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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단편
작가 : 마이랑
작품등록일 : 20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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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
작성일 : 17-07-20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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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4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

 

  지혜는 나의 인사를 받지 않고 냉랭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쳤다. 분명히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것이리라. 정민은 그저 지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진행하는 수업이 재미가 없었고, 하교 시간 이후에 밀린 업무를 하며 지혜에게 사과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벨 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였다. 급하게 이어폰을 찾아 스마트폰에 꽂고 전화를 받았다. 답변은 메신저로 할 생각이었다.

 

  “성공하셨군요! 지금껏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커다란 성공 아니야?”

 

  [지금 사이가 약간 틀어진 것 외에는 그렇지요.]

 

  “아무리 짧은 기간에 관심을 끌어야 했었다지만 나에게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조언도 구하지 않고. 그건 너무하지 않았니?”

 

  [이런 쪽 분야에서는 별 소득을 얻지 못할 거 같았어요.]

 

  “날 어떻게 보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넌 상상도 못 할거다.”

 

  [그럼 이야기해 보세요. 들어줄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아깝기도 해. 너와의 대화도 가치가 없으면 바로 자르는 게 나잖아?”

  [그런데 지금 하는 이야기는 꽤 한가로운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지, 이렇게 이어폰을 꽂게 만들고, 시간을 끌면서 맞춰야 했어. 명심해. 난 널 앞으로 방해하기도 하겠지만 지금 일은 길게 보았을 때 너에게 좋은 일인 거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메시지를 쓰는 순간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겨우 들려왔다. 지혜였다.

 

  난 황급히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그사이에 스마트폰의 스피커폰 모드가 갑자기 활성화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목소리가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음성으로 나와 지혜가 똑똑히 들을 수 있는 만큼 큰 소리로 온 교실을 울리는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자리에서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인 그 한 마디.

 

  “나도, 사랑해.”

 

  그리고 화면이 잠기며 전화가 끊어졌다.

 

  “내가 먼저 사과하려고 왔는데…”

 

  지혜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사람 누구야?”

 

  그 질문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정민 본인이 직감으로 눈치챘다. 답변하면, 정민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아무리 말이 안 되게 들릴지라도,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단 하나였다.

 

  “알려줄 수 없어.”

 

  지혜의 목소리에 화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알려줄 수 없다고?”

 

  “네 스마트폰 이리 줘봐.”

 

  이 질문은 결코 앞에 질문과 엮여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정민이 할 수 있는 답변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줄 수 없어.”

 

  지혜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화가 난 목소리로 변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그렇지?”

 

  정민은 또다시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야. 방금 통화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줄 수 없고 내 스마트폰을 보여 줄 수도 없어.“

 

  지혜가 확신한다는 듯이 말했다.

 

  “애인이구나. 애인이 있었구나.”

 

  “그럼 난 너에게 어떤 존재야? 대답해.”

 

  이 상황에서 정민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

 

  “그렇구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 넌 나를 갖고 놀았어. 갖고 놀았다고!”

 

  그리고 지혜는 정민에게 다가가서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리고 그 순간 정민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갔다. 그리고 지혜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너 이런 사람이었어? 대답해. 대답하라고.”

 

  정민은 그저 고개를 푹 숙였고 지혜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너와는 이제 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아. 그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지혜가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가식으로라도 인사하지 마, 네 목소리조차 듣는 것이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끝이야. 그럼 잘 있어, 아니 잘 있지도 마”

 

  지혜는 펑펑 우는 얼굴을 움켜쥐고 정민의 교실을 떠났다.

 

  정민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서 있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멍한 그 표정 그대로 정민은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정민은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끌려오듯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본능적으로 그 원인에게 연락하게 되었다.

 

  “너… 어째서…”

 

  “그래서 예고를 했잖아. 하지만 널 위한 일이었다고. 정말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드디어 말을 놓았구나!”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

 

  정민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고 어두웠다.

 

  “그럼 넌 그 사람과 정말 연인이 될 생각이었어?”

 

  “뭐라고?”

  “요즘 연인끼리는 스마트폰 검사가 이상한 게 아니고 당연하게도 서로의 스케줄 체크는 기본인데, 네가 그걸 다 피하면서 연인관계를 유지한다?”

 

  “지금 심정으로는 차라리 그러다 죽는 게 나을 거 같아.”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았어.”

