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은 죄가 많다
작가 : 벽개
작품등록일 : 201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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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제
작성일 : 17-07-19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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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축제

 

 “으하하하하. 아 배아파.”

 역시나 예상대로 민기는 캠퍼스가 떠나가라 웃어대고 있었다.

 우현이 민기를 만나고 세 달 남짓. 이렇게 즐겁게 웃는 모습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우현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사라질 것만 같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재밌냐? 뭐가 재밌어? 형도 좀 알자. 응?”

 “아니, 어떻게, 하하하, 도망을, 크크.”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질 것처럼 허우적대는 민기를 보며 우현은 자연스럽게 얼굴이 썩어갔다.

 “도망? 무슨 소리하냐? 너 약 먹었냐?”

 “걔 도망친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스토커야? 범죄자냐고. 도망을 가긴 왜 도망가. 그냥 급한 일이 생긴 거겠지. 화장실이 급했을 수도 있고.”

 우현은 속이 끓어오르는 짜증에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지만 설득력은 크게 없었다.

 “급한 일은 무슨, 딱 봐도 도망가는 거던데. 아 진짜 웃기네. 아니 어떻게 말 한마디 듣지도 않고 도망을 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하.....진짜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냐?”

 “네. 그게 아니면 걔가 갑자기 왜 뛰어요.”

 “대체 왜! 날도 밝은데! 내가 어쨌다고!”

 정말 억울했다.

 민기는 어느새 우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평소에 너무 음흉하게 바라 본거 아니에요? 형이 어떻게 보면 좀 무섭게 생기긴 했어요.”

 “어이가 없네.”

 맷돌을 돌릴 때 쓰는 손잡이를 ‘어이’라고 한다던데. 그게 없으면 이런 느낌일까.

 우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떠올리려 애써 봤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헛된 기대인 듯 했다.

 그녀는 정말 도망친 것 같았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정황이 도망이라 말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야, 그만 처 웃고 휴대폰이나 줘봐.”

 “폰은 왜요?”

 “잔말 말고 줘봐.”

 우현은 민기의 휴대폰을 뺏어들고 메신저의 내용을 훑어 내렸다. 한별이 이미 떠나버렸다면 베타라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얀 놈, 장난칠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평소 장난에 관대한 자신이지만 오늘만큼은 화를 좀 낼 생각이었다.

 그만큼 한별이 우현에게 던진 폭탄은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아니 남의 휴대폰은 갑자기 왜 봐요? 이거 사생활 침해에요.”

 “잔말 말고, 너 베타 아니야?”

 “에? 무슨 소리에요. 형 지금 쪽팔려서 말 돌리는 거죠? 와, 진짜 이 형 고단수네. 말 돌리는 수준이 거의 예술인대?”

 “에이 씨, 그런 거 아니다.”

 “아니 그런 거 같은데?”

 짓궂게 웃어재끼는 민기를 보며 우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성질 같아서는 베타고 뭐고 간에 일단 한 대 치고 싶을 만큼 얄미운 녀석이었다.

 “아니면 됐다. 가져가.”

 결국 민기의 휴대폰에서 베타의 흔적을 찾지 못한 우현은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니 이 추태를 저놈 말고 또 누가 봤단 말이야?’

 가장 큰 걱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베타가 국문과의 녀석이라면 당장이라도 과에 소문이 퍼질게 눈에 선했다. 그러면 자신은 한동안 술자리의 안주꺼리가 될게 뻔한 일이었다.

 우현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왔다. 일이 이런 식으로 커질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차라리 한 장의 낙엽이 되었다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힘내세요. 형. 솔직히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너도 태세전환이 예술이야.”

 “히히, 장난이죠. 술이나 먹으러 가요. 한잔 콜?”

 “닥쳐.”

 

 ***

 

 -너 누구야?

 -누구? 좋은 질문이네.

 -장난할 기분 아니다. 누구냐 너?

