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조선연애사건
작가 : 꽃삽
작품등록일 : 201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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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작성일 : 17-07-13     조회 : 436     추천 : 0     분량 : 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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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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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어느 원룸.

 

 질끈 묶은 머리에 씻지 않은 얼굴을 한 주연은 퀭한 표정을 하고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기타 등등 신님들이시여… 제발!!!”

 

 두 눈을 감고 마우스를 눌렀다. 달칵 소리가 들렸다. 차마 볼 용기가 없어 실눈을 살짝 뜬 주연은 모니터를 확인하자마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안돼!!!!”

 

 불 합 격

 

 모니터에 비친 그 글씨는 전국 수십만 고시생들에게 절망감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이럼 안 돼. 울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눈에 힘을 주고 모니터를 쳐다봤다. 하지만 불합격이 합격으로 바뀌는 기적은 끝내 주연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연은 불합격의 충격으로 사흘 밤낮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

 

 “나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했다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물 좀 마시면서 마셔라 어? 시험 떨어졌다고 다 죽는 건 아니잖아. 다음도 있고. 다음에 잘 보면 되지.”

 “그래, 공시 좀 떨어졌다고 다 죽으면 대한민국 청년 수십만은 벌써 다 죽었게?”

 “그래. 나도 고시 떨어졌지만 여차하면 그냥 취업해. 세상에 직업이 4만 가지나 있다는데 너 일할 곳 하나 없겠니.”

 “그치만, 그치마안… 나… 흐어엉.”

 

 보다 못한 친구들이 억지로 집에서 끌고 나온 지 한 시간 째. 친구들 앞에서 신세한탄을 하던 주연은 결국 눈물이 빵 터졌다. 그런 주연을 친구들은 애써 다독여줬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에서 공부했는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이번에 꼭 붙을 줄 알았어. 막판에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책만 봤다고.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

 “야 오주연….”

 

 성아가 뭐라 말을 하려던 찰나 재희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주연아, 오늘은 일단 마셔.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공부하면 되지.”

 “재희야… 나 정말 공시 계속 해야 하는 걸까? 내 형편에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그냥 공부하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웅얼웅얼 거리던 주연은 기어코 테이블로 고꾸라졌다. 취했네 취했어. 재희는 한숨을 쉬며 지갑을 들고 일어섰고 성아는 주연의 뺨을 콕콕 찔렀다. 하지만 주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너무 빨리 마신다 했어. 성아는 한숨을 쉬며 그런 주연을 등에 업었다.

 .

 “얘 밥 먹고 공부만 하더니 살쪘나 봐. 진짜 무거워.”

 “무거우면 내가 교대해줄게.”

 “아니야. 곧 택시 잡으면 돼.”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가던 순간 뒤에서 주연이 꿈틀거렸다.

 

 “나 내려줘….”

 “뭐? 야 안돼!! 내려서 토해!!”

 

 토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근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은 주연은 머리를 싸매고 그대로 의자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러더니 미친 사람처럼 히히 웃었다.

 

 “미안해. 간만에 만나서 신세한탄만 했네.”

 “친구 좋다는 게 뭐니? 언제든 힘들면 연락해.”

 

 집에 가서 누워있으라며 재희가 일으켜 세웠고 주연는 버스정류장 유리에 머리를 기댔다.

 

 “응 고마워… 이제 곧 막차 끊기는데 얼른 돌아가.”

 “아냐 너 버스 타는 건 보고 가야지. 우리들 중에서 네가 제일 덤벙이잖아.”

 “언제적 얘기를 하고 그래? 난 심야버스 있으니까 괜찮아. 조금만 더 늦으면 막차 끊기고 할증 붙어!"

 “그래 집에 가면 꼭 전화하고. 잘 갈 수 있지?”

 “내가 애도 아니고… 빨리 가 늦겠어.”

 

 걱정스런 표정으로 꼭 연락 하라는 말과 함께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멍하니 지나다니는 차를 쳐다보던 주연은 다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이번엔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도 불합격이라니…”

 

 자리에서 한참을 웃다가 울다가 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이 어느 정도 깰 때까지 집으로 걸어갈 요령이었다.

 

 기지개를 쭈욱 켰다. 친구들 말이 맞다. 시험 좀 떨어졌다고 죽으라는 법은 없지.

