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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톤
작가 : 신비야
작품등록일 : 20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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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아이
작성일 : 17-07-11     조회 : 463     추천 : 5     분량 :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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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장 -

 아무것도 없는 아이

 

  어느 따스한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평소와 똑같이 잭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검은 머리 늑대 주니어! 오늘은 좀 벌었어?]

 검은 머리 늑대 주니어는 나의 애칭이다. 머리가 검고, 늑대처럼 산발이며, 내가 아기라며 누군가가 붙여준 건데, 쓸데없이 왜 이리 길게 만들었는지 -- 아니, 어쩌면 제임스 킹 조지아 그래고릭 2세로 불리지 않은게 다행일수도 -- 잭 아저씨는 내 머리를 툭툭 치며 또 물었다.

  [짜식. 없는 애인 생각하냐?]

  [네? 아니오? 아.. 오늘은 얼마 못 벌었어요. 1달러 60.. 아니 65센트네요.]

 잭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육십? 아저씨라고 차별하나... 난 1달러 5센트인데. 어른 공경! 30센트만 줘. 너나 나나 똑같아야지. 같은데서 싸고 자고 구걸하는데 말이야.]

  [불공평해요!].

  [짜식, 자리 값이라 생각해.]

 나는 억울했지만 혹여나 아저씨가 날 여기서 쫒아낼까봐 30센트를 주고야 말았다. 잭 아저씨는 두 번이나 액수를 세어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연장해 줄게.]

  [에게... 겨우 한 달?]

  [흠... 너무 심했나?]

 난 그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좋아, 2주 연장!]

  [에에에~? ].

  [불만있음 나가든가!]

 집은 아니지만 따스한 이 곳, 나의 안식처... 나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등 뒤에 느껴지는 이 따스하고 물렁한 털 뭉치는...

  [으악!].

 검은 고양이였다! 귀에 빨간 리본이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주인이 있는 듯 한데... 목걸이에는 ‘블랭카 클랜베리 줄리아 1세’라고 적혀져 있었다. 이 고양이의 주인도 잭 아저씨 못지 않은 이름 길게 만들기 장인인가보다.

  [검은 머리 늑대 주니어! 그거 뭐야?]

  [고양이에요. 길을 잃었나보죠, 뭐.]

 그는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너 말이야... 고양이가 무슨 맛인지 알아?]

  [고양이가 고양이 맛이겠죠, 뭐 별다른 맛이 있겠어요?]

  [먹어본 적 있어?]

  [당연히 없죠. 누가 야만적으로 고양이를...]

 순간 느꼈다. 난 블로어(블랭카 클랜베리 줄리아 1세를 내가 줄여서 부르는 이름)를 품에 꼭 껴안고는 그를 필사적으로 쏘아보았다.

  [더러운 인간!].

 그는 몹시 언짢은 듯이 말했다.

  [장난 가지고 말이 심하시네요, 꼬마 늑대씨?]

 그러고는 날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의 누런 치아가 그대로 보여지자 난 정말 불쾌했다. 야만적인 인간, 비열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인 인간! 사실 난 잭 아저씨가 정말이지, 끔찍이도 싫다. 그가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릴 때면, 정말이지 가증스러워서 차마 두 눈 뜨고, 두 귀 열고 참을 수가 없다. 자신의 옆에 있으면 암내가 코를 찌른다는 것을--그건 나도 똑같겠지만-그는 알기나 할까?

 

 이건 정말 황당한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보기만 하라. 한 귀로 듣고, 다른 쪽 한 귀로 흘리기를 권한다. 안 그러면 계속 생각나서 어이없을 거니.

 

  지지난 주 월요일, 내 옆에 나보다 2~3살 쯤 많아 보이는 형들이 밴드 공연이랍시고 이상한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할머니께 말했다.

  [학교를 안 가도 된다니, 나도 그 때는 참 학교 가기 싫었는데. 세상 정말 좋아졌구먼.]

 나는 깜짝 놀랐다. 저 할아버지의 부모님은 무척이나 엄격하셨나보다. 학교에 가다니! 학교는 시시한 예절 교육 따위나 가르치는 곳이 아니던가! 그 할아버지가 ‘시스 가상현실 체험관’이라는 거미줄이 주렁주렁 달린 채 불빛을 겨우 껌벅껌벅 거리고 있는 낡은 간판을 단 가게의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서야 난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잭 아저씨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난 학교에서 우등생이었지. 딱 네 나이 때 벌써 곱셈구구를 다 외웠다니까?]

 아, 차라리 정신을 차리지 말걸 그랬다.

  [아저씨도 학교에 다녔었나요?]

  [너만 할 때 곱셈구구를 다 외우면 거의 천재급이지!]

  [아저씨, 학교에서는 뭘 배우죠?]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고!]

 내 말을 계속 무시하는 잭 아저씨에게 화가 나 소리쳤다.

  [아저씨! 학교에서는 뭘 배우냐니까요?]

 잭 아저씨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지, 뭘 배우겠냐, 이 바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살펴보고는 이내 휙 내던져 버렸다. 나는 되물었다.

  [공부요?]

