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만나도, soso.
"야, 정호승"
-혼자인 것도, soso.
"야, 정호승!"
-설레이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야!!!"
그 순간에 정호승이 끼고 있던 연푸른색 이어폰이 탱, 하고 힘 없는 마찰음을 일으킨 뒤 빠져버렸다. 자기가 좋아하는지 아니면 누가 선물해서 사용하는 지도 모를 그 이어폰이 바닥으로 떨어진 뒤 한참 동안 (사실 몇 초 정도) 그 물건 응시하고 있는다.
이내 부스스한 머리칼을 조금 뒤집어 정리하더니 슬쩍 눈알을 위로 올렸다. 눈은 쉴새없이 깜빡거려서 수분을 위로 보충했고, 눈을 따라 자동으로 올라가져 휘어진 목선은 자그마한 아기같은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참 귀엽기도 하고.
"왜"
-세 번은 불렀을 거다, 이새끼야.
한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정호승을 쳐다보는 함승훈은 참 커다랗기도 하다. 그 커다란 몸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은 작았다. 근데 그 작은 얼굴로 할 수 있는 모든 짜증난다는 표정은 다 짓고 있었고.
그래도 재밌다. 네 그 열 받는다는 표정 보는 것도 재밌고, 그 자그마한 입으로 욕설 내뱉는 것도 마냥 귀여워서 보고만 있게 된다. 아, 정호승이 함승훈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함승훈이 정호승 두어대 때린다. 운동한 새끼가. (물론 축구긴 하지만) 둔탁한 마찰음을 내면서 공부만 한 애 등짝을 퍽퍽 때린다. 당연히 정호승 아프다. 안 봐도 뻔하게 셔츠깃은 다 구겨지고 등에는 아마 벌건 자국이 여러 대 생겼을 거다. 봐준다, 봐준다 하면서 때리지만 참 아프게도 때린다.
"..아파."
-아프라고 때렸잖아
"....그래, 도, 네, 가 "
답지 않게 침착한 함승훈한테 엄살이 안 통한다는 건 3년동안 지내와서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용기의 사나이 정호승. 이번 한 번 더 시도해본다. 정호승 가소롭게 연기하며 고개 푸욱 숙였고, 일부러 말 더듬거리며 눈물로 꽉 맥힌듯한 말 내뱉었다. 숨을 꾹 참은 탓에 어느새 눈가는 빨게져있었고, 평소 안 그러던 행동으로 함승훈을 속이기엔 충분했다.
-...야, 울어? 진짜?
아싸, 정호승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여전히 고개는 푸욱 숙인 채로 실소를 짓더니 여전히 울망이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근데 어째야하지. 진짜로는 안 우는데. 구라친 거 걸리면 큰일나는데. 다급해진 정호승 머리 얼른얼른 굴리기 시작한다. 버릇인 양 눈을 끔뻑거려 눈물을 아무리 위로 보내 뇌를 쥐어짜내봐도 생각나는 게 전혀 없다. 공부쪽으로만 머리를 굴려 봤지 언제 이런 건 해봤을까. 답답한 마음에 성질이 나버린다. 에라, 그냥 정면돌파로 하고 말지. 결국 정면돌파 선택한 정호승이 아무렇지 않은 척 능숙하게 고개 들어서 함승훈 똑바로 쳐다본다.
"안 우는데."
-...? 아나 이 씹새끼가
덕분에 정호승 팔 언저리에는 빨간 자국이 두어개 더 생겼다.
-빵 사러 가자고, 뭔 지랄이냐 이게
쓴 웃음 지으면서 함승훈이 말한다. 3년 내내 봐도 적응 안되는 웃음이다, 참. 그래도 정호승 얌전히 따라나간다. 별로 수능에 도움 안 되는 이런저런 가쉽거리만 얘기하며 발을 한 발씩 올렸다, 내려놓았다. 그렇게 몇 걸음 걸으니 다리들도 길쭉에서 얼마 안 걸려 매점에 도착했다.
또 한창 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 정호승 한숨 푹 쉬었다. 어떻게 뚫냐, 저걸.
