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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브레이커
작가 : 스테인리스
작품등록일 : 201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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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친 바람 (3)
작성일 : 17-07-15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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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연은 금좌도행 배에 올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바로 집으로 가면 될 것을,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해 금좌도를 들려 마지막 배를 타고 집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저, 그녀 자신이 학교를 다녔던 추억이 있는 곳엘 가보려 했던 거였는데.

 

  “미쳤어.”

 

  지연은 난간에 기대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행복했던 때의 장소를 가면 더 힘이 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현실. 현실이었는데. 견뎌야 하고, 살아야할 곳은 현실이었는데. 오랜만에 시에 나가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며 조금이라도 기분전환이 되었던 게 화근이라고까지 생각되자, 그녀는 쓰게 웃었다.

 

  “진짜 못났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이 정도로까지 못나진 않았던 거 같은데…….

 

  뭐가 좋을 거라고 금좌도를 가보려고 했을까.

 

  졸업하자마자 폐교 되어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예쁘게 꾸며졌다던 모교에 가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오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오래 전 뿔뿔이 흩어져 소식조차 모르는, 아니, 그녀 자신이 알려고 하지 않고 피했다고 하는 게 맞을, 몇 없던 친구들과의 흔적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하아…….”

 

  일순간에 지연의 눈가는 붉어졌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부터,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인 집을, 령화도를 벗어나는 게 기분 좋았다는 것을.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선창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늦게 가기위해 우발적으로 선택한 목적지라는 것을.

 

  지연은 매서운 바닷바람은 느껴지지도 않는 건지, 손등으로 눈물을 빠르게 닦아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눈가는 괜찮지가 않았다.

 

  지연은 서러워졌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가난하더라도 부모님과 할머니와 모두 함께 오래 오래 살았다면, 그게 아니라면 가진 돈이 엄청나게 많아 해보고 싶은 거 마음껏 해볼 수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엄마 대신 죽었어야 했던 걸까. 그래서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던 걸까.

 

  그녀는 저를 낳자마자 죽은 엄마의 생각을 끝으로 호흡이 급속도로 가빠졌고, 두 눈에선 주체할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여길 떠나 어디론가, 어디에선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돈 걱정 없이 몸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단 생각은 그녀의 심장을 더욱 아프게만 했고.

 

  그렇게 지연이 설움을 토해내듯 운지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고, 저 멀리로 금좌도의 형체가 점점 더 가까이 올 때였다.

 

 

  “학생……?”

 

  “이 이봐요 학생.”

 

  “크음, 학생.”

 

  왼팔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지연은 숨을 꺽꺽대며 두 손으로 얼굴을 문댔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서있었다.

 

  “날도 춥고, 자 받아요.”

 

  “어서 받아요, 나 나쁜 아저씨 아니니까.”

 

  지연은 손등으로 빠르게 눈물을 짓이기듯 닦아 내더니 꺽꺽대는 숨소리로 힘겹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살아보니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만큼의 좋은 일도 반드시 찾아오더라고. 그러니까 기운내요!”

 

  남자는 지연이 손수건을 두 손으로 받자 그녀가 너무 안 돼 보였는지 예정에도 없던 말을 덧붙였다.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가벼운 마음으로 뒤를 돌았다. 이에 지연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볼뿐이었다.

 

  안 좋은 일 만큼의 좋은 일… 오면 좋겠는데…….

 

  20년을 살면서, 안좋은 일 다음에 그만큼의 좋은일을 마주한 적이 없었던 지연은 불규칙한 숨 위로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혼자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눈물을 주체 못했던 것도 모자라, 자신이 우는 걸 누군가 봤다는 게 창피했지만. 그래도 지연은 방금 전 아저씨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너무나 많았던 탓일까. 그게 아니면 요며칠 흘린 눈물만큼 단단해지고 있던 것일까. 실컷 울고 난 후 정신이 조금 들었는지, 지연은 금좌도를 둘러보고 집으로 가면 너무 컴컴해지겠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바로 령화도로 가야할 것 같았다.

 

 

  같은 시각.

 

  선내 출입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좌석에 삐딱하게 앉아있던 태열은 박비서의 요란한 모습에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까 선착장에서 유일하게 도련님을 안보고 있더니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너무 슬프게 우는게 저도 참, 마음이 안좋더라고요.”

