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대도가 행해진다는 것은 온 천하에 공명정대함이 다하여 정치를 함에도 능력과 어짊이 있는 사람을 뽑아 행해야 한다."
"예기 예운편이군요."
"하하하. 소설책만 읽은 건 아닌가 보오?!"
"뭐 읽을 수 있는 건 다 읽지요. 워낙 책이 귀하니."
"내 서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는 낭자가 처음이오."
"자랑이 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재미있을 거 같아서. 낭자가 내 서재의 책을 다 읽으면 과연 나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
무열의 이야기를 듣고 아라는 가슴이 뛰었다. 사내와 이런 대화를 나눌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평민이라 무시하지 않고, 여인이라 무시하지 않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사내가 사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헌데 평등한 나라에 왕이 계신 것과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동사회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요?"
"필요하니까. 대동사회는 대문을 잠그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인데 그런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한다는 뜻 아니겠소? 왕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라 전체를 돌보는 직책을 수행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오."
"허나 왕에게 잘 보이려 아첨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어 백성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난 왕이 백성을 잘 다스리되 왕위를 세습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을 왕으로 뽑아야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된다고 생각하오."
"그 또한 지혜로운 자도 결국에는 왕이 뽑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열은 고개를 저으며 검지로 아라를 가리켰다.
아라의 가늘고 길던 눈매가 동그래졌다.
"저요?"
"백성 모두. 낭자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던 백성들이 뽑아야지요."
"허나 백성들은 다들 먹고 사는데 바빠 지혜로운 자까지 살피고 뽑을 여력이 없을겁니다."
"그럼 누가 지혜로운지 아닌지 감시하는 직책에 어울리는 자를 앉히면 되지요. 해 볼테요?"
"제가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농 마십시오. 여인이 직책을 맡는 나라가 어디있답니까?"
"율도국이오. 우리 율도국은 여인들도 원하여 노력하면 합당한 직책을 맡기도 하지."
"마치 왕이신 듯 말하십니다."
"왕은 아니지만 비슷한..."
"그러고보니 제가 제일 중요한 걸 안물었습니다."
"무얼 말이오?"
"율도국의 왕을 뵈러 가시는 길이라 했는데 왜 율도국의 왕께서 조선에 계시는 건지, 도사님들이 왜 왕을 뵈러 가시는지요."
"아버님께서는 할아버님의 삼년상 중이시라오."
"아버님? 아~ 그러고보니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하셨지요?"
"사실 나는 율도국 대왕의 아들. 조선으로 치면 세자요."
"아~ 그래서 보자마자 말부터 놓으시고, 왕의 직책이 어쩌구 하신...네?!!!!!!!"
아라는 너무 놀라서 눈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사내, 평민 복장을 하고 있지만 한 겨울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보송보송 한 하얀 피부 때문인지 귀티가 났다. 숯으로 그린 것 마냥 잘 뻗은 눈썹, 심해같이 깊은 눈, 진주라도 들어있는 듯 오똑하고 동그란 콧망울, 생기 넘쳐보이는 붉은 입술, 하나 하나 뜯어보니 장대같이 큰 키의 이 미남자, 지금껏 아라가 본 여느 사내들과는 다른 후광이 났다.
"많이 놀랐소? 괜찮소? "
"말씀 놓으시지요."
조금 전까지 바락바락 말대답하던 여인은 사라지고 다소곳해진 아라를 보며 무열은 아라가 제법 처세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괜찮겠소? 사실 조선 높임말이 어려워서. 하하하."
"진작 말씀하시지..."
"우리 또래같은데, 낭자도 편하게 하시오."
"아니요. 저는 하던 대로."
"하려면 똑같이 해야지."
"하지만 저 분은 높임말을 쓰던데요."
무열과 아라는 뒤따라 오는 창이를 보았다.
"사부님과 나는 서로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 그런 거고."
"갑자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율도국의 세자인 걸 알았는데 어찌. 저는 이게 더 편합니다."
