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심은 오빠가 이런 식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빠가 부쳐주던 생활비가 왠지 늦어진다 싶었던 순간부터 이미 오빠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가 정확하게 어떤 살인청부업자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분명한 건, 살인청부업자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는 사실이었다. 오빠는 그걸 나한테도 비밀로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몇 년이 넘도록 지킬 수 있는 비밀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오빠를 만날 수 있는 날은 한두 번 정도? 그것도 명절날처럼 뻔한 날이 아니라, 어느 뜬금없는 순간에 갑자기 찾아와 하루이틀 묵고 가는 수준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빠가 살인청부업자라는 걸 눈치챈 건 엄청난 우연인지도 모르겠다.
오빠의 시체를 직접 본 것은 눈싸라기 내리는 12월의 초였다. 슬슬 내 또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진로를 정하는 그런 시기에, 나는 오빠의 시체와 마주해버린 것이다. 이놈의 날씨는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싸락눈이야. 하긴, 부산이 다 그렇지. 내가 부산에 살면서 눈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싸락눈이라면 정말로 가끔 봤지만 나는 태어나서 함박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발치에 따끈한 피가 흘러 닿았다. 오빠의 머리에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이미 두쪽이 난 머리는 싸락눈을 맞아서 반쯤 얼어 있었는데도, 그 피만큼은 얼지 않고 온기를 유지한 채 흐르고 있었다.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 자체로 모순을 일으키는 기분이었다. 사이키델릭하다고나 할까.
이렇게나 요란하게 죽었는데 지나가다 구경하는 사람 하나 없다니. 생각해 보니 새벽 세 시였지. 주변에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빠는 비교적 최근에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체가 이 꼴이 되도록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리라.
오빠의 시체를 보고도 이토록 침착하다니.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오빠는 나에게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쳐주는 아주 고마운 사람이었다. 비록 내가 무슨 일이 있건 신경조차 안 쓰고 자기 할 일이나 하러 다니는, 돈 부쳐주는 거 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의 시체를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이 않는다니. 애초에 사람 시체를 보고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하고 끊어져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그 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답은 바로 나왔다. 현실감각.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어딘가 그 작은 끈. 미약하게 지탱되고 있던 그 끈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세계 안에 있지 않았다. 이 시체를 보면서 나는 현실의 가장자리로 쫓겨나버린 것이다.
현실감각. 학교생활에는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잘 하려고 노력조차 해볼 수도 없었다. 학교 안에서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나마 학교 밖에서 노력이라도 해봤던 밴드 씬에서는 쫓겨났다. 그리고 이렇게, 꾸역꾸역 돈이라도 보내 주던 오빠마저도 이렇게 차가운 주검이 된 것이다.
이제 돈을 부쳐 주던 오빠마저 죽었으니, 더 이상 현실을 유지할 수단이 없다. 애초에 유지할 이유조차 없는 현실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현실 바깥에 쫓겨나 있었으니까. 그러니 시체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는 오빠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단단히 굳은 오빠의 손을 벌려 총을 끄집어냈다. 무슨 총인지는 몰라도 탄창 안에는 그래도 총알이 세 발은 남아 있었다. 나는 주변에 탄피가 떨어져있지 않은지 확인해보았다. 길을 따라 탄피가 여럿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총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길가에 흩어진 탄피를 모두 주웠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길가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제 저 시체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일 인터넷 뉴스에, 부산대 근처 괴사체 발견. 이렇게만 뜨겠지.
원룸에 돌아와서 소주를 깠다.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고, 베이스도 하지 않는 지금 하는 거라고는 몰래 술을 사서 까 마시는 것밖에 없었다. 하루에 몇 병을 마시는 건지, 스스로도 세어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퍼마시는데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울었다. 옆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다행히 아무도 방해하러 쳐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퍼마시다 쓰러져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정오였다. 학교에는 이미 지각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안 간다고?” 교사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물었다.
“네. 안 가려구요.”
“하, 골때리는 가시나 다 보겠네.” 교사는 고개를 저었다. “야, 내가 나 생각해서 너 고등학교 보내려는 줄 아나. 다 니 생각해서 고등학교 보내려고 하는 건데.”
이 교사는 이렇게 나를 신경쓰는 척 하지만, 담임이어놓고 내가 반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정확하게는, 내가 반 아이들을 따돌리는 거나 다름없었고, 녀석들은 지레 겁먹고 나에게 다가올 생각을 못하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니네 오빠, 그래 오빠는 아무 말 없었나?”