 

 주연의 장점은 어떤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더 높은 점수로 합격하란 얘기겠지 라며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래. 내일부터 다시 힘내자.

 

 *

 햇빛이 주연의 얼굴을 따갑게 비췄다. 괴로웠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주연은 물 밖으로 꺼내진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고 숨통은 점점 더 조여왔다.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지만 호흡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누가 좀 도와줘 ...! 온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다 발 끝에 무언가 걸렸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걷어찼으나 크게 부딪히고야 말았다.

 

 "아야...!!"

 

 얼마나 세게 박았던지 눈앞에 별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잠에서 깬 주연은 발을 감싸 쥐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건 백 프로 멍이다. 그새 부어버린 발을 손으로 감싸 쥐고, 자신이 뭘 걷어찼나 살펴보았다. 호롱불과 등잔이었다. 호롱불? 이런 게 왜 집에 있지?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방. 처음 보는 장소였다.

 

 "……?"

 

 재희네인가? 아님 수영이네? 그러기엔 방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했다. 흙으로 만든 벽에 낡은 이불. 퀘퀘한 냄새. 그리고 문풍지를 덧바른 문까지. 낯선 풍경에 순식간에 잠이 확 깼다.

 

 문을 벌컥 열자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 있었다. 사극에서나 보던 초가집들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한복을 입은 사람들. 정돈되지 않은 흙바닥과 어수선한 분위기. 마치 시장 장터를 보는 듯했다. 이게 뭐지? 당황하여 눈만 끔뻑거리는 와중에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를 쳤다.

 

 "아이고, 다 큰 처자가 이제 일어나면 어떻게 해. 해가 중천이야 중천!"

 

 하얀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주연의 등짝을 팡 쳤다.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주모~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는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주연은 순간 비틀거렸다. 갑자기 확 일어났더니 숙취가 올라왔다. 머리가 지끈거려 문지방에 몸을 기댔다. 어제 너무 과음했나… 아니 나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그래서 헛것을 보는 건가? 아니면 친구들의 장난? 그것도 아니면 몰래 카메라?

 

 아무리 시험에 떨어졌어도 하루면 털고 일어날 성격이란 걸 친구들이 모를 리 없었다. 기분 풀어주려고 방송 프로그램 같은 곳에 연락 한 건가? 주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배고파서 일어났어? 일단 앉아. 술 많이 먹으면 쉬는 게 최고야.”

 

 어느새 다시 나타난 아주머니가 주연을 강제로 앉히고 물잔을 건넸다. 물 한잔을 마신 주연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리 봐도 친구들이 장난치려고 한 게 틀림없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니 장소는 한국 민속촌 같았다. 그래도 다시 시험 준비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이 때 방송 출연은 좀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친구들이 신청해 준거라면 나가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어쩔까 고민하던 그때 마침 근처에서 상차림을 하는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저기… 담당 PD님은 어디 계세요?”

 “응? 피.. 뭐라고?”

 “담당 PD요.”

 “담… 뭐?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네?”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아주머니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반응이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에요?”

 “아가씨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만 하고. 술이 덜 깬 거야?” 어쩌다가 다 큰 처자가 그렇게 술은 퍼 마시고선 쯧쯧… 큰 일 안 당한걸 감사하게 생각해.”

 

 주연은 뭐라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래 기껏 준비 다 했는데 엎긴 싫겠지. 그리고 술을 많이 마시긴 했으니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정리한 주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부 하려면 생활비도 필요하잖아? 또 1년 공부 해야 할지도 모르고 … 연출 좀 맞춰주고 소액이라도 출연료 좀 챙기지 뭐.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주연 앞으로 국밥 한 그릇이 놓여졌다.

 

 “다 큰 처자가 그렇게 술 먹고 길바닥에 퍼질러 자면 되겠어? 세상에 미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여 밥 먹고 속이나 달래.”

 “아… 저 어제 길바닥에 있었어요?”

 “그럼, 업고 오느라 혼났어.”

 

 내가 힘 좀 썼지? 하며 아주머니는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줬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주책이라며 까르륵 웃었다. 주연도 엉겁결에 웃었다. 자신을 업었을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그나저나 길바닥에 자고 있었다니… 그래도 버스는 잘 타고 온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집에서 민속촌까지 꽤 멀지 않나? 용케도 한번도 안 깼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밥 한술을 입에 넣었다. 숙취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때, 맛있어?”

