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
레이가 과거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12살의 그는 저질 체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지난번 마을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몸을 격렬하게 썼더니 다음날 몸살이 나버렸다.
아직은 연약한 그의 몸을 생각하지 못하고 용병의 거친 싸움법을 썼으니 남을 탓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몸이 이런 수준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은 레이는 그 후로 매일같이 마을 주변을 뛰며 체력을 길렀다.
처음엔 다들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하는 레이를 보며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만 뛰어도 지쳤지만, 지금은 비약적으로 체력이 상승하였다.
체력을 키운다고 마나를 축적하는데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해가 진 후에는 마나호흡법을 시행하여 미래를 대비하였다,
‘유물의 능력은 굉장하지만 마나가 너무 많이 들었어.’
레이의 유물에 대한 관심은 넘쳐 흘렀지만 실제로 사용해본 것은 죽기 전 그것이 유일하였다.
그의 가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세상의 모든 유물]에 따르면, 이때까지 알려진 모든 유물은 획득하는 순간 유물의 능력과 발동 방법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책에 쓰여 있던 정보는 거짓이 아니었다.
레이 일행이 던전을 공략하였고 그들이 유물[불의 힘이 깃든 검]을 획득했을 때 머릿속으로 정보가 들어왔다.
마나를 주입하면 검신이 불타오르는 능력.
그리고 마나를 주입하지 않은 상태라도 예리함이나 녹이 생기지 않는 등의 지속마법이 걸려있어 명검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고대왕국의 유물은 마나 주입도 그들 시대의 기준에 맞춘 것인지 레이의 마나로는 몇 분간을 지속하는 게 고작이었다.
‘마나만 많았어도 그 자식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었을 텐데’
유물은 호영과의 전투 당시 녀석도 정면으로는 칼을 맞대기 꺼렸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칼을 그의 몸에 찔러 넣기만 한다면 치명상을 안겨 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레이는 마나가 부족해서 유물의 능력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맞추지도 못했다.
마나에 재능은 있어서 아마 지금부터 해서 회귀 전의 나이까지 간다면 유물의 능력을 30분 이상 지속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정도라면 뛰어난 마나 호흡법을 익힌 기사단 장급이나 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레이의 검술은 뛰어난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운 것도 아닐뿐더러 신체적인 능력도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호영을 이길 수 있을까.
그동안 꾸준히 그 생각을 했었고 갈피가 잡혔다.
마나 호흡법과 검술 그리고 유물의 조화.
처음에는 단순히 유물을 잔뜩 가지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검이 스치기라도 해야 상처를 입히는데 이대로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마나 호흡법과 검술이었다.
그가 마나를 몸에 아무리 축적한들 마법사들처럼 손에서 불꽃 화살이나 바람 칼날을 던지는 것은 못 하지만, 마나가 쌓일수록 신체는 더 강하고 빨라졌다.
하지만 아무리 레이 자신의 마나 재능이 뛰어나다 하여도 지금의 마나 호흡법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마나 호흡법이 필요하였다.
어찌 보면 유물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마나가 많아야 마음껏 유물의 능력을 사용할 테니.
검술은 딱히 제대로 된 형식 없이 휘두르는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 줄 것이다.
마나를 잔뜩 축적해 향상된 신체에 뛰어난 검술이 보태진다면 좋은 결과가 예상되었다.
그리고 가장 핵심인 유물들.
마법이 쇠퇴한 지금은 4서클이 대마법사로 불린다.
말이 대마법사지 9서클이 대마법사로 불렸던 고대왕국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많은 수의 유물에 사용된 마법은 지금의 마법사들로는 힘든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물이 값어치 있는 것이다.
뛰어난 마나 호흡법과 검술에 다수의 유물이 합해지면 인간 같지 않은 그 녀석도 죽일 수 있으리라.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 유물을 사용할 만큼을 마나가 받쳐주는 게 기본이고 말이다.
******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소년이 풀숲 사이로 나타났다.
‘토끼가 걸렸어. 운이 좋네.’
덫에 걸린 토끼를 보는 레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용병 일을 하다 보면 간단한 사냥용 덫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 굶어 죽을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덫을 만들어서 설치해도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레이도 여러 곳에 덫을 설치해 두었지만 이번에 걸린 토끼는 나흘 만에 걸린 놈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덫으로 잡은 토끼들은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가죽은 벗겨내어 상점에 가져다 팔았다.
그렇게 팔면서 모은돈이 꽤 되어 지금 잡은 이 녀석의 가죽을 처분한다면 숏소드를 살 수 있을 터였다.
