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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왕자
작가 : 이윤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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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별, 그리고
작성일 : 17-07-21     조회 : 286     추천 : 4     분량 :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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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도국에 가는 대로 무예가 뛰어난 자들을 보내는데 닷새 정도 걸릴 거요. 부디 그때까지 무사하시오."

 "당분간 남장을 하고 지내며 검술 훈련을 할 것이니 염려 마세요."

 

 아라는 어릴 적 유배왔던 무관에게 얻은 병법서 한 권을 흔들어 보이며 걱정 말라는 듯 웃었다. 무열은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 속에서 공을 하나 꺼내 아라에게 주었다.

 

 "위험한 순간에 던지시오."

 "고맙습니다."

 "벗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오."

 

 아라는 제비꽃같은 미소를 지으며 공을 받아들었다. 무열은 아라의 소박한 미소가 그리울 거 같았다.

 

 "삼십육계 주위상책,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책 중에 상책이지."

 "저는 이 순간을 후회하고 살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너무 책망하지 않길 바라오. 조선에 있든 율도에 있든 낭자 마음 속 꽃을 스스로 꺾지 않는 한 낭자는 낭자일 것이오."

 

 무열은 몇 번이고 뒤돌아 보며 힘겹게 배에 올랐다. 아라는 무열이 탄 배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이 되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뱃길로 수백리를 다시 돌아 율도국에 도착한 무열은 오는 내내 아라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율도에 도착한 무열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생각하지도 못한 참담한 소식에 주저앉고 말았다. 율도국의 제 1 왕비이자 무열의 친어머니인 지현왕후가 어제 말에서 떨어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다.

 

 "어머니!"

 

 지현왕후는 왕궁을 길동이 재건할 때 대왕후전이라는 표현을 거부했다. 지혜로울 지, 어질 현, 지혜롭고 어진 것이 왕후가 갖춰야 할 덕목임을 잊지 않도록 '지현전'이라 하고, 백성 누구나 원한다면 찾아와 함께 지혜를 나누었던 어진 여인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어머니..."

 

 무열은 의식없이 누워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지현왕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아버지께는 사람을 보냈습니까?"

 "네. 어제 바로 보냈습니다."

 

 뒤에서 눈물을 훔치며 무열과 지현왕후를 바라보고 있던 제 3 왕비, 해소왕후가 대답했다. 그때, 제 2 왕비 안현왕후가 들어왔다.

 

 "소왕, 오셨습니까?"

 

 무열은 일어나 안현왕후에게 목례를 했다. 안현왕후는 단숨에 무열에게 다가가 두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많이 놀랐지요? 소왕께서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게 무슨 변고인지..."

 "제가 부덕하여 이리 되었습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지현왕후께서는 금방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전 그리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열은 다시 지현왕후의 곁으로 가서 지현왕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안현왕후와 해소왕후는 무열이 지현왕후와만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무열은 밤새 지현왕후 곁을 지켰다.

 

 "소왕, 아침 반상이옵니다."

 "거기 두거라."

 

 궁녀는 반상을 두고 나가려다 무열의 봇짐을 보았다.

 

 "짐은 왕자전으로 옮겨 놓을까요?"

 "짐?"

 

 무열은 궁녀가 들고 있는 짐을 보고서야 자신이 어제 조선에서 돌아왔고 율도국에 오자마자 아라에게 무사들을 보내주기로 한 약조가 생각났다.

 

 "호위대장님을 불러주겠느냐?"

 "네."

 

 무열은 아라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지현왕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제가 또 늦지 않게 해 주세요."

 

 ***

 

 아라는 무열이 떠나고 엿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바닷가에 나가 들어오는 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홍삼은 무열이 떠나자마자 서둘러 아라의 혼처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어느새 마을에는 아라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무성해서 누구도 아라와 혼인하려 하지 않았다.

 

 "이상한 남정네를 따라 갔다 오더니 장군귀신이 씌어 왔대."

 "나도 봤어. 계집애가 남장을 하고 검술 훈련을 하더라고."

 

 아라가 남장을 하고 마당에서 검술 훈련을 하는 것을 보는 길섬은 속이 타들어갔다. 홍삼은 매일 밤, 술이 떡이 되어 돌아와서는 아라에게 소금을 뿌리며 욕을 퍼부어댔다.

 

 "에이! 꺼져라. 귀신아! 내 딸 몸에서 떨어져라!!"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도담은 그런 홍삼을 아라에게서 떼어 내 방으로 업고 들어가 눕혔다. 길섬은 아라의 손을 잡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냥 그때 그 사내 따라 너 보낼 걸 그랬다."

 "어머니."

 "이제 시집도 못 갈텐데...우리 아라 어쩌누..."

 

 눈물을 훔치는 길섬을 아라가 안아주었다.

 

 "난 괜찮아요. 누가 그랬어. 나 스스로 내 마음 속 꽃을 꺾지 않는 이상 난 나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그때였다. 아라는 못 보던 배 한 척이 바닷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아라는 드디어 무열이 율도에서 자신을 지켜 줄 배를 보낸 거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배 위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자를 자세히 보니 긴 저고리를 걸쳐 입고 있으나 바지를 입지 않은 상스러운 차림새에 무언가를 노리고 오는 이리같은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아라는 서둘러 길섬의 손을 잡고 마을로 향했다.

