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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편
작가 : 마이랑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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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
작성일 : 17-07-20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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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6시 30분. 정민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잠을 줄여서라도 필요한 정보를 더 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출근 준비에서 상당한 과정을 건너뛰고, 정민은 집 컴퓨터로 학교에서 광성역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 소요 시간을 계산하고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과 같은지도 확인했다.

 

  출근 시간에 딱 맞게 출근해서 맞은 아침 자습시간. 정민은 자습하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도록 시키고 그 시간 동안 교사용 컴퓨터로 광성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으려 하고 있었다. 광성역의 사진, 내부 구조, 안에 있는 식당, 그리고 시설들. 하지만 아침 시간 한 토막의 짧은 20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그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대로라면 시간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정민은 조금의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기에 아직 학기 초반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을 쓰게 된다.

 

  “오늘이 식목일인데 기념으로 나무 그림 그리기를 해 봅시다. 여러 가지 나무들을 그려보는 거예요. 종이는 앞으로 나와서 가져가고 그리기 도구로는 사인펜과 색연필을 쓰는 거예요.”

 

  “좋아요!”

 

  아이들은 실제로 자신이 하는 활동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은 사물함에서 색연필과 사인펜을 꺼내 신나게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활동 시간은 수업 시간으로는 2시간이었다.

 

  정민은 이걸로 80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가끔 아이들이 나와서 모니터를 보려고 하면 매서운 눈빛으로 들어가기를 종용했다.

 

  짧은 시간 동안 정민이 파악한 광성역의 구조는 생각한 것보다 꽤 복잡한 편이었다. 상행과 하행이 다른 통로를 이용하여 내려가게 되어 있고, 고속철도뿐만이 아니라 도시철도도 가끔 정차하기도 하며, 광성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와 광성역에서 종착하는 열차가 가끔 있기도 하는 등, 단순히 서운역 가기 전에 지나가는 역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각 통로가 통하는 곳과 상행선과 하행선의 탑승하는 승강장, 하차하는 승강장, 출구까지 모든 정보를 한 번씩 파악하고 도착하자마자 광성역의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상상하는 데 집중을 했다.

 

  정민은 광성역에 달린 주차장까지 검색하다 갑자기 생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조퇴 달아야 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무실로 부리나케 내려가서 교감 선생님께 이유는 대강 다른 이유를 꾸며서 얼버무리고 겨우 조퇴 허락을 얻어냈다. 이걸로 14시 40분이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고, 15시 30분 이전에는 광성역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시간에 국어와 수학, 그리고 도덕 수업을 하면서도 머릿속의 절반은 광성역으로 채워져 있었다. 확실히 수업 진행에 있어서 정민 자신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봐야지 않겠니.’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정민은 자기합리화를 하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충분히 부끄러워해야 할 자신의 행동에 나름의 정당함을 부여했다.

 

  드디어 수업시간이 끝나고 아이들도 집에 갔다. 정민도 이제 자신이 밖으로 나설 차례가 왔다는 것을 생각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기 차에 탑승해서 광성역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약 40분의 시간이 지나고 광성역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비싼 주차요금을 각오하고 가장 가까운 주차장까지 다가가서 주차한 다음 정민은 부리나케 광성역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광성역 안의 넓은 공간이 정민을 반겼다. 급한 마음에 보아서 그런지 평소에 보던 때보다도 훨씬 역이 커 보였다. 그리고 광성역 안에서는 기차를 타러 온 사람, 마중을 나온 사람,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내는 소리들이 섞여서 웅성웅성 울려 퍼졌다. 열차 도착 안내 방송과 출발 안내 방송이 교대로 나오기도 했다.

 

  정민은 역 안을 어떻게 수색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위에서 아래로, 모든 구역의 사람들을 확인하겠어.‘

 

  정민의 이 생각과 동시에 거침없는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동편 매표소와 서편 매표소를 오가고, 1번 통로와 2번 통로를 오가고, 2번 승강장과 4번 승강장을 오가고, 예식장과 영어마을 사이를 오갔다. 한 바퀴를 도는데 대략 30분가량이 걸렸는데, 지나가면서 본 사람들이나 시설에서 아직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헉, 헉.”

