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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이었지만 손님은 그다지 없었다. 이렇게 장사를 하면 이 가게 유지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첫날이라 아직은 잘 모르니 섣불리 판단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서빙, 꽤 잘 하던걸?”
키나즈가 말을 걸어왔다. 옷을 갈아입던 사은은 셔츠 단추를 채우다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생각에 잠겨 있어서 그런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 했나 보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뭐, 어려운 건 없지?”
“네. 딱히.”
“참, 너 말이야.”
키나즈가 바싹 다가왔다. 사은은 자신보다 한 뼘 키가 큰 키나즈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키나즈의 팔이 불쑥 다가왔다. 사은이 놀라 그대로 굳어있을 때, 커다란 손이 그녀의 턱을 잡았다. 키나즈가 히죽 웃었다. 긴장한 게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은은 굳은 채 키나즈를 바라볼 때, 그 눈을 마주보던 키나즈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혀로 입술을 훑었다. 사은은 위험을 느꼈다. 주춤거리다 뒤로 떨어지자 키나즈는 텅 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있잖아.”
“네.”
사실 긴장되었지만 사은은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하지만 또다시 키나즈가 가까이 다가오자, 사은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키나즈가 씩 웃으며 천천히 거리를 좁혀갔다. 사은은 긴장을 한 채 키나즈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마주했다.
키나즈는 그녀의 저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긴장을 한 게 다 티가 나는데도 지려고 하지 않은 저 배짱.
키나즈가 입맛을 다시며 한 발자국씩 천천히 좁혀갔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느긋하니 맛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키나즈의 의도대로 사은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점점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벽에 등이 닿았다. 차가운 기운이 고스란히 등을 타고 느껴지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키나즈.”
낮고 또 음습한 기운이 도는 목소리였다. 키나즈가 고개를 휙 돌자 사은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목 부근을 왼손으로 어루만지다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금발의 사장, 카인이다.
“그게…….”
키나즈가 멋쩍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자 카인이 눈가를 예쁘게 휘며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서 인간의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성큼성큼 다가온 카인이 키나즈의 팔을 무자비하게 확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비틀거리던 키나즈는 의외로 중심을 잘 잡아서 문을 잡고 겨우 제대로 섰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사은은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고개를 든 카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가 봐.”
“……네.”
키나즈가 카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눈이 마주친 카인이 빙긋 웃으며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하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카인이 잠시 멈칫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키나즈가 실례를 저질렀다면, 미안.”
“아닙니다.”
“오늘, 사은이 온 기념으로 환영회 할 건데. 시간 어때?”
“괜찮습니다.”
“그럼, 가자. 옷 갈아입고 나와.”
사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인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다 문을 닫아주며 나왔다. 문을 닫자마자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오른쪽 손을 바라보았다. 이내 고개를 숙여 손바닥에 남아 있는 ‘향기’를 맡았다.
곧, 카인의 입가가 올라갔다.
“……역시.”
착각이 아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달콤한 피’를 가졌다.
케이에게 꾸짖음을 듣고 있는 키나즈는 카인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케이의 손도 키나즈의 뒤통수에 가 있었다.
“키나즈. 한 번만 더 ‘내 것’에 손대기만 해.”
“그…… 네. 조, 조심하겠습니다.”
“저건 내 거야.”
카인이 히죽 웃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한곳에서는 찝찝함을 불러오는 미소였다. 물론 카인은 사은의 앞에서 되도록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의외로 눈치가 빠른 것 같으니, 알아차리지 못 하게 해야 했다.
절대로, 그 어느 것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어쩌다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언젠간 카인님이 찾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지?”
카인이 씩 웃었다. 케이는 낮게 한숨을 쉬다 옆으로 고개를 팍 돌려서 키나즈를 노려보았다. 케이의 매서운 시선에 어깨를 움찔거리던 키나즈가 덩치에 맞지 않게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마치 버림을 받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다. 카인은 키나즈를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그러다 방금 전 사은을 만졌던 오른손을 급히 내리고 왼손으로 어깨를 토닥였다.
“그냥, 앞으로 잘 참으면 돼. 케이도 잘 참고 있잖아. 키나즈, 그렇게 참을성 없는 놈은 아니지? 그치?”
“그럼요! 이 키나즈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방금 전, 그녀를 ‘먹어버리려고’ 했잖아.”
“윽, 그건…….”
“쉿.”
키나즈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탈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인의 목소리에 따라 키나즈의 입이 꾹 다물렸다. 케이는 키나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니까 누가 이성을 잃으래? 하고 싶은 말은 아직도 남았지만 사은이 보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카인의 예상대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바라보던 카인이 몸을 떼어내고 그 옆으로 다가섰다.
“자아, 오늘의 주역. 가자고. 우리가 늘 가던 고기집이 하나 있거든. 고기, 좋아해?”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있으면 먹습니다.”
“뭐야, 그게! 좋아한다고 치자. 자, 가자.”
카인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너무 달라붙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사장이라서 차마 밀어내지 못 했다. 사은은 스킨십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카인의 행동도 어색했지만 꾹 참기로 했다.
“아, 잠시만요.”
사은은 집에 있을 이복동생이 떠올라 카인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녀가 밀어내자 쭉 밀린 카인이 눈을 멀뚱히 떴다 감았다 반복했다. 그런 카인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은은 그저 가방 속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서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통화음이 연결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전화는 금방 연결 되었다.
-누나.
“응, 지호야. 집이야?”
