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봐, 들어 봐
누가 널 걱정해
니가 미쳐서
이 거리를 뛰어다닌다 해도1)
전화번호 리스트가 있었다. 우리 오빠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들 리스트였다. 오빠는 일 년에 한두번 정도밖에 집에 오지 않았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오빠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메모해두고 있었다. 언젠가 쓰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에서였다.
계획을 짠 나는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길. 리스트의 대부분은 부재중이거나 혹은 없는 전화번호였다. 그나마 몇몇 사람들하고는 연락이 되었다. 한 번은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고, 한 번은 유흥업소 포주여서 놀라서 끊었다. 흥신소 하는 사람도 있어서 몇 번인가 찾아가보았지만,
“여기는 너 같은 꼬맹이가 올 곳이 아니야. 알았어?”
“하, 다시는 안 올테니까 걱정 마시죠.”
대충 이런 패턴의 연속. 어떻게 보면 우락부락한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새빠지게 고생해서 나온 결과가 이 모양이니 기운이 안 빠질래야 안 빠질 수가 없는 노릇이다.
마침내 리스트의 맨 마지막. 이번에마저 실패하면 칵 영도다리에서 뛰어내려버릴 생각이었다. 한현. 서면에 ‘한현 탐정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는 작자였다. 이미 이 리스트에서 내 기대를 배신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까 맨 마지막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기대를 품지 않기로 결심했다.
저녁때 쯤 나는 서면으로 향했다. 지하철 서면역 안에선 노인들을 위한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싸구려 앰프에, 쓸데 없이 키워놓은 소리가 지하를 가득 메웠다. 놀 거면 자기들끼리 놀 것이지, 지나가던 사람 시끄럽게 왜 저렇게 노는 걸까. 헤드폰 볼륨을 키웠지만 저 소리는 두꺼운 헤드폰마저 뚫고 들어왔다. 헤드폰이 씌워진 귀를 틀어막고 나는 그 근처를 빠른 걸음으로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면을 지난다. 먹을거리, 옷가게, 화장품 가게 등 수많은 거리에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음악의 물결을 따라 사람들이 움직인다. 사람의 움직임은 파도 같아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휩쓸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헤드폰을 쓰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번화가는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나는 후드를 덮어쓰고 파도 속을 헤엄쳐 나왔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체력이 다 떨어진 기분이었다. 날이 추운데도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드디어 도착한 한현 탐정 사무소. 밖에서 보니 떡하니 간판이 걸려 있었다. 신용도가 떨어졌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다녔던 흥신소는 전부 어딘가에 몰래 숨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대놓고 거리에다가 간판을 달아 놓은 흥신소를 보니, 그냥 길 잃은 강아지나 찾아줄 것 같은 곳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별 수 있나. 나는 음악을 끄고 헤드폰을 벗었다. 음악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던 자동차 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때렸다. 더 혼란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신용도 점수, 또다시 마이너스 10점.
한현이라는 사람의 옷차림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장도 아니고, 그냥 회색 후드티에다가 7080년대도 아니고 새까만 중절모라니. 후드와 중절모. 모자가 두 개잖아. 안어울리는데다가 촌스럽다. 중절모라니. 그거 나이 처먹은 영감탱이들이나 쓰는 거 아닌가.
게다가 다른 탐정 사무소는 거구에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버티고 앉았는데, 한현이라는 사람은 체형부터가 마른 체형이었다. 얼굴은 곱상한 게 기생오래비같았는데, 실실 웃는 게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런 류의 남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와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이시네요. 잠깐만 기다리시죠.”
한현이 말했다. 따뜻한 말투와는 달리 꽤나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한현은 뭔가를 만들고 있는 듯 보였다. 커피인가? 한쪽에 놓인 오디오에서는 평범하게 오아시스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오아시스라. ‘왜냐하면 넌 날 구해줄 사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넌 나의 원더월이니까’2) 인디밴드라면 흔히 한두번정도 커버해보는 밴드였다. 밴드 씬에서 베이스를 치던 시절이 생각났다.
짜증났다. 노래는 참 좋은데, 좋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데. 그 과거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꿈이 있었던 소녀,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기 싫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노래 좀 바꿔 틀어도 될까요?”