한 손에 토끼를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오니 롭이 한 손을 들어 반겨주었다.
토끼를 본 것인지 레이에게 신나게 달려가던 롭은 발이 엉켰는지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으…. 씨팔”
“롭! 형이 욕하지 말랬지.”
“헉. 잘못했어. 형”
동생이 욕설을 하는 것을 본 레이는 화도 나고 죄책감도 느껴졌다.
처음에 롭이 말끝에 욕을 붙이는 것을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설교를 하고 누구에게 그런 것을 배운 거냐, 마을 아이들에게 배웠냐고 물어봤더니 어이없게도 레이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용병 시절 욕을 습관처럼 사용하였던 그였다,
회귀 후에 수련을 하다가 힘들 때 혼잣말로 한 번씩 욕설을 하였는데 그것을 롭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닳고 닳은 인생이라 괜찮지만 소중한 동생이 그러는 건 싫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자신의 행동거지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레이였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엉덩이 맞을 줄 알아”
“응. 알겠어. 이제 안 그럴게”
눈치를 보며 일어선 롭은 레이에게 천천히 걸어서 다가갔다.
토끼를 바라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햇살이 비치는 호수의 표면 같았다.
“형이 가르쳐준 거는 열심히 하고 있었어?”
“해보기는 하는데 잘 모르겠어.”
레이는 롭에게도 마나 호흡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롭이 어린 나이라 그런지 집중을 하지 못하였고 성과가 나지를 않았다.
부모님에게도 권유해 보았지만 마나 호흡법을 레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시는 눈치셨다.
거듭된 설득에 어쩔 수 없이 따라 해 보셨지만 두 분 다 금방 포기하셨다.
레이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흔한 거도 아닐뿐더러 일하기도 바쁘신 분들이라 마나 호흡법에 매진하기도 힘들었다.
몇 년 안에 레이는 집을 떠나서 모험을 다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없으면 롭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는데 열심이었다.
“형, 나는 언제부터 형 따라 다닐 수 있어?”
“아직은 무리고 조금 더 크면 데려 가줄게”
토끼를 잡아오는 레이가 멋져 보였는지 롭이 자신도 따라다니고 싶다는 마음을 줄곧 내비쳤다.
하지만 현재의 레이는 혹여 몬스터라도 만나면 자신의 몸 하나는 빼낼 수 있지만,
롭까지 보호할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롭의 욕심을 충족시켜 줄 수 없었다.
******
숏소드를 구한 레이는 덫을 놓는 것 외에도 직접적인 사냥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심을 한 것이 일주일 전으로 아직까진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슴을 발견한적이 있었으나 그가 접근하는 동안 달아나버렸다.
활을 사용했다면 좋았겠지만, 레이는 활과는 잘 안 맞았다.
용병이었을 당시 연습을 해보았으나 과녁을 빗나가는 게 태반이었다.
이게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활을 잘 쓰는 동료들을 구했지 직접 쏘는 것은 포기하였다.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마나호흡법,검술,유물구하기.
어느 것도 돈이 안 드는 게 없었다.
그나마 제일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검술로, 도시에 가면 검술교습소가 있었다.
교습비 외에도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꽤 들겠지만 다른 것에 비하면 상당히 싸다고 볼 수 있었다.
상급 마나 호흡법은 솔직히 지금으로는 구하는 게 무리였다.
빨리 익힐수록 효과가 높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용병 일을 하며 번 돈 몇 년 치를 부어서 구한 게 지금 익힌 마나 호흡법이다.
그보다 높은 것은 아무리 적어도 몇 배 이상의 가격일 텐데 토끼나 잡아서는 절대 불가능이었다.
유물은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기도 했다.
레이는 앞으로 발견될 대부분의 유물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 까지 이동하는 비용과 준비물은 만만치 않았고 장비의 수준도 높일 필요가 있었다.
고대왕국의 유물은 일반적으로 던전이나 유적지에서 많이 발견되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적인 힘이 몬스터를 부르는 것인지 유물이 있는 곳에는 몬스터도 있었다.
유물의 능력이 강할수록 몬스터들도 강하고 개체 수도 많았다.
‘내년쯤에는 한 군데 가봐야겠다’
앞으로 발견될 유물 중 가장 빠른 것은 2년 뒤였다.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기 전 그것부터 차지하는 게 최고겠지만, 그곳은 레이가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펠 제국과 이웃하고 있는 바브카 왕국에서 발견되는데 무려 오우거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공략한 용병단이 50명 정도의 꽤 큰 규모였는데 유물을 획득했을 때는 겨우 20명 정도 남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유물은 왕궁에서 아주 비싸게 사 갔고, 용병단은 유물 획득전보다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더 성장했다는 후일담도 들렸다.