"그럼 서로 차차 편해지면 그때 놓기로 합시다."
"그럴 날이 올런지..."
***
"주모! 여기 국밥 세 그릇 주시오."
"예~"
아라는 무열이 율도국 왕자인 것을 알고부터 시종이나 된 듯 앞장서서 발에 채이는 돌도 치워주고 주막에 들어서며 주문도 척척, 마루 먼지도 탈탈 털고 편히 앉을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열은 아라의 그런 모습이 비굴해보이기 보단 없던 막내 동생이 갑자기 튀어나와 형! 형! 하며 따르는 듯 귀여웠다.
무열과 창이는 늘 이 주막에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끼니를 해결하고 갔는데 오늘은 저무는 해를 보며 국밥을 먹게 되었다. 게다가 일행이 한 명 더 생긴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여기 국밥이요~ 오늘은 예쁜 총각도 있네? 누구요?"
무열은 서둘러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주모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내 벗이라네."
"무슨 사내가 이리 고울까. 여인이라 해도 믿겠네."
"무슨 소리! 사내 중에 사내라네! 안 그런가. 개똥이?"
무열은 아라가 발끈하여 내뱉은 낯설기 그지 없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낯빛이 또 붉어졌다. 무열은 아라의 입에서 또 개똥이라는 이름이 나올까 두려워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아라의 입을 막았다.
"허허허. 이 친구. 짖궂기는! 그럼 자네가 사내 중에 사내지."
창이는 무열과 아라의 작태를 보자니 부끄러워 견딜 수 없어 그저 국밥만 흡입했다. 아라가 무열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국밥을 먹자 무열도 국밥 흡입에 합류했다.
국밥을 다 먹고 주막을 나오는 길에 아라는 덩치가 큰 사내와 부딪혔다. 사내는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아라를 보며 비웃었다. 아라는 자신을 비웃고 지나가는 사내를 붙잡았다.
"이보시오. 치고 갔으면 사과를 해야할 것 아니오!"
"너무 작아서 못 봤수다. 으하하하."
"뭐요?"
"무슨 일이야?"
계산을 마치고 나오던 무열과 창이가 아라의 옆으로 왔다.
"이 자가 날 친 것도 모자라 비웃었네."
"당장 사과하시오."
"너희는 또 뭐야?"
"벗이오."
"조막만 한 것들이. 비켜. 오늘 재수가 없으려니까."
무열은 사내를 붙잡고 고갯짓으로 사과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이번에도 사내는 무열을 비웃으며 무열을 내쳤다. 그때, 창이가 순식간에 손으로 사내의 목을 내리치고 무릎 뒤를 발로 차 사내가 무릎 꿇게 만들었다.
"사과해라."
"미안하게 됐소."
무열은 양팔로 창이와 아라의 어깨동무를 하며 기분 좋게 뒤돌아섰다.
"잠깐. 거기 서."
돌아보니 덩치 큰 사내와 비슷한 무리들이 우르르 서 있었다. 무열과 창이는 서로 시선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내들을 향해 무열은 주머니에 차고 있던 공을 꺼내 던졌다. 팡! 안개가 자욱해지자 무열은 아라의 손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거 뭐야! 헉!"
안개가 걷히자 그 자리에 덩치 큰 사내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
무열과 아라는 손을 잡은 채 한참을 달려 주막에서 멀어지자 잠시 멈춰 쉬었다.
"대장부가 치사하게 도망이 뭡니까?"
"도망이라니, 삼십육계 상책 중 상책을 쓴 것이거늘."
"실망입니다. 안개를 그런 식으로 쓰시다니."
"난 조선에서 사고치면 안되는 몸이오."
"하긴, 다른 나라 세자시니 나라 간에 분쟁이 날 수도 있겠군요...라고는 하지만, 세자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하하하."
"지금 비웃는 거? 아니 안개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게 누구시더라~? 나 아니었으면 아직도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었을 걸."