떠오르는 기억들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왜죠?” 날선 목소리.
“그냥 밴드 음악에 트라우마가 있다고만 해두죠.”
“마음대로. 다른 CD들은 저쪽 선반에 있어요. 소중히 다뤄요.”
나는 선반을 훑어보았다. 제길. 죄다 재즈 아니면 록밴드 음악이었다. 저주스럽게도 이 음반들 하나하나가 내가 무대에서 베이스를 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괴롭다. 다행히 한쪽 구석에 힙합 음반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힙합이라면 적어도 옛날 생각은 떠오르지 않겠지. 나는 더 루츠의 음반을 고를까 생각하다가, 루츠도 ‘연주’를 하는 힙합 그룹이라고 어디서 주워 들은 게 떠오르는 바람에 아이스 큐브의 음반을 골랐다.
“아이스 큐브라니, 짜증나는 일이라도 있으신가보네.”
그냥 이름이 어딘가 들어본 것 같아서 골랐을 뿐인데, 유명한 래퍼인가?
한현은 이상한 음료를 내밀었다. 베이지 색에 하얀 우유 거품이 올려진 음료수였다. 따뜻했다. 나는 처음 보는 음료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술인가? 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커피는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베이지색 음료라.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파는 버블티랑 비슷한 색깔인 것 같기는 한데.
날 안으로 들여보내준 청부업자는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청부업자 같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괜한 사람들을 납치해서 인신매매를 한다던가 장기를 뽑아 판다던가 하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안심하고 마실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술에 마약을 넣어서 건넨 다음 강도질을 했다는 뉴스도 뜨지 않았던가. 내가 너무 긴장한 게 눈에 보였는지, 한현 쪽에서 먼저 말했다.
“런던 포그 밀크티입니다. 약 같은 거 안 탔으니까 걱정 마시고 드세요.”
“그, 그렇군요.”
빈틈을 보인 기분이 들어서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홍차를 들이켰다. 흐릿한 단 맛과 함께 시큼한 향이 느껴졌다. 희미하고 포근하다. 그야말로 안개 같은 푹신함이다.
“맛있네요.”
저도 모르게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요즘 같은 날씨에 딱이죠. 여름날에도 얼음 넣어서 차게 마시면 맛있고.”
문제는 정작 틀어놓고 보니 힙합과 홍차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젠장, 힙합과 홍차가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무슨 상관이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투자할 시간은 없었다.
“꽤나 사연이 깊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오빠가 죽었어요. 복수를 하고 싶어요.”
대본까지 써가면서 연습해가며 머릿속에 입력해 둔 말이었다. 표정의 변화 없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살인 청부는 안 받는데요.”
이렇게 대답할 경우의 대본도 미리 써 뒀다.
“10억. 헛소리 없음. 어떤가요?”
당장 10억이라고 하면 누구든 놀라기 마련이다. 이 탐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살짝 대화의 흐름이 끊어진 틈을 타서 내가 먼저 말을 잇는다.
“제 오빠는 살인청부업자였어요. 지금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죠. 오빠가 죽기 전에 유품으로 현찰로 10억을 담은 가방을 저한테 보냈어요. 그 가방 통째로 드리죠. 이렇게 해도 살인 청부는 안 받는다고 할 건가요?”
한현은 뜸을 들였다. 10억.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겠지. 분명 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현이 질문한 건 다른 곳이었다.
“혹시 그 오빠 이름이 뭡니까.”
“시하인데요. 혹시 아시나요?”
“알다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시하 여동생, 류하겠군요.”
그렇다. 이제 와서 소개하기는 늦었지만, 내 이름은 류하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참 황송할 따름이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이런 건 계산된 상황 속에 없었다. 이게 변수가 될까? 잘못하면 일이 꼬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반대로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우리 오빠와 아는 사이라면 대화를 빠르게 끝낼 수도 있다. 좋아. 불안하지만 이걸 기회로 쓰자. 어쩌면 이번에는 일을 쉽게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오빠랑은 아는 사이였나요?”
“한때 같은 조직에 있었죠. 지금은 둘 다 프리랜서지만. 어지간한 멍청이였죠.”
