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는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서 있엇다.
그의 눈에 보이는 마을은 예전에 들었던 그대로 폐허였다.
건물은 부숴지고 무너져 멀쩡한게 별로 없을 정도였다.
수백명이 살았을듯한 마을은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0년 뒤에 유물이 발견되었을 때는 코볼트가 한 무리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것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거 라고는 무너진 담장을 타고 자라난 담쟁이덩굴들 뿐이었다.
전투를 각오하고 왔지만 싸우지 않고도 유물을 얻을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처럼 발걸음도 빨라지려 했지만, 레이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하게 걸었다.
회귀전에 그가 죽을때까지 몸도 크게 안 다치고 용병생활을 17년이나 할 수 있었던건 경계심이 많은 성격탓이었다.
마음가는대로 행동했다면 죽었을지 모르는 위기도 그런 성격덕에 살아난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마을의 입구로 까지 도달한 레이는 갑작스레 다리를 굽힌뒤 몸을 바닥에 붙였다.
‘코볼트 놈들 건물안에 있었어!’
산 위쪽에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안 보이던 코볼트였다.
하지만 마을의 입구까지 오자 무너진 집의 담벼락 안 쪽에 녀석들이 있는게 보였다.
지금 레이의 눈에 보이는건 총 3마리였다.
고블린보다는 조금 큰 키에 인간과는 약간 다른 생김새의 얼굴.
그들이 있는곳 근처에는 동물의 뼈 같은게 보였다.
아마도 녀석들이 먹어치운 흔적이리라.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들은 아직 레이를 발견하지 못 한듯 하였다.
놈들의 소리가 레이의 귀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들려도 해석할 재간은 없었다.
‘3 마리라면 이길수 있어. 그런데 저것들 보다 많으면 어쩌지...’
레이의 나이때 코볼트 3마리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14살의 나이지만 20년동안 칼밥을 먹었고 마나도 2년치가 축적되어 있었다.
또래중에 현재의 레이보다 강한 아이는 제국에서도 열 손가락안에 꼽을수 있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뛰어난 선생에게 검술과 마나호흡법을 배우고 재능까지 우수한 귀족가의 자식.
그게 아니라면 하늘이 내린 천재.
레이역시 마나에 대해서는 커다란 재능이 있지만 저들에 비해서는 밀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미래를 알고 있다.
모든게 아니라 일부만 알고 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레이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자신보다는 코볼트가 밤눈이 더 밝기때문에 야습은 의미가 없었다.
해가 떠 있을때 결판을 내야했다.
한 발씩 조심스럽게 코볼트들이 있는 집의 벽까지 다가갔다.
신전까지 조용히 숨어서 들어가는 것도 생각 했지만 들켰을 경우가 문제였다.
마을안에 있는 수많은 코볼트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몇 마리 죽이고 시작하는게 옳다는 판단이었다.
벽에 붙어있던 레이가 작은 돌을 옆으로 던지니, 바닥에 떨어지며 톡 하고 소리를 내었다.
코볼트 한 마리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녀석은 어디서 소리가 난 것인지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담장의 끝부분 모퉁이에서 작은 돌이 하나 굴러왔다.
의아해진 코볼트는 돌이 굴러나온 모퉁이쪽으로 발을 옮겼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목이 꿰뚫린 코볼트는 켁 하는 소리만 남기고 바닥에 쓰러졌다.
시체가 바닥과 부딪히며 난 소리에 또 다른 코볼트가 한 마리 더 나왔다.
동료를 찾아 움직이던 녀석 역시 똑같은 꼴이 되었고, 마지막 한 마리를 향해 레이가 움직였다.
레이가 달려서 집 안으로 들어갔을때 녀석은 앉아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이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지만, 그 동안 칼은 이미 코볼트의 목 근처까지 도달하였다.
발이 엉킨건지 놈은 뒤로 넘어졌고 목이 반만 베였다.
