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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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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소녀와 홍차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성일 : 17-07-09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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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3.

 

 

 눈을 떴을 땐 우리가 타고 왔던 오토바이가 보였다. 오토바이는 불이 붙은 채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서 물러섰다. 오토바이의 엔진에 불이 붙었다. 오토바이는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다행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지는 않았다.

 

 

 손에는 아까 신나게 쏘아댔던, 지금은 텅 비어버린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놓지 않았다니. 나는 짜증이 나서 던져버렸다. 어차피 총알 하나 없는 권총이다. 아깝지 않다. 애초에 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오이치가 보였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바닥을 기었다.

 

 

 누군가 나타나 벌레를 짓밟았다.

 

 

 갑자기 나타난 것은 소담이었다. 소담은 아오이치의 머리를 도끼로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일격에 아오이치의 머리가 반토막났다. 깔끔했다. 우리 오빠, 김춘삼, 뒤이어 아오이치까지.

 

 

 나까지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죽은척. 숨을 최대한 참았다.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나는 긴장했다.

 

 

 쭈그려 앉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이 쿡쿡 찔러댔다. 나는 움찔하지 않으려 애썼다. 소담은 화가 났는지 나를 발로 걷어올렸다. 거기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내가 숨겨뒀던 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소담과 거리를 벌렸다.

 

 

 “다가오지 마!”

 

 

 “워, 워, 진정하라고. 진정해.”

 

 

 양 손에 도끼를 든 사람을 상대로 진정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담은 나에게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섰다.

 

 

 “오지 마! 오면 쏜다!”

 

 

 “쏠테면 쏴 보던가.”

 

 

 소담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신기한 녀석을 본다는 듯 희한한 표정이었다. 총에 맞는다는 생각 따위는 하고 있지도 않은 것이다.

 

 

 “넌 누구냐?”

 

 

 소담이 물었다. 지금까지 소담이 저지른 행적을 보면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두려워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담이 한 발짝 내딛으며 한 번 더 물었다.

 

 

 “저번에 김춘삼을 죽일 때도 네 녀석이 나타났었지. 게다가 지금도 이 자리에 있어. 넌 누구야? 한현도 널 끔찍이 여기는 것 같던데.”

 

 

 말투에 적의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저 순진한 사람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가 어딜 봐서 순진한 척이냐. 방금 사람 하나 찍어눌러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신, 누구야?”

 

 

 “나? 내 소개는 아까 아오이치가 다 한 줄 알았는데.”

 

 

 “엿듣고 있었구나.”

 

 

 “귀가 워낙 밝아서. 뭐, 그래도 굳이 소개를 하자면.”

 

 

 소담이 양 손에 든 도끼를 한 바퀴 돌렸다. 잽싼 손놀림이었다.

 

 

 “나는 소담. ‘칠살’이라고 부르든 ‘광전사’라고 부르든, 내 이름은 소담이야. 그리고 살인청부업자지. 지금은 쫓기는 신세지만.”

 

 

 “당신과 한현은 무슨 사이지?”

 

 

 “아? 어쩐지, 한현이랑도 아는 사이구나? 어쩐지 한현이가 너 있다고 하니까 챙겨달라고-”

 

 

 “아가리 나불대지 말고 말해!”

 

 

 역정이 쏟아져 나왔다. 이크. 하고 소담이 잘못 이야기했다는 듯 말했다.

 

 

 “그냥. 한현을 통해서 날 노리던 녀석들을 역으로 쳐죽여줬을 뿐이야.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래?”

 

 

 “당신이 죽인 암살자 중에, 시하 기억나?”

 

 

 내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소담이 뭐라 말하는 순간, 당장 당길 수 있다. 당장이라도 당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아직이야. 아직 소담이 범인이라고 확정난 것도 아니다. 소담의 입에서 확실한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당길 수 없다.

 

 

 “시하라, 아아, 그런 사람도 있었지.”

 

 

 소담이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이겼어.”

 

 

 “난 그 사람 동생이야.”

 

 

 침착해. 총구는 소담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이대로 방아쇠만 당기면 소담을 죽일 수 있다.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머리를 뚫고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원수를 갚는 거고. 끝. 모든 비극이 끝난다.

 

 

 방아쇠를 당기자. 방아쇠를. 넌 당길 수 있어. 당길 수 있다고. 하지만 몸은 멈춰서 움직이질 않았다. 방아쇠가 무거웠다. 총을 들고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죽여버리고 말 거야.”

 

 

 위협이라고는 하나도 되지 않는 목소리다. 소담은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소담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오지 마! 죽여버릴 거라고!”

 

 

 소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총의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건 미친 짓이었다.

 

 

 “쏴 봐.”

 

 

 소담이 대답했다. 좋아. 진짜 본때가 뭔 지를 보여줘야지.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최소한 당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손이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공포심? 하지만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지?

 

 

 왜 나는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는 거지?

 

 

 “잃을 게 없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지.”

 

 

 소담이 천천히 총구를 자기 머리에서 치우면서 말했다.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얌전히 총을 내려놓았다.

 

 

 “개소리야. 세상에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어딨어? 설령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있더라도, 잃을 게 없는 데 어떻게 무서워질 수 있지? 오히려 가진 사람이야말로 강해질 수 있는 게 아냐? 강해져야 자기가 가진 걸 지킬 수 있으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소담은 말을 계속했다.

 

 

 “꼬맹아. 지금 스스로도 왜 못 쐈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네가 가진 게 이 복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네게 복수를 빼면 뭐가 남을 것 같아? 네 눈에 그렇게 써 있다고. 나는 복수밖에 할 거 없음.”

 

 

 소담은 결정타를 꽂아넣었다.

 

 

 “그런 눈깔로는 아무도 못 죽여. 풋내기. ‘넌 아직 준비가 안됐다!’”

 

 

 아.

 

 

 아아.

 

 

 토해버릴 것 같았다. 소담의 한 방에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순간적으로 속이 답답해지고 숨 쉬기가 불편해졌다.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소담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소담을 노려보았다. 노려본다고 해서 소담이 죽는 것도 아니었다. 소담은 킥. 하고 웃더니 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 뭐라 적었다. 그런 걸 일일이 들고 다닐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의외의 일면이었다.

 

 

 “여기가 우리 집 주소거든, 혹시라도 준비가 되거든 찾아와보던가.”

 

 

 소담은 나에게 주소를 적은 쪽지를 남기고는 적토마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쪽지를 주머니에 구겨넣고는 그 자리에서 속을 게워냈다. 눈물이 섞인 토악질 속에서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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