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화장을 하십시오]
맙소사!
불길한 예감이 또다시 적중했다.
아, 그냥 출근이나 할 것이지 괜히 화장을 고민해서 일을 키웠구나.
서희가 속으로 크게 후회했다.
[이 미션은 선택 미션이라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이 미션은 실패 시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어?! 선택 미션?!
게다가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다고 했다.
서희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한 번 도전해 봐?!
그때 마침 길동이의 음성이 이어졌다.
[단, 수락하실 경우 일정한 확률로 '역효과'가 발동될 수 있습니다]
아, 이런. 화장을 했는데 역효과라니!
하지 말라는 얘기잖아.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협박은 없을 것이다.
서희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무서운 말을 들으면서까지 화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선택 미션이니까 거절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애타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창피한 건 순간일 뿐, 분명 아름답게 빛나리라.'
결국, 서희가 화장대 앞에 섰다.
"그래! 일단 살짝만 해보는 거야."
마침내 결심한 그녀가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이제 막 화장품 뚜껑을 열었을 때였다.
[미션을 수락하셨습니다]
길동이의 음성이 들리자 서희가 움찔거렸다.
'아, 선택 미션은 이런 식으로 수락이 되는 거구나.'
이젠 멈출 수도 없게 됐다.
이렇게 된 바에야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 화장에 돌입한다.
서희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곧이어 그녀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
일찍 출근한 도겸이 이제 막 사무실로 들어설 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최 PD님."
먼저 출근해 있던 젊은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도겸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지나쳤다.
'어쩜, 아침부터 저 도도한 것 좀 봐.'
그녀가 도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도겸.
그와 단둘이 있고 싶어서 오늘은 좀 무리해서 일찍 출근한 그녀였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백화점에서 옷도 샀다.
'오늘은 꼭 단둘이 얘길 나눠 볼 거야!'
손거울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더욱 싸늘한 도겸의 기운을 그녀는 미처 감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옷매무새 점검을 마친 그녀가 미리 사놓은 커피를 집어 들었다.
아침마다 그가 마신다는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의 취향대로 설탕 시럽 대신 찬 우유도 조금 추가했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가 조심스럽게 도겸에게 다가섰다.
아침 햇살에 비친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부셨다.
"저기, 최 PD님. 이거 좀 드세요."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커피를 내밀었다.
업무를 준비하던 도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여직원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자 도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곧이어 그녀를 향해 얼음보다 차가운 기운이 쏟아졌다.
"생각 없습니다. 가져가세요."
툭 하고 말을 뱉은 도겸이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부끄러움은 너의 몫일 뿐.
도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여직원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어? 이게 아닌데?!
예상 밖의 전개에 그녀가 크게 당황했다.
원래는 고맙다는 그의 인사와 함께 가볍게 대화가 시작되어야 했다.
어떤 이야기로 관심을 이끌어 낼지 미리 생각해 둔 것도 있었는데.
그의 냉정한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녀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도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에게서 평소보다 더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어제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보다.
결국,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아, 날을 잡아도 하필이면 이런 날을 골랐냐.
여직원이 아쉬운 듯 도겸을 힐끔거렸다.
그에게서 아까보다 더 강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놀란 여직원이 서둘러 자신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오늘은 그와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듯싶었다.
***
[딩동댕]
[축하합니다]
[선택 미션 '화장하기'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당신의 잠재력 '매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자동 스킬 '매력 발산'이 생성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당신의 행운 포인트가 +1 만큼 증가하였습니다]
길동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서희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아, 망했다!'
세상에 이보다 어설픈 화장도 없을 것이다.
살짝만 해보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수습할 수 없는 단계까지 질주해 버렸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다.
너무 어색해서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허허……. 허허허……."
저주받은 손이 따로 없구나.
그래도 민얼굴은 그럭저럭 참고 봐줄 만했는데.
괜히 화장해서 이런 어색한 얼굴을 만들어 놓다니!
서희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길동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축하합니다]
[최초의 선택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라고?!
고작 화장을 한 거뿐인데?!
그게 그렇게나 대단한 업적이란 말인가!
곧이어 믿을 수 없는 말이 이어졌다.
[칭호 '동네 얼짱'을 획득하셨습니다]
…….
아, 이제는 길동 씨까지 날 비웃는구나.
서희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어색한 얼굴을 두고 동네 얼짱이라니.
이건 거의 역효과가 발동된 수준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 맞다. 출근!"
이러고 한탄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때처럼 '지각'을 놓고 한바탕 액션 영화를 찍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 나가야만 했다.
근데 이 얼굴은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던 서희가 클렌징크림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화장을 지울 시간 따윈 없었다.
일단 출근부터 하고 나서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는 수밖에.
서희가 서둘러 원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장 후회를 했다.
'아, 어떡해! 다들 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어!'
어쩐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을 힐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창피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익어버렸다.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서 이런 수모를 자처한 것일까.
거듭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길에서 화장을 지울 수도 없는 일.
망신을 무릅쓰고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간신히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심지어 한 남자는 몰래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맙소사! 내 얼굴이 그 정도로 보기 흉한 거야?!'
서희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졸지에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한 마음에 몸은 자꾸 움츠러들었다.
동네 '얼짱'은커녕 동네 '역효과녀'로 전국에 이름을 날리게 생겼다.
당장이라도 집까지 줄행랑을 치고 싶은 마음을 서희가 간신히 억눌렀다.
그때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서희가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올라탔다.
그러자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 오늘 제대로 망신을 당하는구나.
창피한 생각에 서희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마치 벌을 서는 기분으로 서 있던 서희가 마침내 버스가 회사 앞에 도착하자 쏜살같이 내렸다.
그리고 회사까지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어쩐지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등 뒤에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민망한 출근길이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가 건물로 들어서자 경비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이쿠!"
그가 알 수 없는 탄성을 지르며 서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흠칫 놀란 서희가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갔다.
곧이어 안내데스크에 있던 여직원들도 서희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누구야, 저 여자?"
"그러게. 정말 예쁘다."
"우리 회사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
다들 그녀를 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서희는 그녀들의 시선을 다르게 해석했다.
'네네. 죄송합니다. 빨리 가서 지울게요. 하하하…….'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저마다 그녀를 힐끔거리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주변이 금세 웅성웅성해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서희도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장이 어색하다고 해도 이건 좀 이상한데?'
자신이야 늘 보던 얼굴이 확 변했으니 어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그녀를 힐끔거릴 정도로 자신의 화장이 이상하게 보이는지는 새삼 의문이었다.
이때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러자 남자들이 앞다퉈 그녀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먼저 타시죠."
"이쪽으로 타세요."
"제가 문을 잡고 있겠습니다."
서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다들 왜 이러세요, 저한테.'
영문도 모른 채 울상이 된 그녀가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순간 여자들의 시선이 사납게 돌변하며 서희에게로 향했다.
"몇 층 가십니까?"
"몇 층 눌러드릴까요?"
남자들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망함에 서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7층이요……."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7층에 도착하자 서희가 쏜살같이 내렸다.
뒤이어 남자들의 들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대박. 누구야?"
"새로 들어온 직원인가?"
"오우, 순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7층이면 예능국이잖아. 점심때 한번 슬쩍 가봐야겠는데?"
도망치듯 걸어가던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설마, 저게 내 얘기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서희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최대한 빨리 화장을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창피함과 민망함이 한 줄기 의혹과 함께 뒤엉켜 그녀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실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앗!"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냈다.
그곳엔 '그녀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