방금 이 녀석이 일어서며 외치는 소리를 들은건지 레이의 귀에 캉캉 짖으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는 급히 바닥에 쓰러진 녀석에게 달려가 숨통을 끊었다.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무너진 담벼락을 통해 3마리가 더 들어왔다.
녀석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레이에게 달려들었다.
레이는 재빨리 움직여 벽의 모서리로 이동했다.
한 놈이 몽둥이 같은것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뒤에 다른 놈들도 그 녀석의 뒤를 따랐다.
몽둥이가 레이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졌다.
‘이거 막으면 다른 녀석들한테 공격당한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몸을 틀어서 회피후 발로 뻥 차버렸다.
발에 차인녀석은 뒤로 넘어지며 다른 놈들에게 부딪혔다.
뒤로 날아간 녀석에게 한 놈이 길을 막혔고 그사이 레이가 다른 놈에게 다가갔다.
숏소드를 휘둘러 가슴부근을 베고 왼 손을 써서 단검을 역수로 뽑았다.
뽑아든 단검을 기세를 살려 그대로 목과 어깨사이에 찔러 넣었다.
레이가 한 놈을 정리하는 사이 그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가 뒤에서 수평을 그리며 날아왔다.
후웅 하고 바람이 퍼져서 날아오는 소리를 들은 레이는 단검을 놓고 몸을 굴려 빠져나갔다.
몸을 돌리니 따라온 코볼트가 다시 공격을 위해 하늘로 몽둥이를 치켜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녀석이 옆쪽으로 다가와 양손으로 레이를 잡으려 했다.
레이는 그를 잡으려는 녀석에게 잡히기전 먼저 몸통박치기를 했다.
고블린보다 조금 큰 녀석의 얼굴에 레이의 어깨가 박혔다.
쿠당탕탕 거리며 뒤로 날아간 코볼트는 얼굴뼈가 다 무너져 고통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정신 못차리는 녀석을 두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녀석에게 돌진했다.
가볍게 피한뒤 복부를 깊게 베어냈다.
갈라진 틈 사이로 피와 장기가 흘러나왔다.
레이는 돌아다니며 모든 코볼트를 확인 사살하고 단검을 회수했다.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추가로 적들이 더 올까 긴장했지만 바깥은 조용하기만 했다..
힘겨운 전투 뒤라 앉아서 쉬고싶어도 피바다인 곳에서 쉴 수는 없었다.
마을에 더 이상 코볼트는 없는것 같았지만 레이는 신중을 기하며 외곽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을 바깥으로 돌아서 미리 봐둔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입구에 선 레이는 긴장이 되었다.
만약 유물을 가진 해골이 없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신전의 내부는 조용했고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있었다.
애초에 크지 않은 곳이었기에 그가 찾던 해골은 금방 발견했다.
해골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침대 옆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위에는 먼지가 잔뜩 쌓인 책이 있었는데, 레이는 이것이 일기라는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책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옆에 누워있는 해골만 남은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 신전에서 자랐고, 성장후 모험가가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이후 세계를 떠돌며 이름을 날리던 그는 나이를 먹고 병이 들어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낄수 있었다.
죽을때가 되니 고향이 그리워져서 자신이 자란 신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 것이 일기의 내용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니 확실히 그가 살았던 흔적 들이 남아 있었다.
레이는 죽은자의 명복을 빌어주고 나서 해골의 손을 쳐다봤다.
반지가 보였다.
먼지가 쌓이긴 했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혹여 부서질세라 해골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조심스레 빼냈다.
먼지를 훅 하고 불어내니 은백색의 반지에 마법사들이 쓰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레이는 심장이 터질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정을 뗄때도 이 때보다는 덜 두근거렸던것 같았다.
왼손 중지 손가락이 반지의 구멍에 살짝 닿았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그의 등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레이는 심호흡을 한 후 손가락을 과감하게 한 번에 집어 넣었다.
“허억!”
반지에 담겨진 능력과 사용법이 그의 머리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저도 모르게 기함을 하였다.
잠시 멍해진 레이가 모든것을 다 깨달은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씨바.... 그랬었구나. 그런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