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가장 깊은 고민은 다름이 아니라 사망자의 수였다. 20명이 넘게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왜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은 희생자 명단에서 빠졌을까? 선수 한두 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전부를 위험에 빠트리는 사건은 그렇게 쉽게 일어날 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경기장 내에서 테러가 일어난단 말인가? 선수들만을 노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한 정민이었다.
정민은 경기가 열리기 전 까지 두근거림이 모였다가 퍼지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고, 테러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선수들을 노리는 범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확인해 보았으나 테러범이 경기장에 있는 선수와 심판만 골라서 죽이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선수들이 죽는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정민의 가슴 속에는 답답함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마침내 더비 경기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그래도 경기장의 선수들을 지켜야 하기에, 정민은 경기장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서운 상안 축구경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서운 측의 붉은 색 옷의 물결과 수성 측의 푸른색 옷의 물결이 라이벌 간의 힘 대결의 현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정민은 남아있는 티켓이 거의 없을 거라 확신했기에 이번에도 뒷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에도 성공했다.
‘이 능력이 이럴 때는 꽤 쓸만한데?‘
경기가 시작하기 30분 전인데도 양 팀의 서포터즈들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북을 치며 서로의 기운을 돋구고 있었다. 홈 팀은 홈 팀대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원정팀은 원정팀 나름의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을 뽐내기 위해.
정민은 너무 요란한 구역은 싫어서 조용히 경기를 볼 수 있는 경기장 내부 출입구 쪽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중요한 건 축구 관람이 아니니까. 필요하면 뛸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생기면 바로 뛰어가야 해!‘
이제 선수들이 입장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선수들은 양 팀별로 나란히 입장해서 경기장에 늘어서고,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정민은 선수들에게 당장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은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경기의 초반은 서운이 수성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수성이 기습적으로 반격하면, 서운이 급하게 수비를 하고, 그렇게 팽팽한 경기가 이어져 갔다.
정민은 잠시지만 축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며 경기에 빠져들었다.
‘공을 주고받으며,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돌파해서, 골대에 골을 집어넣는 경기이지. 공을 주고받는 패스도 중요하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포메이션도 중요하고..’
순간 정민의 머릿속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만들어내다’
‘테러가 없는 거라면, 만들어 내야 선수들이 살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왜?’
‘그런데 내가 여기서 어떤 테러를 할 수 있어, 폭탄도, 폭탄 모양의 가방도, 아무것도 없는데…’
순간 정민은 자신의 능력을 떠올렸다.
‘그래 어둠의 목소리! 이 능력으로 전화를 걸어 협박하면… 이건 범죄잖아!’
정민의 당황해하는 표정과 동시에 서운이 선취골을 넣었고,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그 표정을 묻히게 했다.
‘저번에 폭주도 하기는 했지만, 지금 하는 행동은 그것과 차원이 다른 거야. 테러를 저지르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테러행위의 일종이잖아?’
‘내가 선수들을 살리기 위해 테러범이 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잡히지 않는 능력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정민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번에는 폭주를 시키더니 이번에는 범죄행위라. 갈수록 자신의 행동이 위험하고 과격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래도 선수들의 생명이 우선이야, 선수들을 살리고 봐야지. 그러면 괜찮은 거야.’
정민은 겨우 자기합리화를 해내고 자신이 생각한 구상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테러 협박 전화니까 전화는 112로…
“네 경찰입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 나는 나다.”
“장난 전화도 잘못하면 잡혀들어가요. 조심하세요”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내가 사람이 많은 장소에 폭탄을 심어 놨지. 하. 하. 하.”
“당신 뭐야! 바로 발신자 확인을 해 보겠어… 추적이 안 돼?”
“그렇다. 이 정도 준비도 안 하고 전화를 했을 것 같나.”
“그, 그, 그래, 폭탄이 있다고 쳐, 폭탄을 어디에 심어둔 거야?”
“상안 축구경기장. 궁금하면 이리 와서 폭탄을 찾아봐. 언제 터질지는 알려주지 않겠어.”
“그래 알려줘서 고맙네, 네 소원대로 바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도록 하지.”
“한번 잘~ 찾아봐. 사람들이 다치기 전에 말이야.”
뚝.
정민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마구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테러범 행세까지 해야 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보였다.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전반전이 끝나기 전인데 주심이 어떤 신호를 받더니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켰다.
‘내가 한 전화가 효과가 있나 보네.’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지?”
“사고라도 난 거야? 이런 상황은 처음인데.”
“경기에 문제라도 생겼나?”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SNS로 온갖 메시지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갑자기 중단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
주심은 선수들을 경기장 가운데로 전부 모이게 했다. 골키퍼까지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