"누가요? 제가요? 무슨 말씀을~ 제가 얼마나 민첩한데~"
"하하하. 내가 낭자 손만 안잡고 뛰었어도 벌써 아버님께 도착했을 거요. 낭자 손 잡고 뛰느라 내가 아주~"
"아....손...."
아라는 무열과 잡고 있는 손을 후다닥 놓았다. 아라는 딴청을 부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창이가 없는 것을 눈치챘다.
"근데 사부님이라는 분이 안 보이십니다."
"어? 어디 가셨지? 아버지께 가는 길은 이 길 뿐인데."
"여기 있습니다."
무열과 아라는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 보았다. 나무 위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창이는 혀를 끌끌 차며 내려왔다.
"소왕 체면 상하지 않게 그 놈들은 제가 처리하고 왔으니 걱정 마십시오."
"사고 치면 안된다니까요. 사부님, 진짜 성질 좀 죽이시라니까."
"흠흠. 밤이 늦었습니다. 서둘러 가시지요."
무열과 아라는 창이를 뒤따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아까 주막에서는 말만 잘 놓더니 왜 또 높임말이오?"
"사내 벗인 척 해야 했으니 그렇지요."
"조선에 진짜 벗이 생긴 거 같아 좋았는데. 우리 계속 말 놓으면 안 될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무열을 보며 아라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내일 조선을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참.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고 했지. 그럼 나도 궁금한 거 하나. 우리와 함께 율도국으로 갈 마음으로 지금 동행하는 게 맞소?"
무열은 진지하게 물었다. 아라는 머리 속에 폭풍이 몰아치는 거 같았다.
"고향을 갑자기 떠난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낭자 목숨이 달린 일이오."
"하지만 부모님은 절대 떠나려 하지 않으실 거예요."
"낭자는?"
"네?"
"낭자를 안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내 보기에 낭자는 조선에 어울리지 않는 여인인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렸소?"
아라는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무열은 아라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아라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고작 오늘 하루만에 자신의 마음을 읽는 사내. 아라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조금 전까지 코끝을 맴돌던 산내음도 나지 않고, 산내음을 실어오던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에 휩싸였다.
'이게 뭐지...?"
"괜찮소?"
"네?"
"볼이 엄청 빨개졌소. 열이 나나?"
무열은 아라의 이마에 손을 대보며 열이 나는지 확인했다. 당황한 아라는 무열의 손을 쳐냈다.
"왜 그러시오?"
"가만히 있는 사람 머리를 왜 어루만져요?"
"어루만져 주고 싶으니까. 울려고 했잖소."
"운다고 아무 여인이나 머리를 어루만져요? 그리고 과년한 처자 이마에 손은 또 왜 대요? 사람 간 떨어지게."
"간이 떨어져?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오?"
"율도국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조선에서는 놀랄 일이니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아니, 조선에서는 벗끼리 위로도 못해주오?"
"누구 마음대로 벗이래."
"우리가 벗이 아니면 무엇이오?"
"몰라요!"
"낭자? 말 좀 해보시오!"
무열은 앞질러 뛰어가는 아라의 뒷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뒤따라 오던 창이는 무열의 어깨를 잡으며 심심한 위로의 표정을 짓고는 앞질러 갔다.
"내가 뭘 어쨌다고. 다들 왜 이래?"
***
'와...! 홍길동이다!'
무열이 아라와 함께 오게 된 경위를 길동에게 설명하는 동안 아라는 창이와 함께 멀찍이 떨어져 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복을 입고 있어도 길동이 내뿜는 기운은 태산같았다. 아무리 부자 사이라지만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아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대왕께서도 소왕처럼 서책을 많이 읽으셨습니까?"
"아니요. 소왕께서는 왕비님을 닮으셨습니다."
"아~ 왕비님!"
"네."
"무예와 도술에 도통한 대왕님과 문예에 도통한 왕비님 사이에 태어나신 왕자님이야 말로 문무를 겸비한 분이로군요."
