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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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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티가 적용됩니다
작성일 : 17-07-19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6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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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을 거절하라고?!

 

 서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도 느꼈지만 참 현실적인 미션이다.

 그렇지 않아도 거절할 방법을 생각 중이었는데 미션까지 등장하자 서희가 더욱 큰 압박감을 느꼈다.

 

 [이 미션은 강제력이 발동되어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 미션은 실패 시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페널티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묵직한 스트레스가 서희를 짓눌렀다.

 

 그렇게 잠시 서희가 주춤하는 사이.

 

 이미 서희의 승낙을 받은 것처럼 쌍둥이 자매가 치열하게 눈치를 주고받고 있었다.

 

 '헛수고하지 마! 이건 내 거야!'

 

 식사권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그녀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을 서로 마시겠노라 다투는 꼴이었다.

 

 잠시 뒤.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서희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막상 얘기하려니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모깃소리처럼 작은 목소리가 간신히 새어 나왔다.

 

 "저, 저기. 아무래도 그건 좀……."

 

 "그래! 잘 생각했어. 같은 직장 동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래야 정도 쌓이고 그러지 않겠어?"

 

 갑자기 서희의 말을 가로막으며 한유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뜻밖의 상황에 서희가 그만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그런 서희를 향해 한유리의 비릿한 미소가 날아들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 백 자매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내가 나중에 잘되면 파견, 아니 윤서희 씨한테도 우리 자기 친구들 소개해줄게."

 

 "네?! 아니, 저기……."

 

 서희가 뭐라고 말릴 틈도 없이 백 자매가 멀어져갔다.

 지금 그녀들에게 서희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식사권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결국, 서희가 허탈한 얼굴로 백 자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데 자기 좀 의외다. 누구 막 닦달해서 저런 거 받아내는 그런 사람이었어?"

 

 한유리가 서희를 가소롭다는 듯 쏘아보며 말했다.

 순간 정신이 뻔쩍 든 서희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나 서희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 줄 한유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변명을 듣고자 한 말도 아니었다.

 한유리가 손을 들어 서희의 말을 냉큼 자르더니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회사 동료로서 한마디만 충고할게.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상대로 어설픈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저런 걸 달라고 그러는 거, 정말 보기 흉한 짓이야."

 

 "……."

 

 "자기 그러고 돌아다니면 회사에 금방 소문나. 요즘 다들 일자리 구하기 힘들다 난리잖아. 여기라도 붙어 있고 싶으면 처신 똑바로 하고 다녀."

 

 순간 서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픈 말이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처신을 똑바로 하지 못한 자신의 탓도 있었다.

 갑자기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결국,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한유리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짜릿한 쾌감이 그녀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잠시 뒤, 한유리가 걸음을 멈추더니 서희를 향해 말했다.

 

 "아, 맞다. 오전에 회의실 쓰고 정리를 안 했네. 자기가 좀 해. 점심 먹은 거 소화도 좀 시킬 겸."

 

 한유리가 웨이브 머리를 찰랑거리며 유유히 사라졌다.

 혼자 남은 서희의 얼굴에 깊고 무거운 그늘이 내려앉았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조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만 간절했을 뿐, 막상 그녀가 취한 건 그를 두고 도망친 게 전부였다.

 

 실망스럽다.

 

 결국, 또다시 보기 좋게 바보가 되어있었다.

 서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천둥이 울렸다.

 

 [우르르 쾅쾅!]

 

 깜짝 놀란 서희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곧이어 길동이의 무거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미션을 실패하셨습니다]

 

 [당신에게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뒤이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페널티 '날벼락'이 생성되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와 버렸다.

 

 

 ***

 

 

 또 다른 사무실.

 

 도겸이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과는 달리 어쩐지 그의 얼굴이 개운해 보였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어떻게 사례를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찰라.

 딱 좋은 게 떠올랐다.

 

 얼마 전, 억지로 떠넘겨 받은 식사권이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그 식사권을 사용할 때까지 '그 녀석'이 닦달을 해 될 텐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달해 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그녀의 사무실에 가기는 싫었다.

 

 혹시라도 그녀와 마주치면 또다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몰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제 회의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휙 달아나 버릴 수도 있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곧장 근처 꽃집으로 향했다.

