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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작가 : 호갈
작품등록일 : 201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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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필연적 채용 - 1화
작성일 : 17-07-19     조회 : 418     추천 : 0     분량 : 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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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누가

 

 Chapter 1. 필연적 채용

 

 1화

 

  황성의 응접실은 화려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것이 황태자가 사용하는 곳이라면 더욱더. 일단 벽지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벽지는 일정한 패턴의 꽃과 나무가 금사로 수놓아져 있었다. 응접실에 놓인 가구들도 하나같이 최고급 목재를 사용한데다, 그 최고급 목재에 내로라하는 장인이 섬세한 음각을 새겨 넣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겁나 비싸고 좋은 물건들이 꽉꽉 들어차있다는 거다.

 

  엘리엇이 들고 있는 찻잔도 마찬가지였다. 시녀는 도기로 이뤄진 찻주전자와 찻잔을 깨지 않기 위해 덜덜 떨며 필사적으로 차를 따랐다. 엘리엇은 그 모습을 보면서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니 약혼자가 생겼으니 더 이상 신랑감은 아니지. 어쨌든 이제 곧 국혼을 올리게 될 형님의 취향이 악취미 적이라고 생각했다. 능구렁이 같은 건지 사악한 건지 아니면 둘 다 인건지 모를 자신의 동복형제는 훌륭한 정치인의 표상이었다. 엘리엇은 ‘하여간 정치인들이란.’이라는 말을 속으로 꿍얼거리며 찻잔을 들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엔 엘리엇의 형님인 황태자, 앨런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금발에 녹안을 지녔고 비슷한 얼굴 형태를 지녔지만 분위기는 굉장히 대조적이었다. 앨런은 눈꼬리가 약간 내려가 있어 서글서글한 느낌을 주고, 엘리엇은 눈매가 일자로 찢어져있어 날카로운 느낌을 줬다. 피부색도 황태자는 굉장히 하얀 편이었고, 엘리엇은 까무잡잡했다. 체형도 마찬가지였다. 황태자는 키가 작진 않았지만 호리호리한 반면, 앨리엇은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이름만큼이나 비슷하다고 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점 하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조적으로 두 형제를 평가하는 ‘어떤 사람들’ 집단은 그래도 한 가지 의견에 관해서는 교집합이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이 짜증나게 머리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 형제들은 머리가 좋았다. ‘짜증나게’ 하는 쪽으로.

 

  앨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수사단 특채 시험, 오늘이었던가?”

 

  앨리엇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누구 덕분에 괜한 고생을 하고 있지 내가.”

 

  앨런이 투덜거리는 동생을 보며 옅게 미소를 내비쳤다. 수사단의 ‘수사’는 당연히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 때문에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고 은거하다시피 살고 있는 솔링턴 후작을 수사단장으로 세운 것이다. 이런 조직의 성격상 수사단원으로는 정치적 이권과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 주로 선발되었는데, 중앙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그리 넓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귀족들이(특히 고위귀족)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앨리엇을 굳이 수사단 부단장으로 넣은 것은 그래서였다. 정치적 입지의 부족함을 황족인 동생이 채워주고 있었다. 또한 단장인 솔링턴 후작도 아버지와 황태자인 앨런의 부탁으로 자신이 가진 상업적, 군사적 기반을 서서히 드러내며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로 수사단에 들어가라고 했잖아. 놀고먹으라며. 근데 왜 내가 솔링턴 후작대신 채용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앨리엇이 앨런의 미소를 보며 다시 꿍얼댔다. 앨리엇은 티끌만큼도, 정말 전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 치곤 즐기고 있잖니. 또 어리광이구나.”

 

  처음 수사단 일을 줬을 때 동생은 탐탁치 않아했지만 놀랍게도,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 앨리엇의 성격을 생각해볼 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진작 그만 뒀을 터였다. 지금 자신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은 어리광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애 취급하지 말랬지. 형 말고 나한테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있는 줄 알아?”

  “그건 나한테만 어리광을 부리기 때문이고.”

 

  앨리엇은 순간적으로 욱 해서 이마에 힘줄이 팍 서는 거 같았지만, 참았다. 형과의 말싸움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네가 예전에 나에게 뭐라고 했더라?”

  “아, 말하지 마!”

 

  앨리엇이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앨런을 만류했지만 그는 역시 들을 생각이 없었다.

 

  “ ‘내 잉여 두뇌 5% 정도 쓰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라고 하지 않았니 앨리엇?”

 

  사춘기 시절 누구나 마음속에 전설 속 블랙 드래곤 한 마리는 품기 마련이다. 그가 한창 철없을 적에 수사단 부단장이 되라는 앨런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했던 말이었다. 앨런의 말을 듣고 뒤에서 시립해 있던 호위기사, 프레디도 억눌린 웃음소리를 냈다. 앨리엇은 붉어진 볼을 감추지 못했다.

 

  “나 놀려먹으려고 불렀어?”

 

  앨런이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거라면 평생 이러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앨런이 프레디 경을 향해 손짓을 했다. 프레디가 앨런의 손에 서류를 한 장 쥐어줬다.

 

  “오늘 시험을 보는 사람 중에 아주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더구나.”

