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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류하 시리즈
작가 : 루날
작품등록일 : 20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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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소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작성일 : 17-07-10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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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니까, 친구가 생긴 이야기는 내가 어떤 여고에 몰래 들어갔던 때부터 시작한다.

 

 “잠깐만, 잠깐만.”

 한현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 이상한 데에서 귀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니까.

 “왜요?”

 “여고에 몰래 들어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진지하게 어느 부분이 말이 안 되는지 애써 생각해봐야 했다. 내가 아무 잘못 없다는 표정을 짓자 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대체 뭐가 문제야.

 “평범한 사람은 여고에 몰래 들어가지 않아. 특히 남자가 들어가면 치한이라고 부르지.”

 “전 여자애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캬아아아아아아악! 매워어어어어어어!!! 물!!!!”

 소담이 억지로 마파두부밥을 먹는다고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아, 너무 무섭다. 정말 그 대삼원을 맞았다간 어떤 꼴이 되었을까. 상상도 가질 않았다. 너무 무섭다.

 “뭐, 혹시 땡기면 교복 구해줄테니까 위장전학 콜?”

 “아, 아니요. 위장전학까진 하기 싫어요. 그런데 교복은 좀 땡기네요.”

 그리고 량차오 이 인간은 스케일이 크다. 누가 중국인 아니랄까봐. 한현은 체념한 듯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는 음…. 음……. 호구새끼니까.

 “그래, 그럼 대체 왜 여고에 몰래 들어갔는지부터 말해봐. 내가 이해 되게.”

 

 딱히 여고에 몰래 들어간 큰 이유는 없다. 애초에 거기가 무슨, 뭐하는 고등학교인지도 몰랐고, 그냥 고등학교에 들어 가보고 싶어서 몰래 들어간 것이다. 이쯤에서 한현 아저씨가 또 딴지를 걸었기에 좀 더 말하자면, 그냥 중학교만 졸업하고 학업을 포기했다 보니 고등학교가 어떤지조차 몰라서 궁금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겠다.

 꽤나 고전적이고 낡은 건물이었다.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이리라. 숨어드는 건 쉬웠다. 애초에 오빠가 살인청부업자니 타고난 건지도 모르겠고, 사실 함달 할아버지에게 정보원들이 잠입할 때 쓴다는 비법을 전수받았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한현 아저씨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뭐 처음 보는 고등학교의 분위기는 섬뜩했다. 복도는 휑하지, 교실 안에서는 이상한 주문 같은 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공부하는 거겠지만, 생기가 없는 게 꼭 게임에서 좀비들이 내는 소리 같았다. 차라리 라디오헤드가 만드는 노래가 저 사람들보다는 생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주술적인 소리를 들으며 복도를 걷다 보니 낮인데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나무 바닥에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내 그림자에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복도 끝을 지날 때 누군가 꽥 소리를 지를 때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비법을 까먹을 뻔 했다. 잘 보니 교사가 학생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학생도 만만찮은 모양이었다. 참 뭐 중학교 때부터 선생이건 학생이건 목소리 시끄러운 새끼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고등학교 안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한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서고’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아까 복도를 지나다닐 때 도서관은 보였는데, 거기는 수업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텅 비어있었다. 게다가 책도 도서관에 있던 것 보다는 훨씬 많았다. 애초에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책을 위한 자리 같았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장에 꽂힌 책을 둘러보는 건 재밌다. 책장의 책들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듯 먼지가 앉아 있다. 정돈은 잘 된 편이긴 했는데, 간혹 가다가 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과학 책이 있는 등 누군가 실수를 한 부분도 있었다. 하긴, 시립 도서관도 서점도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학교 서고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기왕 서고인데 책을 꺼내 봐야겠지. 게다가 책이 이렇게 많은데 한 권쯤 훔쳐가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애초에 이런 데 신경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신경 쓴다고 하는 인간들의 반은 위선에 거짓말쟁이일테지.

 음반을 고르듯 책을 고른다. 개인적으로 음반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앨범 커버다. 좋은 음반은 일단 앨범 커버부터 먹고 들어간다. 잘 만든 음반은 그 커버를 보면 그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건 음반이 아니라 책이니까 제목도 신경 써야겠지. 제목이 멋진 책이라.

 일단 뽑아서 표지나 보려고 한 권 책을 뽑았다. 책의 이름은 <뉴욕 3부작>. 손을 뻗자 갑자기 누군가와 손이 닿았다. 화들짝 놀랐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설마 유령인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살짝 책장에서 꺼냈던 <뉴욕 3부작>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일단 눈앞에 서 있는 건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그 점에 안도했다. 뒤늦게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열린 방 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전 망했어요. 애초에 여기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책을 위한 공간. 그러니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아니다, 오히려 그러니까 눈치 채야 하는 건가? 모르겠다. 갑자기 사람을 만나니까 머릿속이 꼬여버렸다.

