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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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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거리는 손길
작성일 : 17-07-21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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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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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실 문이 열리고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노연이 걸어 나왔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유리가 금세 인상을 찌푸렸다.

 

 "이쪽으로 오지 마. 나까지 옷에 냄새나잖아."

 

 "미안. 너도 이거 뿌려줄까?"

 

 노연이 미안한 얼굴로 탈취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한유리가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이 옷이 얼마짜리인데 그따위 싸구려 탈취제를!'

 

 비록 말은 안 했지만 노연의 눈에는 한유리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사 동기에 꽤 친한 사이지만 가끔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볼 때면 정말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결국, 노연이 멀찍이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흥! 괜히 난리야."

 

 괜히 무안해진 그녀가 마치 화풀이하듯 자신의 몸에 탈취제를 정신없이 뿌렸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한유리가 가방에서 고급 향수를 꺼내 들더니 신경질적으로 뿌려댔다.

 

 "왜 이렇게 안 와!"

 

 화장을 고치러 간 가연이 늦도록 오지 않자 한유리의 짜증 수치가 더욱 높아졌다.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게 영 못마땅한 그녀였다.

 

 "저기 오네."

 

 노연이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연이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웃으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 가연을 한유리가 매섭게 쏘아봤다.

 

 "빨리빨리 좀 다니지?"

 

 "미안. 화장실에서 못 볼 것 봐서."

 

 "못 볼 거?"

 

 "뭔데, 뭔데?"

 

 가연의 말에 두 여자가 금세 흥미를 보였다.

 그러자 가연이 한껏 기가 살아난 얼굴로 말했다.

 

 "거울 보고 있는데 그게 들어오더라고."

 

 "그거? 그거 뭐?"

 

 "아 뭐긴 뭐야, 파견 그 계집애지."

 

 "아, 윤서희?"

 

 노연이 그제야 말귀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가연을 통해서 둘 사이에 있었던 얘기는 대충 전해 들었었다.

 

 갑자기 서희의 이름이 나오자 한유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매우 흥미 있어 한다는 의미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가연이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글쎄, 그 계집애가 오늘 뭘 잘못 먹었는지 들어오자마자 날 탁 째려보는 거 있지."

 

 "어머, 그래서?"

 

 "그러더니 바로 옆에서 태연하게 세수를 하더라고. 나 참, 기가 막혀서."

 

 "헐, 대박! 개무시 쩔어."

 

 노연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침내 한유리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가연이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갑자기 손을 앞으로 쓱 내밀었다.

 

 "짠!"

 

 "뭐야? 웬 안경?"

 

 노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한유리는 금세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어느새 그녀의 입술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연이 손에 든 안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그게 그딴 식으로 구는데 그냥 올 순 없잖아. 아마 지금쯤 한참 장님 코스프레 하고 있을 걸? 호호호."

 

 "오, 백가연. 한 건 했는데? 속이 후련하겠어, 아주."

 

 뒤늦게 눈치챈 노연이 자매의 복수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가연의 눈빛은 통쾌함이 아닌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걸로는 어림없지. 아직 멀었어. 본때를 보여줄 거야. 어디서 감히, 파견 따위가!"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향해 서희의 안경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탁!'

 

 작은 소음과 함께 안경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대는 가연에게 한유리가 다가왔다.

 

 "가자. 오늘은 내가 쏠게."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가 친근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런 두 사람 곁으로 노연이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오, 모처럼 끝까지 콜?"

 

 노연이 슬쩍 부추기자 한유리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불타는 밤을 향해 질주하듯 사라졌다.

 

 곧이어 그녀들이 서 있던 곳에서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커다란 자판기에 가려 그녀들은 미처 그를 보지 못했다.

 덕분에 남자도 원치 않게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윤서희.'

 

 남자는 조금 전 그녀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작고 뽀얀 얼굴.

 선명한 이목구비.

 품에 안으며 쏙 들어 올 것 같은 앙증맞은 체형.

 

 하지만.

 정작 남자의 머릿속에 더 강하게 기억된 것은 따로 있었다.

 

 시시때때로 다채롭게 변하는 얼굴빛.

 겁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

 안절부절 혼자 갈등하는 표정.

 급기야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던 뒷모습까지.

 

 모든 게 제멋대로였다.

 덕분에 화분도 주문하고 메모도 남기느라 번거로웠다.

 첫인상부터 특이한 모습을 보이더니 회사에서 괴롭힘까지 당하는 듯 보였다.

