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살았다!"
서희가 휴게실로 들어서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오늘도 지각할 뻔했다.
요즘 왜 이러지? 안 그랬는데 늦잠을 다 자고.
게다가 미션과 보상이 어쩌고 하는 터무니없는 꿈까지.
사물함에 가방을 넣어두며 서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만둘 때가 다가오자 마음이 느슨해진 모양이다.
환청으로 병원에 가기 전에 정신부터 차려야 할 것 같다.
정신 바짝 차려, 윤서희!
이미 미운털이 잔뜩 박힌 입장이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비록 그런다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문득 어제 만났던 휴대폰 분실남이 떠올랐다.
통화를 하고 난 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타났다.
그렇다면 일하는 곳이 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얘긴데.
혹시?!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를 본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회사가 같았다면 오다가다 한 번은 마주쳤을 것이다.
게다가 그 정도로 눈에 확 띄는 멋진 남자라면,
스치듯 지나쳤어도 분명 기억을 했겠지.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회사에 일하고 있을 확률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또 한 번 그와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까.
갑자기 서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더불어 심장도 제멋대로 두근두근.
그 순간.
불현듯 남자의 싸늘한 눈빛이 떠올랐다.
아니야! 역시, 다시 마주치면 곤란해!
서희가 금세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남자와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어제는 그 남자도 정신이 없어 굳이 트집 잡을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오해.
괜히 도둑으로 몰려 끔찍한 일을 겪을 바에는 이대로 영영 마주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게다가 마지막에 엄청 무례하게 도망쳤으니 더더욱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참 멋지게 생긴 남자인 건 분명하다.
'앗, 안돼! 정신 차려, 윤서희!'
서희가 또다시 흐물거리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결국,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지만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린 채 서희가 서둘러 휴게실을 벗어났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이렇듯 서희가 궁금해하는 그 존재.
사실 그는 이미 회사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정작 서희만 모르고 있을 뿐.
어째서 그녀만 그의 존재를 모를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그녀와 그런 얘기를 주고받지 않으니까.
이러쿵저러쿵 함께 쑥덕거려 줄 상대가 없으니 당연히 소문에도 어두울 수밖에.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을 만큼 간이 크지도 못하고.
또한, 그럴 여유도 없었다.
늘 어딘가 틀어박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밤늦도록 하거나 혼쭐이 날까 뛰어다니기 일쑤이니.
그렇게 눈치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과 귀가 어두워졌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삶.
그래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삶.
딱한 그녀의 일상이었다.
***
"아드드드드드!"
서희가 요란하게 기지개를 켰다.
마침내 지겨운 프리뷰 작업에도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오늘이야말로 칼퇴근을 노려볼 만했다.
물론 장애물이 없지는 않았다.
'휴대폰 주인입니다.'
앗! 또 생각났어!
근사한 목소리와 함께 또다시 그 남자의 잘난 얼굴이 떠올랐다.
서희가 황급히 허공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잡귀를 쫓는 무당처럼 보였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아까부터 툭 하면 그 남자가 생각나는 바람에 일하면서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더 빨리 일을 마칠 수 있었을 텐데.
어쩐지 분하다는 생각에 서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자 마치 그런 서희가 가소롭다는 듯 또다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난 너의 주인입니다.'
"으악! 무슨 소리야!"
큰일이다. 이제는 아무 말이나 막 떠오르는 지경에 도달해 버렸다.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
아무래도 찬물에 세수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서희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꼬르륵!'
마침 배꼽시계의 알람이 울렸다.
"가만, 지금 몇 시쯤 됐지?"
서희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앗! 벌써 이렇게 되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좁은 공간에 혼자 틀어박혀 작업을 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누가 같이 밥 먹자며 찾아오는 일도 없으니.
서희가 서둘러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
점심시간이 지난 식당은 꽤 한산했다.
식판을 챙겨 든 서희가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그 남자가 나타날까 싶어 신경 쓰였다.
다행히 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서희의 얼굴이 아쉬운 듯 보였다.
아니, 하나도 아쉽지 않아!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씩씩거리며 서희가 반찬을 담았다.
배식도 끝난 상태라 국과 밑반찬 두어 개가 전부였다.
서둘러 자리에 앉은 서희가 밥을 국에 말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이렇게 된 이상 씩씩하게 먹고 무럭무럭 일 할 거야!
서희가 볼이 터져라 밥을 구겨 넣으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천천히 먹어요, 윤 작가님."