 교복을 보아하니 분명 이 학교 학생이었다. 새까만 단발에 안경, 세라복이라니. 얼굴에 대놓고 ‘문학소녀’라고 쓰인 여자아이였다. 이정도로 문학소녀 같으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학소녀는 이 서고와 하나의 존재로 융합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공간에 무게에 입에서는 어버버거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구석에 몰린 몸은 절로 떨렸다.

 문학소녀는 날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뉴욕 3부작>을 주워 먼지를 탈탈 털고는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조용히 책을 받아들었다. 문학소녀가 나에게 내민 손의 소매 안쪽으로 반창고가 보였다. 손목에 붙은 커다란 반창고, 반창고에는 피가 번져 있었다. 그 아래에 있을 꿰멘 자국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 걸 보자 나와 동질감이 느껴져 주저앉고 말았다. 문학소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괜찮아?”

 이건 밴드 보컬하기 딱 좋은 맑은 목소리다. 안심이 되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 낯익은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편안한 기분. 사람과 있어서 이렇게 편한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다. 그래, 나 자신과 마주한 기분.

 입이 저절로 열렸다.

 “지금 수업시간 아냐?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보충수업이라서 도서부원 핑계 대고 빠졌어. 넌? 저, 혹시…….”

 “난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서.”

 아, 결국 말해버렸다. 너무 마음이 놓여버린 탓이다. 망했다.

 “아, 그렇구나.”

 문학소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만 전전긍긍하고있는 셈이다.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

 “그냥, 도서관에 두기엔 책이 너무 많아서 못 두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야. 애초에 오는 사람도 잘 없고, 선생님들도 관심이 없어서 거의 버려진 곳이지.”

 “그럼 맨날 혼자 여기 오는 거야?”

 “애초에 열쇠도 내가 관리하는걸.”

 “잠깐만, 그럼 혹시 내가 들어오는 것도 봤어?”

 “당연하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복도고 뭐고 다 잘 해왔는데 여기서 실수를 하다니. 할아버지에게 들으면 혼나겠지.

 “저기 있잖아.”

 문학소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화들짝 놀라 히익 하고 소리를 냈다. 사람 앞에서 이렇게 당황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책 읽는 거 좋아해?”

 “아니, 사실 책 잘 안 읽어. 그냥 책 구경하는 거만 좋아해.”

 “그래? 그럼 폴 오스터는 좀 힘들지도 모르는데.”

 “폴 오이스터?”

 내가 뭔가 잘못 알아들었나보다. 문학소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의 작가 이름이었다. 알고 나니 조금 부끄러웠다.

 “뭐 그 책이 마음에 든다면 할 수 없지만.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심연 또한 그를 들여다본다’는 말을 생각하며 읽으면 쉬울 거야.”

 “오, 그 대사 멋지다. 그거 스포일러야? 혹시 작품 안에도 나와?”

 “음. 작품 안에는 안 나오는데. 생각해보니 스포일러는 맞는 것 같기도 하네. 미안.”

 “아냐, 괜찮아.”

 사실 이 책 훔쳐가는 건데, 괜찮을까.

 딩동댕 하고 종이 울렸다. 그새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문학소녀는 교실로 돌아가야겠지. 그 표정은 아쉽다 못해 어딘가 슬퍼보였다. 진득한 외로움의 냄새. 목소리가 어딘가 차분하게 바뀐 문학소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 학교 대출 기간은 2주일이야. 연체하지 말고 반납해줬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

 문학소녀가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쓸쓸한 뒷모습이다. 옷깃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문학소녀가 나가는 문에 한 발짝 다가간다 겨우 세 걸음 남짓. 일 초에 한 걸음. 일 초, 이 초. 나는 손을 뻗어 말을 걸었다.

 “잠깐만.”

 문학소녀는 뒤돌아 날 쳐다보았다. 소름끼치는 무표정. 어딘가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걸까? 나는 억지로 밝은 모습을 연기하려고 애썼다.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손을 뻗은 채였다.

 “우리 친구하지 않을래? 난 류하라고 해.”

 궂었던 날씨가 갠 느낌이 들었다. 문학소녀의 표정으로 곧바로 드러난 건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전해졌을 거라고,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문학소녀는 표정을 유지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슬며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손목에 핏물이 번진 반창고가 붙은 그 손이었다.

 “난 유연화, 연화라고 해.”

 문학소녀, 연화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뭐, 대충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에요.”

 이렇게 말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한현 정도밖에 없었다. 소담은 아까 대삼원을 실패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화를 참고 있었고 량차오는 그런 소담을 보면서 낄낄거리는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뭐, 어차피 제대로 들어줄 거라곤 기대도 안했던 사람들이다. 심술이 났지만 한현이라도 들어준 게 어디냐. 그냥 속으로나마 한숨을 쉬고 넘기는 수밖에 없겠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반이다. 이런. 마작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취미다. 특히 차와 같이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서두르지 않으면 연화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아, 이런. 전 친구 만날 시간 되어서 먼저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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