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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낙원
작가 : 백양
작품등록일 : 201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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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1)
작성일 : 17-07-11     조회 : 447     추천 : 0     분량 : 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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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Prologue.

 

 이런 가게가 있었나?

 

 사은은 발걸음을 멈춘 채 눈앞에 보이는 가게를 올려다보았다. 간판에는 필기체로 영어가 적혀 있었다.

 

 『Bloody Night』

 블러디 나이트.

 

 속으로 영어를 중얼거리던 사은은 가게 외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가게가 있는 곳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은, 한적한 곳에 있었다. 외딴 섬처럼 홀로 이 가게만 우뚝 있었다. 처음 가는 길에 홀로 있는 이 괴상한 가게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떤 가게일까 싶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그곳에는 오늘의 추천 메뉴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작은 안내판이 하나 더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안내판이란 걸 확인한 사은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아르바이트, 라.’

 

 작년에 휴학한 후, 대학교에 갓 복학한 사은은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이번 학기 등록금이야 휴학을 하기 전에 받았던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받아 어떻게든 마련했지만, 그래도 생활비가 필요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혼자 살고 있었기에 아르바이트가 필수였다.

 

 그러다 발견한 이 레스토랑은 호기심이 가는 외관에, 페이도 괜찮은 것 같다. 물론, 정말 이대로 주는지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 어쨌든 물어는 봐야겠다.

 

 마음을 먹은 사은은 들어가기 전, 고개를 들어 레스토랑 전체 외관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1층으로 이루어진 이 레스토랑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은 편도 아니었다. 고딕 풍의 건물로 되어 있었고, 중세시대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솔직히 말을 해서 사은은 이 분위기에 이끌려서 들어가고 있었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가게야.’

 

 문손잡이마저 고딕 풍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굉장히 고급스럽게 보여서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조심히 문을 열자 문 위에 붙어 있는 작은 종이 딸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안은 가게의 이름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마치 뱀파이어가 살 것 같은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곳곳에 놓여 있는 세 개짜리 촛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몇 분이세요?”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밝은 목소리를 한 남자가 보였다. 오렌지 빛이 도는 짧은 머리카락을 한, 장난스럽게 보이는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는 은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마침 창가 자리도 다 남아 있습니다!”

 

 “아, 그…….”

 

 이런 밝은 직사광선 같은 스타일은 쥐약이다.

 

 사은은 자신을 손님으로 착각한 오렌지 빛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얼른 대답을 했다.

 

 “앞에 구인광고 보고 들어왔습니다.”

 

 “아.”

 

 남자는 손바닥에 주먹을 탁 부딪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은은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손님……?”

 

 이번에는 연한 다갈색 머리를 한, 귀 밑으로 내려오는 약간 긴 머리카락을 한 남자였다. 곱상한 외모가 보였지만 인상은 어쩐지 거칠어 보였다. 오렌지 빛 머리카락의 남자가 연한 다갈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말을 했다.

 

 “케이. 아르바이트.”

 

 연한 다갈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케이라 불렸다.

 

 “그럼 안으로 데리고 와야지. 뭐 해, 키나즈.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오렌지 빛 머리카락의 남자는 키나즈라 불리는 것 같았다.

 

 “아, 네.”

 

 사은은 케이의 뒤를 따랐다. 그 뒤를 키나즈가 따랐다. 어쩐지 연행되어가는 것 같은 모양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홀 뒤쪽으로는 복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나 가게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게 조명이 어두웠다. 쭉 이어진 복도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네 개 정도의 문이 있었다. 의외로 방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왼쪽 방의 문을 케이가 먼저 열었다. 그 방은 아주 작았다. 겨우 세 사람이 들어갈 정도였다.

 

 물론, 이 방은 불을 켜도 역시나 어두웠다.

 

 “앉아요.”

 

 케이의 말에 은도는 조용히 앉았다. 방 안에는 테이블 하나만 놓여 있었다. 4인용 테이블이다. 그 중 오른쪽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러자 왼쪽에는 자연스럽게 키나즈가 앉으려고 의자를 잡아당겼다.

 

 “키나즈. 넌 왜 그쪽이야?”

 

 “아, 케이 옆자리야?”

 

 “당연한 거 아니야?”

 

 기가 찬 표정으로 키나즈를 노려보던 케이는 그가 앉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키나즈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시선과는 달리 은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정하고 나긋했다. 페이스 전환이 참 빠르구나 싶었다.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백사은입니다.”

 

 “나이는?”

 

 “올해 23살입니다.”

 

 “백사은, 스물셋.”

 

 그렇게 중얼거린 케이는 A4 종이 하나를 꺼내 나란히 이름과 나이를 적었다. 그리곤 그 아래에 밑줄을 하나 긋고서 고개를 다시 들었다.

