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롭이 자신을 따라 욕을 하는 것을 본 뒤 입 밖으로 욕이 안 나오도록 조심하던 레이였다.
그러나 [신속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 순간 머릿속으로 정보들이 흘러들어왔고, 그것은 그를 충격에 빠트렸다.
레이는 신전의 입구로 이동한 뒤 반지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시 동어를 외쳤다.
“가속”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몇 번 하고 난 레이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 같은 건 정하지 않고 신전 근처를 미친 듯이 달렸다.
그 속도는 늑대와도 같았다.
평소의 레이보다 2배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그렇게 달리던 레이는 다시 신전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지친 표정으로 숨을 크게 쉬며 천천히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 자욱한 신전의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나 호흡법을 연공했다.
마나 호흡법을 마치고 그가 눈을 떴을 때 시간이 얼마나 지나버린 것인지 바깥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는 일단 해골이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반지를 쳐다봤다.
‘마나 친화력이 부족하던 3공자가 능력을 쓸 수 있었던 건 비전의 물약 같은 게 아니었어.’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을 때 레이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에는 가속 능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불의 힘이 깃든검]에 지속능력으로 예리함 마법이 걸려 있었듯이, [신속의 반지]에는 마나 집중 마법이 걸려있었다.
마나 호흡법을 할 때는 평소보다 많은 마나를 불러모으는 마법이었다.
레이가 직접 몸으로 겪어본 결과 평소보다 2배 정도 더 모였다.
게다가 마나 호흡법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약하지만 조금씩 모이고 있었다.
마나에 재능이 없는 자도 실전에서 유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물건.
유물의 능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이것은 그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할 만한 것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능력임에도 소문이 안 났던 것은 [신속의 반지]는 발견된 게 역사상 하나뿐이었고, 클리앙 공작가에서 입단속을 잘 시켰기 때문이다.
가속의 능력이 알려진 것도 전장에서 사람들이 직접 보고서야 확인이 된 것이지 마나 집중마법에 대해서는 아마 극소수만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가장 구하기 쉬운 편이라 이곳에 온 것인데, 이런 횡재일 줄이야!”
레이의 목표는 많은 유물을 가지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올 유물들을 독식하여 부자가 되고 출세도 하고, 복수까지 이루려 했다.
이대로 무난히 성장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유물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장에서 공을 세워 출세하고 부자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영에게의 복수는 확신하지 못했다.
유물의 힘을 빌려 그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마나가 필요했다.
지금 사용하는 마나 호흡법이 아니라 더 뛰어난 마나 호흡법을 구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에 구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게 언제 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도 못 한 [신속의 반지]의 능력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다음 유물을 발견하러 가는 시일도 앞당길 수가 있을 터였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레이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리해서 어두운 밤에 출발할 이유는 없었다.
식량도 남아있고 시간상으로 쫓기는 것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폐허가 된 신전의 앞마당에 햇빛이 들었다.
신전의 입구를 나서는 레이의 눈 밑에는 눈그늘이 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나가 축적되는 재미에 빠져 새벽 늦게까지 마나 호흡법을 하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레이는 기지개를 켠 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비틀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가속”
레이는 빠르게 달렸다.
100미터쯤 이동한 레이는 가속을 멈추고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다시 가속을 사용해 빠르게 달렸다.
‘능력에 익숙해져야 해. 마나 소모량이 상당한 만큼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도록 해야겠어.’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싸움에 충분할 만큼의 마나가 있을때까지 걸어서 가다가, 잠깐만 달려서 마나를 일부 소모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다 밤이 되어 유물을 찾으러 갈 때처럼 나무에다 몸을 끈으로 묶고 잤다.
다음날은 근처에 부락이 있었는지 정찰을 나온 고블린 2마리와 전투가 있었다.
유물을 얻기 전에도 동시에 고블린 3마리까지 혼자서 상대할 수 있었던 레이였다.
여태 유물의 능력을 달리기에만 사용했지 전투에는 사용하지 않아서 이게 본격적인 첫 개시라고 볼 수 있었다.
레이는 고블린과 마주치자마자 바로 가속을 사용하고 달려갔다.
고블린들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레이에게 놀란 나머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정찰대 2마리는 무기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하-, 이거 진짜 굉장한데?”
전신의 속도가 빨라지는 거라 달리기는 물론이고 검으로 베는 속도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속도가 2배라서 전투능력도 2배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물의 능력이 발동되는 동안은 그 이상으로 강해지는 것이었다.
레이가 고블린의 사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 전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질 때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체를 뒤져보니 아랫도리 천 안쪽에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그 주머니를 뜯어내어 입구를 열어보니 은화가 3개 보였다.
인간들의 화폐라 자기들은 쓰지도 않지만, 반짝이는 게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이 잘 풀리려니 이런 행운도 있었다.
레이가 10일을 일해야 받을 돈을 이렇게 획득하다니.
고블린들에게 습격당했을 누군가에게 애도를 표하며 레이는 은화를 챙겼다.
“복수 해 드렸으니 이건 제가 사례비로 가져가겠습니다.”
허공을 향해 말을 하는 레이의 예쁘장한 얼굴에 뿌듯한 기색이 완연했다.
클리앙 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어 갈 때였다.
그래도 유물을 찾으러 갈 때보다는 빠른 속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전에 묶었던 곳이 마음에 들었기에 레이는 다시 그곳에서 숙박하기로 마음먹었다.
“1인실 주시고, 식사랑 목욕할 따뜻한 물도 준비해 주세요.”
고블린에게서 누군가가 남긴 사례금을 획득한 레이는 사치스럽지만 따뜻한 물에 목욕하기로 했다.
사람이 한 명 씻을 만큼의 물을 데우는 것도 나름 큰일이라 꽤 비싼 가격이었다.
식사를 끝낸 후 안내에 따라가 문을 여니 사방이 막힌 아주 작은 방이 있었다.
방의 가운데는 나무통이 있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들어가면 노곤 해질듯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레이는 뜨끈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밀었다.
며칠간 야영하며 몸에 쌓인 피로들이 김과 함께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로 마나가 아주 조금씩 채워 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