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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낙원
작가 : 백양
작품등록일 : 201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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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4)
작성일 : 17-07-11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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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은은 카페에 들어가 주문을 한 뒤, 자리를 잡고 과제를 하기 위해 가방에서 전공 서적과 노트를 꺼냈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동 벨이 울리자마자 일어나서 커피를 가져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바라보다 책을 펼쳤다. 노트에 필기를 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 앉기에 뭔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

 

 “사은아. 여기 있었구나?”

 

 카페 안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몰렸다. 금발을 한 화려한 외모는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사은은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카인이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했다.

 

 “사장님.”

 

 “응?”

 

 그녀가 주문을 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맛이 없어서 그러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당장이라도 붉은 입술에서 맛없어, 하고 말이 나올 것만 같아, 사은은 어떻게 알았냐고 묻기 전에 다른 말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어라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지금, 커피 맛없다고 하시려는 거, 다 압니다.”

 

 카인은 자신의 말에 그녀가 눈을 깜빡이자 입가가 슥 올라갔다. 어떻게 할까. 사은을 놀려줄까, 아니면 그냥 순순히 말을 들을까.

 

 카인은 어깨를 으쓱이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화나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사은은 카인이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여기?”

 

 “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카페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데요. 거기다 학교 주변에 카페가 여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건 말이지. 입을 열던 카인은 궁금한 표정이지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은을 바라보았다. 은근슬쩍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에 취해버릴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기 전보다는 약해졌지만 코가 유난히 좋은 카인에게 있어서 그녀의 피는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아, 저 피를 빨리 취하고 싶어.

 

 카인은 두 손을 턱에 괸 채 사은과 눈을 마주쳤다. 눈가를 휘며 빙긋 웃자 사은의 미간이 더 깊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 저런 태도는 좀 상처인데. 카인이 소리를 내서 중얼거리자 사은이 이번에는 한숨을 푹 쉬었다.

 

 “사장님.”

 

 그나저나, 저 호칭이 매우 거슬렸다.

 

 “사은아. 있잖아.”

 

 “제 물음에 대한 대답이나 해 주시죠.”

 

 “응?”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말입니다.”

 

 정말 단호하네. 피식 웃으며 카인은 그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그냥.”

 

 “…….”

 

 “아는 방법이 있어.”

 

 “……후.”

 

 괜한 걸 물었다는 듯이 사은이 고개를 젓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카인이 앞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의자에 편안하게 기댄 채 그녀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던 카인은 피식 웃었다. 신경을 안 쓰는 척 하면서 자신에게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곧 집중을 하며 펜을 잡은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카인은 사은의 얼굴을 여유롭게 관찰을 할 수 있었다.

 

 턱 아래까지 내려오는 단조로운 검은색 단발머리. 쌍꺼풀이 없는 눈동자. 앞머리는 없었고, 코는 오똑하고 아무 색이 없는 입술은 그녀의 하얀 얼굴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은 주변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무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타인과 구별을 짓는 말을 내뱉는다. 카인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순간, 사은과 눈이 마주쳤다.

 

 “사장님.”

 

 “아아, 그거 말인데.”

 

 “…….”

 

 “너무 딱딱하지 않아?”

 

 “아뇨.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은데요.”

 

 사은은 다시 고개를 숙여 책장을 넘겼다. 아까보다는 저 뜨겁고 날카로운 시선에 익숙해졌다.

 

 카인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며 과제를 하던 사은은 결국 펜을 내려놓았다. 책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있는 카인으로 인해서였다.

 

 “방해는 적어도 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만.”

 

 “언제 끝나나 궁금해서.”

 

 “아르바이트 가기 전까지는 끝나요.”

 

 “에이. 급한 거야?”

 

 “네.”

 

 “언제까지인데?”

 

 어떻게 알고 여기에 왔는지도 알고 싶지만, 대체 왜 자신을 방해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사은은 결국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었다. 그러자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 카인이 보였다.

 

 ‘정말, 그 두 사람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사람.’

 

 카인에게는 급하다 말을 했지만 사실 과제 제출은 다음주 월요일까지다. 아직 4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허둥지둥 하는 것보다는 미리 하는 편이 나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인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하였다. 대신 카인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보다는 용건이 무엇인지부터 묻기로 하였다.

 

 “용건은요?”

 

 한숨 섞인 목소리에 카인의 눈이 깜빡였다. 쌍꺼풀이 짙게 진, 노란빛이 나는 눈동자가 숨었다 다시 나타났다.

 

 사은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외국인의 눈동자를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그리고 오랫동안 보기는 처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저 눈동자가 마치 자신을 사로잡고 시선을 돌리지 못 하게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저 눈동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게 될 것 같았다.

 

 “용건?”

 

 “네.”

 

 아, 목소리가 잘못 나올 뻔했다.

 

 왠지 모르게 긴장도 되었다. 하지만 사은은 티내지 않았다. 대신 아까와 다름없는 눈빛으로 은도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시선도 피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무엇 하나지지 않으려고 긴장하지 않은 척 하는 그 모습에 카인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에 사은의 미간이 잠깐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냥?”

 

 “……용건이요.”

 

 “그냥이라니까?”

 

 “…….”

 

 사은은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묻지 않기로 하였다. 대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르바이트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이대로 그냥 아르바이트를 갈까? 적어도 카인과 단 둘이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케이는 적어도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반면 키나즈와 카인은 전혀 아니다. 언제 봤다고 반말인지 모르겠다. 그런 건 둘째 치더라도 카인은 키나즈와 달리 이상하게 부담스러웠다. 가까이 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턱을 괸 채 씩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더욱 더 그랬다.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저 얼굴을 바라보다 보니 왠지 알몸으로 저 사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것보단 누군가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은은 조용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턱을 괴던 손을 내려놓으며 카인이 물었다.