그래도 인간이 무엇인가, 노력과 고생의 산물 아니던가. 이제 고등학교도 3년 다녔겠다, 그동안 매점 간 돈으로만 해도 지가 매점을 차려도 될 정호승 아닌가. 이리저리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내서 뚫더니 또 금방 초코빵이랑 여러가지 간식거리를 사왔다. -쟨 저럴 때 제일 쓸모가 많아. (실소)
언제 또 그 말 들은건지 정호승 함승훈 보면서 승리의 미소 짓는다. 물론 성취한 물품들을 든 상태였고, (많이도 사오기도 했다) 함승훈 정호승 얼굴 빠안 본다. (얼굴이 아까워, 저새낀)
-야 호승아,
"왜"
나른하게 초코빵이나 먹고 있을 무렵에 함승훈이 무슨 중대한 발표라도 하듯이 정호승한테 말 건다. (아니 너 얼굴이 아까워서 말이야) 하며 함승훈 이상한 소리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정호승 얼굴 참 아깝다. 밤하늘처럼 검은 생머리는 눈썹까지 단정히 와서 가끔은 앞머리를 반만 까기도 했고, 그 밑에 눈썹은 연갈색으로 쭉 뻗었다. 눈은 살짝 동그랗고 옆으로 찢어져 쌍커풀이 존재했고, 코는 그럭저럭. 입은 연분홍 입술이 도톰했다. (전형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상)
-아니, 너 연애 안 하냐? (얼굴이 아까워서, 새끼야)
"하고는 싶어."
-뭐 여자 취향같은 건? 아니면 남자라도. (형이 존중해준다, 새끼야.)
정호승 바보웃음 짓는다. 그 특유의 웃음에는 사람 흐물하게 하는 이상한 능력 있었고. 정호승 열심히 안 돌아가는 대가리 굴려서 곰곰 생각해본다. (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딱히 취향 없는 것 같고, 근데 말하면 또 함승훈한테 맞을 것 같다. (안절부절..)
그래도 함승훈은 이 반응 익숙하다. 원래부터 정호승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식이였다. 뭐 먹을래? 물어도 난 너 먹는 거, 뭐 하고 놀래? 해도 ..어, 아무거나. 하는 자기주장 없고 남의 의견 잘 따르는 애. 항상 머릿속으로 뭘 생각은 하는 건지, 아니면 꽁꽁 숨기고 있는 건지 알지를 못해서 뒷얘기에 자주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사람. (그래서 옆에서 함승훈이 별 지랄 다 했고)
-뭐, 없어?
"..어, 응."
아이고, 함승훈 입에서 곡소리 터져나온다. (너는 그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원하는 사람 취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보통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새끼야.)(뜸) 한숨 한 번 더 포옥 쉰다. 답답한 듯 바나나우유 낚아채서 술 마시듯 벌컥벌컥 마신다. 이제 온전한 주민등록증으로 편의점에 온갖 주류들을 살 수 있는 나이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건만, (반올림 조오금 해서) 언제까지 바나나우유만 들이키고 있을지 본인 모습도 처량하다.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냐...) 함승훈 우울해졌다.
"승훈아"
-왜
"너도 못생기진 않았는데"
푸확, 바나나우유가 함승훈 입에서 이리저리 막 튀어나온다. 정호승은 또 바보 웃음 지으면서 쳐다보고 있다. (뭐래 이새끼야)(정신 나갔냐) 당황한 함승훈 입에서 온갖 폭언 들으면서도 정호승 여전히 웃는다. (이상하게 조금은 무표정해보이기도 했고)
그치만 워낙 의견없는 정호승이 그렇게 말하게도, 함승훈도 꽤 잘생겼다. 시원하게 날려버린 머리에, 양 옆으로 조금은 찢어져 시원한 이목구비 했고. 코가 더럽게 높았다. 입술은 그냥 연분홍에 길게 쫙 찢어져 있었고. 근데 신기하게도 이런 이목구비가 모여서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아, 멋있어 보이는데 키가 188이라는 점도 한 몫 했고. 참 잘생긴 애들 끼리끼리 다닌다.
-어색하게 왜 갑자기 칭찬이야, 낮술했냐
"미자야, 인마"
지들끼리 시시덕거리더니 한창 또 농담따먹기 한다. 옆에서 듣기엔 쟤네 왜 저러고 놀아, 하는 한심한 수준의 농담들. (물론, 남을 비하하는 욕들은 전혀 하지 않고) 종 치는 줄도 모르고 한창 그러고 논다. 매점 아줌마가 그 모습 한심하게 보더니 한 마디 하고. (쯧쯧)
^니네 수업 안 들어가냐!!!!!!!!!!
