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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브레이커
작가 : 스테인리스
작품등록일 : 201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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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순한 지랄 (1)
작성일 : 17-07-16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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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집으로 가죠.”

 

  “아니 평창동으로 가셔야…….”

 

  “청담동.”

 

  박비서는 태열의 분명하고도 차가운 목소리에 식은땀이 났다. 운전기사는 박비서의 무언의 눈짓에 백미러로 태열의 눈치를 살폈고.

 

  “어쨌든 정말이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장님도 분명 만족하실겁니다!”

 

  “마무리는 박비서님이 다하실 건데요.”

 

  “그건 그렇 아니 그래도 도련님이 함께해주지 않으셨…….”

 

  “도착하면 깨워요.”

 

  태열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뒷좌석에 몸을 일자로 누웠다.

 

  어둠이 내린 곳곳에 헤집고 드러낸 거리의 불빛들이 완벽하게 썬팅된 차 안을 비추진 못했기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그간 피로에 찌든 컨디션 때문일까. 그는 불편한 자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박비서 또한 태열이 잠들자마자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로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아니 이사람아 여기로 오면 어떡해!”

 

  차창에 머리를 부딪힌 바람에 잠에서 깬 박비서는 눈을 뜨자마자 무얼 본 건지 운전기사를 향해 말했다. 막 잠에서 깬 뒤였어도 태열을 의식해서인지 최대한 소리를 낮춘 상태였다.

 

  “평창동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그 그렇구만.”

 

  운전기사의 조용한 대답에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박비서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저편으로 보인 도로표지판 위로 청담동이란 세 글자가 보이자 화들짝 놀랐던 탓이었다.

 

  박비서는 쥐 죽은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도련님……?”

 

  자신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자고 있는 태열의 모습에 박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안도가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 할까요?”

 

  “일단 차고로 아니! 아니야. 아이고 내 팔자야…….”

 

  박비서는 태열과 차고의 문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를 죽여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러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고.

 

  “예 의원님! 네, 네 지금 거의 다 왔습니다. 예, 예!”

 

  운전기사는 박비서가 울며 겨자 먹는 얼굴로 차고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였는데.

 

  “돌려요.”

 

  “도 도련님, 깨우려고 했는…….”

 

  “그런데요.”

 

  얼굴을 빠르게 쓸어내린 태열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잠에서 막 깬 그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서늘해져있자 박비서의 등골은 싸해졌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나보네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였던 운전기사는 막 열린 차고의 문을 지나치더니 핸들을 꺾었다. 박비서는 죽을상을 지으며 뒷좌석 쪽으로 몸을 돌렸고.

 

  “도련님 그 그러지말고 좋은 날인데 얼굴이라도 잠깐 비추…….”

 

  “아버지 와이프 생일이, 나한테 좋은날이다?”

 

  태열은 피식 웃더니 다시 누웠다. 얼굴 전체가 벌게진 박비서는 그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입을 잠갔다. 뒤이어 울린 전화 진동에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도착하면 깨워요.”

 

  피곤한 어조로 입을 연 태열은 이맛살을 구기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30여분이 흘렀고.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빌라단지 내에 차는 멈춰 섰다.

 

  “앞으로 한 3주 동안 죽었다 생각해요.”

 

  태열은 차에서 내려 뻐근했던 목을 풀었다. 태열의 짐가방을 들고 있던 박비서는 황급하게 입을 열었다.

 

  “곧 원서 접수 기간인…….”

 

  “알아서 잘 해주실 거잖아요?”

 

  태열은 박비서의 손에서 자신의 가방을 가져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박비서의 낯빛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그럼 송년행사와 신년…….”

 

  “죽은 사람이 거길 어떻게 가겠어요, 안 그래요?”

 

  “면접 준비는 어떻게…….”

 

  “내가 어련히 연락 할테니까 좀 믿죠?”

 

  “아이고 그렇게 만만하게 보시면 안될 텐데…….”

 

  태열은 박비서의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더니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후 단지 안을 걸어 해당 빌라 입구로 향했고.

 

  이제야 드디어, 제대로 숨 좀 쉴 수 있겠다 싶었는지 아까부터 지끈대던 머리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는데.

 

 

 

  “송태열!”

 

  또각거리는 힐소리와 함께 들린 여자의 목소리에 태열은 다시 피곤해졌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어? 어?”

 

  “어떻게 들어왔어.”

 

  태열은 자신에게 한달음 오더니 가슴팍을 때리는 여자의 손목을 그대로 붙잡아 제 몸에서 떼어냈고.

 

  “지금 그게 문제야?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구!”

 

  “내가 어쨌는데.”

 

  “뭐? 너 연락 안돼서, 그래서 걱정돼서 계속 촬영도 제대로 못했어!”

 

  여자는 태열의 무표정한 얼굴에 입술을 깨물었다. 태열은 여자를 내려 보며 귀찮은 어조로 말했다.

 

  “가라 날도 추운데.”

