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 동- 댕- 동-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험하고 멀었던 망할 독사의 수업시간도 다 끝이 났다. 아무리 머리 싸매고 좋은 점 찾으려고 해도 저 사람 참 안 좋게 보인다. 성격처럼 괴팍하게 생겼고. 이제 고삼인데 가르쳐주는 것도 더럽게 없으면서. 모르면 학원 가서 배우라는 멋진 말이나 하고. (시이발. 뭘 배우라는 거야. 저 밑에서)
정호승 심술궂게 아픈 말 문지르면서 얌전히 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얌전히는 말고, 입으론 온통 울상 짓고 툴툴 거리면서) 팔 아프다. 망할. 50분 내내 세워놓는 건 뭐람, 자기가 그렇게 안 해봐서 저러지. (입 대빨 삐이죽 나와있다)
-왜 또 지랄하고 있냐,
아, (끔뻑) 함승훈이다. 얘는 반도 달라져서 3층이면서 2층까지 맨날 올 체력이 있나. 정호승 참 신기한 눈으로 함승훈 바라본다. 운동만 쳐 해서 그런지 체력이 남다른가, 나도 운동이나 좀 할 걸.. 별 시덥잖은 생각으로 아까운 쉬는시간 빠르게 흘려 보낸다. 근데 함승훈 모습이 또 초췌하다. 저 새끼 설마 수업 이제 1교시 들었다고 저러는 건가. 입가에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참, 옛날부터 공부 못 하는 거는 끈덕지게 똑같은 놈일세, (실소)
"승훈아"
-왜,
"1교시 뭐였는데"
-국어. 야 말도 마 진짜. 오늘 존나 장난 아니었어, 국어 오늘 개빡쳐서 우리한테 지랄 다 했잖아.
"더워서 그런가보지,"
-그게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로 화낸 게 아니야, 새끼야.
"얼마나 심했는데?"
-존나, 개씨발로. 국어 마이크 쓰잖아? 그거 던졌잖아. 폼이 장난이 아니던데. 무슨 국대 야구선수인 줄 알았다.
지도 손에 쥐고 있는 정호승 지우개로 국어가 하듯 던져보는 함승훈이다. (근데 또 던지고 얌전히 줏어오는 꼴이 웃기고) 얼마나 멀리 던졌는지 주워오는 것도 또 한참이다.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오는 폼이 웃기다. 지가 지나가면 뒤에서 여자애들의 동경의 시선과 남자애들의 질투의 시선이 쏟아지는 건 알런지, (쯧쯧) 그러면서 아까 나한테 얼굴이 아깝다고 난리를 떨어? (울컥) 갑자기 지랄맞아지는 감정에 정호승 또 습관처럼 눈만 끔뻑거린다. 하도 눈을 열심히 감아서 남들 한 번쯤 다 눈에 실핏줄이 올라와 본 적이 있건만, 정호승은 또 한 번도 없어보인다.
-야,
"왜"
-중간고사 공부는 하냐?
한창 함승훈 외모에 대해서 감탄하다가 내뱉는 함승훈의 말은 한숨 나오기에 따악 좋다. 참, 벚꽃의 꽃말은 뭐랬던가, 바로 중간고사다. (시발) 벌써 고삼이라고 앞자리 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코피나 질질 터트리면서 공부한다. 물론 정호승도 공부는 못 하는 편이 아니다. (함승훈이 존나 오질라게 못해서 못 해 보이는 것 뿐이지) 성적이 상위권 애들 중에서 제일 끝. 그렇다고 중간으로 가기에는 또 거기서는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고대 연대...(등등)을 갈 것 같으면서도 못 갈 것 같은 애. 그냥 반에서 공부로는 이도저도 아니다. 선생님들도 도무지 얘를 어떻게 지도해야 되는지 아직도 갈피를 못 잡은 애. (우째 되려고 호승아..)
"그냥.. 그럭저럭"
-공부는 쉽냐?