 “맛있어요!”

 “그치? 내가 만든 국밥이 한양바닥에서 제일 맛있어.”

 “그럼 여긴 조선시대에요?”

 “조선이면 조선이지 시대는 뭐람? 그나저나 다 큰 처녀가 그렇게 다리를 다 드러내는 옷을 입으면 어째. 아무리 왜놈들 물건이 좋다기로써니...”

 

 혀를 쯧쯧 찬 아주머니가 소쿠리 한쪽을 뒤지더니 낡은 한복 한 벌을 던져주었다.

 

 “내가 처녀 때 입던 옷인데, 그 딱 붙는 옷보다야 훨씬 나을 거야.”

 

 주연은 엉겁결에 옷을 받았다. 딱 보기에도 낡은 한복과 옷고름은 지나온 세월을 짐작게 했다.

 

 지금 나보고 이걸 입으라고? 이리저리 옷을 뜯어보던 주연을 아주머니가 재촉했다. . .

 

 “서둘러 갈아 입는 게 좋을걸? 이따가 어가행렬(*임금의 행차)이 있으니까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서둘러 가야 해. 우리 같은 백성이 언제 또 임금님 용안을 모시겠니.”

 “어머, 언니는 용안이란 말은 어디서 알았대?”

 

 다시 아주머니들끼리 까르륵 웃었다. 어여 먹고 옷 갈아입어. 저어기 저잣거리로 나가서 기다리면 돼. 오시(*오전 9시~11시)면 뵐 수 있다니까 이제 곧 이야.”

 

 그 말을 남기고 아주머니들은 부엌으로 돌아갔다. 오시는 뭐지? 그나저나 여기는 조선시대가 컨셉이구나. 카메라는 한대도 보이질 않네. 요새는 일반인 몰래 카메라도 이렇게 스케일이 크던가? 주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작은 것 하나에 신경 써진 모습을 보며 누구든 살기 힘들구나 싶어 숙연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예상보다 임금님이 빨리 오셨다는 구려!”

 “옛끼 이 사람아, 그럼 지금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나? 얼른 가야지.”

 

 뭐지? 진짜 임금이 온다는 건가? 고개를 빼꼼 내밀자 사람 십 수명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금님이면 중견배우가 연기 하나? 아니면 일반인? 임금님이 등장하고 촬영이 끝인가? 그럼 규모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나는 것 아닌가? 나 말고 다른 사람 여러 명 모아서 방송을 내보내나?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방송사 직원들을 걱정하며 밥을 오물거렸다. 뭐가 됐던 답답하던 일상에 활력이 될 것 같아 숟가락을 슬쩍 내려놓고 그 대열에 살짝 합류했다.

 

 사람들을 쫓아 큰길로 나가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있었다. 이게 다 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도대체 몰래 카메라 한번에 몇 명을 고용한 걸까. 주연은 눈대중으로 수를 셌다. 그리고 그들이 수백 명이라는 사실에 입을 딱 벌렸다. 이정도 규모에 이정도 스케일이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궁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궁이나 놀이동산을 갈 일이 없었다. 돈이 없어 수학여행 때 남들 다 가는 경주도 가지 못했으니까.

 

 “저기 끝에 보인다!”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려한 대열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광화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봤던 어가행렬이 떠올랐다. 사람도 많고 길기도 길었던 임금님의 행차. 그땐 일과 사람에 치여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마치 20살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행렬이 다가옴에 따라 사람은 점점 몰렸다. 주연은 남들을 따라 까치발을 딛고 낑낑거리며 쳐다보았다. 점점 큰 깃발과 붉은 옷과 노란 옷을 입은 사람, 말을 탄 사람과 큰 양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와 진짜 같아…!”

