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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마스터
작가 : 아범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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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포차 분식
작성일 : 17-07-22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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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서희가 움찔했다.

 어느새 포장마차 주변으로 여자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있었다.

 이유는 물론 도겸 때문이었다.

 

 포장마차에 앉아 있어도 그의 우월한 외모는 절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근사한 남자가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있으니 이질적인 느낌에 더욱 빛이 나 보였다.

 

 몇몇 여자들은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었다.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온 것처럼 주변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졸지에 많은 시선이 몰리자 서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도겸은 여전히 무표정할 뿐이었다.

 주목받는 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때 마침 여자들의 대화가 서희의 귀에 들렸다.

 

 "신인 배우인가? 아니면 아이돌?"

 

 "그게 뭐가 중요해. 일단 찍어. 와, 대박 잘 생김!"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굴까?"

 

 "누구긴 누구야. 뻔하지."

 

 "누군데?"

 

 "코디."

 

 "아! 맞네."

 

 서희가 움찔했다.

 졸지에 코디 신분이 되다니!

 이것이 모두 이 엄청나게 잘난 남자 덕분이었다.

 서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사람들 쪽으로 걸어가더니 올려져 있던 천막을 순식간에 내려버렸다.

 그러자 곧장 바깥쪽에서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아, 뭐야."

 

 "어머, 쌀쌀맞은 것 좀 봐."

 

 "어쩌면 좋아. 저렇게 차갑게 구니까 더 매력 있어 보이잖아."

 

 그렇게 안타까워하며 하나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렸다.

 덕분에 더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은근슬쩍 포장마차 안에 자리 잡고 앉은 여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였지만 말이다.

 

 자리로 돌아온 도겸이 서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깊고 고요한 그의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뿜었다.

 

 '왜 자꾸 빤히 쳐다보지?!'

 

 민망해진 서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직 그의 시선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그녀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희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신경은 온통 그에게 쏠려있었다.

 

 그가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몸 구석구석이 찌릿찌릿했다.

 입천장이 간질간질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이 탐스러운 빛으로 익어갔다.

 

 '그래도 며칠 사이 많이 발전했구나.'

 

 예전의 그녀였다면 아마 그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 말도 못 한 채 바짝 굳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미션의 보상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단골집이라 마음이 편한 것도 없지 않았다.

 아까처럼 자연스럽게 장난을 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와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 같이 저녁을 먹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도겸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쉴 새 없이 얼굴을 붉혔다가 다시 흐뭇하게 웃기를 반복하는 서희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회의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는 이랬다.

 

 자신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금세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가 또 파랗게 질렸다 하며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더니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고 허둥지둥 달아나버렸다.

 분명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침내 도겸이 어색한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건 왜 계속 들고 다니는 거지?"

 

 그의 시선이 서희가 들고 있는 화분에 닿았다.

 

 "네? 아, 이거요? 그게, 아직 마땅히 둘 곳을 찾지 못해서요……."

 

 서희의 말에 도겸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굳이 햇볕이 있는 곳에 두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더군."

 

 "아, 그렇구나……."

 

 "사무실 책상 위도 상관없다는 얘기지."

 

 서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 아, 그게. 아직 임시로 있는 자리라……."

 

 "임시?"

 

 도겸의 눈빛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그러자 서희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둘러댔다.

 

 "아, 어차피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프리뷰 작업실에서 보내거든요……. 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굳이 제 자리가 필요하지 않기도 하고……."

 

 사실 그녀는 아직 지정된 자리가 없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자리도 그녀가 임시로 마련한 자리였다.

 마침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비품실 바로 옆에 여유 공간이 있어 이것저것 얻어다 놓고 사용 중이었다.

 

 물론 모든 파견 직원들이 서희와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지금, 철저하게 미움을 받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도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서희가 서둘러 핑계를 댔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도겸이 아니었다.

 곧장 그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입사한 지는 얼마나 됐지?"

 

 "네? 아, 이제 1년 다 되어가요."

 

 그녀의 대답에 도겸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였다.

 혹시나 해 물어봤지만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다.

 아무래도 팀에서 고의적으로 자리를 배정해 주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당분간 그냥 가지고 다니려고요. 일 때문에 늦을 때도 많아서 집에 두는 것도 좀 그렇거든요."

 

 "차라리 그냥 다른 사람 줘버려도 돼."

 

 "네?! 아, 안 돼요!"

 

 깜짝 놀란 서희가 화분을 품에 감싸며 강하게 저항했다.

 벌써 이름까지 붙여줬는데 누굴 주라니!

 어림없는 소리였다.

 그런 서희를 도겸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휴게실 옆에 안 쓰는 청소함이 있더군."