  [그래, 공부.]

  [곱셉구구를?]

  [그래, 곱셈구구.]

  [학교에서?]

  [그래, 학교에서!]

 학교에서 공부를 배운다고? 곱셈구구를? 난 학교에 다니지는 않지만 나만한 애들이 미적분을 풀 수 있다는 것 쯤은--미적분이 뭔지는 모르지만--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똑똑했다니까?]

  [네, 정말 훌륭하세요, 하하하.]

  [그런데 테이프 자르는 회사를 차리고 나서부터 내 미래가 그늘지기 시작한거야! 한 땐 나도 잘나가는 CEO였다고! 그 바보같은 샘인지 잼인지 하는 그 녀석이 내 직원들을 빼앗아가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난 백만장자가 되었을거야! 어쩌면 억만장자일수도? 내 진짜 이름을 공개하면 날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걸?]

 내가 ‘피식’하고 웃자 아저씨는 마치 숨을 3분 동안 참고 있던 사람처럼 얼굴이 벌개져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야, 정말! 내가 증명도 할 수 있어! 내 진짜 이름이 뭔지 알아? 바로 ‘네이스린 페니코 리벡스 더 베스트’라고. 내가 세운 테이프 회사 이름은 내 진짜 이름보다 더 근사해. ‘커팅 테이프 얼마나 원하니 주식회사’야. 근사하지? 내가 저기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 엄청난 업적을 물어 볼 테니, 두 귀 쫑긋 세우고 듣도록!]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그 지나가는 젊은 신사에게 뛰어가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멀리서 봐도 그 젊은 신사의 어이없는 표정이 보였다. 한참을 메달리듯 뭔가 이야기하더니--분명 헛소리였을거다-- 잭 아저씨는 그 젊은 신사를 내 앞으로 데려왔다.

  [아까 했던 말 그대애애애로 다시 얘한테 전달해 주세요!]

 잭 아저씨는 기대에 찬 웃음을 짓고서 그 젊은 신사에게 말했다. 반면에 하필 그 시간에 그 거리를 지나가다 잭 아저씨의 눈에 띈 그 운도 지지리도 없는 가여운 젊은 신사는 시계를 한번 보고는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커팅 테이프 얼마나 원하니 주식회사’의 ‘네이스린 페니코 리벡스 더 워스트’씨다, 와하하하.]

 그 젊은 신사는 ‘워스트’를 강조해서 말했다. 정작 자칭 유명 CEO는 듣지 못했는지 만족스러운 듯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어쩜 거짓말도 저리 당당히 하는지... 분명 안다고 할 때까지 물어봤을테지. 저렇게 메달리면 귀찮아서라도 안다고 대답하겠네. --물로 나만 빼고-- 쳇, 그 누가 저런 누더기를 걸친데다 냄새까지 나는 사람이 유명 CEO라는 걸 믿겠어? 나라면 그냥 미치거나 허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때, 누군가 내 뒤통수를 정말 세게 쳤다. 정말 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검은 머리 늑대 주니어! 저기 좀 봐!]

 잭 아저씨였다. 난 욱씬거리는 뒤통수를 두 손으로 감싼 채, 굉장히 화가 나서 소리쳤다.

  [씨이, 안 봐요.]

  [아니, 한번 보고 말하라니까?]

  [씨이, 안 본다구요!]

  [빨리!].

 잭 아저씨는 내 고개를 강제로 돌렸다. 으으, 끈적한 손.

  [아, 뭔데요?]

 난 반항적으로 말했다.

  [구스 광장에 홀로그램 스크린 말이야!]

 너무 먼데다 모인 사람들의 머리에 가려 자막은 볼 수 없었지만, 내용은 대충 들렸다.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어떤 진행자가 나와 최근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용인 즉슨, 오드하라는 예언자가 수백 년 전에 무슨 바위가 쓰러지면 세상에 재앙이 닥칠거라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바위가 이유없이 조금 흔들리고 난 후,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선에서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바위 이름이 참 이상했는데...

  [고작 그거 가지고 호들갑이란!]

 난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한심해요.'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잭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해봐! 잘 안 들리잖아!]

  진행자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글 스톤은 특별한 바위입니다.]

 그래, 이글 스톤이었어. 누가 바위 이름을 그 따위로 지었담.

 [...첫 번째로 쓰러지자 1914년에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쓰러지자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나긴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후로 현재까지 잠잠했습니다만, 만약 세 번째로 쓰러진다면... 시청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네, 다음 주제입니다. 한국의 'Y‘사가 세계 최초로 홀로그램 아이돌을 데뷔 시켰다고 하는데요...]

  [검은 머리 늑대 주니어, 어때? 내 말 듣길 잘했지? 저런 고급정보도 얻고말이야.]

  [글쎄요. 저한테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걸요.]

  [에?]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내가 하려던 말은 내 입 속에서만 빙빙 돌다 사라져버렸다.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난 상관 없다구요. 난 잃을 것이 없는걸요.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도, 명예와 돈도, 지식도 없으니까요. 난 나이도, 국적도, 이름도 없어요. 진짜로 아무 것도 없는 아이에요. 아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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