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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왕자
작가 : 이윤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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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인의 마음
작성일 : 17-07-26     조회 : 334     추천 : 3     분량 : 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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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열의 특별 과외 덕인지 아라는 무술시험이면 무술시험, 필기시험이면 필기시험, 모든 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가뿐히 통과했다. 무열은 아라가 시험에 통과한 즉시 기다렸다는 듯 직언관에 임명했다. 그동안 창이가 무열의 호위와 직언관 직책을 병행하였는데 호위대장이 된 창이의 과중한 업무를 아라가 나눠진 셈이 되자 창이 역시 아라를 기쁜 마음으로 반겼다.

 

 "낭자를 이리 다시 만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호칭을 낭자가 아니라 윤직관이라 불러주십시오."

 "알겠소."

 "자자~ 이리들 오시오. 이제 우리 논의를 좀 해볼까요?"

 

 무열은 멀뚱히 서 있던 아라와 창이를 서재 중앙 원탁으로 오라 손짓했다. 무열은 오랜만에 아라와 창이, 이렇게 셋이 함께 둘러앉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이 기뻤다. 그때, 아라가 입을 열었다.

 

 "행수도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나리상단의 진짜 우두머리는 장막에 가려있어요. 저도 행수를 통해서만 명령을 하달 받을 뿐 본 적이 없으니까요."

 "궁금한 것이 있소. 나리상단이 이번 역모로 얻는 것이 무엇이오?"

 

 샨 왕자의 복위. 하지만 아라는 말할 수 없었다.

 

 "율도국 독점 무역권."

 "그것만으로 역모를?"

 "큐슈현에는 많은 상단이 있습니다. 일본은 오랜 내란으로 내수만으로는 힘든 상황입니다."

 "해서 율도국 독점 무역권이 절박하다? 호위대장은 어찌 생각하시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역모까지 획책하다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율도국 무역권을 독점하고 이를 발판으로 대마도, 탐라, 조선으로 점점 확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지난 삼 년간 복수만을 생각하느라 조선을 제외한 타국 정세에 어두웠던 거 같소. 우리는 율도국에 능소화가 피지 않아 당연히 조선 양반 중 율도국을 노리는 자가 있을 거라 생각해 오랜 시간 조선 관리 위주로만 조사를 해왔소."

 "조선에서 능소화는 양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양반들이 애호하는 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조선과 관계된 율도국 관리는 없나요?"

 "율도국 삼 분지 일이 아버님을 따라 율도국으로 온 백성이라 그 또한 쉽지 않소."

 "그래도 찾아내야지요."

 

 결연하게 말하는 아라를 보며 무열과 창이는 마음이 든든했다. 삼년 동안 장막에 가려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아라의 등장으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호위대장, 대왕께서 찾으십니다."

 

 창이는 무열에게 목례를 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창이가 자리를 비우자 긴장감이 돌던 대화의 맥이 끊겼다. 무열과 아라는 한숨 돌리며 차를 마셨다. 무열은 그동안 아라가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보고 응원하느라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이 궁금해졌다.

 

 "오라버니는 어찌 지내오?"

 

 아라는 차를 마시던 손이 떨려왔다. 무열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괜한 걸 물었나 보오."

 

 아라는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닙니다. 오라버니도 나리상단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오."

 "저기... 왕자님은 대왕께서 율도국의 대왕이 어찌 되셨는지 다 알고 계시지요?"

 "그렇소.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오?"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요."

 "조선에 환멸을 느낀 대왕께서는 따르는 무리들과 이곳 율도에 다다르셨고 폭군 때문에 괴로워하던 백성들을 구해주셨다 들었소."

 "역시 소설에 나온 그대로군요. 백성들을 구해주셨는데 왜 역모의 무리가 생겼을까요?"

 "늘 다른 마음을 품는 무리들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고 보니 나리상단은 율도국에 역모 무리들이 있다는 걸 어찌 알았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저 행수가 어느날 부터 저에게 무술 훈련을 시키며 율도국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율도국에 대한 어떤?"

 "그것이......."

 "궁금하오. 다른 나라에서 보는 율도국은 어떤지."

 

 무열은 우물쭈물하는 아라에게 재촉했다.

 

 "말해보시오."

 "일본에서는 대왕께서 전 왕조를 몰살하고 왕위를 무력으로 찬탈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저도 그럴 리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왜곡이오. 즉시 항의해야겠소. 함께 대왕님께 갑시다."

 

 ***

 

 "알고 있었느니라."

 "네?"

 "일본에서는 내가 무력 찬탈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 곳곳으로 숨어든 전 왕조의 잔당들이 그런 헛소문을 내어 율도국을 혼란스럽게 하려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이럴 수가."

 "나도 백방으로 잔당들을 쫓고 있으니 염려 말거라."

 "저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마음은 고맙다만 이건 내가 완수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잔당들을 쫓는 게 단순히 역사 왜곡 문제만은 아니니라."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열과 아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길동을 바라보았다. 길동은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아라를 보았다.

 

 "잠시 자리를 피해주겠나?"

 "네. 대왕."

 

 아라가 방 밖으로 나가자 길동은 무열에게 심각한 어조로 운을 떼었다.

 

 "율도국 백성들의 피와 살 같은 재산을 도둑맞았다. 그놈들에게."

 "네?"

 "난 반드시 그놈들을 찾아내 율도국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착취 당하는지도 모르게 착취 당한 그들의 피와 살 같은 재산을."

 "백성들의 재산을 어찌......."

