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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왕자
작가 : 이윤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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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외부의 공격자
작성일 : 17-07-29     조회 : 298     추천 : 2     분량 : 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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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들의 계획을 어찌 안 것이오?"

 

 아라는 언젠가는 말할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대한 늦게, 아니 아예 말할 필요도 없이 도담이 복수를 단념해주길 바랐는데 결국은 무열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저를 믿지 말라던 말 기억하시는지요?"

 "그렇소."

 "저는 왕자님을 속였습니다. 왕자님께서 상상도 못하실 이야기를."

 "그게 무슨 말이오?"

 "제 오라버니는 친오라버니가 아닙니다."

 "아..."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 무열을 보며 아라가 더 의아해 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다른 오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군요."

 "그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라비가 율도국 폐주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무열은 아라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니 알아는 듣는데 무열 답지 않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어떤 어려운 책도 읽으면 바로바로 이해가 되었는데 이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담이 길동으로부터 쫓기다가 바다에 빠졌다는 이야기. 그런 도담을 아라의 아버지가 구해 친자식처럼 키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길동에게 복수를 하고 왕이 되려 한다는 이야기. 그 모든 일에 아라가 얽혀있었으면서 지금껏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믿기지 않았다.

 

 "저는 왕자님과 오라비 두 분 다 상처받지 않길 원하여 첩자가 되길 자처했지만 그건 한낱 제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전 백성까지 위협해 가며 폭주하려는 오라비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제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왕자님이라면 현명하게 대처하시리라 믿으니까요."

 

 아라는 이제 무열이 자신을 멀리할 것이라 여겼다. 아니, 자신을 내치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까지 각오했다. 그럼에도 무열을 바로 볼 수 없어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며 무열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데...

 무열은 여느 때 보다 더 아라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려."

 

 아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사람이었다. 한결같이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한없이 자신을 품어주는 단 한 사람. 아라는 자신의 부덕까지 포용해주는 무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먼저 왕위를 위협하려는 무리들로부터 대왕 길동과 왕자 무열을 지켜야만 했다.

 

 "능소화파도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리이고, 오라비도 왕위를 찬탈하려는 목적이니 필시 두 세력 간에 동맹은 머지않아 깨질 것입니다."

 

 무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담이 폐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언젠가는 두 세력 간의 이간계로 손쉽게 동맹을 깨트리고 세력을 분열시키기 쉬워졌다고 무열은 생각했다.

 

 "내가 오라비를 만나 오해를 풀겠소."

 

 아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라는 도담이 진실 따위는 필요 없어졌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오라버니는 기어이 역모를 일으킬 것입니다."

 "괜찮소?"

 "네?"

 "오라비와 나 사이에서 마음이 많이 힘들 텐데..."

 "이렇게 알아주시고 안아주신 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습니다."

 

 무열은 아라가 안쓰러워 다시 안아주었다. 온 힘을 다해 견디고 있는 아라에게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도담을 설득하여 아라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무열은 생각했다. 그리고 무열은 실행에 옮겼다. 아라에게는 직언관으로써의 임무를 주어 궁에 붙잡아 두었다.

 

 "율도국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였으나 조선에서 온 왕으로 바뀌면서 조선어와 한자어, 그리고 최근 일본과의 교류로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소."

 

 하지만 그로 인해 길동을 따라 율도국으로 온 조선인과 율도국 원주민 간의 마찰이 심심치 않게 있어 그들의 화합이 길동의 풀어야 할 숙제였다. 무열도 그 점을 돌파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다양한 언어를 공부해 대왕과 더불어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중재하는데 힘써 왔다.

 

 "지금 명나라에서는 고증학이 유행이오."

 "고증학이 무엇입니까?"

 "글자와 구절의 음과 뜻을 밝히되 고서(古書)를 두루 참고하여 실증적이고 귀납적인 방법을 택하여 종래의 경서를 연구하는 것이오."

 "그럼 고서를 많이 읽어야겠군요."

 "그렇소. 낭자가 좋아하는 일이오."

 

 아라는 무열이 싱긋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에 소나무 숲을 걷는 듯 마음이 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근 선교사들이 듣도 보도 못한 서책들을 선보였는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지혜들이 가득하다오."

