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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왕자
작가 : 이윤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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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벗이니까요.
작성일 : 17-07-25     조회 : 311     추천 : 2     분량 : 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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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닷새, 무열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라가 잠자고 있는 의원전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그 사이 궁은 물론, 율도국 전체에 일본 거상의 여식이 왕자비가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왕자님 목숨을 구해 준 분이니 왕자비가 되시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입조심 하거라."

 

 해소왕후는 궁녀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혹시 압니까? 소문이 진실이 될지."

 "하지만..."

 "해소는 너무 고지식합니다. 태생적으로 왕족이라는 권위의식이 있다고 수군거려요."

 "조심하겠습니다."

 "대왕께서 율도국을 재건하실 때 첫째도 민심, 둘째도 민심, 백성과 동등한 권위의식 없는 왕가를 추구하셨음을 잊지 마세요."

 "네. 왕비님."

 

 해소왕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안현왕후가 지나는 발걸음 뒤로 궁녀들이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현왕후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우고 있는 안현왕후를 보며 하늘이 내린 왕비라고 궁 안팎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에 반해 해소왕후는 율도국 재건 이전 왕실의 공주였음에도 율도국 백성들에게 지지 받지도 못한 채 궁에서만 오직 무열의 왕재 수업에만 전념하며 지냈다.

 

 "오늘도 차도가 없습니까?"

 

 아라를 보고 있는 무열의 뒤로 안현왕후와 해소왕후가 왔다. 무열은 목례를 하고 다시 누워 잠자고 있는 아라를 보았다.

 

 "의원의 말로는 치유는 많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왕자를 구해 준 여인이 어서 일어나기를 나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왕비이자 이모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무열의 손을 잡으며 격려를 하는 안현왕후에게 무열은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웃으세요. 웃어야 복이 온다 하지 않습니까?"

 "네."

 

 무열은 안현왕후의 눈을 보았다. 눈이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여 안현왕후라 사람들이 불렀다. 무열도 안현왕후의 빛나는 눈을 볼 때면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호위대장이 옵니다."

 "들어오세요."

 

 창이는 방으로 들어와 안현왕후와 해소왕후에게 목례를 했다. 무열은 창이와 함께 방 밖으로 나가려 나섰다. 안현왕후가 무열을 막았다.

 

 "아닙니다. 우리가 나가드리지요. 말씀 편하게 나누세요."

 "송구합니다."

 

 창이는 안현왕후와 해소왕후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무열을 보았다.

 

 "조금 전 자객이 죽었습니다."

 "하......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송구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 목숨을 이리 가볍게 여기는지...... 꼭 잡아야겠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배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삼 년간 잠잠하다가 하필 연회였을까요?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보는 앞에서."

 

 콜록콜록.

 무열은 깜짝 놀라 아라를 보았다. 아라가 마른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낭자! 정신이 드시오?"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원전을 둘러보았다. 무열의 뒤에서 창이도 아라를 보았다. 아라는 무열과 창이를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낭자가 살아있었다니."

 

 무열은 아라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창이는 목례를 하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아라는 무열이 잡고 있는 손을 조심스럽게 뺐다.

 

 "여전하구려."

 "왕자님은 더 늠름해지셨습니다."

 "이젠 빈말도 하고."

 "아닙니다. 정말······. 콜록콜론······."

 "아, 잠시만 기다리시오. 의원을 불러오겠소."

 

 무열이 일어나려 하자 아라는 무열의 손을 잡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낭자가 살아돌아 온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낭자는 상상도 못 할 거요."

 "왕자님도 제가 어찌 율도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일본 여인의 복장을 하고 있던데 무슨 일이오?"

 "어쩌다보니 큐슈현 나리상단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찾을 수 없었군."

 "네?"

 "삼 년 전 우리 호위무사들이 도착했을 때 마을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더군요. 그 와중에 낭자의 부모님 시신은 찾아 묻어드렸는데, 낭자와 낭자의 오라버니 시신은 도통 찾을 수가 없어 왜구에게 잡혀간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소. 하여 얼마 전까지도 수소문을 했었다오."

 

 아라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열은 오랜만에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라도 오랜만에 제비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낭자의 미소를 보는 것이 오랜만이오."

 "제가 웃었습니까?"

 "그렇소. 왜 그러시오?"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소?"

 

 아라는 슬픔을 감추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무열을 보고 또 보았다. 무열은 아라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쩐지 낭자가 달라진 듯 하오."

 "세월이 지났으니까요."

 "그것보다··· 뭐랄까······."

 

 무열은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차마 아라에게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알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의 눈빛 같다.'

 

 "왕자님, 의원 들었습니다."

 "아! 들라 하시게."