 

 "네?!"

 

 뜬금없는 소리에 서희가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더는 말이 없었다.

 서희가 가만히 그의 말을 두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장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 퇴근할 때 거기에 뒀다가 출근하면서 찾아가면 되겠구나!"

 

 그제야 서희가 눈빛을 반짝이며 도겸을 바라보았다.

 마치 큰 은혜라도 입은 듯 그녀가 연신 고마워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도겸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정도 일로 저렇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볼수록 신기한 여자였다.

 

 잠시 뒤.

 

 뭔가 망설이던 서희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도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자 서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안경은 어떻게……."

 

 그녀의 말에 도겸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사실대로 말하기엔 좀 껄끄러웠다.

 

 "화장실 앞에 떨어져 있더군."

 

 "아, 그랬구나."

 

 서희가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씻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안경을 건드려 그곳까지 날아간 모양이다.

 

 '괜히 엉뚱한 오해할 뻔했네.'

 

 다행이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전부터 궁금했던 게 생각났다.

 

 "혹시, DG 프로덕션에서 일하세요?"

 

 서희의 질문에 도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회사에 일하는 것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긴. 어쩐지 이 여자라면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다.

 

 "소개가 늦었군. 예능 1국 3팀을 맡고 있는 최도겸이라고 하지."

 

 그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서희가 그의 명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그 시간에 거기 있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그렇게 명함을 들여다보던 서희의 두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아! 그럼 혹시?! 어제 아침에 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신 승객이 최 PD님?!"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그녀가 타기 전에 DG 프로덕션에 내렸다는 승객이 바로 눈앞의 이 남자였다.

 그리고 그가 두고 내린 휴대폰을 마침 뒤이어 탄 그녀가 자기 것으로 착각해서 가지고 내렸고.

 

 어느새 상기된 얼굴의 서희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것 보세요. 저도 최 PD님이랑 같은 거예요. 신기하죠?"

 

 정말 도겸의 것과 똑같은 기종이었다.

 심지어 칠이 벗겨진 정도까지도 비슷했다.

 서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휴대폰 얘기가 나오자 유독 말이 없어진 도겸.

 

 그가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가 티 없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어둡고 탁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빛을 내는 등불 같았다.

 

 '그렇군. 참 묘한 인연이군.'

 

 그제야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곧이어 그의 눈에 서늘함 대신 생소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아이고, 오래 기다렸지?"

 

 그때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그 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평소 먹던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푸짐했다.

 게다가 다양한 재료가 듬뿍 추가되어 있었다.

 상당한 정성이 느껴졌다.

 

 어쩐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었구나.

 

 어? 시키지도 않은 튀김까지!

 

 "저어, 사장님. 튀김은 안 시켰는데요……."

 

 "서비스, 서비스."

 

 질문은 서희가 했는데 대답은 도겸을 바라보며 했다.

 어느새 주인 여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잘 먹을……."

 

 "많이 먹고 부족하면 바로 말해요. 얼마든지 더 줄게."

 

 역시 단골인 서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인 여자가 도겸을 향해 연신 웃음을 지어댔다.

 

 이 남자 덕분에 포장마차 안이 여자 손님들로 꽉 들어찼다.

 주문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않았어도 이 잘생긴 얼굴을 좀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쉬운 얼굴로 주인 여자가 물러나자 도겸이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단골이 맞는가 보군."

 

 그가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서희의 덕으로 돌렸다.

 

 글쎄. 과연, 그것 때문일까요.

 

 서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에게 젓가락을 건넸다.

 말없이 젓가락을 받아 든 그가 조심스럽게 떡볶이를 집어 들었다.

 유심히 살피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처음 먹어보는 듯했다.

 

 '외국에서 살다 왔나?'

 

 서희가 재밌다는 듯 그를 가만히 지켜봤다.

 곧이어 그가 떡볶이를 입안에 넣었다.

 

 "나쁘지 않군."

 

 그러더니 김밥과 순대를 차례로 맛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마음에 드는 듯 보였다.

 그제야 서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몫을 먹기 시작했다.

 

 "음, 맛있다."

 

 오늘따라 맛이 유난히 좋았다.

 주인 여자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맛이었다.

 서희가 행복한 얼굴로 도겸을 바라보았다.

 

 비록 표정은 무덤덤해 보이지만 어쩐지 서희의 눈에는 그도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불쑥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에게 해 준 것들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는 보답을 하는 것 같았다.

 화분과 식사권을 선물하고 안경까지 찾아 준 은인인데.

 심지어 그의 몸도 함부로 만졌다.

 그런 사람에게 고작 김떡순이나 사주고 있다니.