카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화 소리가 다 들렸다. 조용히, 집중해서 사은의 통화를 엿들었다.
-네. 언제 와요?
“오늘, 환영회라고 해서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다. 밥은 먹었지?”
-…….
“또 날 기다렸구나.”
백지호. 그는 사은의 친동생이 아니라 이복동생이다.
그녀가 기억나지 않을 무렵, 지호를 입양한 것 같다. 지호가 갓난아이일 때 사은의 집 앞에 버려져 있는 것을 사은의 부모님이 데려다 키웠다. 아마 그래서 그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피가 이어지지 않는 이복동생이라 해도 친동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지호는 아무리 사은이 말을 놓고 편안하게 대해 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서 문제였다. 지금 와서도 그건 계속 이어졌고, 사은은 결국 포기했다.
“지금 1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해.”
-누나도 안 먹었을 것 같아서…….
“내일부터는 그러지 마. 알겠어?”
-그럴게요.
“그래. 얼른 밥 먹고. 배고프겠네.”
몇 마디를 더 한 후에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동시에 카인이 다시 사은의 옆으로 다가왔다.
“동생?”
“네.”
“동생이 엄청 딱딱하게 구네.”
“…….”
“왜?”
“아니, 분명 통화 소리 작게 해놓은 것 같은데 다 들렸나 해서요.”
카인은 뜨끔했지만 능구렁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귀가 좀 좋아서.”
“그렇군요.”
뭔가 이상했지만 귀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럴 것 같아서 더 이상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 있는 세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기에 사은은 거기에서 멈췄다.
카인이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카인이 사은의 오른쪽에서 걷는다면 왼쪽에는 키나즈가 달라붙어 있었다. 아까 전 일로 인해 키나즈를 경계할까 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 물었다간 이곳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곧 카인이 말을 하던 고기집에 도착했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카인의 옆에 앉게 되었다.
“술은 잘 하나?”
카인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술이 약한 편라서…….”
“많이 줄까봐 그러는 거야? 에이. 강요 안 해.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셔도 돼.”
“정말로…… 술이 약해요.”
그건 사실이다. 왠지 술을 잘 마시게 생겼나 싶어 멋쩍은 나머지 사은은 자신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좀 귀엽게 느껴져서 카인은 피식 웃었다.
“뭐, 그럼 적당히 마셔야겠네. 맥주? 소주?”
“맥주로 할게요.”
“궁금해서 미리 묻는데, 주량은?”
“맥주 세 잔 정도.”
“약해.”
카인은 재미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민망했다. 키나즈도 푸핫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 약해! 재미없게…… 아야!”
옆에서 물을 마시던 케이가 컵을 내려놓으며 키나즈의 머리에 주먹을 비볐다. 정말 아픈지 키나즈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생긴 것 같았다.
“사람 앞에 대놓고 말하는 거, 실례다. 미안해요, 사은 씨.”
“아, 아닙니다.”
왠지 카인과 키나즈, 둘 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반말을 쓰는데 케이만 유일하게 존댓말과 제대로 된 존칭이어서 케이에게도 놔 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생각에서 멈췄다. 본인이 불편하다면 자연스럽게 놓겠지 싶었다.
주문을 한 삼겹살이 나왔다.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갔다. 막내인 자신이 고기를 궈야 하나 생각을 하던 무렵에는 이미 집게는 키나즈의 손에 들려 있었다.
“키나즈가 고기를 참 잘 굽지.”
카인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사은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둘러보았다. 11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 고기집에는 어느 정도 사람이 있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앉은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그걸 또 냉큼 카인이 물어왔다. 왠지 대답을 해주기 싫어서 입을 다물려고 할 때, 카인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는 테이블에 한 쪽 팔을 기댄 채 머리를 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곧바로 노란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거, 얼른 익숙해져야 해.”
제가 왜, 라는 물음이 목구멍 아래에서 멈췄다.
“어딜 가나 우리 셋이 같이 있으면 시선 집중이더라고? 귀찮게.”
“카인님. 여기서 시선을 끄는 건 카인님입니다만.”
여기서 또 그녀는 의문이 생겼다. 케이와 키나즈는 둘 다 사장이란 호칭이 아니라 이름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건 또 나름대로 궁금했지만 셋이서 오랜 시간 동안 아는 사이였으면 이름을 부르겠지 싶었다.
‘오늘 궁금해진 게 몇 개더라. 하지만 전부 다 쓸 데 없는 호기심이지.’
방금 전까지 궁금했던 건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통에 전부 다 넣었다. 궁금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머릿속에서 알아서 분류해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이 몸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사은은 웃지 않은 자신이 대견해졌다.
“하…… 카인님.”
케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키나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당장이라도 박장대소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은 씨, 미안해요. 원래 이런 사람이라.”
“아, 괜찮습니다.”
사장은 인간답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남자, 직원 둘은 뭔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 한 쪽은 사장보다는 덜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남자, 그리고 나머지 한 쪽은 장난이 많은 소년 같은 남자.
이 세 사람과 더불어 고딕 풍과 뱀파이어를 주제로 한 레스토랑이 참 신기했고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 독특함에 이끌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았었다. 사은은 자신의 공깃밥 위에 얹어진 삼겹살을 바라보다 건너편 두 사람을 보았다. 다투는 것 같으면서도 그건 다정한 다툼이다.
“맛있게 먹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네, 하고 짧게 대답을 하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저 아름다움과 홀릴 것 같은 미소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