오빠는 죽었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튀어나오지 않았다.
“하, 그래 니 맘대로 해봐라.”
교사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늘 하던 대로,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기로 한 것이다. 네.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는 교사에게 꾸벅 인사했다.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쓰레기통이 발에 채였다. 쓰레기통은 넘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자잘한 쓰레기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큰 쓰레기 하나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통을 도로 세워놓고 교무실을 나왔다.
“저거 쓰레기통에 화풀이하네 저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왜죠 하느님, 왜 하느님, 저는 고통스러워야 하죠?
마음 속엔 고통엔 싸움으로 가득한 짐이 얹혀있어요
왜죠 하느님, 왜 하느님, 저는 피 흘려야 하죠?
당신에게 던진 돌은 전부 내 발 앞에 놓여있어요
왜죠 하느님, 왜 하느님. 나는 고통스러워야 하죠?
지구는 끝장인데, 제발 그냥 다 태워버리면 안 되나요?
더 이상 지구에서 헤쳐나갈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1)
그 다음날부터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학교로부터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 아무런 전화도 오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좁아져만 갔다. 처음엔 학교, 다음엔 밴드 씬으로 커지더니 도로 학교로, 이제는 이 작은 원룸 하나로 좁아졌다. 세상이란 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건가.
면도날을 하나 샀다. 뭔가를 상처 입히고 싶었다. 상처를 내고 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상처 낼 것이라고는 내 몸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고 뻗기 전,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면도날을 꺼내 손목에 갖다대었다.
손목을 면도칼로 찢는 건 무서웠다. 마치 물풍선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손목을 한번 긋자 술이 확 깨었다. 정말로 동맥이 잘리고 피가 아프게 튀어나와 죽을까봐 무서운 것이었다.
손목 대신 만만한 건 팔이나 손등이었다. 손등을 죽 그어 상처를 냈다. 단단한 판 위에 긋는 느낌이라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면도날에 베이는 느낌은 쓰라렸다. 직선으로 그인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확 죽어버리게, 피가 좀 더 많이 흘렀으면 했는데 찔끔밖에 흐르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더 내었다. 피를 좀 더 흘려버리게.
피가 흐르자 나는 혀로 상처를 핥았다. 흐르는 피가 아까웠다. 지독한 자기모순이었다. 죽고 싶다고, 피가 흐르길 원한다고 해놓고는 피가 아깝다고 핥고 있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렸다. 그래도 일단 뭔가를 실컷 상처 입히고 나니 만족감과 함께 기운이 빠졌다. 나는 상처를 뺨에 부볐다. 사랑스러운 상처였다.
지쳐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 한 쪽이 손에서 흐른 피로 붉어졌다. 기운이 빠졌다. 나는 머리에다 오빠의 시체에서 주워 온 권총을 겨누었다. 토카레프. 인터넷에 쳐보니 소련에서 만든 제식 권총이라고 했다. 특이사항. 안전장치 없음. 바로 이걸 내 머리에 대고 쏘면 죽는 것이다.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다 끝나는 가벼워 터진 세상.
“죽고 싶어.”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원룸에는 나 혼자였다. 죽고 싶다고 해도 뭐라고 날 붙잡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방을 나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죽고 싶지 않아.”
여전히, 원룸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해도, 역시 날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모르겠어.”
토카레프는 안전장치가 없는 대신, 방아쇠를 무겁게 만들었다고 했다. 내 손가락에는 이 무거운 방아쇠를 당길 힘도 없었다.
매일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하고, 머리에 총을 겨누다 지쳐 잠드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그 동안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술 파는 가게 직원밖에 없었다. 민증 주세요. 라고. 나는 부모님 심부름이라고만 대답했다.
복수할 계획을 세우기로 한 것은 2월 초 쯤 되어서였다. 오빠를 죽인 사람에게 하는 복수였다.
솔직히 오빠를 위해 복수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오빠는 내가 고생할 때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오빠가 살인청부업자라는 걸 처음 알았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기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오빠가 나에게 해준 거라곤 그저 생활비 찔끔 벌어다 준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 오빠를 위해 복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복수인가? 이유가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었다. 답을 내려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
대답해. 무엇을 위해서 복수하려는 거냐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에게 남은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
1)Kendric Lamar – Fear.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