 

 "어머니, 도망쳐요."

 "응?"

 "왜구가 쳐들어 왔어요! 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

 "어머나!"

 

 아라와 길섬은 있는 힘을 다해 마을로 달려갔다. 아라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깨우고, 길섬은 홍삼과 도담을 깨우러 집으로 달려갔다.

 

 "왜구에요. 왜구가 쳐들어 왔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바닷가에 왜구가 쳐들어 오고 있어요."

 "쯔쯔쯔, 장군귀신이 씌었다더니...단단히 미쳤군. 어서 집에 가서 잠이나 자거라!"

 

 마을 사람 누구도 아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라는 필사적으로 왜구가 왔다고 소리를 지르고 다녔지만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라는 관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왜구가 쳐들어 왔어요."

 

 문지기는 아라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비웃었다.

 

 "너 아라 아니냐? 계집애가 남장을 하고 검술 훈련하고 다닌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걱정이 많으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 바닷가로 왜구들이 쳐들어오고 있다고요!"

 "썩 가거라! 더 했다가는 물고를 낼테니.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나으리!!!"

 

 문지기는 아라를 밀쳐내고 창으로 위협했다. 아라는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가족들까지 위험할 거 같아 다시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라가 본 광경은 참혹했다. 바닷가 근처인 아라의 집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다.

 

 "안 돼...엄마...엄마?!"

 

 집으로 달려 가려는 아라를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입을 막고 집 반대편으로 끌고 갔다. 발버둥치는 아라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다. 도담이."

 

 아라는 발버둥을 멈췄다. 큰 나무 뒤에 숨은 도담이는 아라를 풀어주었다. 아라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엄마는?"

 

 도담이는 아라를 볼 낯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아라는 도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도망쳐야 돼. 그놈들이....."

 

 아라는 도담의 멱살을 잡았다.

 

 "엄마는?!"

 

 도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라는 뒤돌아 불 타오르는 집을 보았다.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내가 구할 거야."

 "소용없어. 이미 그놈들 손에."

 

 아라는 자신을 붙잡는 도담을 뿌리쳤다.

 

 "아니야. 나 엄마 구하러 갈 거야!"

 "안 돼. 아라야!"

 "여기 숨어 있었구먼."

 

 낯선 목소리에 아라와 도담은 등골이 오싹했다. 이리같은 눈을 번뜩이며 사나운 칼을 든 왜구들이 아라와 도담을 에워쌌다.

 

 "가만, 저건 계집애 같은데?"

 

 도담은 아라를 방어했다. 아라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하나, 둘, 셋, 좌측으로 충분히 빈틈이 보였다. 아라는 주섬주섬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공을 찾으며 도담에게 귓속말을 했다.

 

 "오라버니,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좌측으로 무조건 달리는 거야. 알았지?"

 "뭐?"

 "하나, 둘, 셋!"

 

 아라가 공을 왜구를 향해 던지자 왜구의 몸에 부딪힌 공이 팡 터지며 안개가 자욱해졌다. 한참을 달리던 아라는 산 절벽까지 다다랐다. 더이상 갈 곳이 없자 아라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마을이 불타고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는 아니었는데......'

 

 "남장을 하고 있어도 계집애는 티가 나지."

 

 아라는 재빨리 일어났다. 아까 에워쌌던 왜구 중 한 놈이 결국 절벽까지 뒤쫓아왔다.

 

 "순순히 가는 게 좋을 거다."

 

 아라는 왜구와 절벽 밑을 번갈아 보았다. 칠흑같은 밤바다가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아라는 문득 무열을 떠올렸다. 바다가 무열이 있는 율도국으로 데려다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

 

 "좀 어떠한가?"

 

 길동과 무열은 의원이 지현왕후를 진맥하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드실 듯 합니다."

 

 무열은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길동 역시 참담한 마음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소왕, 호위대장이옵니다."

 

 무열은 힘겹게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호위대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오?"

 "그것이...일전에 조선으로 보냈던 무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왜요?"

 "마을이 모두 불탔다 합니다."

 "네?"

 "알아본 바로는 왜구가 침략했던 모양입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몰살 당하거나 잡혀갔다고 합니다."

 

 무열은 또 한 번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호위대장은 무너지는 무열을 부축했다.

 

 "어찌 이런...아라낭자는? 낭자는 찾지 못했답니까?"

 "네. 이미 무사들이 도착했을 땐 마을이 잿더미가 된 상태라..."

 

 무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현왕후 곁을 지키느라 수면부족 상태에 아라의 죽음까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한꺼번에 닥치자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소왕! 소왕! 지현왕후께서!"

 

 잠시 잠들었던 무열이 궁녀의 외침에 깨어났다.

 

 "지현왕후께서 정신이 드셨다 합니다."

 

 무열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현왕후에게 달려갔다. 지현전 왕후침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동과 안현왕후, 해소왕후가 모두 와있었다. 무열은 한걸음에 달려가 지현왕후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

 

 지현왕후는 아무 말 없이 무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됐습니다. 이제 됐어요."

 

 하지만 지현왕후는 고개를 저었다. 지현왕후는 무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무열은 지현왕후 입가 가까이 귀를 갖다댔다. 그리고 지현왕후는 무열에게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무열은 사랑하는 어머니 지현왕후와 조선 유일 벗 아라를 한 날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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