크르르….
짐승의 소리에 레이가 흠칫하였다.
그의 고개가 소리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30미터 전방 큰 나무 아래 늑대 한 마리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꿀꺽.
레이의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어.’
회귀 후 처음 맞이하는 위기였다.
허리춤에 위치한 숏소드를 뽑아 드니 전신에 긴장감이 돌았다.
천천히 늑대를 향해 다가가던 레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굶은 지 오래 된 건지 전체적으로 앙상하였고, 뒷다리에는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무리에서 쫓겨난 녀석이구나.’
왜 쫓겨난 것인지 이유 따위는 알 필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늑대는 레이를 노리고 있고, 레이 역시 늑대를 노린다는 사실이었다.
전생에서 늑대를 안 잡아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늑대보다 더 위험한 녀석들과도 많이 싸워 이겨온 그였다.
단지 지금은 12세의 몸이라는 게 걱정이 될 뿐이었다.
레이와 늑대 간의 간격이 점점 좁혀졌다.
둘 사이에는 팽팽한 실 같은 전운이 감돌았다.
서로의 간격이 5미터 까지 좁혀졌을 때 늑대가 달려들었다.
상처 입은 뒷다리가 영향이 있는지 기세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두어 번 도움닫기를 한 늑대가 레이의 목을 노리고 점프하였다.
“내가 만만해 보이냐, 이 똥개 새끼야.”
레이는 침착하게 늑대가 뛰는 것을 보고 나서 빠르게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목표물을 놓쳐버린 늑대는 허공에 몸을 던진 꼴이 되었다.
레이가 재빨리 몸을 틀어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늑대는 뒤에서 달려드는 적을 향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든 레이가 이미 상처 나 있던 늑대 뒷다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칼날이 초승달을 그렸다.
촤악
늑대의 근육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깨갱거리는 늑대의 비명이 산속에 울려 퍼진다.
레이는 쉬지 않았다.
베어낸 자세에서 팔을 굽혀 그대로 찌르기를 하였다.
늑대의 항문에 칼이 깊게 박혔다.
늑대 주둥이가 벌어지며 켕하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레이는 힘을 주어 칼을 다시 빼냈다.
바닥에 쓰러진 늑대가 꿈틀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잠시 후 움직임이 멎었다.
늑대의 사체에 다가가 다시 한 번 칼을 쿡 찔러본 레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니 긴장이 풀리면서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너무 긴장해서 그렇지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의 레이라면 상처 입고 굶주린 늑대가 아니어도 잡아낼 수 있었다.
늑대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라는 문제일 뿐.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녀석을 쳐다보니 굶주려서 그런 것인지 가죽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윤기도 없었고 듬성듬성 털도 빠져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늑대의 가죽이기에 만족스러운 금액을 건질 수 있을 터였다.
레이는 더 쉬고 싶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 냄새를 맡은 다른 것들이 방문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늑대의 다리를 잡아서 끌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가죽이 상할 테니 포기하였다.
그가 늑대를 집어 들어 왼쪽 어깨 위로 올렸다.
다행히 늑대가 생각보다 무겁지는 않았다.
마을로 돌아가는 중간중간 쉬었더니 도착할 때쯤에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허억-! 늑대... 레이?”
마을을 지키던 자경 대원이 놀란 눈이 되었다.
처음에는 늑대를 보고 놀라고, 그 늑대를 잡아온 게 레이라서 또 놀랐다.
또래 아이답지 않은 행동으로 마을에서 유명한 레이였지만 늑대를 잡아오는 건 그의 상상을 넘어섰다.
“늑대는 또 어떻게 잡은 거냐. 몸은 안 다쳤어?”
“운이 좋았어요, 제임스. 이 녀석 상처 입은 상태였거든요”
제임스는 레이가 덫을 설치한다고 마을밖을 매일같이 왔다 갔다 하다보니 꽤 친해진 사이였다.
그리고 실제로 먹은 나이가 있는지라 레이는 또래 아이들보다는 나이든 어른들이 더 편했다.
“이따가 우리 집에 오시면 고기 좀 드릴게요”
“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고맙다, 레이.”
늑대고기가 솔직히 맛있는 고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임스가 귀족처럼 고기의 질을 따질 만큼 자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빨리 시간이 흘러서 교대자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레이를 바라보는 제임스는 벌써 침이 꼴딱거리며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