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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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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소녀와 홍차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성일 : 17-07-09     조회 : 20     추천 : 0     분량 : 4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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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총알은 세 발, 용의자는 두 명, 범인은 한 명.

 

 

 모르겠다면 다 쏴 죽이고 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한 발이 남는다.

 

 

 한현은 사무실에 나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사무실과 집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나 혼자 사무실에 둬도 걱정이 없는 걸까. 내가 사무실에 있는 돈 들고 튀려면 어쩌려고. 하고 사무실에 돈이라도 있나 뒤져봤는데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시무룩해졌다.

 

 

 

 

 저녁으로는 그 차이나타운에서 군만두를 먹었었다. 그때, 한현은 내게 말했다.

 

 

 “귀찮아서 그러는데, 굳이 복수를 해야겠어? 친하지도 않았다며?”

 

 

 하긴, 돈도 안 받고 남의 일 하는 셈인데 귀찮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하물며 그게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그걸 무보수로 한다니. 생각보다 상당히 남한테 너무 좋게 좋게 구는 셈이다. 그래서 난 딱 잘라 말했다.

 

 

 “더 이상은 사람 좋게 굴지 마세요. 짜증나니까.”

 

 

 “그럼 당장 이 만두만 해도 니가 돈 내야 할텐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당장 만두 한 접시 살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만두는 몇 접시가 쌓여 있는 상황. 갑자기 사레가 들려 기침이 나왔다.

 

 

 확실히 입은 은혜가 깊구나. 무료로 숙식제공이라니.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사람 좋게 구는 것처럼 보이냐?”

 

 

 “이 만두값만 해도 아저씨가 내는 거잖아요.”

 

 

 “결국은 돈 문제냐.”

 

 

 “아저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요. 날 갱생시켜서 당신이 얻는 게 뭐에요?”

 

 

 한현은 콩국에 과자를 좀 더 집어넣고 설탕을 뿌렸다. 콩국과 과자. 이 집만의 특별 메뉴였다. 한현은 과자가 들어간 콩국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글쎄, 말한 것 같은데, 수많은 죄책감 중 하나를 더는 거?”

 

 

 “나는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요.”

 

 

 “그럼 믿지 말던가. 어차피 잃을 것도 없잖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맞는 말이다. 만약 모든 게 거짓말이고 한현이 나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빼앗긴 것도 없고, 애초에 가진 것도 없으니까.

 

 

 “복수, 확실히 할 건가요?”

 

 

 “뭐,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지. 물론 내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내 목숨이 안전한 한에서만.”

 

 

 그러고는 한현은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문제는 이거지, 꼭 그렇게까지 복수를 해야겠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제게 남은 건 이것밖에 없어요. 알잖아요?”

 

 

 “만약 내가 복수 없이도 행복한 일상을 살게 도와준다면?”

 

 

 행복한 일상이라. 그런 일상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이전까지 살아온 일상은 전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복수가 없다는 건 인생을 걸 만한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복수의 끝이 공허하더라도, 그 전까지는 그래도 뭔가를 붙잡고 나아갈 목표가 필요하다.

 

 

 “역시 안 되겠어요. 저에게는 복수가 필요해요. 그건 그렇고, 왜 당신은 제 복수를 못 말려서 안달인 거에요?”

 

 

 “무엇보다도, 내가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당장 때려치면 되잖아요. 당신에게 득 될 것도 없다면서.”

 

 

 “그냥, 애가 벌써부터 사람 목숨 가지고 줄타기하는 게 위험해 보여서.”

 

 

 “괜한 참견이에요.”

 

 

 나는 콩국에 뜬 과자 한 알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과자를 흠뿍 적신 콩국에서 단 맛이 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술을 마셔댄 탓인지 이젠 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다. 당장 나가서 소주 한 두병 사오고 싶은데. 지금 이 시간에 문 여는 곳은 죄다 편의점. 편의점은 민증 검사가 빡세다. 작정하고 뚫으려면 못할 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이 귀찮다.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한현 때문이다. 한현의 사무소에는 소주는커녕 맥주 한 캔도 없었다. 평소에 홍차 같이 고급진 걸 좋아하니까, 설마 양주파인가? 하고 기대해봤지만 양주는 개뿔이 홍차 캔만 잔뜩 나왔을 뿐이었다.

 

 

 아니, 사람이 술 한 방울 안마시고 어떻게 사는 거야.

 

 

 소파 위에서 아무리 뒹굴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흔한 불면증이다. 벌써 자정이 넘어가고 있다. 별 수 없지. 홍차 하나 타 먹어도 한현은 아무 소리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홍차가 많은데. 문제는 내가 이걸 우려먹을 줄 모른다는 거지만.