"(뜸) 어.., 그럭저럭"
-새끼 맨날 그럭저럭이래.
저 그럭저럭이란 소리를 3년이나 들어서 적응이 됐어도 들을 때마다 못마땅한 건 참 어쩔 수 없다. 수박아이스크림이 초록 부분이 적은 건 알지만 먹을 때마다 초록 부분이 더 먹고 싶은 거랑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닌가) 여튼. 함승훈 참 안 어울리게 잔소리 많다. 안 어울리는 쓴웃음 지었고, 잔소리 시작한다. (고놈의 그럭저럭이란 소리 좀 안 하면 안되냐)(무슨 그 소리를 질리지도 않고 해) 정호승 이 그럭저럭 소리 할 때마다 한 열 번 중에 세 번은 이런 소리 듣는다. 근데 고삼 된 이후로 한 다섯 번 즈음으로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의아) 그렇게 듣기 싫나. (지는 별로 아무렇지 않아서 모른다) 근데 옆에 있는 사람은 죽어나간다. 무슨 선택장애도 아니고. 혼자서 결정을 못한다. (바보 아냐, 이거)
-그래서 과목 몇 개 끝냈는데
"어.. 주요과목 다섯 개는 다 끝냈어"
-미친 벌써?
벌써라니 승훈아. (우리 시험 이 주 남았잖아) 학교도 정호승 따라서 천천하고 느릿한지 이놈의 학교는 시험이 남들보다 일주일 정도 느리다. 덕분에 담 주에 시험보는 학교도 있다던대. (시무룩) 그리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또 꼴통 고등학교는 아닌 정호승네 고등학교는 사실 요번년부터 새로 바뀐 교장의 지침에 따라서 학사일정을 모두 일주일 정도 늦춘거다. (그게 더 도움 안 되는데) 그래서 승훈아, 우리 시험 이 주 남았는데 (혹시 답 없나, 이새끼)(하긴, 답이 있을리가)
쉬는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배드민턴 장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 온 친구들은 한껏 땀냄새를 풀풀 풍기며 욕지꺼리를 내뱉는다. 창문도 전부 활짝 드르륵 열리고, 시원한 바람보다 덥디 더운 햇빛이 먼저 강하게 내리쬔다. ..더워.
-씨이발 더워,
먼저 말 꺼낸 건 분명히 함승훈이다.
"더워? (그런가보네)"
-돌았냐? 이 날씨에 안 덥게
이미 함승훈 하복 단추는 풀어헤쳐진 지 오래였고, 안에서 물에 젖은 듯 평소보다 진한 회색을 뽐내는 티는 땀자국으로 젖어있었다. (야 누가 보면 함승훈이 농구하고 온 줄 알겠다)(뭔 땀이 저렇게 많아)
살짝 젖어버려 제 힘을 잃어버린 채로 축 내려온 앞머리는 눈을 톡 톡 찔렀다. (아야) 함승훈의 높디 높은 콧잔등을 타고 내려오는 땀방울은 톡 떨어져 그 체리색 입술에 맺혔고, 습해 축축한 기운에 입에서는 짠 맛 까지 나자 짜증이 있는 대로 솓구친 함승훈은 지네 반인 것도 있고 씨발씨발 욕지꺼리를 내뱉는다. (미친 이거 날씨 실화냐고)
*저기..
근데 이게 무슨 일이냐, 처음 보는 여자애가 둘 한테 말 걸었다. (!)(헐 헌팅?)(학교에서 뭔 소리야) 함승훈 정호승 둘 다 ? 라는 표정으로 그 여자애 본다. 어, 쟤는. 이라는 생각이 정호승 머릿속을 슥 하고 스쳐 지나간다. 아까 독사한테 걸려서 (망할) 벌 받을 때 잠깐 눈 마주쳤던 그 애다. (그걸 눈 마주쳤다고 할 수도 있나?)(그냥 일방적으로 빤히 쳐다본 것 같기...) 잡 생각 집어치자. 정호승 빠르게 눈알 굴린다. 데굴데굴 구른 눈알은 당황하고 있는 함승훈을 지나쳐서 그 여자애를 빠안 쳐다본다. 앞머리로 온통 눈이 가려져 있다. (어, 아까는 눈 마주친 것 같았는데)
*이거.., 먹어..