 

 “대학생?”

 

 “네.”

 

 “아르바이트 경력은?”

 

 말이 짧아진 것 같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겠지 하고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사은은 너무 무례한 것 빼곤 평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1년 했었습니다.”

 

 “페이는, 앞에 적힌 대로 주고, 매 달 10일에 넣어드려요. 통장 계좌랑 은행 알려주면 되고, 시간은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의외로 쉽게 아르바이트 채용이 되었다. 사은은 앞에 내밀어진 종이에 자신의 계좌와 은행을 적고서 케이에게 돌려주었다.

 

 “일 시작 10분 전에만 와주시면 될 것 같네요. 유니폼은 드리고, 뭐…… 궁금한 점 있나요?”

 

 “아뇨. 딱히 없습니다.”

 

 “좋아요. 그럼, 내일 봐요.”

 

 사은은 먼저 일어났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 곧 다시 복도를 지나 홀에 도착했다. 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뒤를 돌아 시선을 마주했다.

 

 “사은 씨.”

 

 “……아, 네.”

 

 “혹시…….”

 

 “…….”

 

 “아니, 아닙니다. 내일 봐요.”

 

 케이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조용히 바라보던 사은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서 나갔다.

 

 사은이 나간 곳을, 케이와, 그리고 케이의 옆에 어느새 나타난 키나즈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이다.

 

 

 

 

 

 

 

 

 Chapter1. 레스토랑 블러디 나이트(Bloody Night).

 

 분명 10분 전까지 오라고 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가게 앞에 도착한 사은은 다시 한 번 가게 외관을 바라보았다.

 

 5시 되기 30분 전. 첫날이니 일부러 빨리 왔다. 레스토랑이니 메뉴 같은 것도 미리 봐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찍 도착했다. 가만히 정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제 보았던 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어제 보지 못 했던 한 사람이 보였다.

 

 “어라, 손님?”

 

 그 남자는 금발을 하고 있었다.

 

 어제 보았던 케이는 연한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키나즈는 오렌지 빛 머리카락이다. 금발은 처음 본 남자였다. 거기다 이 남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짙게 진 쌍커풀, 살짝 올라간 눈썹,눈 위를 살며시 덮은 앞머리, 귀 아래까지 내려오는 금발, 눈동자도 머리카락에 어울리게 노란색을 띄고 있었다.

 

 “……은 아닌 것 같고.”

 

 잠시 그 외모에 속으로 감탄을 내뱉을 무렵, 금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은이 고개를 들자 어느새 남자는 그녀의 바로 코앞에 있었다. 언제 다가온 건가 싶을 정도로 아주 순식간에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아, 그렇군.”

 

 “…….”

 

 “오늘 오기로 한, 새로운 아르바이트?”

 

 누구일까. 어제 두 사람 중 사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사장인 걸까?

 

 사은은 잠시 금발의 남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벽에 달린 시계를 바라보던 금발의 남자가 사은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일찍 왔네.”

 

 사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금발의 남자가 얼굴을 불쑥 들이댔다. 깜짝 놀란 사은은 움찔거리며 뒤로 몸을 뺐다. 반사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남자는 놀라지 않았는지 그녀를 바라보다 빙긋 웃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금방 거리가 생기자 사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름은?”

 

 “……백사은입니다.”

 

 사은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이 남자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간처럼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외국인인 이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의 앞에 내밀어지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악수인 걸까. 잠시 망설이던 사은은 그 손을 잡았다. 남자치곤 꽤나 고운 손이구나,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이곳 사장, 카인이야.”

 

 아, 역시 사장님이었군.

 

 그녀는 기꺼이 금발의 남자, 카인의 손을 잡았다.

 

 이 사람이 자신의 고용주다.

 

 사은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했다. 그리고 잠시 놀라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생각보다 온도가 낮은 탓이다.그러나 그런 티는 내지는 않았다. 예의바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떼어낸 후 다시 카인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일 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흐음.”

 

 잠시 그녀를 이리저리 살피는 것 같던 카인이 눈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화사하면서도 야한 느낌이 들었다.

 

 “따라와. 가게 메뉴판을 보여줄게.”

 

 말없이 카인의 뒤를 따른 사은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제 왔던 방과는 달리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방으로 안내를 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어제의 방과 마찬가지로 불을 켜도 어두웠다.

 

 방 안에는 마호가니로 된 책상 하나가 놓아져 있었다. 다른 가구는 없었다. 그저 책상 하나만 놓여 있었다. 사은은 책상 앞으로 가서 이것저것 뒤적이는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책상 앞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고개를 들어 사은을 바라보았다. 노란색 눈빛이 어쩐지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빙긋 웃던 카인이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와 보라는 것 같았다. 사은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쪽, 의자 있지? 가까이 와서 앉아 봐.”