 

  “헹거치프는. 줬어요?”

 

  “그러믄요! 제가 헹거치프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거 도련님이 선물해주셨던 건데 아쉽긴 하네요, 도련님도 그렇죠?”

 

  박비서는 업된 기분으로 태열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내 그가 인상을 팍 구기며 입가를 떫게 접자 홀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제가 다 감동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고생도 하시고 도서벽지도 다니시더니 이젠 주변도 살피실줄 알고 연민이란 감정도 깨달으실…….”

 

  “그만하시죠?”

 

  박비서는 그가 소리 낮춰 말하자 움찔했다. 이내 주변의 움직임에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고.

 

  “거의 다 왔나봅니다!”

 

  태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깨와 목을 가볍게 스트레칭한 그는 출입문을 보고는 갑자기 박비서의 어깨를 붙잡았고.

 

  “무슨 일…….”

 

  “천천히 나가죠, 천천히.”

 

  “네, 뭐 그러죠!”

 

  박비서는 태열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어차피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단 생각에 별다른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태열이 울고 있던 여자와 괜히 부딪히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

 

  어둑해지기 시작한 령화도의 선착장.

 

  마을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배에 탔던 지연은 갈림길에서 꾸벅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집이랑 밭을 정리할 생각이면 마을에서 잘 해줄 테니 그건 걱정마라며, 어서 들어가보라는 내용의 말에, 지연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후 몸을 왼편으로 돌린 그녀는 힘주어 입술을 다물며 억지스럽게 미소 지었다.

 

  요 며칠 원 없이 울었으니, 앞으로 울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까 그 아저씨의 말처럼, 안 좋은 일 만큼의 좋은 일이, 좋은 일이 꼭 올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분명히 현명하게 결정하고 행동해 잘 헤쳐나갈 것이었다.

 

  그렇게 지연은 아직도 축축해있는 손수건이 든 왼쪽 점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스스로 최면을 걸 듯 중얼거리며 집 방향으로 향했다.

 

  지연이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생각, 희망적인 생각만을 하기위해 애쓰며 힘주어 걸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해는 저물었고, 늘 그랬듯 마을길에 인적이란 그녀 혼자밖에 없었는데.

 

  집 부근에서 지연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네, 네 안녕하세요.”

 

  자신 앞에서 30대 초반의 여자와 40대 중반의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얼떨결에 따라 인사한 한지연.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섬을 잘못 찾았나 싶었다.

 

  “지연양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저 저랑요? 근데 누구…세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지연은 공선생이 준 쇼핑백을 힘주어 잡았다. 공포스럽게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낯선 이들 앞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지연양이 경계심을 풀 수 있을까 고민 많이 했는데, 이렇게 보니 어떻게 해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저는 장혜민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여자는 지연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연은 여자와 남자를 번갈아보더니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여자의 악수에 응했다.

 

  “네 네, 그 근데 무슨 일 아 아니 저를 어떻게…….”

 

  “여기 이렇게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지연양 집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지연양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전부 이야기 해드릴게요.”

 

  여자는 지연이 더 당황하자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지연에게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여기 있을 거니 걱정하지 마시죠. 저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지연은 입가를 살짝 찌푸리더니 이마를 짧게 긁적였다. 본래 의심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완전히 믿을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아무리 봐도 진짜 나쁜 사람들 같진 않은데. 지연은 대체 자기와 무슨 이야기를 할 게 있다는 건지, 아니 그보다 자신을 어떻게 아는 건지 의아했다.

 

  결국 그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자와 여자를 지나쳐 집 대문을 열었고.

 

  “드 들어오세요.”

 

  여자를 향해 말하고는 반복적으로 뒤를 돌아 여자와 대문쪽을 보며 현관으로 향했다. 뒤이어 여자의 온화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지연양 해치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정말이에요.”

 

  “아 네.”

 

  어색하게 웃은 지연은 현관문을 여는 동안, 눈썹을 작게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막상 들어오라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던 것.

 

  후우, 지연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며 문을 열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내 좁다란 현관에 신발을 벗어 집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급하게 거실 등의 스위치를 누르고는 크로스로 멘 가방과 손목에 걸고 있던 쇼핑백을 거실바닥에 내려놓았다. 막 집안으로 들어선 여자는 지연에게 쇼핑백하나를 건넸고.

