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은 오늘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는 아침 뉴스에서는 이제 저번 달에 있었던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잦아들었고, 다시 일상에 가까운 내용이 화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인 것일까. 이번의 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 조금씩은 잦아들고 있어.”
그래도 고통이 호전되어가는 모습에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어가며, 부쩍 더워진 날씨에 달궈진 차로 출근을 하며 땀으로 샤워를 하였다.
학교에 와서의 정민은 여전히 ‘과묵한 1반 선생님’이다. 직장에서 보여주는 조용한 성격과 소극적인 자세가 저런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현재의 정민도 저 이미지에 안주하며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심하게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없다는 점과 내가 학교에서 부가적으로 하는 업무가 정민과 꽤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빨리하면 칼퇴근을 언제나 할 수 있는 만큼.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것을 어느 정도 기대하면서 오늘의 일과도 끝이 나고, 고독의 구덩이일지라도 퇴근을 하는 것은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 밖을 나서면서 정민은 생각했다.
‘그래도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그렇게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나마 정민을 이렇게 버티게 해 주는 것은 직장에서의 성취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정민은 직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주어진 약간의 여유가 끝나고, 다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시간이 왔다. 7월 5일 자정.
“이번에는 사람 수가 적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정민의 희망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 닥쳤다. 그 이유는 사건에 나타난 내용 때문이었다.
희생자 : 1명
여기까지는 정민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단 하나의 두근거림. 하지만 정민을 놀라게 한 것은 그다음 글들이었다.
사망 시각 : 7월 22일 22시 ~ 23일 10시
사망 원인 : 추락사
사망 시각이 기간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그 기간이 너무나 고약했다.
“토요일 밤 10시에서 일요일 아침 10시. 그사이에 어떻게든 추락해서 죽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런데 하필이면 시간대가 왜 저렇지? 토요일 밤 내내 추락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어.”
“이번에는 1명이 대상이니까 금방 찾아서 이야기를 잘 해보면 괜찮을 거야. ‘높은 곳으로 절대 가지 말라’고 이야기만 해도 찜찜해서라도 나라면 높은 곳을 일부러 가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 굳이 설득에 실패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한 정민은 다음 날 희생자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악몽을 꾼 정민은 여전히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출근은 해야 하기에, 오늘의 해야 할 일이 주어져 있기에 부랴부랴 출근할 채비를 마쳤다.
차를 몰고 운전해서 출근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귀에서 들리는 두근거림이 갈수록 커진다는 느낌이었다.
“어라, 이상하네… 이렇게 두근거림이 커질 이유가 없는데…”
학교에 도착해서는 두근거림이 더 커지더니,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수록 두근거림이 더욱 크고 가까이 다가왔다. 정민은 아이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 주면서 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건 무언가 잘못 흘러가는 거야, 여기서 두근거림이 이렇게 크다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
마침내 5층까지 올라와서, 6학년 교실이 나란히 있는 복도에 다다랐다. 마침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2반 이지혜 선생님. 멀리서 날 알아보고 묵례로 인사를 했다.
문제는, 두근거림의 방향과 선생님의 방향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정민은 이지혜 선생님께 다가가면서 두근거림이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커져 있다는 것을 느꼈고, 마침내 다가간 선생님 바로 앞에서는 두근거림 때문에 다른 소리를 듣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안녕하세요.”
가벼운 목례와 함께 가장 가까이 한순간, 들리는 심장박동의 두근거림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리고 정민은 본능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지혜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지만, 너무나 긴 침묵이 이어졌다. 상대편이 침묵을 깰 때까지.
“제 얼굴에 혹시 뭐 묻었나요?”
“아니에요,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약간 멍하게 있었네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봐요.”
“네 감사합니다.”
교실에 들어가서 짐을 풀자마자 교직원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귀를 접어 신령의 귀 기능을 꺼버렸다. 두근거림을 더 견딜 수 없었기에.
“이번 달의 희생자가 이지혜 선생님이란 말이야?”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놀란 자신의 표정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도저히 찾지 못하는 정민이었다.