 작은 화분을 하나 사면서 식사권과 메모를 함께 담았다.

 

 그렇게 배달을 주문한 뒤 꽃집을 나오는 순간.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찜찜한 기분이 눈 녹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

 덕분에 귀찮았던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어제오늘 툭 하면 머릿속에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던 그녀.

 

 이제 더는 귀찮게 굴지 못하겠지.

 

 도겸이 속으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정작 자신으로 인해 서희가 어떤 상황에 놓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

 

 

 책상에 기대어 선 채 서희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말해보려고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아무 말도 못했다.

 미션이 아니더라도 그 남자에게 돌려주기 위해선 거절했어야 했는데.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바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심한 성격.

 누구에게나 쉽게 감정이 들통나버리는 변화무쌍한 얼굴빛.

 

 그동안 숱하게 자신을 곤경에 빠뜨렸던 한심한 모습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치켜들자 가슴이 아려왔다.

 

 창피하고 속상했다.

 침착해졌다며 으스대던 모습까지 떠오르자 더욱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출근할 때부터 아슬아슬 불안하더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구나.

 

 이제 곧 날벼락을 맞은 뒤 지옥으로 소환되어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부디, 다음 생에는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세요.

 

 그렇게 소박한 소원을 빌며 서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긴장한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서희가 슬며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다른 의미의 날벼락인가 보다.

 그게 아니면 방심하고 있는 틈에 갑자기?!

 

 설마, 그렇게까지야.

 

 어느새 환청과 실제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그녀였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약간의 민망함과 뒤섞여 서희의 표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 참! 회의실 청소!"

 

 그때 마침 한유리가 떠넘겼던 일이 생각났다.

 행여나 늦게 하는 바람에 한유리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정말로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서희가 서둘러 5층 회의실로 뛰어갔다.

 

 페널티든 날벼락이든.

 일단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부터 막고 볼 일이었다.

 

 황급히 뛰어온 서희가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아……."

 

 문을 열고 들어선 서희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회의실 안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마치 회의가 아니라 큰 싸움이 벌어졌던 현장 같았다.

 

 테이블 위로 구겨진 종이와 먹고 남은 간식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은 더 심각했다.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과자들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져 있는 빵 조각이 사람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래 놓은 것처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서희가 서둘러 팔을 걷어붙였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치워줘야 다음 예약을 한 팀이 사용할 수 있었다.

 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희의 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앗! 벌써 다음 팀이?!

 

 놀란 서희가 돌아보자 깡마른 체형의 여직원이 팔짱을 낀 채 노려보며 서 있었다.

 

 "오전에 여기 사용한 팀이죠?"

 

 "아, 네……."

 

 여직원의 톡 쏘는 말투에 서희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희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직원이 두 눈을 매섭게 부릅뜨더니 성난 소리를 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회의실 한두 번 써봐요? 썼으면 정리는 하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네. 죄송합니다……."

 

 역시!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서희가 서둘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직원은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난장판이 된 회의실을 쳐다보며 인상을 확 구겼다.

 

 "아니 그리고, 도대체 회의실에서 뭘 했길래 이 난리를 쳐 놓은 거예요! 다음 팀은 어떻게 쓰라고?!"

 

 "죄, 죄송합니다. 제가 깨끗하게 치워 놓을게요……."

 

 "대충 줍기만 하고 끝낼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 테이블하고, 어머! 거기 그거 빵이에요, 뭐예요?"

 

 예리한 여직원의 눈에 짓이겨진 빵 조각이 걸려들었다.

 당황한 서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 빵인 거 같은데……."

 

 "아니 회의실에 왔으면 회의를 해야지, 왜 간식을 먹고 난리야. 여기가 무슨 동네 분식집이에요?"

 

 "……."

 

 서희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여직원도 분이 조금 풀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여기 테이블하고 거기 그 바닥하고 걸레로 깨끗이 닦아서 마무리 하세요. 다 끝내고 지원실에 오셔서 검사받고 가시고요."

 

 "네……."

 

 "그리고 오늘 일, 일단 기록해 놓았으니까 다음번에 회의실 잡을 때 페널티 받으세요."

 

 여기서도 페널티를 받는구나.

 아무래도 오늘 윤서희 인생사에 새로운 기록들이 대거 등장할 조짐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정리할게요……."