“그렇군요.” 나는 우리 오빠를 멍청이라고 한 데에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 죽이면서 살기에는 무른 녀석이었어요. 뭐, 그런 녀석한테 목숨까지 빚진 나도 할 말은 없지만.”
한현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우리 오빠를 떠올리는 것일까. 그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어딘가 심각한 고뇌가 느껴졌다. 한현은 생각에 잠간 표정 그대로 물었다. 이런 건 대본에 없었다.
“류하, 당신은 시하랑 사이가 어땠죠?”
“없었어요.”
“없었다는게 무슨 소리죠?”
“오빠는 제 곁에 있어준 적이 없으니까요.”
“그닥 좋지는 않았나보군요.”
“아뇨, 글자 그대로에요.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년에 한 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왜 당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복수를 하는 거죠?”
예상 질문에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억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밀크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는 것. 밴드 활동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일종의 처세술 테크닉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 표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전혀 잘 되어가고 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제기랄. 지고 있다. 기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되짚어 볼 시간이었다. 이 복수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술을 마시며 자해를 하던 날들을 떠올렸다. 매번 죽고 싶으면서도 차마 동맥을 끊을 수가 없었던 매일 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른 오빠의 복수. 대체 나는 무엇을 바라서 복수를 원한 걸까.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복수를 결심한 이후로 자해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죽기 싫어서요.”
“무슨 소리죠?”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 매달릴 만한 게, 복수밖에 없어요.”
“10억이 있다면서요. 그 돈이면…….”
“삶의 목적이 없는데 10억이 무슨 상관이죠?”
나도 모르게 탁자를 내리쳤다. 아. 격분했다. 격분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항상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홍차를 마시다가도 체한 것처럼 가슴 속이 아려왔다. 침착해. 토해내선 안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자. 더 이상, 약해보여서는 안 된다.
“10억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네요.”
망했다. 들켰다. 대체 어떻게 눈치챈 거지? 어디에서? 대체 어떻게 알았냔 말이야.
“……네.”
끝났다. 파멸이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좀 더 말이 되는 돈을 제시했어야 했나? 어디에서부터 꼬인 계획인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말이 안 되는 계획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꼴사납다. 그래, 중학생짜리가 발버둥쳐봐야 고작 이 정도라는 거지. 교훈이 가슴에 사무친다.
“자, 그럼 제가 당신 이야기를 들어 줄 이유는 없는 거군요. 이젠 어쩔 건가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울먹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죽을 거에요. 자살할 거에요. 특히 유서에 당신 이름을 적어두기로 하죠.”
“와, 사람 죄책감 자극하시네.”
“그럼 의뢰 받으시던가요.”
“뭐, 댁 아니어도 이미 쌓아놓은 죄책감이 많아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어린애처럼 징징거려봤자 더 이상 얻는 소득은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집에 돌아가면서 새 면도날을 하나 사야할 것 같았다. 사는 김에 소주 두 병도.
“잠깐 앉아 봐요.”
“왜죠? 당연히 거절하려고 한 거 아니었나요?”
“오빠 닮아서 그런가 성격 한번 급하네, 거절한다고 한 적 없어요. 다만, 생각해 보도록 하죠. 내일까지.”
나는 말도 안된다는 눈으로 한현을 쳐다보았다. 병 주고 진단서 주고 약까지 다 주는 셈이다. 아무래도 술만 두 병 사고, 면도날까지는 살 필요가 없을까? 하지만 이 사람이 백 퍼센트 내 의뢰를 맡아주기로 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10억도 거짓말인 게 다 드러난 마당에 이 사람이 무슨 꿍꿍이속으로 이러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 못 믿겠어요.”
“어디까지나 당신이 시하 동생이니까 생각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하고 내일 마저 이야기하죠. 슬슬 문 닫을 시간이라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까지라. 잠깐, 내일이라고 하니까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저, 혹시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이건 좀 가벼운 건데…….”
“뭐죠?”
“혹시, 묵을 곳 구할 수 있을까요? 방세가 밀렸는데 내일 당장 방 빼라고 해서……. 오늘은 괜찮은데 내일부터는…….”
“하, 10억 있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한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남은 차를 들이켰다.
1) The Roots – How I Got Over 中
2) Oasis – Wonderwall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