 

 사은은 말없이 뒤를 돌아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녀가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카인은 사은에게 펜을 내밀었다.

 

 “계약서 작성.”

 

 “……아, 네.”

 

 “쓰면서 들어. 사은이, 네가 여기서 지켜야 할 게 몇 가지 있거든.”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것에 잠시 멈춘 채 종이를 바라보던 사은은 그냥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어쩐지 젊어 보이지만 어딘가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관록이 있어 보였다. 아마도 동안이라 생각하며 사은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으며 사인을 했다.

 

 “첫째. 가게 안 밝기를 지금 이상 바라지 마. 밝혀서도 안 돼.”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왠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물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카인은 사은이 서명을 한 계약서를 받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카인의 붉은 입술만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둘째. 출, 퇴근 시간을 꼭 지킬 것. 아, 출근 시간은 좀 늦어도 돼. 이유만 말해주면 되니까. 하지만 퇴근 시간만큼은 꼭 지켜주길 바라.”

 

 어디나 출, 퇴근 시간은 꼭 지켜야 하길 마련이니 이건 문제없었다. 사은은 카인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카인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문득 카인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사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였다. 아무리 어두워도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서 어두워지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나 포함, 케이와 키나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말 것.”

 

 “…….”

 

 “이 세 가지만 잘 지켜주면 돼.”

 

 “어기면…… 어떻게 되나요?”

 

 사은은 아무런 의구심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물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바로 눈앞에 있는 카인을 발견했다.언제 왔는지 알 수 없어서 당황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던 카인이 몸을 일으켰다.

 

 “유니폼은…….”

 

 카인이 말을 이으려고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은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카인이 일어나자 문이 열렸다. 유니폼을 품에 안고 들어온 키나즈가 보였다.

 

 “여! 안녕, 백사은.”

 

 이쪽도 반말인가. 사은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딱히 토는 달지 않았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것 같지만 역시나 이쪽도 어딘가 관록이 느껴졌다. 사람을 겉으로 보고 판단을 해선 안 되었다. 사은은 어차피 이곳에 막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냥 그러려니 여겼다.

 

 “안녕하세요.”

 

 “일찍 왔네. 너무 일찍이라 놀랐잖아!”

 

 그저 원래 오라는 시간보다 20분 일찍 왔을 뿐인데. 사은은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키나즈가 그녀의 앞에 가까이 다가와 가지고 온 유니폼을 불쑥 내밀었다.

 

 “자. 유니폼.”

 

 사이즈는 말 한 적 없는데. 그런 사은의 생각을 읽었는지 키나즈가 씩 웃으며 말을 했다.

 

 “말 하지 않아도 딱 본 순간 알 수 있었거든. 어림짐작?”

 

 “키나즈. 시끄러워.”

 

 “예이, 예이. 탈의실은 따로 있거든. 따라 와.”

 

 개구쟁이처럼 씩 웃은 키나즈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사은은 나가기 전, 뒤를 돌아 카인을 바라보았다. 책상에 걸터앉은 카인이 손을 살며시 흔들고 있었다. 왠지 묘한 기운을 가진 남자다. 사은은 조용히 앞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키나즈의 뒤를 따랐다.

 

 그가 안내해준 탈의실은 어제 짧은 면접을 봤던 방 건너편이다. 문 색이 다른 문들과 달리 붉은 색으로 되어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캐비닛은…… 그래. 넌 이걸 써.”

 

 여섯 개로 된 캐비닛이 한 쪽 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캐비닛 앞에는 평상 하나가 놓아져 있었다. 평상, 이라. 사은은 탈의실 풍경에 의외네, 생각을 했다.

 

 키나즈가 정해준 캐비닛 문을 열고 가방을 넣었다. 키나즈는 옷을 갈아입으라며 먼저 나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낮게 한숨을 쉰 그녀는 평상 위에 앉았다. 그 옆에 둔 유니폼을 바라보다 다시 일어났다.

 

 ‘묘한 곳이군.’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아까 전, 카인이 알려 준 세 가지 규칙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째, 가게 밝기를 계속 유지할 것. 더 밝아서도, 더 어두워서도 안 되는 지금의 밝기. 그리고 둘째, 출근은 늦어도 되지만 퇴근만큼은 꼭 지킬 것. 마지막으로 셋째, 사장인 카인을 포함한 직원인 케이와 키나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말 것.

 

 원래 사은은 필요 이상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타인도 자신에게 필요 이상 관심을 가지면 부담이 되었다. 서로 선을 지키며 지내는 것이 좋았다.

 

 “서로 관심을 끄고 지내면 되는 것.”

 

 ……인가.

