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검술교습소 중에서 괜찮은 곳을 알고 싶다. 이거지?”
“예, 그렇다고 제국을 횡단해야 갈 수 있는 그런 곳은 말고요.”
“참나. 제일 좋은 곳은 아무래도 수도인데...”
“수도는 가는 데만 3달은 잡아야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흠.”
레이와 대화를 하는 남자는 뺨에 절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라쿤영지의 용병 길드 마스터였다.
처음 볼 때부터 레이를 좋게 보던 그는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반겨주었다.
“리온 영지가 좋을 것 같네.”
“리온 백작가 말 하시는 건가요?”
“그래. 제국에 리온가가 두 군데는 아니니까.”
회귀 전의 그가 알던 리온 백작가는 몰락한 가문이었다.
그들은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고, 대대로 훌륭한 검사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황태자와는 경쟁하는 사이였던 4황자 측에 섰다가 내전에서 패하여 가운이 기울었다.
흔히 말하는 줄을 잘못 선 것이다.
“레이. 리온 영지에는 검술교습소가 세 군데나 있다고 들었어. 그리고 다들 실력이 좋아서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다 하더군.”
“그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은지는 모르는 거죠?”
“전체적으로 우수하다는 것만 알지 자세한 것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고마워요. 가보고 진짜면 다음에 사례 할 게요.”
그렇게 레이는 리온 영지로 향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가는데 걸으면 1달은 걸리는 거리라 가는 길에 할 수 있는 의뢰도 신청했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시간이 조금 더 들어도 돈을 벌면서 가자는 게 레이의 생각이었다.
리온 영지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 큰 상단이 그쪽으로 이동할 일이 있었는지 많은 사람을 뽑았다.
사람이 많다 보니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보기만 해도 도망칠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일행 중에 리온 영지 출신이 있어서 레이는 그곳에 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리온 백작가는 검술로 유명했지만, 재정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전혀 없는듯하였다.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영지민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지는 않았는지, 레이에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의 입에서 칭찬이 많이 나왔다.
그의 영지 자랑이 끝나고 나서야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리온 영지에 있는 3개의 검술교습소는 그 영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배우러 올 정도로 명성이 높다고 했다.
그곳 검술교습소 출신 중에는 평민이지만 기사가 된 자들도 꽤 있다고 하니 거짓은 아닐 것 같았다.
3개의 교습소 중 현재 가장 우수한 곳은 칼슨 검술교습소로, 질적으로도 우수하고 인원도 가장 많다고 했다.
그다음은 크론 교습소라는 곳이었다.
가장 최근에 생긴 곳으로 5년도 되지 않았지만 괜찮은 실력과 적극적인 홍보로 가파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하였다.
마지막은 데이라는 자가 가르치는 곳이었다.
현재는 셋 중에 좀 뒤처지는 모습이지만, 가장 오래된 곳이라 했다.
이렇게만 들으니 칼슨 교습소라는 곳이 구미가 당겼다.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온 영지 출신 남자의 이어진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칼슨이나 크론은 아카데미 기사 출신인데, 데이는 귀족가의 기사단 출신이라는 말이 있어.”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셋 중에 가장 떨어지는 거죠?”
“처음 검술교습소를 세운 데이가 뒤로 물러나고 그 아들이 운영하고 있거든.”
그렇다며 이해가 갔다.
귀족 가의 기사단 출신인 것은 그 사람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밀리는 건 전혀 이상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간의 전통과 이름값이 있기에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리라.
레이는 그래도 마음이 데이 검술교습소를 우선순위로 뽑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검술을 온전히 이어받기만 했다면 레이에게는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 번 가보고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
레이는 영지의 입구를 통과하기 위한 검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온 영지가 검술로 유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왠지 검문하는 경비병의 모습도 심상찮게 보였다.
“경비대원들의 기강이 잘 잡혀있는 것 같네요.”
“레이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리온 영지에서는 경비대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레이의 옆에는 라쿤영지에서부터 같이 의뢰를 진행 중인 리온 영지 출신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레이가 먼저 말을 안 해주었다면 섭섭했을 정도로, 말투와 표정에는 자부심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누누이 말했지만, 리온 영지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용맹스럽지. 나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말이야. 흐하하하.”
“네. 그러네요.”
자신의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자랑에 레이는 이미 질려버렸다.
처음은 레이가 먼저 교습소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 뒤로 허구한 날 자랑을 해대는 그에게 맞장구를 쳐 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남자가 떠드는 동안 레이 일행의 차례가 되었고, 짧다고는 볼 수 없는 검문을 마친 뒤에야 영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영지로 진입하여 상인 중 대표자와 함께 바로 용병 길드로 향했다.
정산을 마치니 돈이 꽤 되었다.
중간 전투의 수당을 포함하여 은화로 10개나 받은 것이다.
