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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편
작가 : 마이랑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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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
작성일 : 17-07-20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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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은 주소로 지목된 오피스텔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500ml 용량의 음료수를 하나 샀다. 그리고 음료수에 빨대를 꽂은 채로 오피스텔 근처에 도착한 다음 정문 근방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시각이 18시 30분. 사건으로 예고된 사망 시각까지는 두 시간 하고도 조금 더. 20시 30분까지는 기다려보자.’

 

  정민은 집중해서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가서 19시가 지나고, 19시 30분이 지났다. 1시간을 넘게 사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다 보니 정민의 눈에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망 시각 이전이야, 최수연 씨를 찾으려면 더 기다려야 해’

 

  시각은 8시가 다 될 때쯤이었다. 정민의 시야 안으로 사진에서 본 익숙한 얼굴이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정민과 꽤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돌려 오피스텔 안으로 금방 사라졌지만, 분명히 사진에서 본 그 얼굴이 맞았다.

 

  ‘드디어 최수연 씨를 찾았어, 오늘의 퇴근 시각을 기록해야 해. 19시 58분에 집으로 들어감.’

 

  정민은 오늘의 목표를 이루었다는 기쁨과 함께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민은 쉴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의 계획도 계획이지만, 가장 어려운 목표인 ‘어떻게 죽음을 경고할 것인가’에 대한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해서였다.

 

  ‘내가 아는 건 사망 시각과 사망 원인뿐, 주어진 정보만 갖고는 사망 장소를 알 수 없어, 그러니 사망 시각에 최수연 씨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해.’

 

  ‘그러려면 그녀의 개인적인 공간에 들어갈 만큼 친밀해져야 하는데, 그럴 만한 방법을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겠어.’

 

  고민에 고민하는 와중에 벨 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였다.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했지. 하지만 지금 진전이 안 되는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았나?”

 

  “제 행동을 전부 뚫어보시는군요. 맞아요. 전혀 진전이 안 되는 분야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네요.”

 

  정민은 목소리가 내 생각마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왜 혼자 고민하고 그래. 나에게도 이럴 때는 방법을 물어보라고. 혹시 알아? 좋은 답이 나올지.”

 

  “도움일지 방해일지 모른다고 먼저 이야기한 건 그쪽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건 네가 잘 골라내야 하는 문제지. 내게는 잘 골라내기만 하면 쓸 만한 정보가 많다고.”

 

  “제발 그랬으면 하네요. 그럼 단도직입으로 물어볼게요. 이번 고민은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목소리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글쎄다. 답변해 주기 싫은걸?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역시 물어본 제가 어리석었네요.”

 

  “나는 답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안 한 것일 수도 있어. 생각하기 나름이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고민해봐.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그럼.”

 

  목소리의 연락이 끊어졌다.

 

  정민은 목소리가 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다.

 

  ‘답변해 주기 싫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라… 말을 빙글빙글 돌려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까?’

 

  ‘목소리의 대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어. 어딘가 숨어있는 약초도 있지만, 독사도 함께 있는 꼴이야.’

 

  이런 고민 때문에 정민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협의에서 업무에 관련된 대화를 모두 마친 다음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주어졌다. 정민은 정답은 아닐지라도 참고할 수 있는 간접적인 힌트라도 얻어 보고자, 최대한 말을 빙글빙글 돌려서 질문했다.

 

 질문을 채 하기 전에 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나의 이런 표정을 알아챘다.

 

  “우리 과묵하신 1반 선생님께서 어떤 질문이 있어서 그렇게 긴장하셨나요?”

 

 정민은 바로 질문을 이어갔다.

 

  “긴장한 게 얼굴에 많이 드러났나요? 그럴 만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질문을 드릴게요. 초면이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순간 회의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니 1반 선생님 관심 있는 사람 생겼어요?”

 

  “얌전한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려 하는 건가요?”

 

  다들 크게 웃는 중에 2반 이지혜 선생님의 살짝 웃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 정민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관심 있는 사람이 지금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제가 만약 그런 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잠시 협의실 안의 정적이 있고 난 뒤에, 선생님들의 답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관심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요즘 대세는 돌직구라고 들었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많고 그러니 한 번에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를 찾는 게 요즘 세상이래요.”

 

  여러 가지 답변이 쏟아졌지만, 결론은 ‘직접 가서 말하라’로 모였다. 여기에 어떤 용기를 얻었는지, 정민은 큰소리로 답변했다.

 

  “좋은 이야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회의에서 정민은 자신감을 얻고 퇴근길에 다시 최수연 씨의 퇴근 시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날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매일 다른 복장을 하고, 때로는 선글라스를 끼기도 하고 때로는 모자를 쓰기도 했다. 나흘 동안의 오피스텔 앞으로의 방문의 성과는 다음과 같았다.

