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월요일, 18일 화요일, 19일 수요일, 20일 목요일, 21일 금요일.
친구 이상의 사이라는 것을 직장에서 들킨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파문을 가져올 수 있다. 정민과 지혜는 이 사실을 그동안의 주위 조언과 직접 지켜본 사례들로 충분히 알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평소에 가졌던 그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그사이에 쌓아둔 감정을 주말에 한 번에 폭발시키겠다는 생각인지, 퇴근 이후 메신저로 하는 연락은 생각보다 필요한 말만 하고 끝내는 정도였다. 그 사이의 정민은, 어떻게 토요일 밤을 지혜와 함께 있으면서 지혜를 지킬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바로 정민이 그토록 기다렸던 7월 22일, 토요일이 왔다. 오늘은 저녁 식사를 하고 시작하는 첫 ‘데이트’였기에, 당연히 긴장할 법하지만 정민은 다른 이유로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바로 지혜를 지킨다는 것. 이번에는 지혜의 집 앞에서 정민이 차를 몰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는 약속한 시각보다 5분 일찍 나와서 정민의 차에 탔다.
“나도 일찍 나왔지만, 더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고마워,”
“원래 약속을 잡으면 더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어서. 헤헤.”
“저녁은 예약해 두었다고?”
“응, 내가 좋아하는 한정식집이야.”
“어서 가자, 저녁 생각해서 점심도 조금 먹었다고.”
그렇게 정민의 차는 저녁 식사 장소인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깔끔한 건물에 고풍스러운 분위기, 겉으로만 보아도 고급 음식점인 게 티가 확 났다.
“여기 비싸 보이는데, 괜찮겠어?”
“걱정하지 말고 오세요. 그만큼 맛있으니까.”
두 사람은 한정식집에 들어가서 예약된 방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고급 한정식집답게 음식이 코스로 나왔고, 코스로 음식이 나오는 사이사이에 즐거운 이야기가 오갔다.
“학교에서 표정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중에 교실에서 다시 떠올렸을 때 웃다가 눈물이 날 만큼이야.”
“그렇게 숨기는 걸 싫어하면서도 즐겼네, 즐겼어.”
메인 메뉴인 소갈비 찜이 나왔다.
“이 집에서는 이 갈비찜이 제일 맛있어. 한번 먹어 봐.”
“정민은 자신의 젓가락으로 갈비찜을 떠서 지혜의 밥그릇에 한 덩이를 얹어 주었다.”
“그래? 믿고 한번 먹어볼게.”
그렇게 한 입을 뜯자마자
“이야기 그대로네, 정말 맛있어!”
“많이 먹어, 이렇게 호강하면서 먹을 자격이 있어. 우리는.”
즐거운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해가 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정민이 먼저 말을 건넸다.
“맛있게 먹었지? 오늘 너와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이 있어. 같이 보러 갈래?”
“어떤 풍경이야?”
“정민은 지혜의 입에 한 손가락을 살포시 올리며 말했다.”
“비. 밀.”
“뭐야 그런 게 어딨어! 풍경이 별로기만 해 봐!”
정민은 여기까지 자기 생각대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함과 동시에, 사망 시각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음에 긴장감을 가졌다.
정민은 바다를 넘는 긴 다리를 건너 근처에 있는 섬으로 차를 몰았고, 그 과정 중에 지혜가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계속되는 수다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나 생각보다 운전을 훨씬 잘한다? 그만큼 사고도 많이 냈지만.”
“정말? 카레이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야?”
순간 정민은 5월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빴던 부분은 굳이 기억에서 지워가며 이야기를 답변했다.
“그래. 정말 카레이싱에 가까운 운전을 한 적도 있어. 이 차로 말이야.”
“이 차로 그게 된단 말이야? 차도 대단하지만, 사람이 더 대단해.”
긴 수다와 함께 차는 정민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로 경치는 좋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한적한 해수욕장. 아직은 휴가철이 시작되지는 않았기에 사람의 수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정민의 계획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다 왔어, 여기 해안가가 산책하기 정말 좋은 곳이야. 내려서 잠시 걷자.”
그렇게 말하고 지혜가 내리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스마트폰을 들고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정민은 자신의 능력으로 시간을 돌렸다.
“…내려서 잠시 걷자. 짐은 이리 줘, 편하게 걸어야지.”
정민은 자연스럽게 가방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까지 잡아서 팔을 쭉 뻗은 다음 차 뒷자리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지혜는 이번에는 스마트폰이 없이 내리게 된 셈이다.