 "만약 내가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땐 왕자가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재산이기에."

 "율도국 백성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섯 해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재신이다."

 

 ***

 

 아라는 대전 밖으로 나와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에는 어쩐 일입니까?"

 

 창이었다. 아라는 창이를 보고 반갑게 목례를 했다.

 

 "왕자님께서 대왕과 독대중이십니다."

 "왕자님을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네. 왕자님의 직언관이니까요."

 "윤직관을 다시 만나고 왕자님께서 많이 밝아지셔서 참 좋습니다."

 

 창이의 잔잔한 미소를 보며 아라는 율도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자신을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궁에 왕자님이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왕자님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시오."

 "네."

 "그럼 난 호위전에 일이 있어 가보겠소. 왕자님을 잘 부탁하오."

 "네."

 

 아라는 창이에게 목례를 하고 왕자님을 잘 부탁한다는 창이의 말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그때, 하연이 쪼르륵 달려와 아라 앞에 팔짱이 끼고 위, 아래로 살펴보았다.

 

 "그 눈빛은 뭡니까?"

 "윤직관님께서는 호위대장님과 어찌 그리 다정히 대화를 나누시는 겁니까? 혹시 호위대장님께 다른 마음을 품고 계신 건 아니시겠지요?"

 "네???"

 "윤직관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입니다. 호위대장님 앞에서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는 큰 사달이 납니다."

 "그게 무슨! 제가 언제 여인의 얼굴을 했다고!"

 "궁 안에 호위대장님을 사모하는 여인이 한 둘이 아닙니다. 소리 소문없이 찍-!"

 

 하연은 손으로 목이 달아난다는 흉내를 내며 아라를 위협했다.

 

 "오해입니다. 오해~ 내가 어딜 봐서 호위대장님같은 사내를 좋아한다고......."

 "호위대장님같은 사내요? 아니, 우리 호위대장님이 어디 가 어때서요? 인물이면 인물! 능력이면 능력!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내 중에 사내라고요!"

 "그런 뜻이 아니라......."

 "율도국에서는 왕자님보다도 호위대장님을 사위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라고요."

 "뭐요? 아니 어떻게 왕자님이 호위대장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돼요? 솔직히 왕자님이 호위대장님보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뭐랄까... 사내다운 맛이 없지 않습니까?"

 "왕자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말을. 그렇게 얼굴도 작고 예쁜 사내를 꽃보다 아름답다 하여 꽃미남이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왕자님께서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꽃... 미남?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윤직관님보다 제가 왕자님과 더 오래 알면 알았... 가만...! 듣다 보니 윤직관님~~~"

 "뭐... 뭡니까?"

 

 여인이 어찌 저리 능글맞게 웃을 수 있을까. 아라는 하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나 겁까지 났다.

 

 "알겠다~ 알겠어~ 윤직관님은 궁 안에서 아주~ 아주~ 무사하실 듯합니다."

 "뭘 알겠다는 거고 왜 무사하다는 겁니까?"

 "윤직관님이 마음에 품은 사내는 호위대장님이 아니니까요."

 "그렇소. 난 호위대장님을 마음에 품은 적이 없습니다."

 "네~ 네~ 윤직관님께서 마음에 품은 사내는 바로 왕자님이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어?"

 

 당했다. 아라는 하연에게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그... 그것이......"

 "뭐, 왕자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던 분이 오죽하겠습니까. 하온데 그런 분이 어찌 왕자비가 아니라 직언관이 되셨을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늦었습니다. 다 들키셨어요. 조금 전 제가 마음에 품은 사내가 왕자님이라고 할 때 분명 그렇습니다.라고 하셨거든요~ 이제 와서 뭘 또 숨기 시기는~"

 "아닙니다. 제발 아니니......."

 "에이~ 여인의 마음을 같은 여인이 모르겠습니까? 어쨌든 공공의 적은 면하셨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보다는 지금 나눈 대화는 반드시 비밀로 해주십시오."

 "부끄러우시구나~ 알겠습니다~ 반드시 비밀로 해드리지요."

 

 하연은 크게 인심이라도 쓴 듯 싱긋 웃어 보이며 아라에게 친근함을 드러냈다. 하연은 호위대장을 마음에 품지 않은 여인은 누구와도 벗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뭐가 비밀이란 말이오?"

 

 무열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라와 하연은 큰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놀랐다. 무열은 아라와 하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에 더 궁금하다는 듯이 다가왔다.

 

 "나도 좀 압시다. 뭐가 비밀이란 말이오?"

 "아... 하하하... 저는 그럼 이만..."

 

 하연은 재빨리 꽁무니를 내뺐다. 무열 앞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된 아라는 궁금증으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무열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응? 뭐가 비밀이란 말이오~?"

 

 아라는 생각지 못한 무열의 애교 공격에 당황스러움과 자꾸 한쪽으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부여잡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비밀인데 어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송구하오나 이것만은 절대로 말씀드릴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니, 직언관인 그대가 왕자인 나한테까지 비밀로 해야 할 게 무엇이란 말이오?"

 "직언관 시험을 볼 때 직언관은 비밀도 없어야 한다는 법은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에이 참~ 말씀 좀 해주시오. 응? 응응응?"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궁금증 앞에서는 그런 거 없소. 그러니 말해주시오. 응응?"

 "이게 무슨......."

 "꼴보기 싫으면 말해주시오."

 "아무리 그러셔도 절대 못합니다!"

 

 아라는 무열의 애교 공작에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어찌 왕자님을 제 마음에 품고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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