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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왕자
작가 : 이윤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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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왕자의 첫사랑
작성일 : 17-07-26     조회 : 285     추천 : 3     분량 : 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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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담은 미소를 띠었다. 행수는 노발대발하였으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 보기에 도담은 행수의 오른팔 노릇을 하며 신분을 숨기고 있었지만 행수와의 독대에서는 언제나 상석에 앉아 행수를 내려다보았다.

 

 "하루상은 늘 제멋대로입니다. 당장 불러들이시고 다른 계책을..."

 "내가 갈 것이오."

 "네? 어디를..."

 "율도국으로."

 "굳이 왕자님께서 왜요?"

 "누이가 관직을 얻었으니 오라비로서 당연히 가 봐야겠지. 그리고 이번에 그것도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니 채비해 주시게."

 "벌써 그것을 이용하시려고요?"

 

 도담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행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

 

 "윤직관 오라버니도 모든 사실을 알고 있소?"

 "오라버니는... 상단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 오라버니를 인질 삼아 윤직관에게 첩자 노릇을 종용한 것이오? 나와 안면이 있다는 것만으로?"

 

 아라는 차마 말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고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무열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 단정 지었다.

 무열은 두 손으로 아라의 얼굴을 감싸고 눈을 맞추었다.

 

 "가볼 곳이 있소."

 "어디를 말입니까?"

 "그곳에 가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아보시오."

 

 아라는 두 눈을 감았다. 무열은 아라가 꼭 감았는지 손을 휘저어보고는 그도 못 미더워서 아라의 뒤에서 두 손으로 아라의 두 눈을 가렸다.

 

 헉!!

 

 아라는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두 눈을 가린 무열의 따뜻한 손길,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열의 온기. 아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을 무열이 뒤에서 밀어주는 대로 따라 걸어갔다.

 

 "눈을 떠 보시오."

 

 벌써? 아라는 무열의 방이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을 하며 아라는 눈을 떴다. 삼면이 책이 꽉꽉 차 있고 중앙 탁자에는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우와. 여기는!"

 "삼 년 만에 드디어 내 진짜 서재를 보여주게 됐소."

 "서재가 몇 개이옵니까?"

 "여긴 나만의 비밀공간이오."

 

 아라는 두리번 거렸다. 그러고 보니 밀실이었다.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혹시 대왕처럼 도술을 쓰시게 된 겁니까?"

 "도술이라면 도술이지~"

 "이렇게 많은 책을 보니 꿈만 같습니다."

 "읽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읽어보시오."

 

 아라는 서책들을 둘러보았다. 한자, 한글, 일본어 뿐만 아니라 서역 언어로 된 책도 수두룩했다.

 

 "서역 책도 가득하군요?"

 "서역 글도 배운 것이오?"

 "일본에도 선교사들과 서역 상단이 많이 들어와서 조금 배웠습니다."

 "낭자는 참으로 총명한 거 같소."

 

 무열은 아라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아라는 또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직도 이러십니까?"

 "뭐가 말이오?"

 "자꾸 머리 어루만지시고, 아까도 뒤에 착 달라붙어서 눈을 가리시고. 사람 간 떨어지게."

 "낭자는 도대체 간이 몇 개요? 삼년 전 떨어진 간 말고 또 있소?"

 "윤직관입니다. 윤.직.관 자꾸 낭자라고 하지 마십시오."

 "여긴 내 사적 공간이니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겠소."

 "하온데 전 왕자님의 아랫사람이거늘 아직도 높임말을 쓰십니까?"

 "직위가 낮다 하여 다 내 아랫사람은 아니잖소. 그 험한 상황을 이겨내고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나를 구하러 와준 벗으로서 난 낭자를 경외하오."

 

 아라는 가장 중요한 비밀을 숨기고 무열에게 경외와 신뢰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마음이 복잡했다. 송곳이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무열을 보자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뿌옇게 차오르는 눈물 때문인지 밀실을 비추는 은은한 촛불 때문인지 무열의 모습이 아라의 숨을 막히게 했다. 무열도 밀실의 상황적 특수함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밀려왔다. 아라가 아무리 사내들처럼 바지를 입고 있어도 잘록한 허리며 고운 피부, 가늘고 붉은 입술은 영락없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들어온 여인은 낭자가 처음이오."

 "여인이오?"

 "그럼 낭자가 여인이지 사내는 아니지 않소?"

 "하도 벗! 벗! 하시기에 사내로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가 벗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삼년 전 무열은 말 그대로 벗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삼 년간 아라를 찾으며 무의식중 그리는 마음도 커졌다. 그것은 아라도 마찬가지였다. 도담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무열이 밉기는커녕 걱정이 되었다. 첩자로 올 준비를 하면서도 무열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었다.

 

 "제가 이곳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왕자님은 모르실 겁니다."

 "알고 있소. 낭자를 구해 준 이들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날 염려해 준 마음."

 

 아라는 무열과 도담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졌다. 무열은 가슴을 부여잡는 아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괜찮소?"

 "괜찮습......."

 

 아라는 말을 맺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열은 쓰러지는 아라를 품에 안았다. 숨을 쉬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아라를 보며 무열은 다급히 밀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숨을 못 쉬는 아라를 보며 무열은 결심한 듯 엄지와 검지로 아라의 코를 잡았다.

 

 "무례를 용서하시오. 후- 읍-!"

 

 무열은 아라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동안 아라가 숨을 토해냈다.