 

 "사람들이 매너가 없어, 흥!"

 

 서희가 거듭 사과하자 여직원이 씩씩대며 가버렸다.

 곧이어 서희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몸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쩐지 기운은 없어 보였다.

 

 한참을 치우던 와중에 구겨진 종이컵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컵에는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새빨간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3팀에서 이런 립스틱을 바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서희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 그렇게, 날 미워하는 걸까…….'

 

 영문도 모른 채 시달린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갔다.

 이제는 그녀의 얼굴만 떠올려도 극심한 긴장감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자신의 무엇이 그토록 그녀의 원망을 산 것일까.

 

 서희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생각하면 속상하기만 할 뿐.

 

 서희가 고개를 저으며 종이컵을 주워 담았다.

 나른한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었다.

 혹시라도 다음 예약 팀이 올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다시 기운을 차린 서희가 몸을 바삐 움직였다.

 

 잠시 뒤.

 

 어느새 회의실이 말끔해졌다.

 마지막으로 환기까지 마친 서희가 창문을 닫은 뒤 뿌듯한 얼굴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휴우, 다 됐다!"

 

 몸을 움직여 일하고 나니 어느새 기분도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서희가 회의실을 나섰다.

 

 조금 전 화를 냈던 지원실 여직원도 다시 깨끗해진 사무실을 보면 기분이 좀 풀릴 것이다.

 검사를 받으러 가는 서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진짜, 개 어이없어! 내가 지금 커피나 사 올 경력이냐고! 입사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어디서 누구한테 이따위 심부름이나 시키고 자빠졌어!"

 

 조용한 복도에 성난 목소리가 울렸다.

 

 노연의 목소리였다.

 

 순간 서희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두고 봐. 아빠한테 말해서 니들 다 엿 먹여 줄 테니까. 어? 파견!"

 

 씩씩대며 코너를 돌아 나오던 노연이 때마침 서희를 발견하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서희의 얼굴은 급격히 피곤해졌다.

 또다시 불길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윤서희 씨. 회의실 정리 다 끝났지?"

 

 "네?! 아, 아직 검사를 안 맡았는데……."

 

 서희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노연은 정반대의 얼굴이었다.

 

 "어, 괜찮아. 그거 내가 대신 맡을게. 자기는 가서 커피 좀 사와."

 

 역시, 예상이 맞았다.

 커피 심부름을 가는데 굳이 5층으로 온 목적이 있었다.

 서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노연이 내미는 카드를 건네받았다.

 

 "우리 팀 취향 알지?"

 

 "네……."

 

 "내껀 시럽 좀 많이 넣어 줘. 열 받아서 그런지 당이 확 당기네."

 

 그녀가 손으로 부채질하며 자신의 적립 카드도 은근슬쩍 내밀었다.

 건물 안에 있는 카페가 아닌 한참 걸어가야 있는 외국 브랜드 카페의 카드였다.

 결국, 카드를 받아 든 서희가 묵묵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가벼웠던 발걸음은 다시금 무거워졌다.

 표정도 어두웠다.

 

 같은 시기에 들어왔지만, 정규직으로 입사한 '그녀들'과 서희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언제부턴가 '그녀들'에게 서희는 입사 동기가 아닌, 함부로 부려 먹도록 제공된 도구처럼 쓰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동료의 우정을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귀찮은 일을 떠넘겨서 속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감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취급하지만 않아 주었으면.

 정말 그것만이라도 해 주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허튼 기대에 불과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만 깊어질 뿐이었다.

 더불어 그녀의 자존감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됐어, 윤서희. 이제 그만 해!'

 

 서희가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눈에 힘을 주었다.

 

 우울한 생각은 온전한 마음을 갉아먹는다.

 자꾸 떠올린다고 나아질 건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기운을 차려야 했다.

 

 고통은 반드시 끝이 나는 법이니깐.

 

 우울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서희가 일부러 힘차게 걸었다.

 멀리서 보면 좀 우스꽝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렇게 서희가 자가발전기를 가동시키며 씩씩하게 걸어가던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길동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페널티 '날벼락'이 발동되었습니다]

 

 뭐?! 지금?!

 

 놀란 서희가 멈칫하더니 금세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정말로 날벼락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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