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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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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인연
작성일 : 17-07-17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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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는데 무슨 소린지도 모를 환청까지 들리자 서희가 금세 불안한 얼굴을 했다.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서늘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제가 그 휴대폰 주인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서희가 영문도 모른 채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곧장 상대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지금 어디십니까?

 

 "네?! 아, 저어, 제가 지금 회사인데요……."

 

 -회사가 어딥니까?

 

 남자가 짧게 질문을 했다. 목소리가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 같았다.

 알 수 없는 한기에 서희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네?! 아, 저기 DG 프로덕션이라고……."

 

 그러자 조금 전까지 침착하던 남자의 음성에서 약간의 동요가 느껴졌다.

 

 -방금 DG 프로덕션이라고 했습니까?

 

 "네?! 네……."

 

 -본사에 근무하십니까?

 

 "네……."

 

 마치 심문을 받는 듯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어느새 죄인의 신분이 된 것 같은 서희가 더욱 긴장한 얼굴을 했다.

 곧이어 남자의 차가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네?! 아, 저어……."

 

 그때였다.

 갑자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다급해진 서희가 통화하고 있던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 있다 제가 다시 연락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상대의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서둘러 전화를 끊은 서희가 반대쪽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뭐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요?

 

 3팀 막내 작가 한유리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 이 휴대폰이 자신의 것이란 얘기였다.

 

 그럼, 이 휴대폰은 뭐지?!

 

 서희가 방금까지 통화했던 휴대폰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세요? 윤서희 씨!

 

 유리의 짜증 가득한 음성에 서희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네?! 아, 죄송해요. 제, 제가 잠깐 이상한……."

 

 -됐고. 지금 어디예요?

 

 늘 그렇듯 서희의 말을 자르며 자신의 용건만 말하는 한유리였다.

 서희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네?! 아, 지금 엘리베이터 앞인데요……."

 

 -잘 됐다. 나 대신 우리 팀 회의 준비 좀 해놔요.

 

 "네?! 지, 지금요?"

 

 아직 사무실에 얼굴도 못 비췄는데.

 나중에 뒷말이라도 나오면 어쩌지.

 

 서희의 얼굴에 금세 걱정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런 서희의 사정 따위 알 바 없는 한유리였다.

 갑자기 아픈 목소리를 내며 하소연을 했다.

 

 -나 지금 머리가 너무 아프거든요. 좀 늦을 거 같으니까 대신 좀 하라고요.

 

 아무래도 어제 늦게까지 마신 모양이다.

 휴대폰 목소리에서 진한 숙취가 느껴졌다.

 

 -어제 내가 정리하라던 자료는 다 끝냈죠?

 

 "네……."

 

 -팀장님한테는 내가 따로 얘기할 거니까 괜히 이상한 말 하지 말고요. 서둘러요.

 

 어느새 멀쩡해진 목소리로 유리가 주의를 주더니 냉큼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싸늘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서희가 다급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보아하니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했다.

 오랜 시달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직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늦게 전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탁받은 일을 제때 하지 못하면 어떤 곤욕을 치르게 될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한유리는 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다.

 정신을 놓고 있다간 한순간에 찔리고 만다.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서희가 답답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봤다.

 내려오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러자 서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상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5층 지원실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휴대폰은 이미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단숨에 5층에 도착한 서희가 지원실에 들러 회의실부터 예약했다.

 워낙에 회의가 잦은 곳이다 보니 예약은 필수였다.

 다행히 아직 남아 있는 회의실이 있었다.

 

 예약을 마친 서희가 다시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이번엔 7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이 속해 있는 예능국이 있는 곳이었다.

 7층에 도착하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서희가 자신의 자리로 뛰어갔다.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비품실 바로 옆이 바로 그녀의 자리였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책상.

 구입한 시기조차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컴퓨터가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주인을 반겨주었다.

 

 서희가 서둘러 컴퓨터 전원을 켰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켜지는 컴퓨터.

 조급한 마음에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희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평소에도 짜증이나 화를 내는 일이 없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유독 마음이 차분했다.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컴퓨터가 켜지자 서희가 어제 정리한 자료를 프린터로 출력하기 시작했다.