 

  “빈손으로 오기는 그래서, 받아요. 좋아하면 좋겠네요.”

 

  지연은 얼떨떨했다.

 

  “이게 뭐…예요?”

 

  “케이크랑 타르트예요.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샵에서 사온건데, 뜯어볼래요?”

 

  “아 아니, 이런걸 왜 저한테…….”

 

  분명 오늘 처음 본 사이일 텐데, 지연은 여자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여자는 지연의 빈 손에 쇼핑백을 쥐어주고는 물었다.

 

  “앉아서 이야기 할까요?”

 

  무언가 석연치 않았던 지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자가 준 쇼핑백 또한 바닥에 빠르게 내려놓았다. 이내 작게 인상을 쓴 채 먼저 바닥에 앉았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도 운 탓에 머리가 무겁게 아파왔지만,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던 지연은 두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저기 누구신데 저를, 아 아니 저랑 무슨 이야기를…….”

 

  “외유내강형인가 보네요.”

 

  지연은 여자의 여유 있는 미소와 맥락 없는 말소리에 당황한 듯 입을 벌렸다. 여자는 지연의 두 눈동자를 바로 마주했다.

 

  “막막할 거예요, 무서울 거고.”

 

  “네……?”

 

  “차라리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마냥 좋았던 때만 생각하다가 서러워지고. 세상에 나만 혼자인 것 같고. 억울하고.”

 

  “그게 무슨…….”

 

  “아홉 살에 알았어요, 세상에 나 혼자라는 기분.”

 

  여자의 담담한 어조와 쓸쓸한 미소에 지연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뭔지 몰랐지만, 적어도 앞에 앉은 여자의 눈빛과 목소리가 진심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버려졌었어요, 보육원에.”

 

  “……!”

 

  “그래도 살아지더라구요, 살다보니까 좋기도 하고.”

 

  지연은 여자가 미소 짓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저같은 기분을 이야기하는 이 여자가 남 같지 않게 느껴지면서도 또 이런 상황이 난처하고 난감했다. 그러나.

 

  “8년 동안 할머니랑 단 둘이 살면서 각별했을 텐데, 여기 계속 있으면 마음 아프지 않겠어요?”

 

  “……. 어 어떻게 알아요?”

 

  양팔에 소름이 돋은 지연은 여자의 두 눈을 바로 쳐다봤다. 여자는 따뜻하게 미소 짓더니 이내 가방을 열었고. 문득 겁이 났던 지연은 몸을 일으키려했는데.

 

  “개인적으로도 난, 지연양이 이런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 생각해요.”

 

  여자는 지연에게 황갈색 서류봉투를 건넸다.

 

  “이 이게 뭔데요?”

 

  “직접 열어볼래요?”

 

  지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서류 봉투를 열었다. 종이 한 장을 꺼낸 지연의 눈썹이 찡그러졌다.

 

  계…약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지금은 잘 모를 거예요, 그 안에 작은 봉투하나 더 있을 건데.”

 

  여자는 지연의 손에 들렸던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옆쪽에 내려놓았다. 지연은 서류봉투에서 일반 편지봉투 크기의 흰 봉투하나를 더 꺼냈고. 여자가 말도 하기 전에 그대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지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소개, 다시 할게요. KW그룹 차혁진회장님 개인비서, 장혜민이에요.”

 

  여자는 지연에게 명함을 건넸지만 지연은 미동도 없었다. 여자는 예상한 듯 명함을 계약서 위로 올려두었고.

 

  “지금 지연양이 들고 있는 수표, 어때요, 액수가 큰 것 같나요?”

 

  “저 저기 이 이걸 왜 저한테 아 아니 잠깐만요……!”

 

  지연은 눈을 꽉 감더니 머리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뭐가 뭔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못가 여자의 이어진 뚜렷한 말소리에, 한참을 얼굴이 새하얘졌다가, 시뻘게졌다가, 손이 떨려왔다가 이내 가슴이 세게 뛰고 머리가 어지러워 두 손으로 눈두덩을 꾹 눌러야했다.

 

  지연의 주변으로 미친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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