 -왼쪽을 봐.

 -죽고 싶냐?

 

 “대체 어떤 놈이지?”

 베타의 메시지가 온지 이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또한 술자리에서 베타의 문제로 민기를 몇 번 더 추궁해 보기도 했지만 아니라고 학을 떼는데다 마땅한 증거도 잡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니 더 이상의 메시지가 오지 않는다면 베타의 정체를 밝히기란 요원한 일로 보였다. 뭐 경찰에 신고라도 한다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일은 학과 내에 아무런 소문도 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우현은 베타에 대한 생각을 그만 접기로 했다. 조금 민감한 장난을 치긴 했지만 딱히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어서 더 이상 쓸모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단 곧 있을 윤리과 수업이 그는 더욱 신경 쓰였다.

 일주일에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 있는 윤리과 수업은 우현이 한별을 만나는 유일한 기회였다.

 때문에 지금까지 목, 금을 그토록 기다렸는데, 월요일 사건 이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한별이 고의로 자신을 피했다면 이는 명백한 거절의 뜻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거절했는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겠지만, 될 수 있으면 그녀와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우현으로선 민망하고 머쓱한 일이었다.

 “아 쪽팔린데.”

 이것이 솔직한 우현의 심정이었다.

 다만 내일 있을 목요일 수업이 학교 축제로 취소될게 분명해서 오늘 수업을 듣지 않는다면 곧 있을 기말 시험에 큰 지장이 생길게 틀림없었다.

 우현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끌며 인문관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시험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욱이 종강까지 강의가 몇 번 더 남은 터라 계속해서 피할 수도 없었다. 한별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못 본적 할 수밖에는.

 ‘조용히 구석에서 수업만 듣고 빨리 나와야겠다.’

 인문관 404호는 윤리교육과 기초교양 중 하나인 ‘윤리교육학개론’이란 아주 재미없는 수업이 열리는 곳이었다.

 우현은 조심스럽게 404호 강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 여기에요!”

 강의실에 얼굴을 내밀자 어떻게 알았는지 민기가 귀신처럼 알고 소리쳤다.

 당연히 주위의 이목이 순간적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우현은 어금니를 물며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간신히 숨겼다. 그리고 빠르게 강의실을 스캔했다.

 ‘쉣더퍽’

 불행히도 한별이 항상 앉는 자리에서 패키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우현은 빠르게 민기의 옆자리에 앉으며 으르렁거렸다.

 “너 일부러 소리 친 거지?”

 “왜요?”

 “배려가 없는 거야, 기억력이 물고기 수준인거야? 월요일에 있었던 일 벌써 까먹었어?”

 “아, 뭘 그런 거 가지고. 형이 뭘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도망간 저 여자가 웃긴 거지. 당당하세요. 숨을 필요 없어.”

 민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말도 한 마디 붙이지 못하고 거절당한 우현의 자존심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하지만 민기는 한 술 더 떠서 본인의 이야기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보세요. 저. 벌써 세 번 차였어요. 그래도 봄이랑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데요. 기대하세요. 곧 네 번째 들어갈 겁니다.”

 “이런 또라이. 너 그러다 스토커 돼. 다른 게 스토커가 아니야.”

 임봄이란 여자 새내기를 두고 12학번 남자들 사이의 치열한, 아니 어이없는 경쟁을 알고 있는 우현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우현은 백팩에서 노트와 필기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병아리가 그렇게 좋아?”

 “현실을 부정하는 건 형이에요. 1학년에서 봄이 안 좋아하는 남자는 없을 걸요?”

 민기는 마치 임봄이 자기 여자 친구라도 되는 양 거만 표정을 지었다.

 우현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였다.