 "왕자님 같습니다."

 "뭐가 말이오?"

 "지혜로운 것이요. 그리고 틀에 갇히지 않은 게요."

 "그건 낭자도 마찬가지 아니오? 그래서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낭자가 이 일을 해주었으면 하오."

 "무슨 일을 말입니까?"

 "백성을 화합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일 말이오."

 "네?"

 "더 나아가 낭자는 그 언어로 백성들을 가르쳐야 하는 중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오."

 "모름지기 나라는 백성에게 힘이 돼주고 화합할 수 있는 언어, 종교가 있어야 하는데 율도국은 아직 그런 힘이 미약하오."

 "왕자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저도 힘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지..."

 "우리가 함께라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소."

 

 무열이 아라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라는 무열의 따뜻한 손을 통해 정말 기운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일거리도 이어받았다. 아라는 무열의 밀실에 쌓여있는 고서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을 도맡게 된 것이다.

 

 "이걸 다요?"

 "그렇소.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퇴근할 생각 말고 내 방에서 꼼짝 말고 나와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열심히 해봅시다."

 

 잠도....자면서....?

 발그레한 아라의 뺨을 보며 무열은 걱정이 되었다.

 

 "어디 아픈 거요? 열이 나나?"

 

 무열이 아라의 이마에 손을 대자 아라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랐다. 무열의 손길만 닿아도 몸이 후끈거렸다.

 

 "그냥 더워서 그렇습니다. 왕자님 방이 매우 몹시 덥습니다. 왕자님은 괜찮으십니까?"

 "그렇게까지 덥소? 그럼 옷을 좀 벗으시오."

 "네?!"

 "그러고 보니 나도 좀 더운 거 같소."

 

 '설마 왕자님이 옷을 벗으시려는 건가? 어떡하지...어떡하지.......'

 

 "그럼 나는 바깥바람 좀 쐬고 올테니 낭자는 시원하게 옷 벗고 열일 하시구려."

 "열....일.....이요?"

 "열심히 일하라는 말이오. 하하하. 다녀오리다~"

 

 아라는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망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열일이나 하자!

 

 ***

 

 무열은 아라에게 열일을 시켜놓고 굳은 표정으로 도담에게로 향했다. 무열은 도담을 만나기 위해 궁을 나가던 중 창이를 만났다.

 

 "어디 가십니까?"

 "윤직관의 집에 가는 중입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요. 윤직관 오라비와 단둘이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윤직관 오라비라면 지금 집에 없습니다."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조금 전 해지골에서 만났습니다."

 

 다른 곳에는 해가 다 져도 이 골짜기에는 늦게까지 해가 비쳐든다 하여 해지골이라 부르는 이곳은 조선에서 길동을 따라 율도국으로 건너온 조선인이 유독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무열은 직감적으로 도담이 왜 그곳을 갔는지 알 것 같았다. 무열은 도담을 만나기 위해 해지골로 향했다.

 도담은 해지골 주막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앞에 무열이 자연스럽게 마주 앉았다.

 

 "주모~ 여기 술 좀 더 가져오시오. 올 때 잔도 한 잔 더 부탁하오."

 

 도담은 무열을 힐끔 보고는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주모가 술병과 술잔을 가져와 무열의 앞에 놓았다.

 

 "내 왕자님 언제 오시나 기다리다 눈 빠지는 줄 알았네~"

 "이놈의 인기~ 제가 그리 보고 싶으셨습니까?""

 "아니~ 해가 늦게까지 든다고 너무 불 늦게 붙여주는 거 아니요? 밤에 무서워서 못 다니겠어. 포졸들한테 길에 불 좀 일찍 일찍 붙여달라고 해요~"

 "아~ 네네."

 

 지현왕후는 길동을 도와 민생안정에 힘을 많이 쏟았다. 특히 여인들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 골목길마다 횃불을 설치하여 밤길을 밝혀 여인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되고 실제로 범죄율이 많이 낮아져 호응이 좋았다. 도담은 왕자를 옆집 조카 대하듯 하는 주모의 태도에 불쾌감과 동시에 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무열은 술병을 들어 도담의 잔을 채워주었다.