 

  한 바퀴만 돌았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정민은 순간 몸을 숙이고 숨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숨을 고른 다음 역을 다시 둘러보면서 아직 아무런 소득이 없었음에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망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위험한 상황이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걸 거야.‘

 

  그렇게 17시가 되고, 18시가 될 때까지 정민은 광성역 내부를 하염없이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살펴보고, 이상한 낌새가 없는지 확인하며 하염없이 맴돌았다.

 

  18시가 넘어가고, 남은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각이 왔다.

 

  “이제는 이상한 낌새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다시 뛰어!”

 

  정민은 다시 한번 광성역을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희망이 아직까지는 남아있었지만, 사망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회의감이 희망과 뒤섞이면서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분명히 찾을 수 있어. 넌 반드시 해낼 거야.‘

 

  ‘아니야 넌 틀렸어. 지금이라도 그만둬.’

 

  정민은 이런 두 가지 생각이 모두 드는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그 미움은 가슴 속의 통증으로 변화했다. 그 통증은 가빠오는 숨과 함께 정민의 가슴 속을 강하게 조여 들어갔다.

 

  “헉, 헉, 헉.”

 

  정민은 가쁜 숨 때문이라도 멈추어서 가슴을 부여잡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갈수록 마음이 더 다급해지는 정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역 내부의 구석에 다다랐을 무렵 정민이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각이 6시 28분이었다. 역 전체를 한 바퀴 고개를 돌리며 특이한 점이 없는지를 둘러보았는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그때 맞춰 마침 도착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 광성역에서 종착하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으로 난간을 부여잡고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보다가, 정민의 눈에 손과 열차가 겹쳐서 보이는 순간, 정민은 지금껏 해 보지 못한 한 가지 생각을 하였다.

 

  ‘역에는 문이 별로 없지만 열차에는 문이 가득하지. 아주 많이 있어!’

 

  ‘저 열차 안으로 들어가면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 주어진 내 능력이 아니면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

 

  정민은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열차가 세워진 승강장으로 달려갔다. 통로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갈 때 반대편에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올라가는 모습과 정민이 내려가는 모습이 서로 대조적이었다.

 

  승강장에 도착하니 열차에서는 사람들이 다 내렸는지 열차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았다.

 

  ‘내게 닫힌 문 따위는 방해가 되지 않아!‘

 

  정민은 닫힌 열차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열어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승객들이 다 내린 열차 안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정민은 열차에 있는 문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빠르게 생각했다.

 

  ‘열차 안의 문. 문. 칸과 칸 사이의 문. 그리고 화장실의 문!’

 

  문제는 정민이 열차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가야 하는가. 뒤로 가야 하는가.

 

  “생각할 틈조차 내게는 아까워, 뒤로 간다!”

 

 그렇게 열차 뒤쪽에 위치한 모든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앞으로!”

 

  일말의 불안함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부여잡고 다시 열차의 앞쪽으로 향했다. 문을 하나하나 열어가며 맨 앞 열차에 도착했고, 거기에 있는 커다란 남녀공용 화장실을 보고 그곳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있었다.

 

  “괜찮으세요?”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정민은 심폐소생술 외에 다른 행동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폐소생술 교육은 이전에 여러 군데에서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정민은 박자에 맞춰 힘껏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에 사람이 쓰러져있어요!”

 

  “도와주세요!”

 

  외부에 도움을 청하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지만 정민의 목소리는 열차 안에서 울려 퍼졌을 뿐이고, 밖으로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심폐소생술과 도움을 청하는 외침.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민은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면서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 하는 행동이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정민의 손끝에서는 다 꺼져버린 생명의 마지막 감촉이 느껴졌고,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옅었던 미소마저 서서히 사라져갔으며, 손가락은 절반 정도 구부러진 채 꼼짝하지를 않았다. 정민이 흘린 땀이 할아버지의 몸에 닿았으나, 그 온기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였다.

 

  그 순간 승무원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오는 소방대원의 모습을 보았다. 소방대원이 들어오는 순간 정민은 가진 힘을 다 써버린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멍하게 소방대원이 이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정민과 소방대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움직임은 더 없었다.

 

  “현재 시각 18시 45분, 안타깝게도 사망하셨습니다.”

 

  정민은 천천히 의식이 흐려져 가는 와중에 소방대원의 안타까워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고, 그 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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