"웁!"
갑자기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서희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계현호 PD.
한유리가 속해 있는 예능 2국 3팀의 팀장이었다.
유일하게 서희에게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다.
뭐 그래 봤자 가끔 마주치면 웃어주거나 화이팅을 외쳐주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 회사에서 서희가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단 한 사람이었다.
서둘러 삐져나온 콩나물을 입안으로 쑤셔 넣으며 서희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는 무슨. 우리 사이에. 하하하."
우리 사이?! 남들이 들으면 빅 오해 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서희가 괜히 주변을 경계하며 얼른 얘기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시, 식사는 하셨어요?"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 안 먹었으려고. 하여튼 우리 윤 작가님 부지런한 거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으면 이제야 식사를 하시고. 어서 먹어요. 어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먹으라고 하면 안 먹어도 체할 거 같은데.
역시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부러울 정도로 밝은 사람이기도 했다.
민망해진 서희가 빨갛게 익은 얼굴로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그 작가라는 말씀은 좀……."
"왜요? 작가 맞잖아요?"
계 PD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반면 서희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저는 그냥……, 파견 직원이에요……."
서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각하게 내성적인 성격에 파견직이라는 신분이 더해진 삶이란.
차별과 서러움을 당연하게 견뎌내야 하는 모진 길과 같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아픔.
본인 입으로 말해도 쓰리고 아렸다.
갑자기 풀이 죽은 서희를 향해 계 PD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지금 이건 잠깐 지나가는 자리죠. 어차피 곧 작가로 일하시게 될 거잖아요."
그는 마치 서희가 내일이라도 당장 작가로 등극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 보였다.
당황한 서희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네? 아니, 그게. 전 아직 아무것도……."
"윤서희 씨는 꼭 해낼 거예요. 난 그렇게 믿어요. 게다가 이미 작가로서 한 사람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잖아요. 우리 팀, 윤 작가님이 안 도와주면 제대로 안 돌아가요. 알면서. 하하하."
계 PD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제야 서희도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준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미 윤서희 씨는 우리 팀이나 마찬가지예요. 기여도로 보나 능률로 보나. 거기에 가장 중요한 내 활력 충전소이기도 하고."
계 PD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냈다.
민망함에 서희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자아, 그럼 우리 윤 작가님. 식사 맛있게 하시고. 오후에도 화이팅!"
"네. 화, 화이팅……."
계 PD의 액션에 서희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답했다.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며 서희가 크게 숨을 내쉬더니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 든든하게 먹고 열심히 일해서 오늘이야말로 제시간에 퇴근해 보는 거야!
곧이어 서희가 전투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
[띵!]
[7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서희가 힘차게 걸어 나왔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덕분일까.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서희의 눈빛이 상당히 의욕적이었다.
그래! 오늘 저녁은 김떡순으로 정했어!
…….
그런 의미에서 의욕적이었다니.
방금 식사를 하고 온 사람치고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저녁 메뉴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며 자리에 막 도착한 순간이었다.
"응?! 이건 뭐지?"
휘청거리는 그녀의 책상 위에 작고 예쁜 화분 하나가 놓여있었다.
앗! 설마?! 이 자리마저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만 거야?!
깜짝 놀란 서희가 서둘러 책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화분을 제외한 다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어?! 메모가 있네."
화분 옆에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서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메모지에 적힌 글을 확인했다.
'신세 갚았습니다.'
커다란 메모지가 무색할 만큼 짧은 글귀였다.
신세 갚았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례하겠습니다.'
그제야 서희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아, 그 사람인가 보구나!"
오전 내내 서희를 괴롭혔던 근사한 목소리의 주인공.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지만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되는 그 사람.
바로 그 휴대폰 분실남이 두고 간 게 분명했다.
서희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희가 아쉬운 얼굴로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거절했는데도 끝내 이런 식으로 성의를 표현하고 가다니.
정말 철저한 사람이구나.
별것도 아닌 일로 괜히 번거롭게 만든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렇게 횡설수설했는데도 자신의 말을 믿어줬다는 얘기니까.
서희가 화분 속 작고 귀여운 식물을 바라보며 슬며시 얼굴을 붉혔다.
"그거 뭐야?"
'헉!'
갑자기 등장한 목소리에 서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녀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순식간에 주눅이 든 얼굴로 서희가 인사를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무료한 표정으로 서희와 화분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웬 화분?"