흑빵을 무려 1,000개나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맛없는 흑빵만 사 먹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 돈이면 숏소드를 쓸만한 롱소드로 바꾸고도 남는 돈이었다.
레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 장비를 교체할까 하는 욕심이 났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장인 이야기였다.
‘교습소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일단은 참자.’
그러나 당장 이곳에 온 목적이 있기에 장비 교체의 욕심은 미뤄뒀다.
그가 회귀하고서 처음 숏소드를 샀을 때는 롱소드를 쓰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익숙해져서 지금은 그럭저럭 쓸만하였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란 말이었다.
레이는 천천히 주변 구경을 하며 데이 검술교습소가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가면서 자연스레 영지민들을 보게 되었는데 남녀 가릴 것 없이 대체로 덩치가 건장했다.
실제로 용맹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겉모습은 그럴듯하였다.
이동하는 중 똑같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종종 보였는데, 아마 검술교습생들로 추정되었다.
똑같은 옷은 교습소의 단체복인듯하였다.
가끔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끼리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눈싸움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치고받는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 싸움을 하는 게 꽤 볼만했다.
그런 그들을 지나서 길을 따라 더 가니 멀리 데이 교습소가 레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의 입구 상단에는 데이 검술교습소라고 적혀있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현판은 낡은 티가 났지만 촌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기대감이 차오르며 레이의 발이 점차 빨라지던 찰나였다.
“거기 지나가는 청년, 너무 멋지군. 검술 교습소를 찾아온 건가?”
“네?네...”
길가에 서 있던 파란색 옷의 근육질의 사내가 갑자기 레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분주히 움직이려던 찰나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그의 말에 레이는 당황하였다.
자세히 보니 사내의 옷은 그가 지나오며 봤던 단체복과 똑같았다.
‘데이 검술교습소 가는 길에 있는 걸 보니 그쪽 사람인가?’
레이가 잠시 혼자서 생각하는 동안 사내는 말을 이었다.
“딱 보니까 리온 영지 검술교습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나 보군. 그렇다면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지. 그것은 바로 리온 영지 최고의 검술교습소. 크론 교습소라네!!”
별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내는 레이를 향해 열정적으로 말을 토해냈다.
그의 말을 듣고 정리해보니 크론 교습소의 사람이 홍보하러 나온 것이었다.
크론 교습소는 가장 늦게 생겼지만, 적극적인 홍보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했다.
그 적극적인 홍보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레이는 몸으로 겪게 되었다.
“저기 데이 교습소 쪽에 먼저 가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들려볼게요.”
“그러지 말고 바로 우리 쪽으로 가보자고. 지금 특별히 6개월 교습비를 5개월 가격에 해주고 있거든.”
“죄송해요. 다음에 들릴게요.”
“허 참. 데이 교습소가 이름 날리던 것도 옛날이지 요즘엔 영 아닌데 말이야.”
이대로라면 계속 붙잡혀 있을 느낌이 들어 레이는 고개를 꾸벅하고 숙인 후 빠르게 달아났다.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움직였다.
자리를 어느 정도 벗어났다 싶을 때 뒤를 보니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레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면 크론 교습소에 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급검술을 배우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온 것이기에 그곳은 제일 뒷순위에 있었다.
크론교습소보다는 칼슨 교습소가 사람도 많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이 검술교습소가 그의 기대에 못 미친다면 칼슨 교습소로 향할 예정이었다.
파란 옷의 근육질 사내를 벗어난 레이는 어느새 목적지로 삼았던 데이 검술교습소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교습소의 정문은 열려 있었는데 사람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발을 내디뎌 입구를 통과하니 또 다른 건물이 안에 보였다.
건물의 옆으로는 그 뒤로 향하는 작은 길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까지 다가가 문을 여니 복도가 나타났고, 그것을 따라 몇 개의 문이 이어져 있었다.
레이는 문을 하나씩 보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제일 안쪽에 위치한 문 앞에 그가 서서 보니 교습소장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레이는 그 문의 앞에 다가가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하는 소리가 나무로 된 문을 타고 안으로 전해졌다.
잠시 기다려도 아무 반응이 없기에 레이는 조금 전보다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탕탕하고 나무를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둘.셋.
숫자를 천천히 셋까지 세어봐도 문 안쪽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아무 반응이 없기에 답답해진 레이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덜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더는 손잡이가 내려가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었던 것이다.
“내 방문은 왜 열려고 그러는 거지?”
들어온 건물의 입구 쪽에서 갑작스레 소리가 들려왔다.
죄를 지은 마냥 흠칫 놀라서 돌아선 레이의 눈에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그 남자는 붉은 빛이 도는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턱에는 면도를 며칠 안 한 듯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있었다.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왜 남의 방문을 멋대로 열려고 하는 거냐?”
한 걸음. 두 걸음.
붉은 머리칼의 남자는 저벅저벅 걸으며 레이에게 다가왔다.
아까는 알 수 없었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서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