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냥 차라리 그 시점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눈을 떴더니 살아있다는 사실이 확 느껴졌다. 숙취같은 메스꺼움과 토할 것 같은 두통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두리번거려보니 한현의 사무실이었다. 분명 안심해도 될텐데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 아직은 낯설겠지. 이제 여기에서 고작 하루 보냈을 뿐인데.
죽은 김춘삼을 찾아간 것부터 머리를 맞아 쓰러진 것까지. 전부 꿈인 걸까. 그럴 리는 없다. 대갈통이 죽도록 아팠기 때문이다. 머리가 이렇게까지 아픈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머리를 매만져보니 붕대가 감겨 있었다. 손에는 피가 묻어났다.
그렇다. 김춘삼은 확실히 죽었다. 맞다. 들고 있던 총은?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총이 사라져 있었다. 총은 어디로 간 거지. 나는 테이블 위에 권총이 올려져 있는 걸 보았다. 나는 권총으로 손을 뻗았다.
“안 되지.”
한현이 어디선가 나타나 권총을 빼앗았다. 팔을 너무 멀리까지 내밀었던 나는 소파에서 굴러떨어졌다. 지독한 격통이 속에서 올라왔다. 머리. 제기랄, 머리를 부딪혔어. 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욕을 내뱉었다. 어떤 욕으로도 머리에 전해진 격통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제길,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내가 겨우 머리를 매만지며 한현에게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뭐하러 거길 간 거야?”
“사람에게는 각자 어울리는 음료가 있는 법이죠.”
“무슨 말이야?”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네 일은 나한테 의뢰하러 오는 데에서 끝났잖아.”
그건 그렇고 권총이라. 한현은 권총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권총의 등장에는 그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제길, 지금까지 충분히 잘 숨겨왔는데 하필 여기에서 걸리다니.
“어디서 났지?”
“오빠 시체요.”
“자기 오빠 시체를 보고도 경찰서에 신고할 생각은 안하고 권총을 훔쳐서 왔다고?”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한현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어쩌라고. 내가 그 시체를 매고 올라가서 장례라도 치러줘야 했다는 건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라니까. 김춘삼을 살펴보든 죽이든 하러 갔더니 갑자기 총 쏘는 소리가 들리질 않나, 의뢰인이 계단에 쓰러져 있고, 김춘삼은 또 죽어있고.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총소리 났으니까 사람들 몰려올 건 또 뻔하지.”
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한현은 차를 우리고 있었다. 한현은 다 우려진 차를 잔에 따랐다. 차에서는 정신이 확 깨는 강렬하고 쓴 향이 났다. 맥주 같은 향이 나서 마음에 드는 면도 있었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바람에 두통만 더 심해졌을 뿐이다. 홍차는 역시 입맛에 맞지 않는다.
“혹시 차 대신에 소주 같은 거 없어요?”
“난 술 안 마시는데. 잠깐만, 넌 애가 술을 마시냐? 몸에 안 좋잖아.”
“그럼 밥은 몸에 좋아서 먹어요? 아저씨는 어떻게 술도 안 마실 수가 있어요?”
한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했다.
“아, 모르겠다. 됐고, 일단 확인 차 물어보자. 김춘삼을 네가 죽인 건 아니겠지?”
“저한테 총이 있는데 뭐하러 대가리를 찍어 죽이겠어요.”
“하, 뭐, 하긴 그렇지.”
나는 찻잔을 노려보다가 결국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입 안에 쓴 맛이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드니 머리가 아팠다. 누군지는 몰라도 좀 살살 좀 칠 것이지, 왜이리 세게 때려서 내 머리를 아프게 하나.
“김춘삼을 죽인 사람은 아무래도 우리 오빠를 죽인 사람과 같은 사람이겠죠?”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럼 일단 김춘삼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네요. 그럼 나머지 한 명인가.”
“그렇겠지. 그런데 너 뭐 잊어버린 말 없어?”
한현이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한현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화들짝 놀랐다. 나는 얌전히 차를 마시며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대답이 이어지지 않자, 한현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남한테 의뢰를 해놓고는 혼자 타겟이 있는 곳에 기어들어가서 깽판을 쳐놓고는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없어?”
“미, 미안해요.”
그제야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늦었다.
“김춘삼이 만만한 놈인 줄 알아? 내가 그 녀석이랑 같이 일도 해봐서 안다고. 그냥 총 들고 찾아가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면서 맞아 죽어줄 줄 알았어? 만약 김춘삼이 살아있었으면 너 이미 그 자리에서 죽었어.”
“죄송합니다.”
