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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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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의 제안
작성일 : 17-07-21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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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그는 바로 휴대폰 분실남이었다.

 어제 보았던 그 비현실적으로 근사한 남자가 다시 뻔뻔한 얼굴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서희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앞의 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그쪽이 신세를 갚을 차례군."

 

 "네?!"

 

 순간 서희가 움찔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세수하고 있는데 감쪽같이 안경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휴대폰 분실남이 나타나 안경을 씌워줬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근데 이 남자는 도대체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내 안경을 또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

 

 설마?!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와서 일부러 내 안경을?!

 

 아니, 왜?

 

 혹시, 어제 무례하게 도망친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갑자기 따지러 온 것일까.

 

 서희가 온갖 가능성을 열어 두고 치밀하게 혼란스러워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지금 멘붕 상태였다.

 

 그렇게 혼자 벌게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서희.

 

 하지만 무심한 얼굴의 도겸은 전혀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곧장 그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신세를 갚을 생각인지 궁금하군."

 

 "네?!"

 

 놀란 서희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뭐가 어찌 되었든지 안경을 되찾아 준 건 이 남자였다.

 게다가 본의 아니게 성추행까지 했으니 꼼짝없이 이 남자와 합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제법 빠르게 판단을 한 서희가 대뜸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저기. 안경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며 그녀가 슬쩍 도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역시! 화가 단단히 났구나.'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서희가 움찔거렸다.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했다.

 부르르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서희가 이번엔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 그리고. 아까 막 만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만지겠습니다……."

 

 말을 하고 보니 어째 좀 이상했다.

 꺼림칙한 기분에 서희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지는 게 보였다.

 

 '역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순간 깜짝 놀란 서희가 급하게 팔을 내저으며 말을 뱉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무, 물론 허락해 주시면 꼭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지만, 헉! 아, 아닙니다.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당황하자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수습하기는커녕 갈수록 사태가 더 악화되는 느낌이었다.

 그의 얼굴빛도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결국, 서희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나직이 말했다.

 

 "사, 사례 하겠습니다……."

 

 그제야 도겸이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떻게?"

 

 "네?! 아, 그게. 뭐, 뭘 원하시는지……."

 

 "그 말은 뭐든 말해보라는 뜻인가?"

 

 어느새 도겸이 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서희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 그녀는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도겸의 말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앗! 그, 그건 아니에요. 그, 그런 뜻이 아니라……."

 

 한 번 당황하자 말과 의미가 마구 뒤엉키기 시작했다.

 침착함을 잃어버린 예전의 서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 자신을 그가 팔짱을 낀 채 관람하고 있었다.

 상황이 점점 난처하게 몰리자 서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도대체 어떻게 사례를 해야 좋을까.

 

 형편이 어렵다 보니 이 남자가 한 것처럼 근사한 선물은 꿈도 못 꿨다.

 

 적당한 가격의 화분을 하나 사 줄까.

 

 하지만 곧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식물에 애정을 쏟으며 다정하게 돌봐줄 인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서늘한 시선에 곧장 얼어 죽으리라.

 

 그렇다면 식사권은?

 

 하지만 이 역시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웬만한 곳이 아니라면 이 남자의 마음에 드는 건 어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희가 점점 심각하게 고민의 늪으로 빠져들 무렵.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도겸이 무심한 듯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저녁을 사는 게 좋겠군."

 

 "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란 서희가 올려다보자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저녁을?!

 나랑?!

 

 당황한 서희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상황이 점점 묘하게 흘러갔다.

 

 

 ***

 

 

 서희가 난처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괜찮으시겠어요?"

 

 도겸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도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여기가 아까 말했던 그 단골집인가?"

 

 "네……."

 

 "그렇군."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자신과 눈앞의 포장마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저녁을 사라고 하길래 처음엔 정말 당황했었다.

 장난일까 싶어 바라보니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얼마나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야 이 남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형편없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이곳저곳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곧장 절망에 빠졌다.

 

 애초에 자신이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그마저도 모두 저렴한 동네 식당들뿐이었다.

 그런 곳에 데려가 사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결국, 자신의 형편을 고려했을 때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확률은 아쉽게도 제로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족은커녕 그 즉시 경찰서에 끌려가 성추행범으로 뜨뜻한 콩밥을 먹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서희가 하염없이 좌절하고 있던 찰나.

 

 '그쪽 단골집으로 가지.'

 

 그가 먼저 솔깃한 제안을 했다.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그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다행히 가리는 음식은 별로 없으니 안심해.'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포장마차 분식집이었다.

 비록 길거리에 위치한 허름한 포장마차였지만 정말 단골집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와 함께 이곳에 오게 되자 슬쩍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무리겠죠?"

 

 서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도겸이 포장마차 안을 둘러보며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무얼 먹지?"

 

 "네? 아, 그게……. 김떡순이요……."

 

 "김떡순?"

 

 우물쭈물하며 서희가 대답하자 그가 되물었다.

 아무래도 처음 들어 본 눈치였다.

 

 "김밥이랑 떡볶이, 순대를 섞어 먹는 세트 메뉴예요……."

 

 서희가 벽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도겸이 고개를 돌렸다.

 포장마차 벽에는 조촐하게 메뉴판이 붙어 있었다.

 김떡순에 대한 설명과 가격을 확인한 도겸이 곧장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방금 말한 그 3가지를 모두 주면서 3천 원이란 말인가?"

 

 "네?! 아, 네……."

 

 그러자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서희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여기서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지."

 

 그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포장마차에 먼저 들어섰다.

 서희가 불안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어머, 세상에! 우리 집에 연예인이 다 오셨네?!"

 

 그때 마침 '달리는 포차 분식' CEO께서 친히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정확히는 도겸을 반겼다.

 그가 들어서는 걸 본 주인 여자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졸지에 외면당한 진짜 단골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하, 안녕하세요……."

 

 하지만 주인 여자는 그런 서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가게에 눈부시게 잘생긴 남자가 불쑥 나타났는데 서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가만있어 보자, 어디서 봤더라. 아침 드라마에 나왔었나? 아니면 주말 연속극?"

 

 주인 여자의 말에 도겸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 서희가 움찔했다.

 갑자기 재미난 생각이 난 것이다.

 서희가 재빨리 주인 여자에게 다가서더니 조용히 속닥거렸다.

 

 "영화배우, 영화배우!"

 

 "아, 그래! 영화에서 본 것 같네. 아휴, 반가워요."

 

 "……."

 

 도겸이 이번엔 서희를 노려봤다.

 당황한 서희가 황급히 주인 여자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친한 척 굴었다.

 

 "사장님. 저희, 김떡순 2개 주실래요?"

 

 "아휴, 영화배우가 그런 거 먹어도 되나 몰라?"

 

 주인 여자의 말에 역시 도겸이 서희를 사정없이 노려봤다.

 그러자 서희가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어디 보자, 오뎅 국물이……."

 

 괜히 오뎅 국물을 챙기는 척 그녀가 도겸의 시야에서 냉큼 도망쳤다.

 도겸이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기가 막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주인 여자가 물러서자 어느새 서희가 오뎅 국물을 들고는 슬금슬금 자리로 돌아왔다.

 도겸이 매우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서희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차피 직장인이라고 말해도 사장님이 안 믿을 실 것 같아서요……."

 

 "……."

 

 "자, 잘못 했습니다……. 사, 살려 주세요……."

 

 그제야 도겸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아, 민망해라.

 

 차마 그와 시선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던 서희가 오뎅 국물을 홀짝거리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깜짝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앗,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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