 

  앨리엇이 그 말을 듣고 한쪽 눈썹을 높게 올렸다.

 

  “채용시험에 관여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아무리 형이라도-”

  “그런 게 아니야.”

 

  앨런이 앨리엇의 말을 끊었다.

 

  “그저,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앨리엇이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들어보겠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이 친구에 관해서 보고를 해줬으면 해.”

  “감시하라고? 왜?”

 

  앨런은 웃으며 말했다.

 

  “개인적인 관심?”

 

  앨리엇이 다시 눈썹을 위로 올렸다. 의도적인 말 돌리기였다. 앨런을 계속 쳐다봤지만 그는 답해줄 생각이 없는지 여전한 미소를 띄운 채, 서류를 보라고 그에게 손짓으로 권고하고 있었다. 앨리엇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앨리엇은 서류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 멈칫했다. 한 소년의 흑백사진이 붙어 있었다. 무표정으로 똑바로 카메라를 응시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 소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엘리엇은 확신했다.

 

  분명 검은색 눈동자를 지녔을 거다.

 

  앨리엇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소년의 얼굴에서 눈을 떼어 신상정보를 읽었다. 이름은 벨 오웬. 나이는 21살.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근데 왜 이런 확신이 드는 걸까.

 

  “대체 누군데.”

 

  앨리엇이 앨런에게 다시 물었지만, 앨런은 웃으며 동문서답을 할 뿐이었다.

 

  “시험 시간 다 된 것 같은데.”

 

  앨리엇이 눈살을 찌푸리고 형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안타깝게도 곧 있으면 정말 시험시간이었다. 앨리엇은 열불이 나는지 어느 정도 식은 차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찻잔이 탁 소리를 나며 접시위로 내려앉았다.

 

  “말해주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을 거야.”

 

  앨리엇은 자신이 생각해도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치사한 거 끝까지 가지 뭐. 라고 생각하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다른 놈들도 보고 못하게 막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앨런이 차를 마시려다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앨리엇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응접실을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농담 아니니까, 그런 줄 알아!”

 

  손에는 벨 오웬의 서류를 구겨진 채로 나가는 앨리엇을 바라보며, 앨런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프레이경, 정말 귀엽지 않아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한 쪽에 서 있던 호위기사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놀리다 또 폭발하실 겁니다.”

  “프레이경이 뭘 모르네. 그건 또 그거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고요?”

 

  황태자와 그의 충실한 호위기사가 앨리엇이 박차고 나간 문을 바라보며 여전히 웃음을 흘렸다.

 

 ***

 

  벨 오웬은 총 열 한명의 사람들과 함께 궁내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예선을 통과해 오늘 시험을 치는 사람은 총 열 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이 열 명의 사람들을 안내하기 위한 궁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허벌나게 크구먼.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가?”

  “거의 다 왔습니다.”

 

  벨의 옆 자리에 있던 인상이 험악한 남자가 시종에게 말을 걸었다. 벨은 힐끗, 남자를 봤다.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고, 키가 벨 자신의 허리께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온 몸은 근육질로 이뤄져 있었는데, 궁에 들어오기 전 받았던 몸수색에서 손도끼를 압수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면서 중얼거렸다.

 

  “지겨워 죽겄네 죽겄어. 이놈의 시험은 대체 언제 끝난데? 벌써 세 번째 시험이라고. 어이, 형씨, 이 시험 몇 번이나 더 보는 건지 아는가?”

 

  벨과 험악한 인상의 남자의 시선이 부딪쳤다. 남자의 험악한 인상에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을 법하건만, 벨은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 다행이구만. 좀이 쑤셔서 원.”

 

  벨은 고개를 돌려 다시 시종을 쳐다봤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키 작은 근육질 남자를 관찰한 정보를 정리하며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상체 근육이 발달해 있으며 특히 팔과 어깨 근육이 가장 발달해 있다. 반면 하체 근육은 단련한 흔적 없음. 오른쪽 손이 왼쪽 손보다 비대하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있으며 이 굳은 살 때문에 손바닥 두께가 두껍다. 잠시 압수당한 도끼와 연결 지어서 생각해보면 주로 오른손으로 도끼를 쓰겠지. 잠시 봤던 도끼의 형태는 한쪽에만 날이 있는 작은 도끼였다. 즉, 싸움을 위한 무기는 아니라는 뜻. 옷차림에서도 여러 가질 알 수 있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화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남자의 직업은 정육점 일꾼이거나 그와 관련된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이상하다. 시험이 어떻게 치러지는지도 모르는 것을 보아 평소에 수사단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왜 이 사람은 굳이 수사단원이 되려고 하는 걸까.

 

  벨이 이런 효용가치가 없는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생각을 사슬을 끊어버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종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시종이 문 앞에 서 있는 경비병에게 고갯짓을 하자, 두 명의 경비병이 문을 얼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떤 참가자는 경악어린 얼굴로 주저앉은 사람도 있었다. 문 너머, 그 공간 안에는 어린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궁 안에 웬 놀이터? 라고 생각도 하기 전에 사람들은 먼저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된 모래판 위에, 칼에 찔린 채로 엎어져있는 시신 한 구가 있었다. 어린아이였다. 고작 3~4살 정도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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