여전히 앞머리를 다 가린 채로 덜덜 떨며 내민 그 손에는 자그마한 상자 들고있다. 의아하게도, 은하수 바다같은 하늘색 상자에 이질적으로 보일 만큼 까맣고 무서운 해골이 그려진 리본이 장식해져 있다. (또 예쁘고 곱게 묶어놓기도 했고)
(이걸 나한테 왜 주지?) 궁금하다. 새학기가 되고 두 달동안 한마디도 안 해본 애가 갑자기 선물이라고 한창 짜증날 즈음에 주는 이 이쁜 상자. (무슨 의미일까 그게)(함승훈은 옆에서 눈치도 없이 팔꿈치로 옆구리 아려오게 꾸욱 꾹 찌른다)(새애끼 이거 진짜)
*그, 어, 너만, 먹으라고..!
그리고 또 뛰어가버린다. 그 요상한 상자 준 뒤에 또 부끄럽다는 듯이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가는 꼴도 우습다. 뭐지, 이게. 혹시 암살시도? 아니면 중간고사 때 내 시험을 망하게 해 버릴 소화제가 가득 든 쿠키?
-야시발, 정호승 인기 개많네!!
"응?"
(뭐 이새끼 지금 연애에 관심 없다고 해 놓고 니네 반 여자애들 다 꼬시고 있었냐) 옆에서 함승훈이 눈빛이 빛난다. 하긴, 이 지루한 학교에서 이런 얘깃거리는 금방 화제가 되겠지. 너무 찔려진 옆구리가 진짜로 아리다. 아, 아야.
-너 이새끼, 형이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하네, 이새끼! (등 퍽퍽)
"..아, 아야, 아파, "
-지금 그게 문제냐, 정호승이 사랑의 하트뿅뿅 초콜렛 세트를 받았다는데!!
함승훈의 요란한 행동 덕에 (아니 사실 그 전부터) 정호승한테 이목 집중된다. 사실 정호승 인기 있는 거 함승훈이랑 정호승만 모른다. (바보들..) 하긴 그렇기도 한 게, 둘 다 워낙 둘 말고는 별로 마음 터놓고 얘기 할 친구도 없고, 반 친구들이랑도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라서 사람들 사이에 시크릿 두왕자라고(오글) 소문만 무성하다. 얼굴도 잘생긴 애들이 둘이서만 얘기하고 다니는데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관심이 있는 여자애들은 벌써 몇 번 찝쩍거리기도 했지만 정호승 또 존나 눈치가 없는 바람에 그게 뭔지도 다 모르고 학교 다녔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선물공세를 해온 건 처음이라 온통 정호승 쪽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몇 몇 반에서 가오부리는 여자애들은 벌써 그 선물 준 여자애를 험담하고 욕하기에 바쁘다. (남자애들의 시기어린 눈빛도 고삼이라는 나이에 받기에는 조금 버겁다)
-야, 연락 할 거냐?
상자 위에 조그마하게 붙어져 있는 종이에 번호와, 연락해줘.. 라는 작은 글씨를 들고 함승훈이 지껄인다. 이미 그 눈빛은 무료한 이 일상에 신나는 일이 일어났다는, 호랑이가 먹이를 본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고. 정호승 대답하는데 부담스럽게 했다.
"아니.. 고삼이잖아."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정호승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함승훈을 실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고삼이 뭐라고.. 새애끼..)
-사랑이 뭔지 알까, 2화입니다. 노래를 평소에 자주 듣는데, 잘못 받았는지 스페인어로 side to side가 들립니다. (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