“그럼 사망 시각이 토요일 밤인 이유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 희생자를 뽑을 때 완전히 자연스러운 죽음만 존재했던 건 아니었어.”
두 가지 생각 모두 정민을 황당하게, 아니 화가 나게 했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이건. 최대한 빨리 문제를 제기해야겠어.”
다행히도 1교시가 영어 시간이라 아이들이 어학실로 전담교사 수업을 하러 내려갔다. 아이들을 내려보낸 이후 메신저를 켜고 목소리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목소리 님, 지금 이야기 가능한 거 맞죠?]
[24시간 가능하다고 했잖아. 무슨 문제 있어?]
[그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능청스러움의 끝이네요. 지금 이 사건이 말이 되는 사건이라 생각하세요?]
[뭐가 문제야? 희생자 있고, 사망시각 있고, 사망사유 있고. 다른 사건과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래?]
정민은 이쯤에서 화를 참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아니죠!]
[나나 앱이 희생자를 끌어들였다고 생각해? 진심이야?]
[지금은 진심으로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네요. 바로 옆 반 선생님이에요. 바로 옆 반!]
[옆 반 선생님이건 앞 반 선생님이건 한 사람의 인간인 건 내가 보기엔 똑같아. 그리고 운명이라는 건 알 수 없는 거라고. 언제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게 지금 네가 사는 이 세상이야.]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아무튼 주어진 사건이고 사건은 가만히 두면 그대로 진행돼. 받아들이기 싫으면 그대로 둬봐. 여름방학 오기 전에 문상갈 일이 생기기밖에 더하겠어?]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닙니다.]
[장난으로 받아들였다면 미안. 아무튼, 그렇다는 거지. 이번에 무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받았는데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안 받고 안 하고 말겠어요.]
[어쩔 수 없어, 지금도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 뭘 어떻게 할 건지 굳이 묻지는 않을게. 그럴 기분 아닌 거 아니까.]
[그 정도 센스는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군요.]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야. 한번 잘 저항해봐. 이겨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 그럼.]
정민은 여기까지 대화를 마친 다음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은 과묵한 내 성격 때문에 서먹한 사이. 친근하게 다가가서 친하게 지내는 건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친해지고 보름 만에 토요일 밤을 계속 함께 지내는 사이까지 가까워지라고? 이게 가능하다고 나에게 내려 준 과제야?”
정민은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실수가 없는 완벽한 시나리오로 다가가라는 이야기인가? 실수하면 10초 뒤로 가서 다시 하고, NG는 잘라내는 개념으로.’
일단 아이들이 가고 나면 이 능력을 써 봐야겠어. 정말로 쓸모가 있는 기능인지를.
하교 시간이 되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방과후학교로 갔다. 이제 옆 반 교실에 들어가면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
2반 교실에 노크해서 들어가니 이지혜 선생님이 일어나서 나를 반겼다.
“1반 선생님이 먼저 저를 찾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무슨 일이세요?”
정민은 가장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던져 보기로 했다.
“당신을 위해 서에요. 22일 밤을 저와 함께 지내볼래요?”
이지혜 선생님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바로 내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뺨을 맞으며 정민은 생각했다. ‘이건 아니야! 시간을 뒤로 돌려줘!’
“…처음인 것 같네요. 무슨 일이세요?”
정확히 10초 전으로 돌아왔다. 이 능력은 잘 작동하는구나.
“제가 스테이플러 심이 다 떨어져서…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요. 많이 가져가셔도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교실을 나서서 정민은 생각했다.
“일단 친해질 계기가 필요해, 친해질 계기가.”
자기 교실로 돌아와서 컴퓨터 내의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가장 바빠지는 때가 공개수업 직전이니까… 스케줄을 볼까.
천운이 따랐는지. 이지혜 선생님의 공개수업 날짜는 7월 12일이었다.
“앞으로 1주일… 가장 바쁠 때가 되니까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지?”
정민은 생각했다. 이때가 가까워질 가장 중요한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