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숲 속에 두 사람이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덫에 걸려 축 늘어진 토끼가 한 마리 보였다.
“형, 이렇게 설치하면 되는 거 맞아?”
“잘했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롭.”
레이는 롭에게 토끼잡이 덫을 어떻게 설치하는지 가르치고 있었다.
가르친 대로 금방 따라 하는 것을 보며, 글을 읽을 줄 아는 레이 자신의 동생이라 그런 것인지 머리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덫을 새로 깔고 나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일어섰다.
레이는 14살이지만, 전생의 16살 때 만큼이나 성장해 있었다.
그의 허리춤엔 검집이 걸려있었고, 가슴부위를 보호하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죽으로 이루어진 토시와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몇 달 전에 마을을 떠나 유물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돈이 잘 안 모였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어서 아직 출발을 못 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것들을 뚫고 무리해서라도 갈 만큼 급한 것은 아니었기에 사냥과 수련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마나 호흡법은 형이 없어도 매일 해야 하는 거 알지?”
“응,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숲에 들어가면 안 되고, 마을이 보이는 곳 까지만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
“형, 도대체 하루에 몇 번씩 물어보는 거야. 나 바보 아니라구.”
예전부터 레이를 따라 다니고 싶어 하던 롭이었다.
롭이 마나 호흡법을 꾸준히 익힌 결실이 있었는지 얼마 전부터 마나를 느끼게 되었다.
그 뒤로 덫을 이용한 사냥에 데리고 다녔는데, 숲 속 깊은 곳에 사냥을 갈 때도 따라가보고 싶다고 한 번씩 말을 꺼내는 게 레이는 불안했다.
똑똑한 아이니 안 그러겠지만, 혹시 자신이 마을에 없을 때 숲에 들어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숲 안쪽의 늑대나 곰도 무섭지만, 몬스터가 더 무서운 상대야.”
“그렇지만 몬스터는 며칠을 가야 할 정도로 멀리 있다면서?”
“그래도 조심해야 해. 마주치면 형도 이길 자신이 없거든.”
롭에게 겁을 주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블린이나 코볼트 정도라면 3마리까지는 상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은 해 뜰 때 숲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만 가는 레이였다.
레이는 그동안 숲에 사냥하러 다니면서 마을의 사냥꾼들과도 교류를 나누었다.
사냥꾼들은 숲 속에 집을 지어두고 며칠씩 있다가 오기도 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3일 거리에 고블린 백여 마리가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냥을 나온 고블린과 마주칠 때도 가끔 있다고 한다.
“진짜 형 없을 때 들어가면 안 된다?”
“어휴…….”
한 손에 토끼를 들고서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형을 보며 롭이 한숨을 내쉬었다.
******
“꼭 가야 하는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제 실력 아시잖아요”
“몸만 컸지 아직 어린아이인데...”
“늑대 2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서 이기는 어린아이가 어디 있어요.”
싱그레 웃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레이였다.
어머니 옆에 아버지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예전부터 이어진 설득에 이미 납득 한 뒤였다.
처음 그가 세상 경험을 넓히고 싶다며 두 달 정도 여행을 하고 온다는 소리를 꺼냈을 때, 그의 부모님은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만 지었다.
계속 이어지는 요청에도 반대하였지만, 숲에서 맹수를 사냥해오는 모습과 꾸준한 설득에 얼마 전 드디어 허락해 주었다.
‘드디어 내일이다.’
전생에서는 17살 때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왔지만, 지금은 달랐다.
겨우 14살임에도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가는 것이다.
유물만 찾고 돌아올 것이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레이는 가방에 빠진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보았다.
가는 길 중간에 다른 마을에서도 보급을 할 예정이라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짐이 꽤 많았다.
‘후우... [아공간 주머니]를 언제 구하지.’
고대왕국의 유물 중 [아공간 주머니]는 비교적 흔한 편이었다.
제국의 후작 이상급 귀족 가문에는 하나 정도씩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황궁에는 귀족 가문의 그것들을 합친 만큼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겉은 작은 주머니지만 작은 집 하나만큼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신비한 물건.
유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많은 물건을 보이지 않게 옮길 수 있다는 효과 덕분에 전쟁에서 쓰임새가 많은 중요한 유물이었다.
일례로 수십 년 전 제국이 영토 확장 전쟁을 하였을 때 일이다.
선전포고를 하기 전, 제국은 수백 명의 정예병을 일반 여행자로 가장시켜 적국의 영지 산리토 내부에 미리 침투시켜 두었다.
산리토를 통치하던 영주는 제국의 침략소식을 듣고 급히 다른 영지로 지원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외부의 경계를 강화함과 동시에 성내의 외부인 중 무기소지자들을 조사하는 등 만전을 기하였다.
며칠이 흘러 제국군이 산리토에 도착해서 그 앞에 진을 쳤다.
진을 치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인 그날 밤이었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서 관리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철제방어구와 창을 소지한 채로 나타났다.
내외부에서 협공을 받은 산리토는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제국의 영토로 바뀌었다.
[아공간 주머니]는 레이의 기억대로라면 앞으로 2개 정도 더 나올 물건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알아도 지금의 레이로는 공략하기 위험했다.
각각 6년, 13년 뒤에 발견될 물건이니 아직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급할 것은 없었다.
‘일단 지금 가능한 것부터 하자’
이번에 노리는 것은 대부분의 유물보다 획득 난이도가 쉬운 편이었다.
원래라면 10년이 더 지나서 발견 되겠지만, 그런 연유로 가장 우선하여 구하려는 것이다.
이것만 획득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좀 쉬워질 것 같았다.
******
“레이, 몸조심해서 다녀와야 한다.”
“형, 빨리 돌아와야 해~”
해가 떠오르려는 새벽, 레이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자신감은 충만했고 장비와 돈도 충분히 준비하였다.
레이의 설득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표정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신난 얼굴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였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을의 입구로 가자 자경 대원 제임스에게 소개받은 사람이 있었다.
퉁명스러운 얼굴에, 텁석 한 수염을 기른 그의 옆에는 갈색빛 털을 가진 말이 서 있었다.
말은 수레를 끌고 있었는데 수레의 위에는 약간의 건초더미와 술통이 있었다.
그는 레이가 사는 테츠마을과 라쿤영지를 오가며 물품을 조달하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씨가 소개해줘서 왔습니다.”
“그래, 늦지 않게 잘 왔구나. 해가 뜨면 버리고 갈 생각이었어”
“하하하...”
“흠. 14살이라더니 생각보다 크군. 저 뒤에 대충 타”
알겠다고 대답한 레이는 재빨리 수레 위로 올라가 건초더미 옆에 앉았다.
레이가 짐칸에 착석한 것을 본 마부도 마차에 올라 말의 고삐를 당겼다.
다각 거리며 천천히 걸어가던 말이 차츰 속도를 내었다.
선선한 바람이 레이의 얼굴을 스쳐 갔다.
눈을 감으니 용병을 동경하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설렜다.
여관 일을 하던 당시의 자신이 꿈꾸던 건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감은 눈을 다시 떴을 때 레이의 파란 눈동자에 광채가 돌았다.
‘기다려라, [신속의 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