 취향을 좀 타긴 했지만 민기처럼 취향만 맞는다면 그보다 더한 여신은 아마 없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국문과 1학년 남자들 사이에서 병아리, 아니 봄이의 인기는 역대급이란 말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모르긴 해도 2, 3학년 남자들 중에서도 흑심이 있는 사람이 더러 있을게 분명했다. 다만 1학년들의 진흙탕 싸움에 끼기 싫어 표를 내지 않을 뿐이다.

 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의미로 팜므파탈이긴하지.”

 “그럼요. 암요.”

 임봄.

 그녀는 많이 봐줘야 중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20살의 대학생이었다. 150이 겨우 넘는 작은 키에 젖살이 가득한 귀여운 얼굴. 남들보다 작은 손과 작은 발을 가졌으며 목소리는 성우를 해야 될 정도로 귀엽고 고운 아이였다.

 거기다 성격은 얼마나 좋은지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다가가 그녀를 싫어하는 여자는 있어도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고 해도 좋았다.

 또한 노란색 옷을 유독 좋아해서 선배들 사이에서 병아리란 별명까지 얻어, 귀여움에선 한별조차도 한수 접어야 될 정도의 아이가 바로 봄이었다.

 “근데 너희들은 너무 지저분해.”

 “지저분한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에요.”

 국문과의 정원은 보통 50명 정도인데 남자에 비해 여자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어느 정도냐면 우현이 입학할 당시 남자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고 여자가 45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매년 남자의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해 올해, 그러니까 12학번은 남자가 16명이나 되었다.

 올해 입학한 16명의 남자들은 신기하게도 대부분 남고를 다닌 아주 순해빠지고 여자경험이 전무한 놈들이었는데 그들에게 봄이의 매력은 취향을 떠나 저항을 불가하게 만드는 마성의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취향저격의 민기는 물론이고 여자경험이 전무한 새내기 남학생들은 하나 같이 봄이를 좋아하게 됐다.

 우현이 알기로 16명중에 한 명을 제외한 15명이 봄이를 좋아했고, 대학생활이 3달째에 접든 지금 12명이 고백을 하고 12명이 차였다.

 물론 가장 먼저 차인 건 그의 옆에 있는 김민기였다.

 “어떤 의미로 너희들의 우정은 참으로 대단하다 생각해.”

 “다시 말하지만 이건 공정한 경쟁입니다.”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동기 전체가 펼치는 경쟁. 그러면서도 남자들끼리는 또 친하게 지내는 것이, 우현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정도를 떠나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옆자리에 있는 김민기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차이고도 당사자인 봄이와 친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네가 단연 최고야. 세 번이나 차이고도 봄이랑 친구로 지네 다니. 정말 대단하다. 존경한다.”

 “그쵸? 형도 절 본받으세요. 우리 당당하자구요.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에요.”

 “근데 그거 어장 아니야?”

 “아닙니다. 어장이라니요!”

 뭐 봄이 본인은 확실히 거절을 해도 남자들이 좋다고 옆에서 얼쩡거리는 거니 어장이라 하기엔 과한 감이 있긴 했다.

 민기는 갑자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경쟁도 최종장입니다.”

 “이제 3명 남았나?”

 “저까지 4명이요.”

 아직까지 고백안한 3명과 세 번 고백하고 세 번 차인 한명.

 우현이 보기엔 여전히 앞이 캄캄한 혼돈이었지만 민기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민기는 엄청난 기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제 정보에 따르면 이번 축제를 기회로 셋 중 두 명 이상이 고백할거에요.”

 “그럼 네겐 위기 아니야?”

 “아니죠. 반대로 기회죠. 봄이는 분명 그놈들의 고백을 시원하게 걷어찰게 틀림없거든요. 그럼 봄이의 곁에 남는 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저 밖에 없어요. 이것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 마지막 고백을 시도할 타이밍이 아니겠습니까?”

 “...아, 뭐, 그렇구나.”

 우현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미친놈과 지금까지 학교를 다녔는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경찰을 불러야 되는 건 아니겠지.’