 

 “어, 가게?”

 

 “네. 갈 거예요.”

 

 “어디?”

 

 사장님이 없는 곳, 이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어디든지 다 알고 찾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사은이 택한 것은 한 시간 일찍 이지만 가게로 가는 것이었다.

 

 “가게 갈 건데요.”

 

 “아직 시간 안 되었는데?”

 

 “괜찮아요.”

 

 “흐음.”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하나를 옆으로 넘기던 카인이 힐끔거리며 사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사은은 아무렇지도 않게 짐을 싼 후 가방을 맸다.

 

 “사은아.”

 

 “…….”

 

 “일 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어?”

 

 함께 레스토랑으로 걸어가며 그가 물었다. 사은은 잠시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다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불편한 건 하나였다. 조명이 너무 어둡다는 점. 하지만 그것은 지켜야 할 세 가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라고 투덜댈 순 없었다.

 

 “정말?”

 

 있는데 감추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물어왔다. 앞을 보고 걷던 사은은 횡단보도가 보이자 잠깐 멈췄다. 고개를 들어 카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없어요.”

 

 “흐음, 그래.”

 

 횡단보도가 켜지자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카인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오히려 그 분위기가 편한 사은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냥.”

 

 레스토랑 앞에 있는 얕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머리카락을 흩어 놓았다. 사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금발이 흩어짐과 동시에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미소 하나는 참 근사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은이, 네가 있던 그 근방에 마침 내가 있어서 들린 거야.”

 

 “…….”

 

 “지나가다 보였거든.”

 

 “……아아, 그런가요.”

 

 “좀 더 기뻐해도 된다고?”

 

 “제가 왜요?”

 

 “귀엽기는.”

 

 어디가 귀엽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런 말은 처음이다. 항상 무뚝뚝한 인상이나 차갑다고만 들었는데.

 

 사은은 미간을 팍 찌푸리며 카인을 노려보다시피 했다. 그러자 카인이 하하 웃음을 터트리다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어느새 사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걷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은은 고개를 숙였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갔다.

 

 “어라라! 왜 둘이 같이 와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그 입꼬리는 언제 올라갔냐는 듯이 다시 내려가 있었다. 밖에서 앉아 있던 케이와, 그리고 벌떡 일어나 있는 키나즈가 보였다. 카인은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키나즈와 눈을 마주치다 빙긋 웃었다.

 

 “손가락질이라니, 키나즈.”

 

 “아니, 왜 둘이 같이 오냔 말입니다!”

 

 “그냥, 오다 만났어요.”

 

 “거짓말을 하면 못 써, 사은아.”

 

 사은은 문득 고민이 되었다. 친근한 척 말을 하는 거, 그만 해 달라고 할까.

 

 “사은아. 안쪽에 앉아서 과제 해.”

 

 “네, 뭐…….”

 

 어차피 그만 해 달라 해도 안 들어 줄 것 같았다. 불편한 점이라고 이야기 할 걸 그랬나 보다.

 

 사은은 카인이 안내해준 테이블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냈다. 카인이 안내해 준 자리는 손님들이 앉는 홀의 테이블이다. 그냥 안에 있는 방들 중 하나를 줘도 되는데, 여기 앉으라 하니 앉았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도 사람이 이렇게 없구나.’

 

 아마 카인은 돈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안은 으리으리한 가게를 유지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돈은 있는 모양이다.

 

 ‘뭐, 나야 월급을 제대로 받으면 그만이지만.’

 

 월급이 나오면 동생인 지호와 함께 맛있는 걸 사먹어야겠다.

 

 짧게 웃다가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과제를 시작했다. 금방 집중하는 사은을 보던 카인은 야외 테이블에 기댄 채 케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떤가요?”

 

 “여기서 우리랑 같이 있다 보니 우리 냄새로 가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달콤해.”

 

 그가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케이는 불안한 얼굴로 잠시 가게 안에 있는 사은을 바라보다 다시 카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카인은 아예 몸을 돌려 시선은 사은에게로 향해 있었다. 사은은 시선을 느낄 법도 한데 집중을 해서 그런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닮았어.”

 

 “음. 맞아요. 그 얼굴! 잊을 수가 없죠!”

 

 키나즈가 분하다는 듯이 양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꽤나 큰 소리였음에도 익숙한지 카인과 케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이렇다 할 건 없으니까.”

 

 “네. 그리고 저 피는 너무 유혹적인 피라,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 하게 철저히 지키겠습니다.”

 

 “케이. 분명 사은이 주변에 한 놈은 적어도 접근을 해 올 거야.”

 

 “아직…… 되찾지 못 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케이의 대답을 들은 카인이 일어났다. 케이와 키나즈의 시선이 그의 등 뒤에 닿았지만 카인은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종소리가 울리자 한참 집중을 하고 있던 사은이 고개를 들었다.

 

 “사은아.”

 

 “네.”

 

 “시간 다 되었는데 말이야.”

 

 그 말에 사은의 고개가 벽에 붙은 시계로 향했다. 벌써 4시 45분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물건을 정리한 그녀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사은이 간 곳을 계속 바라보던 카인이 빙긋 웃었다.

 

 “남아 있는 향기마저…… 당장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달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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