 

  “뭐라고?”

 

  “넌 그러지 않았다고, 나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이 결과는 네가 한 행동과 말에서 나온 결과야.”

 

  정민은 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으면 왜 그 과정을 즐기도록 내버려 둔 거야? 중간에 망치고 다른 방법으로 막도록 하던가!”

 

  “롤러코스터는 높이 올라갈수록 빠르고 깊게 아래로 떨어지지. 그 진리를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이 상황에서 장난치지 마.”

 

  “그리고 네게 주어진 능력을 생각해봐, 시간을 그렇게 쉽게 휙 돌릴 수 있는 능력을 줬으면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그 고통이 이렇게 크다고? 난 이 능력을 원해서 받은 게 아니잖아!”

 

  “주어진 능력도 능력이야. 때로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가야 할 때도 있지 않아? 지금이 그런 거지.”

 

  정민은 자신의 말 하나하나를 전부 받아치는 목소리에 대한 화가 아직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떨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할 셈이지?”

 

  “아니 그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구나. 당연한 거 아냐?”

 

  “…그만하자.”

 

  정민은 자신의 지친 마음 때문에 화를 낼 기력조차 내질 못했다.

  “도저히 모르겠어, 난 어떤 존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지금만 생각해도 충분히 아프지 않아? 그런 이야기 한 번 듣지 않았어?”

 

  “…………”

 

  “아무튼 통화를 한 김에, 또 다른 능력이 주어졌어. 네가 너무 지친 것 같으니 자동 실행으로 능력을 부여해줄게.

 

  스마트폰이 알아서 앱을 실행하더니 자동으로 능력을 불러왔다. 깊은 어둠을 가진 눈동자 모양의 아이콘이 정민의 눈에 보였고. 순간 정민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바로 설명으로 넘어가면 안 될까?”

 

  이 과정도 귀찮다는 듯이 정민이 말했다.

 

  “지금 네게 주어진 능력은 ‘정복자의 눈’이야. 능력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의식에 들어가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어. 완전한 의식의 탈취가 아니라 지배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투, 억양, 움직임, 습관 등은 그대로 유지돼. 다른 사람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니까 안심해. 단 시야 밖으로 벗어나면 지배가 풀린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배당하는 사람의 기억은 적당한 다른 기억으로 맞춰지니까 들킬 걱정은 하지 마.”

 

  “‘그러면 지배하는 동안의 나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물을 셈이었지만 지금 기운이 없지?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네 나이의 평균적인 사람이 보통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하도록 맞춰져 있어. 단, 시선만은 지배하는 사람을 떠나지 않아. 지배를 끝내면 그때 한 행동도 기억에 합쳐질 거야. 편리하지?”

  “네가 사기꾼이었다면 이 능력을 아주 잘 써먹었겠지, 아니 사기꾼을 상대할 때 더 좋은 능력이려나?”

 

  “더 들을 힘도 없어 보이니 그만 이야기하지. 내 설명을 잊지는 마. 그럼.”

 

  통화가 끊겼다. 정민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기운마저 풀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주 수요일이 여름 방학식을 하는 날이었다는 점이었다. 지혜와는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 동선을 바꿨기에 얼굴을 볼 일이 없었고, 방학 기간 근무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정민이 고독에 휩싸이는 시간은 길어만 갔다. 쉽게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했고, 병원에 가는 것도 온 힘을 짜내서 가야만 했다. 7월이 거의 다 끝나가는 오늘은 겨우 병원에 갈 수 있는 날이었다.

 

  “어서 오세요. 저번에 보았을 때는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보여 다행이었는데, 지금 표정이 좋지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많은 일이 있었어요.”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털어놓아 볼래요?”

 

  “정말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간 기분이었어요. 충분히 그럴 만한 일들이 가득했으니까요. 하지만 많이 올라간 만큼 많이 떨어져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 바닥에 처박혀 있는 거예요.

 

  “이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앞으로의 일들에도 더는 희망이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일에서 흥미가 사라진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요.

 

 “그렇군요. 안타깝지만 지금은 병이 꽤 악화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만 약을 하나 더 추가해 드릴게요. 아리피프라졸이라는 약이에요. 우울함을 완화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약이에요. 단점이 있다면 조금 비싸긴 하지만요.”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선 정민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독, 고통과 함께하는 시간일지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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