지혜가 앞으로 먼저 나가서 바닷가로 걸어가고 있을 무렵, 정민은 조금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 문을 버튼으로 잠근 다음, 키를 살며시 발아래에 내려놓은 다음 발로 키를 차 밑 깊은 곳으로 차 넣었다. 물론 정민의 스마트폰도 차 안에 있는 상태였다.
정민은 뛰어서 지혜를 따라잡았고, 지혜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여기서 손을 처음 잡네…‘
지혜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손을 잡고 이곳 바닷가를 누비는 장면.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던 풍경이었어.”
“그래서 꿈을 이루니 좋아?”
“응, 많이 좋아.”
그렇게 두 사람은 바닷소리를 들으며 바닷가를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그 사이에 시간이 흘러서 정민이 시계를 바라보니 시각은 오후 10시,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민은 산책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나무 외에는 높은 건물이라고 할 만한 것 자체가 없고, 그저 바닷가와 숲이 가득할 뿐이었다. 정민은 속으로 자신의 계획이 절반 이상 성공했다는 생각을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카데미 주연상급의 연기를 해 내야 해.’
“이제 집에 바래다줄게. 돌아갈까? 가다가 목이 마르면 커피 한잔하고 들어가고.”
“좋아. 멀리 온 만큼 좋은 풍경 담아가네. 고마워,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두 사람이 차 앞에 다가갔을 때, 정민은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더니,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지혜에게 말을 건넸다.
“어라, 여기 있어야 할 차 키가 보이질 않아.”
정민은 주머니를 뒤지고 또 뒤지는 시늉을 하고, 바닥을 둘러보며 키가 어디 있는지 찾는 모습까지도 지혜에게 보여주었다.
지혜의 표정이 서서히 함께 놀라는 쪽으로 변해갔다.
“어떡해, 우리 돌아다녔던 길로 다시 다니면서 찾아볼까?”
정민은 그게 옳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왔던 길을 돌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지도 몰라.”
두 사람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차 키를 열심히 찾았다. 한 사람은 찾는 척만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지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열쇠가 근처에 있어도 못 찾을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아.”
정민도 한숨을 쉬며 답을 했다.
“정말 미안해. 내가 키 관리를 똑바로 해야 했는데,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괜찮아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걸, 주변에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갔고, 도움을 청할 곳도 보이지가 않네.”
“일단 저기 벤치에 앉아서 생각해보자. 어떻게 할지를.”
두 사람은 바닷가 뒤편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제 어떡하지…”
“그러게…”
두 사람의 말이 지친 만큼 짧아졌다.
“일단 여기서 버티다가 해가 뜨면 다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다른 아이디어는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생각이 이것뿐이야. 생각나는 해결책 있어?”
“나도 없어…”
“다시 한번 미안해. 첫 데이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만들어버려서.”
“괜찮아. 이건 실수잖아, 실수.”
정민은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실은 철저한 계획이야. 널 살리기 위한 철저한 계획.’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혜가 먼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이야기를 했다.
“나 너무 졸려서 버티기가 힘들어. 눕고 싶어.”
“그럼 내 무릎을 베고 누워. 괜찮지?”
지혜는 아무 말 없이 정민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서 눈을 붙였다.
정민은 이 상태로 아침 10시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원래 불면이 있었지만, 오늘은 더 긴장한 탓인지 잠을 더 자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 갔다.
다음 날 오전 5시 30분.
정민은 자신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은 여름이라 해가 빨리 뜨는 건 맞지만 이렇게 빠른 줄은 미처 생각을 못 했어! 이 시간에 해가 떠서 돌아간다면… 10시가 되기 전에 바래다줄 수밖에 없게 돼!’
정민의 우려는 사실이 되어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듯했고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며 아침이 왔음을 알려왔다.
정민이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지혜야, 제발 늦게 깨 주렴. 1시간만 더 잠들어 있어 줘.”
하지만 그 기대는 금방 무너지고 말았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지혜가 눈을 뜬 것이다.
“음, 벌써 아침이네, 잘 잤어? 우리 다시 한번 열쇠를 찾으러 다녀 보자.”
“그럭저럭 잤어, 이번에는 서로 장소를 나누어 찾아보자. 내가 차 근처를 찾아볼게, 바닷가 쪽을 찾아봐 줘.”
“알았어.”