 이럴 때 그가 준 식사권이라도 돌려줄 수 있었다면 마음이 한결 편했을 텐데.

 

 '내가 가진 돈으로 다시 구하긴 힘들겠지…….'

 

 물론 어림도 없었다.

 사실 '마카오 장'은 이미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유명 쉐프였다.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벌써 몇 달 전부터 섭외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그의 레스토랑은 이미 올 한 해 예약이 꽉 들어차 있을 정도로 인기도 높았다.

 

 이렇다 보니 그곳의 식사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일부 유명인들을 통해 아주 극소량만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걸 서희가 가지고 있었으니 백 자매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만도 했다.

 

 이런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서희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도겸이 분주하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이런. 내가 너무 먹기만 했군.'

 

 처음 먹어보는 특이한 맛에 그만 정신이 팔렸다.

 말 한마디 없이 먹기만 했으니 그녀도 불편했을 것이다.

 미안해진 도겸이 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곧이어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 사장이 좀 특이해서 그렇지 음식은 제법 먹을 만할 거야. 물론 여기보다는 못하겠지만."

 

 "네?! 아!"

 

 서희가 뒤늦게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덕분에 민망해진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침 그 생각을 하던 참인데 그가 직접 식사권을 언급하자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서희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도겸.

 그가 최대한 무관심한 말투로 물었다.

 

 "같이 갈 사람은 정했는지 모르겠군."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안색이 아까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그러자 도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군.'

 

 어색함을 깨기 위해 꺼낸 얘기인데.

 상황이 더 어색해졌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도겸이 어느새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돼."

 

 "네?!"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서희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아뿔싸!

 

 미안해서 풀이 죽어 있던 것을 아무래도 이 남자가 또 오해했나 보다.

 서둘러 서희가 사태수습에 나섰다.

 

 "저어, 그게 아니라. 사실은요…….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 최근에 애인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곧 생일이라서요, 제가 축하해 주는 의미로……. 선물해 주신 식사권을 그분께 양보해 드렸어요. 죄송해요……."

 

 그가 여전히 서늘한 눈을 한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서희가 이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것저것 많이 신세를 지게 됐는데, 고작 이런 거나 대접하고……. 정말 미안해요……."

 

 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슬쩍 들여다보니 안쓰러울 정도로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오해를 했군.'

 

 그제야 이해를 한 도겸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자신을 데려온 걸 두고 못내 마음이 쓰이는 듯 보였다.

 

 '고작 그게 뭐라고 부담스러워 하는 거지?'

 

 식사권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비록 '그 녀석'의 이죽거리는 얼굴을 참아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제껏 그걸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표정을 보니 지금 당장에라도 식사권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숨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뭐든 잘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군.'

 

 도겸이 그녀를 바라보며 빠르게 상황을 추측해 보았다.

 곧이어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녀가 차마 말하지 못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보아하니 식사권을 빼앗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결국, 또 그 여자들인가.'

 

 그녀들에 대한 소문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그 소문의 내용도 그리 좋은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게다가 소문 따위에 귀 기울이는 타입도 아니었다.

 이미 회사에는 그녀들보다도 도겸 자신에 대한 소문이 압도적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일이 대응하려면 끝이 없는 게 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에도 없던 '그녀들'에게 새삼 관심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계기로 말이다.

 

 도겸이 가소롭다는 눈살을 찌푸렸다.

 흡연실 앞에서 그녀들이 나누었던 얘기들이 떠오르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졌다.

 순간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때마침 그 모습을 본 서희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아, 어떡하지? 아직도 오해하고 있나 봐.'

 

 서희가 금세 사색이 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오해를 풀 수 있을지 몰라 매우 난처한 얼굴이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도겸이 순식간에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오해는 풀렸으니 걱정은 그쯤 하지."

 

 그러자 서희가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도겸이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그녀가 긴 숨을 토해냈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녀가 금세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까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더니 지금은 또 세상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참 다양한 모습을 가진 여자군.'

 

 도겸이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긴장이 풀리면서 그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자연스레 그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때마침 서희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놀란 도겸이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가 좀 더 빨랐다.

 

 "어?! 방금……."

 

 "아니야."

 

 도겸이 무뚝뚝한 얼굴로 맞섰다.

 하지만 서희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분명 방금……."

 

 "아니라니까."

 

 "맞는 거 같은데……."

 

 "뜻밖에 집요한 구석이 있군."

 

 도겸이 시치미를 잡아떼며 서둘러 남은 김밥에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서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한 채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도겸도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두 사람.

 

 이런 두 사람을 아까부터 쭉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먼발치에서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매서운 기운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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