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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브레이커
작가 : 스테인리스
작품등록일 : 201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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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친 바람 (2)
작성일 : 17-07-15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7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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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 오전 11시의 목포 시내.

 

  얼마 만에 시에 온 걸 까. 아이보리색 목도리를 칭칭 둘러 맨 지연은 퉁퉁 부은 눈으로 한참 주변을 둘러보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그 안으로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손등은 튼 채로 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로 최대 한파가 있는 날이었다.

 

 

  “짜증나 죽겠다니까 그냥 재수할까봐!”

 

  “씨 야 그냥 담임은 일단 들어가는게 중요하다고 원서라도 쓰라는데.”

 

  “아 몰라 근데 얘 쌍수 개잘되지 않았냐?”

 

  “어 야 오늘 엔스리안 세일한다는데 틴트나 사러가자 질러야지 걍!”

 

  지연은 입김을 불던 것을 멈추고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또래로 보이는 여자 셋을 쫓았다. 얼마 전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고 하더니…….

 

 

  “왜 여기 서있어 들어가있으라니까!”

 

  지연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가가 따뜻하게 움직였다.

 

  “선생님.”

 

  “어이구 시내구경하느라 아주 정신없지? 들어가자!”

 

  지연은 자신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근처 카페 출입문으로 이끄는 공선생을 따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카페 안은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녀의 귓가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공선생이 머리카락에 이는 정전기를 정리하더니 힘있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쌤 맘대로 시킨다?”

 

  “네.”

 

  “먼저 앉아있어!”

 

  지연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지연은 고구마라떼가 담긴 머그컵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녀의 촘촘한 속눈썹이 더욱 아래를 향했다.

 

  “선생님, 정말 늘 감사해요.”

 

  “뭐가!”

 

  공선생은 쓰고 있던 호피무늬 안경테를 치켜 올리며 씨익 웃었다.

 

  “……. 이번에 할머니 장례식 치룰 때도 그렇고… 매번 책 보내주시는 것도 그렇고…….”

 

  “어, 또?”

 

  알긴 아네 쭈욱 계속 얘기 해봐,와 같은 공선생의 장난스런 뉘앙스에 지연은 픽 웃었다. 이내 공선생은 지연의 작은 손을 힘줘 잡았고.

 

  “한지연. 너 어제도 울다 잤지.”

 

  지연은 공선생의 눈을 피해 시선을 아래로 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더 이상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던 그녀였다.

 

  “쌤 말 기억 못해? 예전에 쌤 임용 계속 떨어져서 한달 내내 울다가 쌍꺼풀 없어져서 결국 수술했다고! 너 계속 울면 그 예쁜 쌍꺼풀 싹다 없어진다?”

 

  공선생은 지연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손을 토닥거렸고. 지연은 다시 정면으로 따듯한 눈길의 공선생과 마주했다.

 

  “어때, 여기 오니까?”

 

  “여기…요?”

 

  “시에 나오니까 어떠냐구요. 배타고 오랜만에 시외버스까지 탔을 거 아녜요?”

  공선생의 표정은 어투와는 달리 사뭇 진지했다. 지연을 의식해 최대한 무겁지 않게 입을 연 그녀는 모카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지연의 시선은 다시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냥…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조금 정신없는 거 같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고 그래요.”

 

  지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머그잔을 들었다. 그녀가 고구마라떼를 마시기 시작한 순간, 공선생은 편안한 어조로 입을 뗐다.

 

  “쌤이 저번에 얘기한 건, 생각좀 해봤어? 수능공부하는 거.”

 

  “……. 네.”

 

  지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아직 잘…, 생각 중인데… 잘 모르겠어요.”

 

  공선생은 지연이 안쓰러워 그녀의 손등을 감쌌다.

 

  “너라면 뭘 선택하든 잘 할 거야. 쌤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알겠지?”

 

  지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애써 미소 지었다. 이에 공선생은 지연이 안쓰러워 코 끝이 따가워지려는 걸 다시 머그잔에 손을 댔다.