 

 주연의 눈이 커졌다. 다른 사람들도 신기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지금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상관 없었다. 태평소 소리는 신이 났고, 북적거리는 소음과 형형색색의 옷들은 일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공부만 했던 주연에게는 넘치는 즐거움이었다.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즐거움에 자신도 모르게 집중하던 차에 누군가의 ‘전하!!’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 엎드려 절을 했다. 주연도 엉겁결에 같이 바닥에 쭈그렸다. 보이지 않는 끝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임금이 지나가는 길마다 절을 하나 싶었다. 이런 부분도 고증을 한 건가? 몰카 한번이 참 디테일 하다 싶어 새삼 감탄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주연에게 소리쳤다.

 

 “거기 너!”

 

 처음에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고 누군가를 부르나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창을 든 남자는 주연에게 다시 소리를 쳤다.

 

 “어딜 보는 거야! 거기 두리번거리는 여자 너!”

 “저…저요?”

 “어디 전하가 승차하시는 길에 해괴한 옷을 입고 있느냐!”

 “이 자리를 뜨던지, 옷을 갈아입던지!”

 “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삼지창 비슷한 것을 들고 자신에게 큰소리 치는 사람들을 보며 주연은 어이가 없었다. 평범한 원피스에 청바지를 같이 입었을 뿐인데 해괴하다니…?

 

 “요새는 예능을 이런 식으로 거칠게 하는 게 유행이야 뭐야…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뭐라고요?”

 “어허, 닥치지 못할까!”

 

 서두르지 않는 자신을 보고 졸개로 보이는 사람이 화가 난 듯 했다. 설사 옷차림이 맞지 않는다 해도 아직 전하가 탄 마차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데 왜 호들갑이냐 싶었다. 아니 애당초 이거 그냥 TV 프로그램이잖아. 주연이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만 보자 남자는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람 여럿이 주연을 중심으로 모였다. 이 정도면 장난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최근 나라 안팎으로 흉흉한 틈을 타 전하를 노리는 자들이 많아서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 갈 수 없거든.”

 “…그래서요?”

 “수상한 자는 잡아다 포도청에 넘기는 게 우리가 할 역할이다 이거지.”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불쾌해졌다. 어쩌라고 싶었다. 뭐야, 이쯤이면 예능 끝날 타이밍 아니야? 언제까지 이런걸 찍고 있을 건데…? 그리고 옷 갈아입는걸 찍는지 누가 알아? 아무리 성격 좋기로 소문난 주연이라도 지금만큼은 넘기기 힘들었다.

 

 “저기요, 아무리 예능이라도 이거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사전 동의도 없이 찍는 건 컨셉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젠 협박까지… 담당 피디님은 어디 계시죠? 더 이상은 촬영에 협조 못 해드리겠는데요…”

 

 말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아무리 촬영이라 해도 보통은 이렇게까지 하나? 그러고 보니 어느 샌가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자신을 보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을 보건대 저건 절대로 연기가 아니었다.

 

 자신을 흘겨보는 사람들, 개중에는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더 이상 첩자는 지겨우니 돌팔매질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도 가만히 있을 건가? 이런 날에 일이 터지면 우리도 골치 아파서 말이야, 정 그러하다면 같이 포도청으로 가자고.”

 “잠깐…”

 

 뭔가 이상했다. 본능이 이 상황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좋은 말 할 때 같이 갈 것을 종용했고 주연은 주춤거렸다. 순식간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좋게 말할 때 가는 게 좋…”

 “으아악….!!!!!”

 

 별안간 주연이 소리를 지르자 상대방이 더 놀란 듯 했다. 그 틈을 타 주연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든 좋으니 숨어야 했다. 미친 듯이 달리는 주연의 뒤를 남자들이 쫓기 시작했다.

 

 “왜 따라오는 거예요!!”

 “거기 못 서?!”

 

 말이 안 통하지만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어라 뛰는데, 그 와중에도 이게 가짠지 진짠지 생각하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고시생활로 주연의 체력은 바닥이었다. 순식간에 턱까지 숨이 차 올랐다. 이대로 가면 잡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사람이 많을 시장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임금님을 보려고 모인 탓에 시장 사람이 텅텅 비어있었다.

 

 “어…어떻게 하지?!”

 “이쪽이에요.”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순식간에 목덜미를 잡혀 방 한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낡은 경칩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이 닫혔다.

 

 “어디 있는 거야?!”

 “빨리 찾아!!”

 

 포졸들이 떠드는 소리가 지나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뒤늦게 숨을 몰아 쉬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시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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