사나운 인상의 여자가 가장 먼저 화분에 관심을 보였다.
1팀 막내 작가 백노연이다.
얼마 전 입술에 필러 시술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고생 중이다.
흉측하게 부어오른 입술을 보며 사람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럴싸한 핑계를 대느라 최근 아주 예민한 상태였다.
아직 붓기가 덜 빠진 입술을 삐죽거리며 노연이 화분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순간, 서희의 손에 들린 메모지를 누군가 확 낚아챘다.
"신세 갚았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누가 파견, 아니 윤서희 씨한테 신세를 졌어?"
노연의 쌍둥이 자매 가연이었다.
최근 엄청난 양의 프리뷰 작업을 서희에게 떠넘겨 며칠째 밤샘 작업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쌍둥이 자매 뒤로 한유리의 모습도 보였다.
백 씨 자매와 한유리.
이렇게 세 명의 예능 2국 막내 작가들을 회사 동료들은 '노가리' 삼총사로 불렀다.
그녀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붙여진 별명이었다.
워낙에 붙어 다니는 그녀들이라 자연스럽게 붙여진 별명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순식간에 그녀들이 서희를 에워쌌다.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아, 그게……."
서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행여나 잘못 말했다간 괜한 오해를 사서 빈축을 살지도 몰랐다.
그렇게 서희가 잠시 주춤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노연의 비명이 들렸다.
"우와! '마카오 장' 식사권이네?!"
"뭐?!"
노연의 비명에 다들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의 손에는 분홍색 종이봉투와 함께 식사권 2장이 들려 있었다.
"정말?! 정말 '마카오 장' 맞아?"
"이거 봐. 와, 대박!"
순식간에 그녀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서희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남기고 간 사례가 화분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메모지에 정신을 팔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서희가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확 붉혔다.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오래된 휴대폰.
혹시 그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고작 택시에서 실수로 가지고 내린 것뿐인데.
너무 과분한 것을 받은 것 같아 민망할 지경이었다.
이런 서희의 속도 모르고 백 자매는 식사권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때까지 잠자코 지켜만 보던 한유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뭐야, 저거?"
"네? 아, 저기. 그게 그냥……."
"그냥? 누가 저딴 걸 그냥 줘? 그것도 파견 직원한테?"
날카로운 가시가 순식간에 날아와 가슴을 할퀴었다.
아파할 줄 뻔히 알면서.
아프라고 아픈 말을 하는 사람이다.
상처 되는 말을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그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
한유리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 한유리에게 서희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희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비참해졌다.
"있잖아, 이거 나 주면 안 돼?"
"네?!"
가연이 갑자기 불쌍한 얼굴을 하며 서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마치 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식사권이 들려 있었다.
"아니, 어차피 파견, 아니 윤서희 씨는 같이 갈 사람도 없고 바빠서 갈 시간도 없을 거 아냐."
"……."
"나 새로 남자 친구 생겼잖아. 이번엔 정말 잘 해보고 싶어. 근데 우리 자기가 다음 주에 생일이래. 그래도 DG 프로덕션 작가 자존심이 있지, 아무 데나 데려가서 축하해 줄 수도 없고. 자기가 좀 양보해 주면 안 될까?"
"그래. 윤서희 씨가 좀 도와주면 되겠네."
옆에서 지켜보던 노연이 자연스럽게 거들며 나섰다.
그러자 서희의 얼굴이 금세 난처한 듯 붉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식사권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근처의 회사들을 수소문해서라도 휴대폰 분실남을 찾아서 다시 돌려줄 생각뿐이었다.
백 자매가 저렇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저 그런 식사권이 아닐 것이다.
더더욱 돌려줘야만 하는 이유였다.
문제는 저 두 여자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인데.
서희가 슬쩍 곁눈질하자 백 자매가 씨익 웃어 보였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여간해서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어쩌면 좋지…….
서희가 난처한 얼굴로 주춤하던 순간이었다.
[딩동]
[알려 드립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속에서 보았던 회색 고양이.
길동이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서희가 금세 안절부절못했다.
또다시 환청이 들리다니.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설마?! 그 황당한 얘기가 진짜는 아니겠지?!
불현듯 지난밤 꿈속에서 들었던 말들이 떠오르자 서희의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에게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아, 안 돼! 왜 하필 지금…….
[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곤란한 상황인데…….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십시오]
이 상황에 미션까지…….
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