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은 죄가 많다
작가 : 벽개
작품등록일 : 201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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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축제(2)
작성일 : 17-07-19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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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첫날.

 인문관은 오전부터 축제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스터를 여기저기 부착하거나 준비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최종 확인 작업을 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보였다.

 우현과 민기는 오전에 있는 윤리교육과 수업을 듣고 11시쯤 국문과 학과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학과실에 들어가자 후배들이 하나 둘 우현에게 인사를 했다. 대부분이 올해 들어온 12학번 1학년 새내기들이었다.

 우현은 그들의 인사를 적당히 받으며 안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옆자리에 가방을 던져 놓는 민기를 보며 말했다.

 “점심 어쩔래?”

 “오늘은 짬뽕이 땡기는데, 우리 나가서 먹어요.”

 짬뽕, 나쁘지 않은 메뉴였다. 학과실에서 대충 시간을 보내다 12시쯤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동기들에게 다가가 수다를 떠는 민기를 보며 우현은 가방에서 두툼한 강의 노트를 꺼냈다.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 한 시간 동안 기말 시험 준비 겸 노트나 한 번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강의 노트를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학과실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선배님.”

 1학년 학생대표 최동호였다. 우현도 평소 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답해주었다.

 “동호 오랜만이네?”

 “하하하, 네 선배님. 저번 주 술자리 이후에 처음이네요.”

 동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쓱 행색을 훑어보니 집에서나 입을 것 같은 추리닝에 슬리퍼, 거기다 머리는 부스스한 것이 영략 없이 학과실에서 밤을 지새운 듯 보였다.

 “여기서 잤어?”

 “네, 준비할게 많아가지고요.”

 대부분의 1학년 대표자가 그렇듯 동호도 얼떨결에 감투를 쓰고 개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우현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고생이 많다. 점심은 먹었어?”

 “아뇨, 조금 있다 먹어야죠.”

 “그래? 우리 짬뽕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 선배가 사줄게.”

 “오! 선배님 감사합니다.”

 짬뽕하나가 뭐라고 지나치게 좋아하는 동호를 보며 우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현은 테이블 위에 있는 축제 포스터를 슬쩍 들춰 보았다. 주점과 관련된 홍보지였다.

 “올해도 주점이야?”

 “네, 작년에는 못 땄다는데 올해는 상호선배가 따왔죠!”

 국문과가 주점 자리를 땄다는 사실이 좋은지 동호는 밝게 웃었다.

 대학교 축제의 주점은 많은 학과에서 노리는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학과가 주점을 열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자리였다.

 캠퍼스의 면적은 제한적이고, 그 속에서 주점을 열기에 적당한 장소는 더욱 제한 적이었다.

 그래서 각 단대마다 몇 되지 않는 TO를 두고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 같은 복불복 게임을 하곤 했다.

 “재미있겠네.”

 우현은 입대 전, 그러니까 자신이 1학년이던 2009년 축제를 떠올리며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에게 주점이란 매우 힘든 노동일 뿐, 대학생이 굳이 해야만 하는 일은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한 동호는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선배도 놀러 오세요.”

 “알았어. 둘째 날이지?”

 “네, 이과대 앞에서 해요.”

 그렇게 동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학과실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걔 중에는 1학년도 있었지만 우현보다 학번이 높은 선배도 있었다.

 우현은 사람들 틈에 있는 승진선배를 발견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선배.”

 “요! 우현아 수업 잘 들었냐?”

 “네. 오늘 수업을 할 줄은 몰랐네요. 좀 있다 점심만 먹고 바로 합류할게요.”

 “좋았어.”

 180이 훌쩍 넘는 큰 키에 남자다운 얼굴을 한 승진 선배는 우현보다도 3학번이나 높은 06학번 선배로 지금 12학번 아이들에게는 조상님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승진선배는 단순히 학번만 높은 선배는 아니었다. 국문과 학회 중 하나인 태백산맥의 학회장이기도 했다.

 태백산맥은 현대문화연구라는 주제로 활동하는 국문과의 학회였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학과 사람들끼리 운영하는 동아리라 볼 수 있었다.

 물론 학과 사람들로만 운영되다 보니 일반적인 중앙 동아리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동아리나 학회나 큰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스터디 적인 면에서는 놀자 판인 동아리보다 훨씬 더 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현은 1학년 때부터 태백에 가입해 활동을 해왔기에 이번 축제도 태백의 활동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승진 선배는 프린트된 일정표를 우현에게 한 장 건네주며 말했다.

 “포스터는 조금 전에 지혜랑 애들이 다 붙였거든. 너는 나중에 나랑 장이나 좀 보러가자.”

 “네. 선배.”

 우현이 윤리과 수업을 듣는 사이 포스터 작업이 모두 끝나버린 모양 있었다.

 일정표의 제일 위 줄에는 ‘릴레이 상영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릴레이 상영회는 이번 태백의 축제 프로그램으로 오늘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태백에서 선별한 영화 십여 편을 밤새도록 상영하는 기획이었다.

 영화 중간 중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조금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자리가 될 것이었다.

 우현은 일정표를 잘 접에 가방에 넣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학과실의 문을 두드렸다.

 학과실은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이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노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굳이 있다면 배달 아저씨들뿐일 것이다.

 “누가 배달시켰어?”

 “아니요.”