“확 진짜 여기서 다 때려쳐 버리고 싶은데 내가 시하 얼굴 봐서 한 번 참는다, 진짜.”
한현은 권총을 서랍 안에 거칠게 밀어넣었다. 저거 안전장치 없어서 막 다루면 안되는데. 저거.
“권총은 압수야.”
나는 당장 권총을 어떻게 눈에 안 띄게 저기서 훔쳐낼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는 아무래도 반성할 생각이 없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는 머리를 매만졌다. 아직도 머리가 두 쪽이 난 것처럼 아팠다. 그제야 나는 또 해야할 말 한 마디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기요.”
“뭐?”
“혹시 거기서 절 데려온 것도 아저씨인가요?”
“뭐, 일단은.”
“‘일단은’이라니, 뭐에요. 그……. 고마워요.”
한현은 갑자기 이해가 안 간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붕대를 가리켰다.
“이거요.”
“……니 대가리를 진작 작살내놓지 않은 거?”
“아니요, 붕대요, 붕대.”
한현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은 꾸짖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혼자서 행동하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풀린 한현은 아침밥으로 빵을 내왔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다. 식빵에 잼이나 발라 먹는 게 다였지만 아침밥으로는 충분했다. 뭔가 기름진 게 있으면, 그리고 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뒤이어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학교는 신경쓰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방학이었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소파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 게 온종일 할 일이었다.
“취미라도 좀 가져보는 건 어때?”
한현이 물었다. 취미라. 전에는 취미란 게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취미라는 게 뭔지 까먹었어요.”
“재미삼아 하는 일을 말하는 거지. 예를 들어서, 홍차를 마시는 거나 음악을 듣는 거 같은 같은.”
“그게 왜 필요한데요?”
“없으면 인생이 재미가 없잖아.”
“원래 재미없는 맛에 사는 거 아니었어요?”
“글쎄, 나 같은 경우엔 홍차를 마시니까 인생이 달라지더라고.”
“홍차가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지.”
흐음. 나는 찻잔 속의 붉은 홍차를 들여다보았다. 새빨간 색에, 맥주와 같은 냄새가 올라오는 떫은 물. 물론 술보다야 몸에 좋겠지만, 역시 내 마음엔 들지 않는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보다는 마구 흐려져서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어버리는 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차 이름은 뭐에요? 홍차마다 이름도 다 다르던데.”
“아삼. 꽤나 유명한 차라구.”
한현은 아삼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아삼은 역사적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지. 원래 홍차는 중국에서 들어왔어.”
“그래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야. 원래는 사치품으로 귀족들만 마시는 것이었지, 하지만 아삼이 발견되면서 인도에서도 차를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동자들도 아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어.”
“그것 참 잘 됐네요.”
“인도인들과 흑인 노예들에겐 잘 된 일이 아니었지. 다원에서 막노동을 해야 했으니까.”
지금 사람 가지고 노는 건가?
“그럼 안 된 일인가요?”
“결국 하나의 폭력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폭력이 발생해야 한다는 거지. 열역학 보존 법칙.”
“전 열역학 같은 거 모르는데요.”
“뭐, 모를 수도 있지.”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폭력은 뭘 하든 유지된다는 뜻일까. 받아들이기 싫은 말이다. 남이 상처입거나 다치는 건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복수를 하려는 사람이 하는 생각 치고는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지만.
그런데 내가 왜 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게다가 왜 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는 거야. 짜증이 났다. 홍차를 마시니까 더욱 더 짜증이 났다. 괜히 수많은 인도인과 흑인 노예들의 노동이 생각나서 그런 걸까.
내 눈에 방에서 들고 온 베이스 기타가 갑자기 들어왔다. 그래, 예전엔 확실히 그런 게 있었구나.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던 시절. 재미있었지. 나는 얌전히 일어나 CD가 쌓인 선반으로 다가갔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라디오헤드를 틀기로.
“밴드 음악은 안 좋아한다며?”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그런데 오늘은 땡기네요.”
OK Computer. 나는 CD를 오디오에 집어넣었다. 첫 번째 트랙은 Airbag이다. 수십 개월동안 반복해서 들은 덕에, 나는 이 음반의 트랙리스트를 완전히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다음 세계 대전, 몸을 구부릴 재앙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요
네온 간판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불빛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요1)
“혹시 런던 포그 한 잔 타주실 수 있어요?”
“뭐, 어렵지야 않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변덕이야.”
“런던 포그 타는 동안 들려드릴게요. 제가 왜 밴드 음악에 트라우마가 있는지.”
나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디스토션이 걸린 찢어지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1)Radiohead – Airbag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