 

 "저도 한 잔 주시지요."

 

 도담은 묵묵히 무열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무열은 한 입에 술을 털어 넣고 도담을 응시했다.

 

 "계획을 중단하시오."

 

 무열의 말에 도담은 들던 술잔을 다시 자리에 놓았다. 도담은 아라가 탈출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예 훈련을 받은 아라에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무열에게 달려갔을 줄이야. 도담은 허망했다.

 

 '정녕 아라에게 난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계획은 이미 실행되었소. 금일 이 주막에 다녀간 자들을 잘 살펴보는 게 좋을 거요."

 "내가 화를 잘 안 내는 편인데 이번 일은 화가 나오. 그대가 진정 왕이 되려 한다면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옳음이 아니오? 그런데 백성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복수를 하려는 자가 진정 왕이 될 자격이 있다 보시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큰 소리는."

 "그것은 그쪽도 마찬가지 아니오? 나리상단 뒤에 숨어 누이마저 첩자로 보낸 건 당신이오."

 

 도담은 잡고 있던 술잔을 으스러트렸다. 도담의 손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무열은 도담의 손을 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옷깃을 찢어 도담의 손에 친친 감아 지혈하려 했다. 도담은 불에 덴 듯 손을 재빨리 빼며 무열의 도움을 거부했다. 하지만 무열은 완강히 도담의 손을 다시 잡아 친친 감았다.

 

 "사내 대 사내로 한판 붙읍시다. 정 그렇게 억울하다면 당신이 폐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고 백성의 마음을 얻어 선양 받으시오."

 

 '하! 아라가 그 이야기까지 했단 말인가! 정녕 아라에게 난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도담은 가슴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내가 원래 주인이거늘 누가 누구의 마음을 얻어?!"

 "왕은 주인이 아니오. 이 나라 주인은 백성이오."

 "아니! 내가 주인이야!"

 "당신 아버지도 그러다가 자신이 아끼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셨소. 마음을 돌리시오."

 "네가 뭔데! 내 자리를 빼앗아 앉아있는 주제에!"

 "뺏은 적 없소. 난 왕이라 하면 백성을 역병으로부터 지키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을 잘 생각해 보시오. 왜 스스로 역병이 되고 외부의 공격자가 되려 하오?"

 "아니. 외부의 공격자는 바로 너야!"

 

 도담은 벌떡 일어나 무열이 멱살을 잡았다.

 

 "너만 아니었으면 아라랑 나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었을 텐데! 너 때문에!"

 

 무열은 도담의 손을 뿌리치고 도담의 눈을 똑똑히 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 네가 이렇게 미쳐갈수록 더 힘든 건 네가 그토록 아끼는 아라라고. 아라가 널 지키고자 얼마나 노력했는데."

 "입 닥쳐. 너한테 아라 얘기 듣고 싶지 않아."

 

 도담은 아라의 이름이 무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아라를 아끼고 지켜주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날들. 우리 둘만의 세계에 갑자기 뛰어들어온 이상한 놈이 모든 걸 헤집어놨다.

 

 "지금 나와 함께 대왕께 가. 가서 그대가 폐주의 아들이고 나와 함께 정정당당히 후계자리를 두고 경쟁하러 왔노라 말해. 대왕께서는 뜻을 받아주실 것이오."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즉시 난 처형 당할 거야."

 "내가 막을 것이오. 내가 꿈꾸는 나라는 세습되는 왕위가 아닌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왕이 되어 백성을 보호해주는 나라이니 내 신념을 내가 지킬 것이오."

 

 도담은 비웃었지만 무열의 패기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무열과 겨루어 보고 싶었다. 무열과 겨루어 이기는 모습을 아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궁으로 갈 테니 겁먹지나 마."

 "좋소. 아라의 오라비이니 믿겠소."

 

 도담이 떠나고 무열 앞에 창이가 나타났다. 무열은 결연한 표정으로 창이에게 말했다.

 

 "금일부로 해지골을 폐쇄하고 주막을 다녀간 자들을 추적하여 격리조치합니다."

 "그럼 왕자님은..."

 "저도 마찬가지로 격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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