 

 

 그래도 티백 우려먹는 방법조차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 다즐링이라면 분명히 달달한 홍차겠지. 나는 티백을 까넣고 물을 우렸다. 그리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은 아직도 밝다. 여전히 거리를 비추고 있는 네온사인들. 정확히는 모두 술집일 것이다. 이 시간까지 영업을 할 곳이라곤 편의점, 간혹 있는 24시 집들, 아니면 전부 술집이니까. 그래, 클럽도 있겠다. 서면같은 번화한 거리라면.

 

 

 드문드문 사람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슬슬 지하철도 막차니까, 지금 뛰어가지 않으면 놓치고 말 것이다. 저기 애인을 택시에 태워서 돌려보내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택시에만 태워 돌려보내는 건 위험할 텐데. 며칠 전에 택시 기사가 여자한테 약을 먹여 강도질을 하고 길에다 던져두고 가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의 행동 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남자는 지나가다가 퍽치기를 당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다가 배에 칼을 맞겠지. 누군가는 아무 것도 모르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거리에서 사라져간다. 어떻게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안개속으로 점점 산산히 흩어져 가는 것이다.

 

 

 상념은 여기까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윽.

 

 

 떫다. 떫음이 사방에서 몰려와 혀를 휘감는다. 게다가 이상한 풀맛 비스무리한 풋내마저 난다. 이게 홍차인가. 나는 량차오의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미소지은 표정을 유지한 채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게 버릇이 된 것 같다.

 

 

 나는 찻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달콤할 것 같은 황금빛을 해서는 이렇게 떫고 쓴 맛이 난다고? 나는 향을 맡아보았다. 향이 진하다. 뭔가 잘못됐다. 창밖을 보다가 너무 오래 우려버린 게 분명했다.

 

 

 이 차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차를 싱크대에 들이부었다.

 

 

 홍차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홍차는 내가 마시는 음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권총과 탄창을 꺼냈다. 탄창 안에는 세 발이 들어있다. 범인은 둘 중 하나. 만약 누가 범인인지 모르겠거든, 둘 다 쏴 죽여 버리면 된다. 하지만 총알은 세 발이다. 한 발이 남는다. 역시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권총을 옷걸이에 걸어둔 후드 집업 주머니에 넣고, 나는 자리에 누웠다. 한현의 소파는 원룸에 기본으로 딸린 침대보다도 안락했다. 꽤 비싼 돈을 들여 마련한 걸까, 하긴 까다로운 의뢰인을 상대하려면 좋은 소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홍차를 마시기 위해 좋은 찻잔을 준비하듯, 홍차를 마시기에 편한 소파를 장만했는지도 모른다.

 

 

 웃자고 한 생각인데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홍차 괴물 같으니라고.

 

 

 팔 안쪽에 면도날로 낸 상처를 쳐다보았다. 상처를 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흉터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복수를 결심하고 자해를 한 적은 거의 없다. 목표가 생기니까 사람이 바뀌는 걸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은 어때, 괴롭지 않아?

 

 

 스스로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좀이 쑤셨다. 뭔가를 해야할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던가, 술이라도 마시던가, 다시 면도날로 손목을 쑤시든지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정지는 곧 죽음이다. 멈추면 안 돼. 움직여야 해. 베이스가 뛰지 않으면 멜로디는 죽어.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해. 이대로 가만히 한현이 모든 걸 처리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이 복수는 내 복수였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음료가 있다. 한현이 홍차라면, 나는 술. 저마다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너에게 잘 해준 한현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아?

 

 

 잘 해달라는 말 한 마디도 안 했어.

 

 

 내가 복수를 하다가 다치건, 쓰러지건, 죽건, 그건 내 맘이야. 이건 내 복수야. 한현이 멋대로 하게 놔둘 순 없단 말이야.

 

 

 자기 일은 결국 자기가 처리해야 하잖아?

 

 

 나는 다시 권총을 꺼냈다. 총알은 세 발이다. 죽여야 할 사람은 두 명. 그 두 명이 숨어있는 자리도 나는 알고 있다. 나머지는 내가 하기 나름인 것이다.

 

 

 만약 복수를 갚는 데 실패하면?

 

 

 죽겠지.

 

 

 하지만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물불 안 가리는 젊은이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지

 생각하기 전에 반응해, 쉽게 자극받지

 살인은 미리 계획된 일, 우리가 가라앉는 건 사실이지

 원래는 이 껍질을 뚫고 위로 가야 하는데, 껍질은 그냥 감옥일 뿐이지 1)

 

 

 

 

 

 

 

 1) Nas - Purpl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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