그리고 정민은 차로 달려간 다음 차 아래 깊숙한 곳에 있는 키를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은 다음 바닷가로 달려가서 다시 키를 꺼내 흔들며 이야기했다.
“차 키를 찾았어!”
“정말 다행이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구석에 있더라고. 등잔 밑이 어두웠던 꼴이지.“
“아무튼, 다행이야. 일단 차에 타서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 둘 다 지금 꼴이 말이 아니야.”
“그래야겠지? 어서 돌아가자.”
이렇게 해서 출발하는 시각이 6시 조금 넘어서였다. 내비게이션으로 지혜의 집을 목적지로 잡으니 나오는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2시간 반을 어떻게든 더 붙잡아야 하는데!’
정민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해야 2시간 반을 벌 수 있는 것일까 온갖 생각을 해 보았지만 평범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차를 최대한 천천히 몰기로 마음먹고 해수욕장을 갈 때의 3분의 2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실력은 레이서 급이라면서 돌아가는 길은 꽤 천천히 네, 많이 피곤해?”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얼굴에 드러난 피로가 하나의 핑계가 되어 주어서 다행이었다.
섬을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다시 접어들었다. 도착 예정까지 앞으로 30분이 남았다.
지혜는 다시 잠이 들었고 정민은 그 사이에 계속 고민을 이어갔다.
‘차가 천천히 도착해야 해, 그러면 차가 천천히 가거나 멈춰야 해, 강제로 천천히 가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지?’
순간 5월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차를 멈추게 할 방법.
정민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앞에 서 있는 차를 고르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사람이 없는 차를 발견하고 그 차 뒤에 섰다.
‘내 차야 미안해. 또 아프게 할 수밖에 없구나.’
정민은 갑자기 꾸벅꾸벅 조는 척을 하면서 유심히 앞차와 함께 정차할 신호를 기다리며 차를 몰았다. 드디어 빨간색 등을 발견했고 앞차가 섰다. 그리고 정민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서서히 뗐다.
“쾅! 퍼엉!”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던 에어백이 동시에 터졌다. 지혜 입장에서는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격이 되고 말았다.
정민은 에어백에 맞은 지혜의 어깨를 흔들며 물어보았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
지혜는 놀라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건지 점점 깨어나는 듯한 말투로 답변했다.
“응… 무슨… 일이야?”
“내가 또 실수했어, 졸면서 운전을 하다가 그만…”
지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분명히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정민은 그런 지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창문에서 똑똑하는 소리가 났다.
“저기요, 사고를 내셨으면 나와서 수습을 하셔야지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앞차 운전자가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차 문을 살짝 연 다음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너무 피곤해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실수임을 고백하며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보험사 직원이 모두 오는데 20분, 서로 사고처리 서류를 교환하는데 30분, 반파된 차를 정비소로 끌고 가는 장면을 지켜보는데 10분.
그 시간이 지나며 사고수습을 지켜보다 아픔이 시작되었는지 지혜가 자신의 목 쪽이 아프다는 것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 목을 다친 것 같아. 여기가 아파.”
“어서 응급실로 가자. 가서 임시로라도 치료받자.”
“어쩔 수가 없네, 택시를 잡아타고 가야겠지?”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정민을 다행스럽게 만드는 점은 응급실은 어디에나 1층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간 지혜는 엑스레이를 찍고, 간단한 문진을 하고, 링거를 맞고 눕게 되었다. 이때 시각은 9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별의별 경험을 다 하게 되네, 우리 첫 데이트의 마지막 장소가 응급실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
지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그래도 조금 눈을 더 붙여. 링거는 다 맞고 나가야 할 거야.”
“그럴께.”
지혜는 다시 피곤하다는 듯 눈을 붙였다.
정민은 시계를 다시 바라보았다. 9시 40분, 45분, 50분, 55분…
드디어 10시가 되었다. 정민은 지혜를 다시 바라보았다. 지혜는 피곤함에 잠들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걸로 된 거야… 어떻게 되었든… 내가 지혜를 살렸어…’
정민도 긴장이 갑자기 풀린 것 때문에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정신이 드니 정민의 팔에도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지혜가 보이질 않았다. 간호사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아까 저기에 누워있던 이지혜라는 환자 어떻게 되었나요?”
“정산하고 밖으로 나갔어요.”
정민은 지혜가 분명히 화가 난 것 때문에 먼저 집에 간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제야 몰려오는 자신의 피로와 고통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 정도로 끝난걸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응급실 침상에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