아, 하며 둘이 동시에 벙 찐 채로 멈춰있다가 욕한다. ..미친. 씨발!!!
"....."
한창 수업중인 지네 교실 슬금슬금 정호승이 들어간다. (두근두근) 발소리 화악 죽여서 문 조심조심 열고 스르륵 들어간다. (메타몽처럼)
^그래서 여기 답이 2x다 이해됐냐? 안 됐으면 학원 가라, 거기 쥐새끼는 튀어나오시고.
아이고, 독사 수학쌤 뒷통수에도 진짜로 눈이 달린 건지 정호승 더러 나오라고 한다. (쯧쯔)
걸렸다. 뭐 우째, 지가 시시덕거린 탓인데. 꼴에 부끄러움은 타는지 정호승 쭈뼛쭈뼛 나온다. 아직 새학기 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나온 지가 창피하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히잉) 여튼 나와서 여전히 시선만 괜히 땅바닥에 쳐박아둔다.
^넌 왜, 늦고, 지랄, 이냐?
독사의 독이 인간의 피를 멈춘다는 건 알고 있나? (몰랐으면 지금 알아둬라. 약간 선지처럼 만들어버린다)(으으) 여튼, 이 독사는 말 한마디 한 마디로 애들을 멈춰버린다 해서 그런 별명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기분도 안 좋았는지 평소보다 분위기가 개최악이다.
말을 뚝 뚝 끊을 때마다 출석부로 정호승 머리를 강타한다. (아야..)
"...선생님"
^말하지마 늦은새끼가.
"..."
정호승 미련하게도 아프다고, 신고한다고 소리 안 치고 그거 다 맞고 왔다. (그럼 고삼인데 생기부 안 좋게 써주면 어째) 아무리 생각해도 미련하게 그거 다 맞은 자기 자신이 너무 어이없고 슬프다. (시이..발..)
결국에는 독사의 폭발로 사물함 뒤에서 손들고 서 있게 됐다. 키에 비해 얇은 손목을 위로 들고는 가만 창 밖만 바라봤다. (벌 서기 심심한데 뭐라도 해야될 거 아닌가)
창 밖은 5월이지만 미친 지구의 날씨로 더워 죽겠다. 벌써 하복 입은 애들도 몇 보이고. 조그마한 미니 선풍기를 들고다니면서 은근 뽐내는 애들도 많다. (부럽다)
유리창을 통과해서 빛나는 직사광선은 은근 정호승 눈을 간지럽혔다. 신기하게도, 그 손전등 같은 빛을 쳐다보다가 다른 데로 고개를 돌리면 이상한 검은 그림자 같은 점이 둥둥 떠다닌다. 정호승은 자주 그 놀이 해 먹었다. 그 그림자가 다 닳아 없어질 때 즈음 또 창밖으로 고개 돌려서 빛 쳐다본다. (쓸데없게도)
^얼씨구...
독사가 정호승 한심하게도 쳐다본다. 마치 넌 거기 나가서도 그지랄을 떨고 있냐 라는 눈빛. 스을쩍 독사 눈빛 피하더니 정호승 반 친구들로 눈 돌렸다.
1분단, (쟤 침 흘리면서 잔다, 이따가 독사한테 들키겠네)
2분단, (와, 쟤 아까 내가 산 초코빵 먹는다. 반장이 이르겠네)
마지막 3분단. 다 훌훌 둘러볼 즈음에 슬쩍 슬쩍 눈 맞아서 보이는 반 친구 하나 있었다. 어, 쟤는 누구지. 두 달 동안 못 봤나? 그럴리가 없는데..
정호승이 자길 보는 걸 느꼈는지 그 시선이 후다닥 칠판으로 고개를 돌린다. (누구지..) 정호승도 별 상관 안 한다. 그저 창 밖으로 고개 돌릴 뿐이다. 잠깐의 공상 즐기고. ...아, 무료하다.
언제 어른 되냐.
-사랑이 뭔지 알까, 1화. 저자는 고삼이 아닙니다. 요번 수능 EBS에서 많이 나온다는데, 다들 올백 하시길 바랍니다. 하트뿅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