 

  이 아이가 조금 더 나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지연이의 인생을 위하신다면 섬에서 내보내시라고, 그렇게 지연이가 걱정이 되신다면 할머님도 함께 섬에서 나오시면 되지 않냐고. 그녀 자신이 조금 더 강력하게 지연이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싶어 자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참, 버스는 몇 시 차?”

 

  “3시 5분이요. 선생님, 낙지 볶음 좋아하신다 그랬죠?”

 

  지연은 미소지으며 공선생을 쳐다봤다. 공선생에게 한 끼라도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노트북으로 검색을 해 온 뒤였다.

 

  “기억력 좋은거 봐라? 그러지말고 우리 지금 점심 먹으 어머 내 정신 좀 봐 미쳤어 미쳤어! 일어나자!”

 

  “네?”

 

  “영화 예매해뒀었는데 어머 미쳐 내가 진짜!”

 

  지연은 공선생이 호들갑을 떨며 벌떡 일어나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여전히 소녀같은 선생님의 모습에 소리 없이 웃으며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그렇게 지연은 3년 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미국 시카고 극빈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해 결국 성공한 흑인 청년의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왜 이 영화를 자신에게 보여주는지 그녀는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게 인구가 적은 곳에 살아왔다 하더라도, 인터넷이 제대로 되는 때 보다 안 되는 때가 더 많은 곳에 살아왔다 하더라도. 지연은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사회에선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했던 선생님의 제안에,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수능을 본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불투명했으며, 대학에 간다 할지라도 결국엔 취직을 할 거였는데. 열심히 알바하며 스펙을 쌓는다 하더라도 잘 안 된다면 자신이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력의 과정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이, 그녀에게는 그저 사치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것일 텐데.

 

 

 

  “선생님, 오늘도 정말…….”

 

  “뭐 또 감사하다고?”

 

  “네.”

 

  공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지연의 팔을 토닥였다.

 

  “진짜 쌤한테 고마우면 밥 좀 잘 먹고 다녀, 넌 다이어트 안해도 돼!”

 

  “네.”

 

  왼손으론 공선생이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오른손으론 버스표를 든 지연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내 두 손을 배꼽위에 갖다 댔고.

 

  “선생님 저 이제 가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공선생이 활짝 웃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따위의 위로는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려 부단히도 애쓰고 있을 거였다. 그녀 자신도 지연을 진정으로 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는 분명했다. 지연이 전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

 

  지연은 다시 한 번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내 버스 플랫폼을 향해 걷기 시작한 그녀의 얼굴 위로는 담담함과 막막함이 뒤엉켜 물들기 시작했다.

 

 

 

 

 

 *

 

 

  “이 노망난 영감이 뭐라는 거야.”

 

  태열은 미간을 구기며 귓가에서 휴대폰을 떼냈다. 그의 낮은 음성이 유독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다.

 

  “이 이놈이 눈에 뵈는 게 없지!”

 

  “도련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송회장의 언성에 박비서는 조수석에서 급히 뒤를 돌아 말했다. 어서 전화를 이어 하시라는 눈치였다. 태열은 도저히 못해먹겠다는 듯 얼굴을 짧게 흔들더니 휴대폰을 박비서에게 던지듯 건넸다.

 

  이내 뒷좌석에 일자로 눕더니 제 키에 못 미치는 차의 폭이 마음에 안드는 듯 입가를 잘근 씹었고. 그대로 두 발을 창가에 올렸다.

 

  그 사이 그의 귓가로 박비서와 송회장의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회장님. 이정도면 충분히 도련님께서 사회 구석 구석을 살펴 보았…….”

 

  “지금 그게 말이야 뭐야! 교육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그 그래서 이번에 도련님께서 수능도 잘 보셨으니, 정식으로 교육을 받으시면…….”

 

  “책임지고 금좌도까지 끌고 갔다와!”

 

  “회 회장님, 제가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도련…….”

 

  “같은 말 두 번 하게 할 거야!”