 민기의 승부욕과 집념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 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우현이 민기의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윤리교육과 교수님이 들어왔다.

 50대 초반의 여교수님은 출석을 부르고 곧장 내일 있을 강의 공지를 시작했다.

 “자! 집중하세요! 내일은 학교 축제라 휴강을 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저희는 정상 수업 진행하겠습니다.”

 “교수님!”

 “말도 안 돼!”

 “안돼요!”

 여기저기서 항의성 외침이 들려 왔지만 윤리교육과 교수님은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 우현과 민기도 서로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허탈한 외침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내일 수업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강의 진도도 진도지만 휴강이라고 학교도 안 나오고 집에서 뒹굴 거릴 여러분들을 위해서 제 한 몸 희생하는 거니까 여러분들은 개운하게 수업 듣고, 축제를 즐기도록 하세요. 그럼 수업 시작하죠.”

 전부터 교수님에게 마이웨이 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느꼈었는데 설마하니 축제 날에 수업을 하시다니, 우현은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때였다.

 

 띠링!

 

 메시지였다.

 우현은 불만을 토해내면서도 습관적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잘 지냈어?

 

 “허, 이놈 봐라.”

 발신자는 이틀간 연락이 없던 베타였다.

 우현은 슬쩍 옆자리의 민기를 바라봤다. 아직도 베타의 정체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민기여서 다시 한 번 그의 동태를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민기는 우현처럼 배신감에 부들부들 할 뿐 휴대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이거 진짜 어떤 놈이야?’

 말로만 듣던 관심 종자가 바로 이놈인가 싶었다. 우현은 일단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혹시 관종이니?

 -음,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하지만 아니야.

 -그럼 뭐하는 사람이야? 혹시 나 암?

 -알지, 알고말고. 난 널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왔어.

 

 ‘이놈도 스토커인가?’

 민기의 옆모습을 슬쩍 보며 우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집 밖에는 다 미친놈 밖에 없다더니, 이제야 그 말뜻이 조금은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우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베타의 메시지가 이어서 도착했다.

 

 -나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아. 너도 조금은 눈치 챘겠지만 평범한 존재가 아니거든.

 -백수야?

 -....경제적인 활동을 이야기 하는 거라면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우현은 교수님의 강의를 한 귀로 흘리면서 베타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활동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 그러니 백수라고 나를 정의하는 건, 조금 불쾌해.

 -그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한 번 재주껏 정의해봐.

 -굳이 정의를 한다면 일종의 신이라 할 수 있지.

 

 신이라는 소리에 우현은 조금 맥이 빠졌다. 뭣 하러 수업도 안 듣고 관심종자의 메시지에 에너지를 쏟았는지 스스로가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우현은 빠르게 액정을 두드렸다.

 

 -헌신? 새신? 아니면 나막신이야?

 -믿기 힘든 너의 마음도 이해는 해.

 

 신이라니.

 우현은 한별을 쫓아 중앙 도서관까지 달렸던 이틀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선교중인 남자에게서 전단지 한 장을 받았다.

 ‘신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머리글을 보고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만큼 우현은 신이나 영혼, 전생 뭐 이런 불가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논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우현은 옆자리에 있는 민기를 툭 건드렸다.

 “너 혹시 신을 믿냐?”

 “아뇨, 저 무교에요.”

 민기는 수업 중에 뜬금없이 뭔 소리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민기가 신을 믿는다면 베타를 이 녀석에게 소개시켜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우현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액정을 바라봤다. 베타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내가 너에게 찾아온 건 몇 가지 부탁이 있어서야.

 -부탁?

 -너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 될 거야.

 -가지가지 하는구나. 신종 보이시 피싱이냐. 차단한다. 연락하지마라.

 

 우현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베타의 대화창을 차단시키려 했다.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 그리고 승부의 순간이 온다면 주먹이야 주먹. 잊지 말라고.

 

 “미친놈.”

 우현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베타를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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