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이 자신을 감싸고 있던 무기력감에서 겨우 탈출한 것은 4월 말이 다 되어서였다. 그래서 5월에 접어들어서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활기찬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초등학교에서 5월 초는 단기 방학에 가까운 휴가가 주어지기에 정민이 더욱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이 주어지기 직전에도 정민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 담긴 다짐을 스스로 하기도 했다.
“이제는 희생자들을 찾을 수도 있고, 아무 문이나 길로도 다닐 수 있어. 다시는 희생자들을 놓치지 않겠어.”
“이번에는 희생자들을 빨리 만날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더 괜찮아진 거야. 잘할 수 있어.”
달콤했던 5월 초의 휴식이 끝나고 다가온 5월 5일 0시. 새로운 사건이 주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화면 가득히 여러 장의 사진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아래에 평소보다 작은 글씨로 사건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희생자 : 5명
희생자의 사진 5장
희생자의 성명 : 이세광, 김혁수, 박한돌, 남우철, 장수혁
사망 시각 : 5월 28일 21시 51분 43초
설명을 다 읽는 순간 정민의 귀에서 얕고 나지막한 두근거림 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의 심장박동일 것이리라. 두근거림이 향하는 방향은 모두 다섯 개. 이번 달 희생자들의 숫자와 똑같았다.
정민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위치도 알고 있고, 이름도 알고 있고, 얼굴도 알고 있어.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설득해도 될 것 같고, 5명이 아는 사이면 모여 있을 때 설득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왜 5명이 동시에 사망하는 걸까? 그것도 한날한시 한 분 한 초에. 그리고 이번 달에는 왜 ’초‘가 들어있는 걸까? 그만큼 죽는 순간이 확실하다는 걸까?’
‘일단 저 5명의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만나보고 결정해야겠어. 두근거림을 따라가면 찾을 수 있겠지.’
5월 8일 오후 6시. 첫 번째 두근거림을 따라갔을 때 나온 것은 안서시 고리동에 있는 한 시장이었다. 정민은 생각보다 시장과 집과 가까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민은 두근거림을 따라 시장 안을 돌아다녔고 드디어 두근거림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100m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확실한 두근거림의 주인공은 사진과 대조해 봤을 때 이세광이야. 지금 하는 일은, 시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네? 어라, 상인들이 돌아가면서 돈을 주고 있잖아.‘
정민은 조금 더 가까이 가기로 마음먹고 대화가 들릴 만한 거리까지 다가갔다.
“이보쇼, 보호세를 안 내면 여기서 장사 못 합니다. 곱게 말할 때 빨랑 주시오.”
“이번 달은 돈이 모자라서… 다음에 내면 안 될까요?”
“말을 안 듣겠다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를 봐야 쓰겠네!”
정민은 대화를 듣다가 결국 보는 것이 좋을 리 없는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저, 저, 저 사람이 좌판을 다 엎고 있잖아! 그리고 상인은 그걸 지켜보면서 통곡하고 있고.’
이세광이 주위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되는 거요! 다들 이제는 잘 아시겠네!”
정민은 더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시장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저렇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광경은 처음 봤어.”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야기가 통할 가능성은 제로. 인간성도 제로.”
이 말을 한다는 것은 대화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민은 집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목소리를 불렀다.
“오래간만이네, 이번 사건은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지 모르겠네.”
“첫 번째 사람과 만남은 그랬어요. 전형적인 시장 조폭이더군요. 그것도 아주 못된.”
“덕분에 대화하겠다는 시도조차 못 했어요. 아니 하기가 싫었어요.”
“5명을 전부 만나 볼 시도를 할 셈이야? 어차피 다들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래도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니까요. 나머지 두근거림을 따라가 봐야죠.”
“그 노력이 가상하다만 헛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제~발. 그럼.”
목소리가 통화를 끊었다.
정민은 목소리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놓지 않았다.
‘5명이 비슷하다라.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1명이라도 이야기가 통할 사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 다음에 쫓아갈 두근거림을 고른 정민이었다.
5월 9일 오후 9시. 여기는 서운시 인태원.
정민이 두 번째로 쫓아간 두근거림이 이곳의 어느 한 골목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용기를 내려 했지만 낯선 공간에서 혼자 외딴 골목에 가는 것은 두려웠던 정민은 골목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몰래 따라가서 엿보기로 했다.
“지금 사람이 들어갔어. 골목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따라가서 살짝 볼까?”
정민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서 이번에 찾은 사람은 박한돌이었다. 어느 새 꽤 가까운 거리까지 따라간 정민은 앞서 골목에 들어간 사람과 박한돌 이 두 사람이 대화하는 내용을 엿들었다.
“바이그리 100알만.”
“100알에 20만 원.”
‘지금 둘이서 저렇게 짧은 대화를 하면서 뭐 하는 거지? 돈과 파랗게 생긴 약들을 주고받잖아? 저거 설마.’