 

  “아 나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네 줘봐요.”

 

  태열은 못참겠는지 짜증이 난 얼굴로 일어나서는 박비서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이보세요 송회장님.”

 

  “뭐 소 송회장? 말 똑바로 안해!”

 

  “할아버지, 조부님. 나랑 장난해?”

 

  태열의 날선 목소리에 박비서와 운전기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를 존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아나 모르겠네.”

 

  “이 이 녀석이!”

 

  “내가 누구 때문에 2년을 개고생했는데.”

 

  “네놈이 진짜 고생을 안해봐…….”

 

  “하, 이 집안에서 군필이 누군데? 나 말고 더 있어!”

 

  태열은 지난 2년이 떠오르자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신경질적으로 벗었다. 이내 휴대폰을 쥔 손을 바꿨고.

 

  “할아버지 잘난 둘째 아들 대통령은 만들어야겠는데, 그 둘째아들한테 있는 아들 하나는 군대 갈 필요가 없으니 남은 아들은 군필 만들어야겠고. 서민인지 선민인지 개념찬 코스프레…….”

 

  “마지막 한군데만 더 갔다 오면 될 것을 그걸 못참아!”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잖아!”

 

  “완벽, 완벽하게 해야 할 거 아니야!”

 

  후. 태열은 힘줘 얼굴을 쓸어내렸다. 침착하려는 듯 숨을 내뱉는 그의 모습에 박비서는 긴장했고.

 

  “할아버지, 4년 뒤에 나한테 재단 안 주면. 그땐 각오해요.”

 

  가죠, 하며 통화종료버튼을 누른 태열로 인해 앞 좌석에 있던 남자 두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열은 혀로 입안을 빠르게 훑더니 다시 모자를 눌러 썼다.

 

  “얼마나 걸려요.”

 

  “30분 정도 예상됩니다.”

 

  “사진은, 백업 잘 해두고 있는 거죠.”

 

  “그럼요!”

 

  활기차게 입을 연 박비서는 태열의 눈치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왜요.”

 

  “저 그런데 도련님, 아까부터 계속 진동이……”

 

  태열은 눈썹끝을 치켜세우며 가방을 열었다. 그대로 통화 거절버튼을 누른 뒤 액정 화면 위로 수많은 부재중전화와 메시지가 와있다는 알림창이 보였다. 그는 귀찮다는 듯 아예 휴대폰 전원버튼을 눌러버렸고. 이내 몸을 뒤로 기대더니 창가에 대고 손가락을 툭, 툭, 튕겨내기 시작했다.

 

  참아야 했다. 모든 게 타이밍이었으니, 참아야했다.

 

  반강제적으로 입대를 하고서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리는 큰 그림을 알게 됐던 그였기에, 그 어떤 특혜도 받지 못하고 군생활을 하는 것에 그저 억울하고 열이 받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다시 수능을 쳐서 교대에 입학해 별다른 사고 없이 졸업만하면 할아버지 소유의 사학재단을 주겠다는 미끼를 문 것도 송태열 그 자신이었으니. 어차피 기존에 다니고 있던 대학과 전공에 눈곱만큼의 애정이나 미련 따위는 없었고, 가장 머리가 안 아플 것 같은 사학재단을, 그것도 일을 배우는 시간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주겠다니. 그 제안이야 말로 송태열 그에게 있어 군대에 있는 동안 가장 큰 빛이요, 그가 좀비처럼 공부했던 이유였다.

 

  그래서 군인 신분으로 수능을 두 번 봤고, 제대 직전 본 두 번째 수능에서 가히 예술적인 성적을 받았으니 면접에 가서 교수들 면전에 침만 뱉지 않는 이상 합격하는 건 당연할 거 같았고. 이제 좀 편하게 놀려고 했더니 난데없이 전국 도서벽지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어떻게 하면 도서벽지에 사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혜택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서류로 남겨 놓으라니. 송태열, 그에게 있어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핏줄 승계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냥, 세상 사람들에게 특권 의식 하나 없이 입대 후 도서벽지에서 군생활을 하며 느낀 깨달음, 특히 어린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되어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하여 결국엔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사학을 위해 재단을 물려받는, 그럴듯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에 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까짓것, 앞으로 4년. 4년만 참으면 됐다.