 승진선배의 말에 동호가 대답했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국문과의 대표 일꾼중 하나인 동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문을 열자 밖에는 예쁘장한 여대생 3명이 서있었다. 그들은 국문과 학과실 안을 잠시 보더니 조심스럽게 용건을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 옆에 유아교육과 학생인데요.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물건 하나만 좀 옮겨 주실 수 없을까요?”

 유아교육과라는 말에 학과실에 있던 남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은 국문과의 바로 옆에 위치한 학과로 이를테면 이웃인 분들이었다. 거기다 문과대 내에서도 미녀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우수한 전통(?)을 가진 학과였다.

 동호는 망설일 필요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어디로 가면 되죠?”

 “혼자서는 힘드실 텐데, 다섯 분 정도만 혹시 도와줄 수 없을까요? 방이 좁아서 더는 못 들어갈 거 같고...”

 다섯 명이라는 말에 학과실에서 쉬던 남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현도 일어서야 하는 상황임을 알고 노트를 접고 일어섰다. 그리고 눈동자를 돌리며 빠르게 인원을 체크했다.

 ‘하나, 둘, 셋... 여섯 명’

 관심 없다는 듯 상황을 지켜보는 민기를 제외한 여섯 명의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슬쩍 승진선배를 바라봤다. 그는 선배로서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앞으로 나서며 유아교육과 여학생에게 말했다.

 “저희가 다섯 명 추려서 애들 보내 드릴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

 “감사합니다. 1층 로비로 오시면 되요.”

 “네, 알겠습니다.”

 적당한 말로 유아교육과 여학생을 돌려보낸 승진선배는 일어서 있는 남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위바위보야.”

 TO는 다섯 명, 지원자는 여섯 명.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상황을 이해했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떨어지는 것이다.

 우현은 재밌는 상황에 미소를 지었다.

 최고학번 승진선배부터, 12학번 최동호까지. 학번 학년은 다양했지만 모두가 꼭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등 뒤에서 여학생들의 어이없다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가위바위보라.’

 평소 내기를 좋아하는 우현은 가위바위보에 있어서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다. 당연히 승진선배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우현은 다섯 명의 얼굴을 쓱 훑어보며 신중하게 패를 골랐다.

 ‘가위? 아니야, 아니야. 보자기? 아니, 그것도 아니야, 그래 역시 주먹이지.’

 그렇게 주먹으로 선택이 기우는 사이 어제 왔던 베타의 마지막 메시지가 문득 떠올랐다.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 그리고 승부의 순간이 온다면 주먹이야 주먹. 잊지 말라고.

 

 주먹. 놈은 분명 주먹이라고 말했다.

 ‘안 돼! 주먹은 안 돼!’

 베타의 메시지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주먹을 낼 생각이었던 우현이지만 막상 베타의 메시지를 떠올리고 나니 반대로 주먹이 내고 싶지 않아졌다.

 우현의 고질적인 청개구리 성향이 발동한 것이다.

 ‘그래, 보자기로 가자.’

 그렇게 우현이 보자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 승진선배가 지체하지 않고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여섯 개의 손이 펼쳐졌다.

 보, 보, 보, 보, 보, 주먹.

 신기하게도 다섯 명이 보자기를 내고 단 한명이 주먹을 냈던 것이다.

 주먹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동호의 얼굴이 보였다.

 우현은 동호의 어깨들 두드리며 말했다.

 “화장실가서 머리나 감고 있어. 갔다 와서 밥 먹자.”

 “네, 선배님.”

 힘없는 동호를 뒤로 하고 보자기를 냈던 다섯 명의 국문과 남학생들은 웃으며 학과실을 나섰다. 그들은 곧장 인문관 1층 로비로 향했다.

 ‘역시 개소리였어.’

 우현은 베타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리며 그를 비웃었다. 역시나 관심종자일 뿐이었고 차단하는 게 백번 옮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만약 놈의 말대로 주먹을 냈다면 큰 후회를 할 뻔한 상황이었다.

 1층 로비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예쁘장한 여대생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진선배는 앞장서서 그녀들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들은 너무나도 선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현을 포함한 국문과 남학생들은 유아교육과가 마음씨도 참 곱다고 생각했다.

 ‘역시 아이를 가르치려면 인성이 중요하지.’

 승진선배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되죠?”

 “이쪽이에요, 따라 오세요.”

 유아교육과 여학생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우현은 그녀들을 따라 내려가며 문과대의 지하에 유아교육과 실습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하는 따로 냉방 시설을 틀지 않았음에도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더위를 피해 피난이라도 온 듯 유아교육과 여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그녀들은 갑자기 나타난 다섯 명의 남학생들을 신기한 동물 보듯 바라봤다. 그만큼 이 실습실도 남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 중 하나였다.

 우현과 국문과의 남학생들도 그녀들을 훑어보며 유교과에 역시 미녀가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안내를 하는 여학생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피아노실’이라고 적힌 방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에요.”

 문을 열자 좁디좁은 방 안에는 검정색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학생의 뒤에서 방안을 바라보던 우현과 승진선배는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지금 피아노를 옮겨달라는 소리는 아닐 거라고, 그들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피아노실 안으로 조심히 들어갔다.

 승진선배가 휑한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떤 걸 옮기면 되죠?”

 “그거요, 그거. 거기, 그거.”

 그녀는 피아노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피아노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정도로 방 안에는 피아노 외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승진 선배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우현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까지 옮겨야 하죠?”

 “1층 현관까지만 옮겨주세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들고 계단을 올라 1층 현관까지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우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배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혹시 이삿짐센터에서 일해본 사람 있니?”

 “아뇨.”

 후배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동호가 무척이나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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