 

  화요일 ‘20시 4분’

  수요일 ‘19시 48분’

  목요일 ‘19시 51분’

  금요일 ‘20시 3분’

 

  이걸로 전부 5일간의 데이터가 모였다.

 

  주말을 맞이해 시간에 여유가 생긴 정민은 지금까지 모인 데이터에 따라 현재까지 파악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수연 씨의 퇴근 시간은 일정해, 예정된 사망 시각보다 언제나 일찍 퇴근해서 오피스텔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돼. 그러니 사망 예정일에 딱 1시간만 함께 있어달라고 설득하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최수연 씨에게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긴 하겠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당신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정말 간절하게 이야기하면 들어줄 거야.’

 

  정민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방문 날짜를 다음 주 화요일로 잡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최수연 씨를 직접 만나서 설득할 표정과 대사를 연습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이 왔다. 정민은 힘주어 차려입은 옷과, 한껏 추어올린 머리, 그리고 과하게 칠한 화장까지. 패션 감각이 좋지는 않은 편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최수연 씨의 오피스텔 앞으로 갔다.

 

  19시 54분,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민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저기요, 최수연 씨 되시죠?”

 

  최수연 씨가 답했다.

 

  “네 그런데요?”

 

  정민이 말을 이어갔다.

 

  “긴히 전해 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이 자리에 왔어요.”

 

  그 순간,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내 것이 아닌 최수연 씨 것이었다.

 

  “됐어요, 지금 전화 받아야 하니까, 저 그만 갈게요.”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갑자기 한껏 풀어진 정민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목소리였다. 급하게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메신저를 켰다.

 

  “축하해. 첫 대화가 멋지게 끝났군.”

 

  목소리의 그 싸늘하고 비꼬는 말투는 며칠 만에 들어도 그대로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이럴 줄 알고 몇 번 더 말을 건넬 준비까지 해 뒀으니까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요.]

 

  그 말에 정민도 질 수는 없어서 답변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하지.”

 

  [지금 잘 안되라고 비는 건가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것보다 지금 모습이 너무 웃겨서. 특히 네 머리 스타일은 최악인걸?”

 

  목소리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 머리가 어때서요! 나름 거금을 들여 만든 머리라고요!]

 

  정민은 감정이 실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머리 위에서 폭탄을 터뜨리면 딱 그런 스타일이 나오겠다.”

 

  목소리도 바로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비꼬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정민은 그냥 못 넘어가겠다는 자세로 이야기했다.

 

  “아 그건 실례. 아무튼 두 번째 작전은 뭐야? 똑같은 건 아니겠지?”

 

  목소리가 이번에는 한 발짝 물러났다.

 

  [똑같습니다. 일단 할 말은 다 해볼 거예요.]

 

  정민도 일단 감정을 추스르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어떤 말일지 궁금하네, 오늘은 패잔병의 씁쓸한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서 즐거운걸?”

 

  다시 목소리의 비꼼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에 반박을 못 하겠네요. 오늘은 제가 졌어요.]

 

  정민이 힘없이 답했다.

 

  정민은 안서로 돌아가는 버스의 빈자리에 힘없이 몸을 던져 넣고 글을 이어갔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전화가 올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운명이란 한순간의 예술이라고 할까, 순간과 순간이 만나서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가고, 그 순간이 또 다른 순간을 만나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가고. 그러니 인간이 운명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

 

  목소리가 이번에는 웃지 않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민은 질문을 했다.

 

  [인간은 불가능하다라. 그럼 당신은 운명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목소리가 짧게 답했다.

 

  “노 코멘트!”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했다.

 

 “잠시 인간에게 진리의 단편을 이야기한 것 같아서 당황스럽구먼, 어차피 인간인 네가 이 이야기만으로 인간을 넘어선 이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조금 급하게 사라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네 탓이 아니니까 걱정은 말고, 그럼.”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정민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창가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연이 운명을 집어삼키는 순간을 이 짧은 기간에 이렇게나 많이 경험해 놓고 이 작은 우연에 한탄하다니. 다음에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였다.

 

  정민은 다음 시도는 하루를 건너뛰고 목요일에 하기로 했다. 이틀 연속으로 찾아가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하루 정도만 건너뛰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였다.

 

  기다리던 목요일 저녁이 왔고 어김없이 정민은 오피스텔 앞에서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최수연 씨를 기다렸다. 전보다 캐주얼한 옷에 꾸미지 않은 머리,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19시 55분. 인파들 사이로 다가오는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민은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저기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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