 

 

 

  이로부터 30분 뒤.

 

  “어쩌죠. 여기도 차량선적이 불가하답니다.”

 

  운전기사는 표 세장을 손에 든 채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박비서는 태열의 눈치를 살피더니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배 시간은?”

 

  “다행히 10분 뒤입니다.”

 

  “마지막까지 귀찮게 하네.”

 

  태열은 차에서 나와 인상을 쓰며 벤치파카를 걸쳤다. 저편에선 여학생 무리들의 웅성거림과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외제차의 등장과 그 안에서 내린 남자의 체격과 외모 때문일 터.

 

  그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선착장의 모습을 훑더니 운전기사를 향해 말했다.

 

  “됐어요 여기 있어요.”

 

  박비서는 운전기사에게 그러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이내 추운지 가죽장갑을 급하게 끼고는 표 두 장을 건네받았고, 이후 앞서 걷는 태열을 뒤따랐다.

 

  “하하, 여기서도 다를 바가 없군요.”

 

  태열은 박비서의 넉넉한 웃음소리에 미간을 구기며 그를 바라봤다.

 

  “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하죠.”

 

  “저 여학생들 말입니다, 계속 도련님 보고 있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아마 여기서 한 번이라도 도련님 본 여자들은 한번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밖에선 그 도련님소리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박비서는 태열의 심기 불편한 어조에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급히 다물며, 저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싶은지 주변을 살폈고.

 

  “뭐, 아닌 사람도 있긴 하네요.”

 

  태열은 박비서의 중얼거림에 인상을 쓰며 다시 그를 바라봤다.

 

  “아 아닙니다, 타시죠 어서!”

 

  박비서의 벌게진 얼굴에 태열은 고개를 젓더니 몸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휴가라도 주든지, 보약이라도 지어주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 어디가십니까!”

 

  태열은 박비서가 놀란 얼굴로, 최대한 음량을 낮춰 말하자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출입문 쪽이었다.

 

  “바닷바람 아시지 않습니까, 춥습니다!”

 

  “여기 계시죠, 뭐라고 안하니까.”

 

  여학생들의 계속되는 시선과 웅성거림, 사진촬영 소리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름 냄새인 건지, 역한 냄새가 그의 후각 신경을 건든 것이었다. 춥든 말든, 바깥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박비서는 난감한 듯 좌석에서 일어나다 태열이 앉아 있으라는 듯 손짓을 하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태열은 출입문을 열기도 전에 문틈에서 느껴지는 바다 바람에 모자를 푹 눌러썼다. 최대 한파라더니, 바닷바람에 얼굴이 베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머리를 어지럽게 한 역한 냄새는 나지 않았는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출입문을 열었다.

 

  “좀 살 것 같네.”

 

  태열은 더 이상 거슬리는 냄새가 나지 않자 추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해 걸음을 옮겼다. 어제 낮에 탔던 배에 비해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후미진 선착장의 인상 치고는 배의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 몸을 움직이던 그는 얼마 못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다소 날카로워졌다.

 

 

  “…….”

 

  얼마간을 한곳만 응시하던 태열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한손으로 눈썹 끝을 매만졌다.

 

  웬 여자 애 한 명이 배 난간에 기대 고개를 숙여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었는데, 눈물이 끝도 없이 저 여자의 얼굴과 손을 타고 목도리를 적시는 것이었다.

 

  한쪽 팔목에 쇼핑백을 건 채, 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게 역부족으로, 버겁기 까지 해 보였다.

 

 

  “뭐 저렇게.”

 

  아프게 울지.

 

  태열은 저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춰 꽤 오랜 시간을 서 있던 걸 알기나 하는 건지, 입술 끝을 짧게 씹으며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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