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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죄가 많다
작가 : 벽개
작품등록일 : 201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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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신을 믿으시나요?
작성일 : 17-07-19     조회 : 413     추천 : 1     분량 : 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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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신을 믿으시나요?

 

 “형, 꼭 해야겠어요?”

 5월의 넷째 주 월요일, 서울의 어느 한 대학 캠퍼스에서 우현과 민기는 사이좋게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못할 거 같아?”

 “그건 아닌데, 솔직히 안했으면 해서요.”

 “왜?”

 “자랑스런 국문과의 선배가 타과의 여학생에게 창피를 당하는 모습을 본다는게...후배로서 마음이 참 불편하네요”

 당돌한 후배, 민기의 말에 우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민기의 말은 곧 시작될 우현의 ‘번호 따기’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현은 피던 담배를 비벼 끄고 후배의 뒷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이게 응원은 못할망정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치네.”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걔가 왜 형 한데 번호를 왜 주겠어요?”

 민기의 확신하는 듯 한 말투에 우현은 점점 오기가 생겼다.

 “뭐라는 거야.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뭐 어때서? 너 혹시 걔 한데 관심 있어?”

 “아니거든요. 저는 그런 스타일 별로에요. 여자는 자고로 작고, 아담하고, 귀여워야죠.”

 “위험한 놈. 평생 병아리나 따라 다녀.”

 우현은 민기의 잘못된 여성관에 혀를 찼다.

 스스로가 연예인이라도 되지 않는 한 평생가도 만나지 못할 정도의 미녀를 앞에 두고도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다니, 취향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느꼈다.

 우현은 고개를 저으며 인문관 정문을 바라봤다.

 “아 씨, 떨려.”

 “에휴...”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당당한척 행동하고 있지만 우현도 오늘의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우현이 찍은 상대는 문과대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윤리교육과 최고미녀였던 것이다.

 듣기로 윤리과는 물론이며 인문관 안에서도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벽이 높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어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악명 아닌 악명이 자자할 정도였다.

 ‘최악이라 해봤자 낙엽.’

 우현은 번호를 받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이 잃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낙엽정도야 언제든지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형 나와요, 나와.”

 “오늘은 혼자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가 인문관을 나서고 있었다. 거기다 평소 그녀의 곁에서 패키지처럼 따라 다니던 친구들까지 오늘은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우현은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고 느꼈다.

 “진짜 가요?”

 “뒤에서 보고나 있어.”

 복학하고 우연히 듣게 된 윤리교육과 수업. 우현은 거기서 한별을 처음 만났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남자들은 대게 속으로 감탄사를 세 번 정도 내게 되는데, 우현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한별은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현실 여자들 중에서도 최고였다.

 하얀 피부에 눈부신 미소, 거기다 환상적인 몸매까지. 이번 학기 내내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우현은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떼려 했다.

 

 띠링!

 

 첫발을 내딛는 절묘한 타이밍에 휴대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현은 찝찝한 마음에 재빨리 휴대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우현은 순간적으로 민기의 메시지이겠거니 했다.

 “야! 장난치지 말고 보고나 있어!”

 “예?”

 당황해하는 민기를 뒤로하고 우현은 행동에 들어갔다.

 한별이 오늘처럼 혼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마음이 다급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그림자를 뒤쫓았다.

 “흠, 저기.”

 그녀와의 거리가 아주 잠시 좁혀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그녀의 뒤에서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한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두 사람의 거리는 2미터 이상 벌어졌다.

 ‘뭐지?’

 우현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다시 그녀의 그림자를 쫓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한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좋게 본다면 해변의 연인들이 닿을 듯 말 듯 술래잡기를 하는 듯 했고, 나쁘게 본다면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를 피해 도망가는 여자처럼 말이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그때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추격전을 하듯 쫓고 쫓기는 형세가 되었다.

 “아니, 저기 잠시..”

 이윽고 한별이 캠퍼스를 뛰기 시작했다.

 우현도 정신없이 뛰었다. 그녀가 왜 뛰는지, 그리고 본인은 왜 따라 뛰는지 생각할 겨를 도 없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말이 있었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뛰었다.

 머릿속으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보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더 급했다.

 ‘설마 날 피해 도망가는 건 아니지?’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부정했다. 멀리서 민기의 웃음소리가 캠퍼스 곳곳에 널리 퍼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미묘한 추격전은 한별이 중앙도서관 건물로 들어가면서 끝났다.

 저곳까지 따라 갈 수도 있었지만 우현의 이성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 이상 그녀를 쫓는 일은 일생일대의 수치에 양념을 치는 짓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현은 자신에게 벌어진 이 황당한 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그녀가 들어간 건물을 바라봤다.

 “아, 씨발.”

 끊었던 욕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최악의 경우 한 장의 낙엽이 될 각오까지도 했건만 도도한 그녀는 그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띠링!

 

 다시 메시지가 왔다.

 우현은 이번에도 민기의 메시지이겠거니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전의 이 웃지 못 할 황당한 일을 뒤에서 전부 지켜보고 있었을 놈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거봐 내가 가지 말라고 했지?

 

 “누구야 이건?”

 하지만 메시지의 발신자는 민기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처음 온 메시지도, 지금 도착한 메시지도, 모두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우현은 발신자의 이름을 읽었다.

 “베타?”

 발신자의 이름은 베타였다.

 그의 기억에 이런 요상한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머릿속을 두 번 세 번 털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베타의 정체는 아마도 민기이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싶었다.

 우현은 짜증을 한껏 담에 답장을 보냈다.

 

 -너 누구야?

 -누구? 좋은 질문이네.

 -장난할 기분 아니다. 누구냐 너?

 -왼쪽을 봐.

 

 “왼쪽?”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그곳에는 한창 선교활동에 열을 올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왼쪽을 바라본 우현과 눈이 딱 마주쳤다.

 “미치겠네.”

 남자는 먹이를 발견한 맹수마냥 성큼성큼 우현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전단지를 내밀며 말했다.

 “신을 믿으십니까?”

 

고슴도치 17-07-22 21:18
 
헐... 역시 제 글에 피드백을 해 주신 게 허언이 아니었군요.... 술술 잘 읽힙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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