 인원수에 맞게 출력한 자료를 정리하는 모습이 매우 능숙해 보였다.

 때마침 회의실 예약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다.

 

 "좋았어!"

 

 문자를 확인한 서희가 자료를 챙겨 들고 계단을 통해 회의실이 있는 5층으로 내려갔다.

 

 서둘러 예약된 회의실에 도착한 서희가 자료를 보기 좋게 나누어 놓았다.

 의자까지 잘 정돈 하자 대충 회의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다 된 건가?"

 

 다행히 늦지 않게 잘 끝낸 것 같은데.

 어쩐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아, 맞다! 간식거리."

 

 불현듯 쓰린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도 지금처럼 회의 준비를 대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다 잘하고도 간식거리 때문에 트집이 잡혀 결국 한바탕 싫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었다.

 

 '가만 보면 윤서희 씨는, 참 기본도 안 돼 있는 사람 같아.'

 

 그날도 한유리는 서슴없이 날카로운 가시를 드러내며 서희에게 작은 상처를 남겼었다.

 아픈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자 새삼스레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가롭게 추억이나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서둘러 지하 매점으로 향했다.

 평소 예능 3팀 사람들이 즐겨 먹던 간식들을 떠올리며 몇 가지를 구입한 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

 어쩐지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5층에 도착해서 막 회의실에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띠로링 띠로링!'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아니었다.

 

 "아!"

 

 아까 가방에 넣어두었던 다른 사람의 휴대폰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갖고 있다는 게 생각난 서희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휴대폰 주인입니다.

 

 아까의 그 서늘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이 서희를 짓눌렀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지금 연락을……."

 

 -아까 DG 프로덕션 본사에 근무하신다고 했습니까?

 

 남자가 서희의 말을 자르며 대뜸 물었다. 목소리가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네……. 근데 제가 정식 사원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또다시 남자가 말을 자르며 물었다. 군소리를 싫어하는지 남자는 자신의 용건에만 집중했다.

 

 "저어, 윤서희라고 파견……."

 

 -지금 본사 건물 어디에 계십니까?

 

 "네?! 저, 지금 3층 회의실에……."

 

 서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이것저것 대답을 하던 서희가 잠시 멍한 얼굴로 끊어진 휴대폰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불길한 기운에 휩싸였다.

 

 아,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남자의 반응이 이상하다.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으며 신원을 확인하더니 대뜸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질 나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섣불리 대응했다간 도둑으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불안해진 서희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택시!

 

 택시에서 내릴 때 분명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자신의 휴대폰은 가방에…….

 

 아!

 

 그제야 남자의 휴대폰이 어떻게 자신의 손에 들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택시에서 주운 것이 분명했다.

 똑같은 기종의 휴대폰이다보니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지각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던 터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기억이 나서 다행이다.

 나중에 만나면 오해하지 않게 분명하게 말해둬야지.

 

 서희가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한 채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일단은 회의 준비가 먼저였다. 다행히 회의실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사 온 간식을 보기 좋게 놓고 나서야 마침내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간식을 떠올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좋지 않은 기억이 또 하나 늘어날 뻔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참 침착하게 행동한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허둥대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을 텐데.

 큰일이라도 해낸 것마냥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막 돌아서려던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윤서희 씨?"

 

 "네?!"

 

 깜짝 놀란 서희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나 멋진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었다.

 서희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상에!

 

 정말로 이런 사람이 존재하다니.

 눈앞에 두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존재감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호수의 빛깔처럼 영롱한 저 눈동자에 별 하나.

 타협할 줄 모르는 도도함이 느껴지는 저 콧날에 별 하나.

 당장에라도 근사한 저음이 흘러나올 것 같은 저 붉은 입술에도 별 하나.

 매끈하고 날렵한 선을 가진 저 섹시한 몸매에 또 별 하나.

 끝으로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저 존재 자체에 왕별 하나.

 

 이렇게 별 다섯 개를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남자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정말 사람이 맞기는 한 걸까.

 허락만 해준다면 직접 한번 만져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서희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붉어졌다.

 

 이렇게 빛나는 사람 앞에 서 있자 어쩐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앗! 그러고 보니!

 

 맙소사!