여기까지 생각하다 정민은 생각을 멈추고 급하게 골목을 빠져나왔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저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거fh 생각했는데, 한국에도 있었어. 불법 의약품 거래를 하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발기부전 치료제인 바이그리를. 저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렵다.”
이번에도 희생자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정민이었다.
5월 10일 오후 6시. 부연시 산동의 한 고등학교 근처. 정민이 세 번째 두근거림을 쫓아 다가간 곳이 이 곳이었다.
‘세 번째 두근거림을 찾아왔는데 여기는 고등학교 뒷골목이다. 아 저기 담배 피우는 녀석들이 있잖아. 이걸 확.’
고등학교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들을 몰래 지켜보며 마음만 같아서는 가서 혼을 내주고 싶은 정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 저 멀리서 두근거림의 근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두근거림의 주인공이 오는구나, 아 저 사람은 김혁수잖아.”
담배 피우던 학생들이 김혁수가 다가오니 갑자기 차렷 자세를 취한 다음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공손히 내미는 지폐들을 세어 보더니 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때에도 학생들은 90도로 인사를 했다.
“학생들이 모은 돈을 저렇게 직접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저 돈이 어디서 난 돈일지는 짐작만으로도 알 것 같아.”
“지금 저 담배 피우는 학생들 상대하는 것도 지금 내게는 무서운 데 김혁수는 상대하기 더 어렵겠지? 그냥 돌아가자.”
그리고 정민은 이번에도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번에도 대화를 시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5월 11일 오후 9시. 안서시의 한 나이트클럽 앞.
네 번째 두근거림을 따라간 정민은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곳에서 나이트클럽 입구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클럽 입구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고 있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들이 줄줄이 서 있었고, 그 모습에 멀리서 보는 정민도 위압감을 느꼈다.
‘나이트클럽을 가 본 적은 없지만, 입구의 저 광경은 장관이네, 여러 가지 의미로.‘
그 순간 정민은 두근거림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거림이 강해져, 네 번째 희생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저기 검은 차에 타고 있는 것 같아.’
검은 차는 나이트클럽 입구에 정확히 섰고 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정민은 원래 서 있던 사람들이 90도로 인사를 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 장수혁이 저기 있네, 사진에서 본 것보다 어깨가 훨씬 넓잖아?’
‘인사하는 각도 봐. 어떤 존재인지 딱 보인다 보여. 가서 이야기하는 나의 최후도 보인다 보여. 그냥 돌아가자.’
이번에도 정민은 급하게 자리를 떴다. 마찬가지로 대화할 생각은 저 멀리 던져버린 채.
5월 12일 오후 6시. 안서시 부잔동의 한 골목.
정민은 골목에 서서 한 집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지막 희생자인 남우철이 있는 곳이었다.
‘남우철은 집에서 밖으로 잘 안 나오는 것 같은데? 기다려야 하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야기를 한다라는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집 근처에 서서 30분가량을 기다렸다. 그러자 집에서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가 나오는 듯한 느낌을 감지했다.
‘두근거림이 강해져, 남우철이 나오나 봐’
그리고 담배를 피려 나온 반소매과 반바지 차림의 남우철의 모습을 본 정민은, 거기서도 가장 정확하게는 그의 발목을 본 정민은. 즉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정민이 앞으로 절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5월 13일 오후 1시. 정민의 집.
“신령의 귀를 잠깐 끄겠어.”
양쪽 귀를 두 번 접었다 펴니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다시 두 번 접었다 펴면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구조다. 정민은 직접 하면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5명 모두의 심장박동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야.’
‘한 명은 시장바닥을 전전하는 건달, 한 명은 고등학생들을 착취하는 양아치, 한 명은 불법 바이그리 판매상, 한 명은 나이트 조폭, 그리고 한 명은… 아 말하기도 싫다.‘
정민은 바닥에 드러누워 혼잣말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사람에게도 말을 못 걸겠고 한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겠어. 애초에 저런 인간쓰레기들을 세트로 붙여서 나에게 던져준 이유가 뭘까?”
“그냥 이번 사건은 포기할까?”
정민은 진지하게 사건을 포기할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저렇게 평소에 따로따로 노는 녀석들이 왜 한순간에 모두 사망한다는 거지? 지금껏 살펴보면서 내가 놓치거나 몰랐던 뭔가가 있나?”
정민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마땅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신령의 귀는 다시 켜 둬야겠어.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정민은 귀를 접었다 펴서 다시 그들의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5월 14일 오후 6시. 정민의 집.
일요일 저녁이 되었을 때 정민은 순간 두근거림들의 움직임이 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바로 두근거림들이 서로 모이려 한다는 것을. 정민은 그것을 알아채자마자 차를 몰고 두근거림들이 모이는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