 

 남에게 원한을 살 것 같은 타입은 아니었는데.

 

 조금 전 여자들에게 무슨 원한을 산 것인지는 모르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특히나 조금 전 그 여자들이 자신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그 세 여자가 맞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남자의 시선이 어느새 쓰레기통을 향했다.

 짐작건대 그녀의 안경이 저 안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지나쳤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뒤이어 남자가 성큼성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아, 어떡하지?!"

 

 당황한 서희가 안절부절못했다.

 안경이 사라졌다.

 

 혹시나 싶어 화장실 바닥을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분명 바로 옆에 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벽을 짚고 서 있는 서희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안경이 없으면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시력이 안 좋았다.

 난처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서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요동쳤다.

 

 그때 마침 어딘가에서 가연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평소 가연의 성품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조금 전 거울로 자신을 쏘아보던 눈빛까지 떠오르자 갑자기 모든 가능성이 그쪽으로 치우쳤다.

 

 그래도 설마.

 

 아닐 것이다.

 그렇게까지 모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 맞아. 내가 아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디 다른 곳에 두고 못 찾고 있는 걸 거야.'

 

 서희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기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게 아니었다.

 우선 휴게실까지 어떻게 해서든 가야 했다.

 

 마침 그녀의 사물함에 예전에 쓰던 안경이 있었다.

 안경알에 흠이 좀 있지만 급한 대로 사용하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결국, 서희가 느릿느릿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대충 휴게실 방향을 가늠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불안한 마음에 손을 이리저리 쉴 새 없이 휘저어댔다.

 

 부디, 이대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도착하게 해주세요.

 

 서희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때, 그녀의 손에 뭔가 이상한 게 닿았다.

 아주 단단한 무언가였다.

 이상한 기분에 서희가 이리저리 더듬어 보았다.

 

 '어?! 따뜻한데?!'

 

 더듬거리는 손에 무척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단한데 따뜻한 게 뭐가 있지?'

 

 그때 마침 단단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인기척을 냈다.

 

 "크흠!"

 

 그러자 깜짝 놀란 서희가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엄마야!"

 

 덕분에 그녀의 몸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기울었다.

 중심을 잃은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차가운 바닥을 향해 넘어갔다.

 

 "어? 어어어?!"

 

 서희가 겁먹은 얼굴로 버둥거렸다.

 이대로 넘어지면 몸 어디 한군데가 크게 망가질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두툼한 무언가가 그녀의 등을 잽싸게 감싸 안았다.

 등 뒤로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가던 몸이 순식간에 다시 솟구쳤다.

 곧이어 솟구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서희의 몸이 앞쪽으로 휘청거렸다.

 

 그 순간.

 

 따뜻한 무언가의 품에 서희가 푹 안겨들었다.

 얼굴에 닿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금세 그녀를 포근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코끝으로 상큼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사람을 순식간에 기분 좋게 만드는 그런 향이었다.

 

 서희가 저도 모르게 향기의 근원지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가까이에서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따뜻한 숨결까지.

 

 잠깐!

 

 숨결?!

 그렇다는 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서희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건 분명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단단한 몸을 가진 사람!

 

 깜짝 놀란 서희가 서둘러 정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합니다!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서희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남자로 추정되는 무언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럴 만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여자가 자신의 몸을 마구 더듬었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딜 더듬은 거지?'

 

 갑자기 드는 궁금함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서희가 금세 얼굴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으악! 서, 설마?! 가, 가, 가슴?!'

 

 이런 불상사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대뜸 가슴부터 더듬어버리다니!

 

 서희가 안절부절 혼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백 번, 아니 천 번쯤은 사과해야 할 정도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건 성추행이나 다름없었다.

 창피한 마음에 서희의 정신이 지구 밖으로 뛰쳐나갔다.

 

 곧장 그녀의 횡설수설한 사과가 이어졌다.

 

 "저, 정말로 상당합니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일부러 그랬거든요……. 어?! 아니,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시야가 환해졌다.

 놀란 서희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안경이 한순간에 그녀의 눈 위로 걸쳐진 것이다.

 

 그러자 눈앞의 무언가도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희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성추행 피해자이자 잃어버린 안경을 찾아 준 은인.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남자.

 거기에 달달한 숨결까지 보유한.

 

 그는 바로.

 

 "주, 주, 주인님?!"

 

 되돌릴 수 없는 인연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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