 자신은 지금 씻지도 않은 상태였다. 옷도 어제 입고 잤던 그대로다.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씻고 옷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게다가 회의 준비를 한다고 뛰어다니는 바람에 아마 몰골은 더 엉망이 돼 있을 것이다.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상상이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서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치 카멜레온처럼 얼굴색을 다채롭게 바꿔가며 안절부절못하는 상대가 신기했던지 남자는 더욱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남자의 노골적인 시선에 서희가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어디 숨을 곳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회의실 문 앞을 딱 하니 막고 서 있는 저 남자 때문에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마치 그가 던져놓은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비만을 빌고 있는 꼴이었다.

 

 결국, 남자가 자비를 베풀었다.

 

 "방금 통화했던 휴대폰 주인입니다."

 

 "네?!"

 

 갑자기 근사한 목소리가 들리자 서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서늘한 시선이 순식간에 서희를 덮쳤다.

 순간 오싹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서희가 남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아! 휴대폰!"

 

 정신이 번쩍 든 서희가 서둘러 가방을 뒤적이더니 남자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 여기……."

 

 서희가 아주 공손한 자세로 휴대폰을 건네자 남자가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리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이것저것 확인을 했다.

 자연스레 서희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지금이야. 오해하지 않도록 지금 말해야 해!'

 

 서희가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긴장이 되고 난리였다.

 

 "저기, 그러니까. 제, 제가 어쩌다가 그 휴, 휴대폰을 갖게 되었느냐면요……."

 

 목소리가 널뛰기하듯 제멋대로 떨렸다.

 긴장감이 최고치를 향해 미친 듯이 치닫고 있었다.

 

 조금 전의 침착함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렸단 말인가.

 야속하기만 하다.

 

 "제가요, 오늘 태, 택시를 자는 바람에 느, 늦잠을 탔거든요?"

 

 아, 이런!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늦잠을 자다가 태, 택시를 탔거든요……."

 

 서희가 누렇게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휴대폰에 있었다.

 

 남자는 가장 먼저 통화기록을 훑어봤다.

 다행히 조금 전 자신과 통화한 것 이외에 아무 기록도 없었다.

 

 하마터면 걸려 온 전화를 저 여자가 받을 뻔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전화를 말이다.

 보아하니 일부러 접근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쪽에서 사람을 보냈다면 저렇게 허술한 상태의 사람을 보냈을 리가 없었다.

 

 남자가 싸늘한 눈빛으로 서희를 바라보았다.

 

 "그, 그때 하필이면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에 또, 그러니까 제가 귀, 귀가 팔랑팔랑……."

 

 아직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움츠러든 모습이 흡사 생선을 훔치다 걸린 고양이 같았다.

 물론 그녀가 휴대폰을 훔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의 설명이 없어도 택시에 두고 내렸다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대로 계속 두면 끝이 안 날 것 같았다.

 

 "사례하겠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에 서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는 지갑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러자 서희가 크게 당황한 얼굴로 마구 손사래를 쳤다.

 

 "앗! 아니에요. 그, 그럴 순 없어요. 전 단지 태, 택시에서 주, 주운 것뿐인데요……."

 

 서희가 펄쩍 뛰며 거절했다.

 그러자 순간 남자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곧이어 그의 차가운 시선이 서희에게 쏟아졌다.

 

 "뒤탈이 생기는 건 질색입니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 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일순간 서희가 꼼짝없이 얼어붙고 말았다.

 

 남자가 지폐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정말 사례를 하려는 듯 보였다.

 서희가 초조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죽어도 저 돈은 받을 수 없다.

 아니, 받아서도 안 된다.

 

 하필이면 자신의 휴대폰이랑 똑같은 기종이라 그만 아무 생각 없이 택시에서 들고 내린 게 전부였다.

 그런 일에 보상이라니.

 

 게다가!

 

 행여나 나중에 돈을 받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땐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결국, 안절부절못하던 서희가 급기야 남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더니 냉큼 줄행랑을 쳤다.

 

 "정말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서희가 달아나버리자 남자는 지폐를 손에 든 채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남자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곧이어 달아나는 서희의 등 뒤로 이글거리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물론 서희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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