 

 의원이 들어와 아라의 진맥을 살펴보았다.

 

 "어떠한가?"

 "아직 더 보양이 필요하나 많이 회복되어 생활에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참 다행이오. 그동안 고생 많았소."

 

 의원은 목례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무열은 상기된 표정으로 아라를 보았다.

 

 "낭자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오."

 "누구...?"

 

 ***

 

 길동은 아라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크게 반겼다.

 

 "왕자를 구해 준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소녀는 그저 보은했을 뿐이옵니다."

 "보은?"

 "삼 년 전 왕자님께서도 자객으로부터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아~ 하하하. 인연이로다. 인연이야~"

 "큐슈현 나리상단 행수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시게."

 

 무열은 아라를 구해준 은인이라기에 선한 인상의 사내를 생각했는데 날카롭게 생긴 여인이어서 내심 당황했다.

 

 "행수가 낭자의 걱정을 많이 하셨소."

 "대왕님과 왕자님만 했을까요. 하루상은 저에게 딸이나 진배없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더 가족처럼 하루상을 아껴주시는 마음에 감복했습니다."

 "하루상?"

 "제 일본 이름입니다."

 "그래서 찾을 수가 없었구려."

 

 무열은 아라의 손을 꼭 잡았다. 행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하루상이 율도국에 무척 와보고 싶어 했는데 왕자님을 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우리 왕자도 낭자를 지난 삼 년간 애타게 찾았었다오."

 "이번 연회 자리가 왕자비 간택 자리였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 들었습니다. 혹시 우리 하루상이..."

 "대왕님, 율도국에는 직언관이라는 직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라가 행수의 말을 끊고 길동에게 물었다.

 

 "그렇소."

 "송구하오나 저도 왕자님 직언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무열을 제외한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 아라를 쳐다보았다. 행수는 독초를 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글쎄...왕자는 어떠하냐?"

 "율도국은 모두가 평등한 나라이니 타국의 여인이라 하여 직언관 시험에 응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당한 절차에 의해 합격한다면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뜻밖이구나. 난 왕자가 낭자를 왕자비로 맞이할 거라 생각했는데."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사실 저는 아직 혼인할 마음이 없사옵니다.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하여 여인을 외롭게 하는 것은 대장부 답지 못한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허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큰일이로구나. 그렇다고 마냥 왕자비 자리를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자리에서 마저 논할 일은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그래. 차차 논의하자꾸나."

 

 무열과 아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무열은 조금 전 의원전에서 아라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되새겨보았다.

 

 "사실 저는 첩자입니다. 왕자님을 시해하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삼년 전, 다대포에서 왕자님을 시해하려는 무리들은 조선이 아니라 율도국 내에 있습니다. 그들이 이번엔 큐슈현 나리상단 행수와 손을 잡고 반역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왕자님과 인연이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저를 왕자비로 만들려 합니다. 의심받지 않고 왕자님을 암살하려는 계획이에요."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라도 모른다고 했다. 첩자 훈련을 받을 때 율도국 내부 사정에 능통한 자들에게 정보를 받았고 조선에서 아라가 목격했던 자객을 거기서 마주쳐 동일한 조직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장막 뒤에 숨어있거나 복면을 하고 모습을 감췄기에 아라가 직언관이 되어 무열을 도와 그들을 찾아내는 일을 돕고싶다며 진실을 털어놓았다.

 

 "연화장에서의 만남도 모두 계획된 거예요. 제가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를 이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말씀드렸던 대로..."

 "언젠가 나는 내 부인에게 이유도 모른 채 시해되었겠지. 그걸 알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낭자가 왔고. 도대체 왜?"

 ".......벗이니까요."

 "그게 전부요?"

 "내 마음속 꽃을 스스로 꺾지 않으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그리 말해 준 이는 왕자님뿐이었습니다. 여인이라 안된다 하지 않고, 여인이라 이용하지 않는, 여인도 벗이라 해주는 사내는 왕자님밖에 없었기에 지켜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삼년 전 시해되셨소."

 "네?"

 "모두 말에서 떨어져 돌아가신 줄 알지만 나는 아오. 숨이 끊어지시는 순간까지도 내 걱정을 하셨소. 그리고 범인은 같소. 어머니를 습격한 자객들 옷자락에서 능소화 표식을 보신 듯 하오. 그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셨소."

 

 아라는 무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무열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현왕후가 죽고 모두 무열이 무너지고 통곡할 줄 알았다. 하지만 무열은 침착했고 온통 머릿속에는 어머니인 지현왕후의 복수 생각뿐이었다. 능소화파를 찾을 때까지는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라는 조용히 무열을 안아주었다. 무열은 비로소 꿈이 아닌 현실에서 아라를 만나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함께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실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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