 

 사은은 어느새 다 갈아입은 후 반대쪽 벽 구석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단정하게 흰 셔츠는 목 아래까지 전부 잠갔다. 얇은 조끼도 제대로 단추를 잠갔고, 처음 매 보는 앞치마도 단정히 입었다.

 

 탈의실에서 나와 홀로 향한 사은은 그곳에 있는 케이를 발견했다. 케이가 고개를 들자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정말 일찍 왔네. 사은 씨, 이쪽으로 와요.”

 

 여기서 유일하게 케이만이 존댓말을 써 줬다. 어쩐지 반말을 들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역시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본인이 편할 땐 반말을 쓰겠지 싶었다. 케이가 불렀기에 그 옆으로 간 사은은 케이가 보여주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여기 앉아서 대충 메뉴 외워요. 아, 그리고 메모지랑 볼펜. 적은 후에 와서 저쪽 주방 앞에 뚫린 곳에 내밀면 되요.”

 

 “주방은…….”

 

 “요리는 내가 한다!”

 

 허리를 쫙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키나즈가 외쳤다. 언제 왔지. 사은은 눈을 깜빡이며 키나즈를 바라보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나즈는 주방에서 일을 합니다. 홀은 저 혼자 봤지만 감당이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뽑게 되었어요.”

 

 역시 사장은 직접 일을 하지 않나 보다. 사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손님이 없고 한가하면 케이 혼자서 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레스토랑의 크기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바빠지면 혼자로는 감당이 안 될 크기였다. 사은은 계속해서 케이의 말을 들었다.

 

 “참. 그래도 주방이 바빠지면 나도 주방에 들어갈 수 있으니, 홀은 사은 씨 혼자서 볼 수 있도록 얼른 익혀야 해요.”

 

 “……네.”

 

 “질문은?”

 

 “딱히 없어요.”

 

 “자, 그럼 메뉴 익히고 있으세요. 잠시 사장님한테 갔다 올 테니.”

 

 케이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키나즈를 데리고 갔다. 뒤에서 키나즈가 ‘난 사은이랑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소리가 멀어지자 그녀는 잠시 뒤를 돌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 메뉴판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홀을 돌아보았다. 외관도 고딕 풍 양식으로 되었지만 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성 안에 들어와 큰 홀에 앉아서 파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가게의 조명 상, 밤에 이루어지는 은밀한 파티에 초대된 기분도 들었다.

 

 촛불 관리가 힘들 것 같군, 생각을 하며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메뉴는 아주 간단했다. 파스타 세 가지, 필라프 두 가지, 그리고 스테이크 두 가지. 종류만 외우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하지도 않고, 직원들도 사장도 착한 것 같고.

 

 그녀는 원래 자신과 맞지 않더라도 일단은 오랫동안 일을 하는 편이다. 물론 다행히도 전에 일했던 편의점 점주가 좋았다. 마음에 맞았기에 일 년 동안 일을 했었지만 학교로 인해 잠깐 그만 뒀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려고 돌아와 보니 이미 아르바이트가 있었고, 거기다 편의점보다 좀 더 페이가 좋은 곳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찾아다니고 있을 때, 마침 이런 좋은 곳을 찾았다. 비록 가게 안에 많이 어두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페이나 같이 일을 하게 될 사람들이 좋았다.

 

 “사은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생각에 빠졌더니 큰 목소리도 아닌데 어깨를 움찔 떨다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선 키나즈가 보였다.

 

 “너 말이야.”

 

 “네.”

 

 “혹시…….”

 

 키나즈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는지 들어보려는데 케이가 키나즈를 불렀다.

 

 “키나즈.”

 

 낮은 목소리지만 그 안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돌아보자 무표정을 한 케이가 보였다. 저 모습은 조금 무섭다. 예쁘게 생겼지만 화를 내니 그만큼 무서움이 배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앗, 미안.”

 

 “무엇이…….”

 

 “아냐, 됐어. 메뉴는 다 외웠나!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들이야. 여러 개 다른 것도 만들어 봤는데 실패해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건 빼고 나머지만 팔려고.”

 

 “아…… 네.”

 

 요리를 잘 하나 보다. 사은은 그렇게 생각하고서 메뉴를 다시 팔락이며 넘겼다. 이 정도면 메모지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금방 외울 것 같아서 메뉴판을 덮어버리고서 키나즈를 보았다.

 

 “하려던 말은…….”

 

 “없어!”

 

 “……아, 네.”

 

 하려던 말을 케이가 막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긴 해도 어차피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케이가 웃으며 새삼 악수를 청해왔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키나즈도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도!”

 

 불쑥 내밀어진 손들을 바라보던 사은은 천천히 일어나서 두 사람의 손을 동시에 잡았다. 왼손으로는 케이를, 오른손으로는 키나즈를 잡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 중 키나즈의 웃음소리가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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