 생긴다. 비록 전자기기가 먹통이긴 하지만, 근처에 자동차만 봐도 연료가 있어야 굴러가지 않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카터의 배낭은 부피가 커진 만큼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 그중에 조미료나 밑반찬이 있는 건 의외였다. 상가 뒤뜰에 자란 초록빛 채소들과 들깻가루, 육포를 조금 넣어 소고기버섯국을 만든다.
국 재료가 조금 부족해도 상관없다. 버섯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향과 맛이 보장되었기에. 어느새 국이 끓어 고소한 향기가 실내에 가득 퍼진다. 에스더도 기분 좋은 고소한 향기에 매료됐는지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여전히 날카로운 분위기는 그대로지만.
카터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반합에 국을 떠서 나눠준다. 연규가 반합을 받아들었다. 군침이 돈다.
"잘 먹겠습니다!"
에스더를 의식하며 한국어로 말했다. 이제 막 떠먹으려던 에스더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막상 눈길을 받자 민망함이 몰려온다. 연규가 너스레를 떨며 설명했다.
"한국어로 밥을 맛있게 먹겠다고 말한 거야. 한국에서는 밥을 먹기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게 예의거든."
"…. 그런데 왜 어젠 안 했어요?"
정곡을 찌른다. 괜히 말을 꺼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하하. 어젠 너무 급했어. 이건 뭐라고 할까….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안 해서 나쁠 것도 없는? 그런 거."
연규가 생각나는 데로 얼버무렸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에스더가 받아준다.
"어떻게 하는 거라고요? 자아 뭐?"
"자알~ 먹겠습니다."
"자아르 오케스니이다아."
입 모양을 크게 벌리며 말해보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그 모습에 귀여워 저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머리를 헝클였다. 순간 에스더가 정색하며 손목을 붙잡는다. 귀신같이 빠른 손놀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보기나 해요."
연규가 그 모습에 압도되어 슬그머니 입을 연다.
"잘 먹겠습니다."
"자르 모케스니다. 잘 모겟스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자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몇 번 더 연습하더니 흥미를 잃고 식사에 열중한다. 연규가 고소한 소고기버섯국을 마시다 은근슬쩍 말문을 열었다.
"생존자들이랑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
에스더가 국을 마시다 말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말한다.
"저번에 제가 영구가 이상형을 닮았다고 했죠?"
"어? 어.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을 더듬었다. 에스더는 추임새가 필요 없었는지 계속 이어서 말한다.
"전 원래대로라면 이벤트 호라이즌 당일에 변이체로 변한 동생에게 죽었을 거예요. 그런 절 영구랑 닮은 사람이 구해줬어요. 워낙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그분은 절 기억 못 하겠지만, 저는 똑똑히 기억해요.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하거든요."
연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쓸쓸한 에스더의 눈빛을 보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가족 모두 변이체가 되어 죽었지만…. 홀로 능력자가 돼서 살아남은 건 지옥 같지만…. 막상 능력이 발현되고 살아난 사람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오니 쉽게 죽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처럼 되고 싶었어요. 생존자들을 변이체로부터 지켜줘야겠다고. 그래서 리버풀 인근에 변이체를 악착같이 죽였어요. 그런데…."
에스더의 목소리가 떨린다.
"말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
에스더는 연규의 말을 무시하고 재차 말을 이었다.
"제가 리버풀의 생존자들을 고립시켰어요. 우물안에 개구리로 만든 거죠. 그들은 변이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언제는 생존자 몇 명이 저 몰래 안전구역을 빠져나간 일이 있어요. 당연히 그들은 변이체에 죽었는지 돌아오지 못했죠. 살아있는 생존자들은 제가 그들을 죽인 거로 알아요. 그날 이후로 변이체를 직접 보여주기도 해봤는데, 완전히 믿음을 잃었나 봐요. 하하하. 변이체가 제 능력으로 살아난 사람이라 생각하더라고요."
에스더가 뺨에 보조개를 만들며 애써 웃어본다. 깊게 팬 보조개로 눈물이 고여 든다.
"이곳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데로 네가 다른 곳으로 떠나는 건 어때? 굳이 이 사람들이 변이체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의무는 없잖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며칠 전에도 이곳을 정리하고 떠나려 해봤는데. 가족들이 잠든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도 못가서 결국 되돌아왔어요."
리버풀을 떠나지 못하는 에스더와 고립시킨다고 생각하는 리버풀 생존자들. 이들의 꼬여버린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걸까.
생존자들이 뭘 어떻게 하든 방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바라본 에스더가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애초에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다.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이들의 관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끝없는 애증의 관계…."
연규가 생각을 내뱉었다. 에스더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식어버린 소고기버섯국을 단숨에 들이켰다.
"바보같이 그걸 믿어요?"
울상을 짓고 있던 에스더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