"모두 그런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문무를 겸비하지 못하셨습니다."
"네?"
"저도 대왕님의 도력이 소왕께도 전해졌을 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데요?"
창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처음 산에서 만났을 때 이상한 도술을 부리고 단검을 피하며 나무에 올라갈 만큼 무예가 출중했는데.
"피나는 노력과 실학 덕분이지요."
"실학이요?"
"실용적인 학문의 줄임말이라 하시더군요. 소왕께서는 실학에 매료되어 도술에 버금가는 것들을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으십니다."
"아~"
아라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무열이 한 층 더 빛나보였다. 그리고 어렴풋이 무열이 말하는 이상한 나라 율도국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 잡혔다. 그때, 무열이 아라와 창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길동이 먼저 초막 안으로 들어가고 모두 따라 들어갔다. 아라는 초막 안을 둘러보고 한 나라의 왕이 기거하는 초막치고는 너무 단출하다고 생각했다. 무열의 이야기대로 율도국이라는 나라는 왕족도 평민과 다를 바 없다더니 정말 그러한가보다.
"윤.아.라.라고 합니다. 대왕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하하하. 그 소설은 저잣거리에 떠도는 허황된 소문일 뿐이오."
"아버님께서 그 소설때문에 고초를 겪으셨지요."
"내 그래서 모두 소거했다 생각했거늘 아직 남아 있었나 보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책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저도 대왕님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낭자도 나처럼 조선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인가 보구려. 무열이에게 들으니 재주가 많은 낭자라더군요."
'무열? 개똥이가 아니었군.'
아라는 무열을 보며 역시 개똥이는 저 빛나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자객을 목격했다면 낭자를 가만두진 않을 것이오. 조선에 있다가는 언제든 다시 해치러 올지 모르는데 괜찮다면 율도국으로 함께 가겠소?"
"오는 동안 율도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가고 싶어졌습니다."
"오호~ 그래요?"
"하지만 갑자기 떠난다면 부모 형제는 어찌 해야 좋을지..."
"물론, 함께 가야겠지."
아라는 홍삼과 길섬이 과연 조선을 떠나 율도국으로 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열은 어두워지는 아라의 표정을 보았다.
"일단 오늘 밤은 너무 늦었으니 낭자를 쉬게 해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래, 낭자가 이 초막 안에서 주무시오. 우리는 밖에서 회포나 풀테니."
아라에게 초막을 양보하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
"조선 조정이 무열이의 존재를 알았다는 건가...누구의 소행 같으냐?"
창이는 아무 말 없이 표식이 그려진 자객의 단검과 옷자락을 무열에게 내밀었다. 무열이 그것을 길동에게 전했다. 길동은 표식이 그려진 단검과 옷자락을 보았다.
"이건 능소화가 아니냐?"
"모든 자객의 옷자락에 이 표식이 있었습니다. 헌데 마지막 자객이 맞은 단검과 소왕께 던진 단검에도 같은 표식이 있는 걸 보면 한패인 듯 합니다."
"같은 조직원을 죽이면서까지 배후를 숨기려 한거군. 능소화라...창이는 조선에 남아 이 표식을 쓰는 자를 찾거라."
"예."
"이제 상복 벗을 날도 머지 않았구나."
"네. 율도국 모두가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도 율도국이 그립구나. 그동안 나를 대신하여 율도국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삼년 상을 치루기 위해 너에게 율도국을 맡기고 조선에 올 때 고작 네 나이 열 다섯이었는데. 어느 새 늠름한 대장부가 다 되었구나."
"송구합니다."
"무열아, 율도국에 돌아가면 네 국혼부터 서두르자."
"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마음에 둔 여인이라도 있느냐?"
길동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열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길동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온 날들. 율도국 백성을 지키고 학문 정진에만 힘을 써왔지 여인을 마음에 품을 여유따위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국혼 이야기가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무열은 어쩐지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