 

  여자는 자신에게서 몸을 돌려 빌라 안으로 들어서려는 태열에게 소리쳤다.

 

  “이 나쁜새끼야 너도 한 번 똑같이 느껴봐! 너 진심 몰라주는 여자 만나서…….”

 

  “야.”

 

  “왜, 찔리니?”

 

  태열은 황당한 얼굴로 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대충 올렸고.

 

  “나랑 너, 뭐라도 돼?”

 

  “하, 뭐?”

 

  “처음부터 말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한테 마음 없다고.”

 

  여자는 태열의 태연하고도 차가운 말에 당황한 듯 입을 벌렸다. 태열은 이맛살을 설핏 구기며 다시 여자의 앞에 섰고.

 

  “그래도 좋다고 한 게 너였고, 미안하면 너 사달라는 거 사달래서 다 사줬는데.”

 

  여자의 어깨를 토닥거리고는.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래.”

 

  여자가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자 제대로 인상을 구기더니 뒤를 돌았다. 눈물 연기는 연습 좀 더 해야겠다는 말을 붙이며.

 

  “하루가 끝까지…….”

 

  빌라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탄 태열은 혼잣말을 멈추더니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댔다. 방금 전 본 거짓 눈물이 가소로워 웃음이 나오려던 찰나, 오늘 배 안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프게 울 수가 있나 싶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하는 생각까지 든 순간. 그는 자신이 쓸데없이 별 걸 다 기억하고 궁금해한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

 

  일요일 오전.

 

  오늘 새벽 늦게 들어와 방금 일어난 유한은 유희를 찾기 위해 2층 거실로 향했다. 크게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유희가 틀어놓은 음악일 게 빤했다.

 

 

  “차유희.”

 

  “응 오빠 왜?”

 

  소파에서 패션지를 보고 있던 유희는 고개를 돌렸다. 유한은 노래를 꺼버리고는 유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음악을 꺼버려 심통이 난 유희에게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만들고 싶다던 명문 초등학교. 꼭 교대 안가도 돼. 차라리 원서내지 말고 수술하고 한 2,3년 푹 쉬면서 네 마음대로 놀아. 거기서 대학을 가든…….”

 

  “싫은데? 진짜 명문 초등 학교 만든 사람이 초등교육 전공자면 얼마나 좋아 보여! 나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초등학교 만들 거라니까?”

 

  유희는 또 저 소리냐는 얼굴로 입을 비죽거리더니 다시 무릎 위 잡지로 시선을 내렸다. 유한의 목소리가 다소 세졌다.

 

  “그럼 네가 입학해서 네가 직접 다녀.”

 

  “싫다니까? 교대 공부 엄청 유치하고 재미없대!”

 

  유희는 유한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충 대답했다. 귀가 간지러운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까지 했다.

 

  유한은 한숨을 짧게 내뱉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어루고 달래려는 듯,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뭐 어쩌자는 건데.”

 

  “몇 번 말해? 졸업장만 가질 거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가 직접 다녀서 졸업해. 이 말이 어려워?”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유희의 모습에 유한은 최대한 침착하게 다시 입을 뗐다.

 

  “차유희. 뒷일은 생각 안 해?”

 

  “무슨 뒷일? 뭐, 4년 뒤에?”

 

  유희는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내가 우리집 사람인 거 밖에 사람들은 모를 텐데 뭔 상관이야? 내 이름이 우리나라에 한둘이야? 나중에 시간 지나서 학교 사람들이 그때 차유희가 저 차유희였어 하다가 얼굴 다른 거 보면 성형했겠지 싶겠지, 지들이 뭐 어쩔 거야 안 그래?”

 

  “네 인생이야 차유희. 다른 애가 네 인생을 것도 4년씩이나 사는 건데 걔가 네 이름으로 실수라도 해봐. 그 책임…….”

 

  “오빠, 아빠 못 믿어? 원래 이렇게 소심한 성격이었어? 그런 걱정은 대체 왜 해?”

 

  “질병 문제면 입학하자마자 휴학 가능해. 안 되면 되게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만 애처럼 굴…….”

 

  “진짜 오빠 나한테 왜 그래? 내가 뭐 초등학교 선생님하겠대? 학교 만들 거라고 했잖아! 엄마 아빠가 다 괜찮다는데 다 그러라고 하는데 왜 오빠만 지랄이야 짜증나게!”

 

  유희는 보고 있던 잡지를 바닥에 내팽겨치며 일어섰다. 유한은 화를 억누르며 계속해 유희를 주시했고.

 

  “그리고 오빠가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 가졌다고! 언제부터 나한테 이렇게 신경썼다고 이래? 진짜 재수없어!”

 

  결국 울음소리를 내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 유희로 인해 그는 이마를 짓눌렀다. 이미 주사위는 일찌감치 던져졌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단 생각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유희를 설득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더 이상의 여지가 없는 걸 마지막으로 확인한 유한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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