 

 "괜찮소?"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무열은 안심이 된 듯 아라의 옆에 앉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운에 잠겨 입술을 깨물었다. 콩닥콩닥... 심장의 울림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시간, 아라의 거처에 도착한 도담은 밤새 아라를 기다리다 동이 트자마자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라는 창가에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났다. 아라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엎드려 자고 있는 무열을 보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밤, 숨을 불어넣어 준 무열의 입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무열은 의로운 마음으로 행한 일이지만 아라의 마음속에 싹튼 불씨는 쉽싸리 잠들지 못했다. 숨을 토해내고 정신이 들어서도 상기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잠든척 했지만 쉬이 잠들 수 없었다. 터질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무열에게까지 들릴까 봐 노심초사하느라 한숨도 못 자다가 어느새 날이 밝았다.

 삼년 전 봤을 때 보다 더 짙어진 눈썹, 그동안의 마음고생으로 야위어 더 날렵해진 콧날과 턱 선. 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무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다 그리다 못해 마음에 새겨진 얼굴이 눈앞에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왕자님, 일어나셨습니까?"

 

 아라가 깜짝 놀라서 일어나려 하자 무열이 아라를 다시 눕혔다.

 

 "쉿! 더 누워있어요."

 "왕자님, 일어나셨습니까?"

 "조금 있다 오시게."

 "왕자님, 큐슈현 나리상단에서 도담이라는 자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기다리라 할까요?"

 "도담?"

 "오라버니?"

 

 무열과 아라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라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무열은 그런 아라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라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드시라 하시게."

 

 잠시 후, 도담이 무열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열은 깜짝 놀랐다. 삼년 전, 무기력해 보이던 사내가 아니었다. 도담은 상단에서 일하는 일꾼이 아닌 행수라 해도 믿을 만큼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도담이옵니다."

 "다시 보니 반갑소. 근데 아침 일찍부터 어쩐 일로 오셨소?"

 "누이가 관직을 얻었으니 마땅히 인사를 드리러 오는 것이 예의지요."

 "하하하, 윤직관이 든든한 오라버니를 두었습니다. 여기 차를 좀 준비해주시게."

 "네."

 

 하연이 차를 가지고 오자 세 사람은 원탁에 둘러앉았다. 무열은 아라가 평소와 달리 긴장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도담의 태도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자신감 넘쳐 보였다. 물론, 여전히 자신을 싫어하는 분위기도 같았고, 아라를 누이가 아닌 여인으로 보는 눈빛도 같았다.

 

 "어째서.......?"

 "네?"

 "아니요. 삼년 전에도 그랬지만 여느 오누이와는 달라서요."

 "저희는 특별하니까요."

 "뭐가 특별합니까?"

 "아라는 제 첫사랑입니다."

 

 무열과 아라는 동시에 찻잔을 떨어트렸다.

 

 "하하하.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제가 어릴 때 바다에 빠져 죽다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무열은 아라를 보았다. 손수건으로 흘린 차를 닦는 아라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깨어나 보니 그전 기억도 없고 늘 함께 지내는 여자아이가 아라뿐이였지요. 또 그땐 제가 아라보다 작아서 동네 짓궂은 사내놈들이 절 괴롭히면 아라가 맞서 싸워줬는데 얼마나 멋지고 의지가 되던지. 그때 반했지요. 그런데 오누이라니... 어린 마음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하."

 "그랬겠네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아라를 보면 아련한 마음이 든답니다."

 "그럼 이젠 바다에 빠지기 전 기억도 다 돌아오신 겁니까?"

 

 도담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무열을 응시했다. 무열은 도담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조금씩 납니다. 내가 왜 바다에 빠지게 되었는지... 누가 날 바다에 빠트렸는지..."

 "누굽니까?"

 "왕자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도담의 도발에 무열이 아닌 아라가 온몸의 세포가 얼어버릴 듯이 긴장했다.

 

 '오라버니는 무슨 생각으로 율도국으로 온 것일까.'

 

 아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치 문제에 대한 답을 맞추려는 듯 골몰하는 무열을 보았다. 그때 무열도 아라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아하! 윤직관이로군요? 하하하. 윤직관이 개구진 면이 있지요."

 

 도담은 아무 대답 없이 차를 마셨다. 무열은 차를 마시는 도담의 알 수 없는 표정을 살폈다. 아라는 더 이상 숨을 쉬기 힘들었다.

 

 "오라버니 이제 가보셔야지요."

 "그래. 참, 아무리 늦더라도 잠은 반드시 집에 와서 자거라."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하하하."

 "그리 들리셨다면 송구합니다. 어제도 밤새 기다렸는데 안 들어와서 오라비로써 근심이 많아 그런 것이니 곡해 마십시오."

 "아이고. 밤새 기다리셨구나. 제가 밤새 붙잡고 있었으니 윤직관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아... 왕자님과 밤새... 제 누이를 밤새 붙잡고 있을 일이 뭐가 있으신지..."

 

 갑작스러운 도담의 방문으로 잊고 있었다. 무열은 지난밤 아라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갠 것이 생각났다. 그 일을 떠올리니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그저 숨을 쉬지 않는 아라에게 응급처방을 해준 것이라 자기합리화를 했지만 그래도 심장의 요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만 아라의 입술로 눈이 갔다. 내가 미친 것이다. 정신 차려! 어서 시선을 돌려야 해!

 

 "왕자님?"

 

 아라가 불렀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아라도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무슨 의미지?

 

 "밤새... 그것이... 비밀입니다. 하하하. 저희도 꽤나 특별한 관계라서요."

 

 무열은 도담의 싸늘한 얼굴을 보며 더 있다가는 자신의 음탕한 마음이 들킬 것이 우려되어 아라의 등을 떠밀었다.

 

 "윤직관 그럼 오라버니 배웅 잘 해드리고 꼭 다시 오시게."

 

 무열은 아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서 가보라고 손짓했다. 도담과 아라는 무열에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무열은 두 오누이가 나간 방 문을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콩닥콩닥콩닥... 여전히 방 안에는 무열만이 들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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